새벽 방향으로
비가 새벽을 훑고 지나가면서 지나간 몸짓들을 던져 놓았어. 빗소리만 들으면 언제고 자꾸만 커피를 내리고 싶어지는 것도 어쩌면 그런 몸짓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새겨놓은 주름일까. 빗방울이 바람의 발자국처럼 뚜벅뚜벅 골목을 적시며 걸어 나간다. 이럴 때 책은 덮어도 되는 거지. 이런 날이면 그간 이해할 수 없었던 몸짓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는 게 차라리 남는 일이지. 돌아보건대 사실은 아무래도 결국 좋았고 이해하지 못한대도 역시 좋고 마는 그것들. 배부른 표정을 하고 찰박찰박 그것들 위를 지나가고 나면, 파문처럼 한 번 일렁였다가 잠잠해지고 나면, 그것은 그냥 그것으로 남고 나는 그냥 나의 얼굴로 나서는 거지.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잔을 빙글빙글 돌리는 것은 그런 것이지. 흔들려라 흔들려라, 섞이고 섞여라, 돌고 돌아라. 돌아오지 못할 것들은 이미 돌아온 것으로 하고, 잊지 못하겠다는 말도 까맣게 잊고, 믿지 못하겠다는 말만은 끝내 믿지 말고, 울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는 최선을 다해 울리지 않고. 얼굴을 모르는 신께 올리는 아침 기도처럼, 내 이야기인 줄도 모른 채 처음 듣는 낯선 친숙한 이야기처럼, 웃다 보면 차마 웃게 되는 마음처럼, 속삭임 같은 속살을 맞대고 속살같이 속삭이던 수많은 낮과 밤처럼. 아, 비가 다 지나간다.


무언가 잘 안 되어 생이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면
모쪼록
이것도 역설의 방식이라 하면 안 될까
나도 내가 아닌 곳으로 흐른 때가 많았으니
너무 오래되었다면 그리 두어라
긴 밤이여 솟구쳐 흘러라
_ 이규리, <역류성 식도염> 부분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뿐이었다.
_ 김봉곤, 「데이 포 나이트」
--- 읽은 ---
256.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학
야마모토 시로, 오오타케 마모루 지음 / 김영주 옮김 / 내인생의책 / 2016
이야기를 줄이는 것, 요체를 둘러싼 먹지 못할 것들을 발라내고 피가 되고 살이 될 것들만 접시 위에 올리는 것, 바쁘게 살다보니 도무지 먹을 여유가 없는 거대한 책들이 생기는데 그런 책들을 아예 먹지 않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는, 요즘은 유튜브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몇 가지 이야기를 통과한 사람은 세계와 이어지는 힘을 가지게 되고, 개인의 세계를 깊이 연구한 정신은 다른 사람을 향해 열린다
_ 야마모토 시로, 오오타케 마모루,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학』
257. 맹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 김결 옮김 / 유유 / 2016
유유에서 양자오 선생님이 ‘읽었노라’고 선언한 이런이런 책들을 나도 대부분 읽었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처럼 읽을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 통달한 자들은 입문서란 원전의 요약인 동시에 원전의 해석이므로 경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원전을 다이렉트로 읽어 가질 수 있는 것이라 해봐야 어차피 원전의 지혜가 아닌 원전에 대한 나의 해석일 따름이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게 syo의 생각. 원전에 대한 양자오 선생님의 견해와 syo의 견해가 테이블에 띡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앞에 걸 쥐고 보겠다는 것 역시 syo의 생각.
내 것은, 어차피 알아서 자란다. 불가피하다. 내 사견을 빼고 ‘객관적’으로 읽어야지 암만 마음을 먹어 봐야, 내 것이 자라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마치,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만 잔뜩 할 순 있어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일 자체는 결코 불가능한 인간의 한계와 흡사하다.
‘인의’仁義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맹자의 웅변은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억지를 쓰지 않고 일관된 논리를 펼칩니다. 이 논리의 전제는 인간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감응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나의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넓혀, 사람들을 보호하고 아끼는 자애로운 은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방향을 바꿔 보자면, 사람은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어 인의를 가진 군왕을 알아보고 선택할 수 있으며, 인의를 가진 군왕을 지지하고 그에게 달려가 의지할 수 있습니다. 민심을 얻어, 백성이 몰려와 의지하는 군주가 어떻게 ‘천하의 왕 노릇’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_ 양자오, 『맹자를 읽다』
258.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김유진 지음 / 토네이도 / 2020
꼼꼼히 읽기를 마쳤다. 그리고 나서 이틀 전이었나, 어찌 된 일인지 아침 7시에 잠들어서 오후 1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버렸다. 도대체가.
결국 남들보다 빠른 삶을 산다고 꿈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게 목표를 이루는 진정한 방법이었다.
꿈을 이루는 데 이르거나 늦은 때는 없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같은 시기에 목표를 달성할 타이밍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다음 주에 문이 열리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몇 년 뒤에야 문이 열린다.
_ 김유진,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 읽는 ---







인간 루쉰 上 / 린시엔즈
어른의 맞춤법 / 신선해, 정지영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다나베 세이코
분자 사용 설명서 / 김지환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 김훈종
종이 동물원 / 켄 리우
마흔에 관하여 / 정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