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의 마니아로부터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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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18년 9월이었으니, 벌써 2년 반. 옛말에 따르자면 강산이 1/4쯤 바뀔만한 시간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 2년 반이면 14번쯤 바뀌는 카멜레온 강산.
그렇다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은 그야말로 옛말인가? 글쎄, 한번 미분하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강산의 변화 속도는 예전과 달라져서 이제 10년을 논할 수 없지만, 등가속도 운동이라면 저 말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심지어 강산이 변하는 속도마저 변한다.”로 성글게 고쳐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인문학적으로 변주해보자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심지어 강산이 변한다는 말조차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당신은 결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기원전 6세기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처럼 말할 수 있겠다.
뭔 말이고 왜 이러냐고요? 공대생이 자기 딴에는 재밌다고 생각해서 시전한 개그의 성공률은 1/4쯤 되거나 그에 약간 못 미친다는 거지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syo는 ‘한번 미분’ 쓰면서 소소하게 터졌다. 공대생들이여, 알잖아요. 미분 이야기 나오면 일단 한 번 웃는 거. 그거 규약이잖아요. 암페어의 오른나사 법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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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샜다. 다시,
그게 18년 9월이었으니, 벌써 2년 반. 절정을 찍었던 백수생활의 리듬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었던 당시의 syo는 북플의 마니아 시스템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syo에게 그것은 뿌리뽑힌 존재로 떠돌아다니던 긴긴 세월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소진되어버린 자존감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였다. 그런 개인적인 필요성에다가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천착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도착적 공대생의 종특이 발휘되었고, 심지어 마니아에 관해 알라딘에 물었다가 ‘내부적인 로직에 따라 작동합니다’ 하는 겉핥기 대답만 들었기 때문에 촉발된 분노까지 더해졌던 것이다. 아, 로직 있겠죠. 그러니까 그거 물어본 건데. “로직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시든가요.
그렇다면 내가 판다. 진행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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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며칠간 실험을 거쳐서 마니아 로직에 대해 이런저런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서재에 공개했다. 그러나 이 알라딘에 syo처럼 자존감 낮은 인간은 별로 없었고, 허허- 그런 게 있었군요, 그런 건 그저 숫자일 뿐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닌데 허허허, 왜 사람들은 그런 허울에 집착하는 걸까요 하는 지당하고 건강한 반응을 보이셨다. 그러나 자존감 오래 낮은 인간은 겁나 꼬여 있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기가 분노 포인트라고 생각조차 못한 대목에서 경기하듯 열등감을 폭발시키며 빡치곤 하거든.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고생했는데 어쩐지 섭섭한 반응에 삐뚤어진 syo가 내부적으로 생각하기를, 와선비시네요, 그허울에대해분석까지한놈글에그런댓글을다는건싸우자는뜻인가요, 그렇게내실을따지셔서syo보다더읽으시긴하시나요, 하며 고슴도치가 되기도 했었다. 이게 다 추억이네. 그 이후로 강산은 1/4쯤 변했고, 왜곡된 열등감과 자기비하적 마인드는 여전히 1년에 두어 번씩 폭발하여 불필요한 사건사고를 일으키지만, 강산이 변하는 속도가 변했듯 사건사고의 빈도도 조금씩 줄고 있다. 여러분, syo는 이렇게 천천히 천천히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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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뭐 딱히 쓸 것도 없고 해서, 그때 발견한 북플의 마니아 로직이나 재탕하려고 한다. 그 사이 로직에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있었더라도 아마 소소한 수준이 아닐까. 틀린 부분이 있다면 “독자 제현의 날카로운 질정과 고언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ㅋ 저 말 언제 한 번 해보고 싶었어.
마니아 로직의 정체
쓰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보다 훌륭한 도스토옙스키 독자일 수 있습니다. 30년째 매년 쿤데라를 읽어온 애독자일 수 있고, 김연수 작가의 모든 행사에 참가하며 작가님이 직접 하사하신 연필 한 자루를 가보로 삼는 찐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실에 스스로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전부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을 북플은 모릅니다. 작가로부터 연필이 아니라 땅문서를 받았더래도, 북플은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어떤 작품과 작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당신에게 있는데, 혹시 그 자부심이 북플이라는 작은 SNS에도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이나마 있다면, 페이퍼나 리뷰를 쓰셔야 합니다. 북플은 당신의 글에 점수를 매깁니다. ‘읽고 싶어요’나 ‘읽었어요’에는 점수가 붙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100자평은 제가 실험해보지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점수가 붙겠지요? 밑줄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페이퍼와 리뷰입니다.
좋아요가 필요합니다
이 동네 여러분들은 기본적으로 훌륭한 독자이고(그래서 여기 있지요),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인간의 전체 평균을 상회하는 글꾼입니다. syo는 알라딘을 열심히 싸돌아다니면서 숨어있는 글쟁이들을 발견하는 취미가 있는데, 이 동네는 진짜 글 잘 쓰고 똑똑하고 많이 읽고 많이 아는 사람들이 진짜 파도파도 나옵니다. syo는 그냥 나부랭이죠. 운 좋은 나부랭이. 타인이 읽고 말고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사유를 정리하고 개진해나가는 멋진 글쟁이들, 진짜 존경합니다. 당신이 진짜 마니아죠. 그렇지만 진짜 마니아가 북플의 마니아는 아닙니다. syo가 글로 똥을 싸고 40개의 좋아요를 받는 동안, 당신의 조용히 빛나는 글이 5개의 좋아요를 획득한다면, 북플은 syo를 당신보다 8배 정도 마니아스럽다고 인정합니다.
북플 마니아에는 4개의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a. 작품 마니아
b. 작가 마니아
c. 장르 마니아
d. 시리즈 마니아
페이퍼에 책을 첨부하시면 2점이, 리뷰를 쓰시면 7점(5점이었던가? 하여간)이 기본적으로 부여됩니다. 기본점수가 그렇고, 그 글에 붙은 좋아요 숫자만큼의 추가점수가 획득됩니다. 4개의 카테고리 각각에 다 점수가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예 1)
당신은 어제 저녁 쓴 페이퍼에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으로 현암사에서 출간된 <도련님>을 첨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페이퍼에 밤새 20개의 좋아요와 10개의 댓글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마니아 점수는 이렇게 변합니다.
a. 작품 <도련님>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페이퍼 기본 2점 + 좋아요 20점)
b. 작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
c. 장르 “일본소설”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
d. 시리즈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
우리에겐 댓글이 훨씬 더 소중하지만 북플은 그런 거 안쳐줍니다. 1000만 댓글의 위업을 달성해 국민 페이퍼에 등극했어도 좋아요가 10개라면 당신은 12점입니다.
마니아 목록 등재 기준
우선, 마니아 점수는 당신이 글을 쓰거나 좋아요를 받는 매순간 갱신되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번 몰아서 갱신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새벽과 아침 사이의 어느 시점입니다.
둘째, 각 카테고리 별 ‘마니아’ 칭호를 획득하기 위한 최저점수는 이렇습니다.
a. 작품 : 20점
b. 작가 : 40점
c. 장르 : 100점
d. 시리즈 : 40점
이 점수에 도달하기 전까지 북플은 조용히 당신의 점수를 가지고만 있습니다. 페이퍼에 <도련님>을 첨부했으나 획득한 좋아요가 10개라면, 총점은 12점이 되겠지요? 그 점수는 20점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만 보관될 뿐이고, 당신은 아직 <도련님> 마니아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합니다. 좋아요가 더 붙거나 다른 페이퍼/리뷰를 통해 추가 점수를 획득하여 총점 20점에 도달하는 순간, 당신은 <도련님>의 마니아에 표시되는 식입니다.
셋째, 작품 마니아가 되기 위해서는 별 4개 이상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페이퍼에서 <도련님>에 별 3개를 매겨도, 점수 자체는 추가됩니다. 하지만 마니아 목록에 이름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가끔 어떤 작품의 마니아 목록을 보면, 1번째 마니아 다음에 2번째 마니아를 건너 뛰고 3번째 마니아가 자리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점수상으로 보면 2번째 마니아 자리에 있어야 할 누군가가 그 책에 별 3개 이하를 매겼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이라도 그 작품에 별점을 4개 이상으로 매기고 새벽과 아침 사이를 지나면 2번째 마니아의 정체가 드러날 겁니다. 당신의 점수는 결코 어디 가지 않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 이 사항은 작품 마니아에만 해당합니다. 여러분이 나쓰메 소세키가 그냥 그래서 작품마다 별점 3개를 매기고 다녀도, 점수만 쌓이면 당신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가 마니아로 이름을 올립니다. 별점에 똥점을 줘도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순위 급등을 원하는 당신을 위한 잔재주
우선, 한 페이퍼 내에서 작가, 시리즈, 장르 점수는 중복으로 채점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요,
예 2)
당신은 어제 작성한 페이퍼에 최근 번역 출간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소설 <아주 편안한 죽음>을 첨부했습니다. 아오, 따끈따끈. 그리고 페이퍼를 주욱 써나가다 보니 작년쯤 보부아르의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제2의 성>을 읽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책도 첨부합니다. <제2의 성>은 1, 2 두 권이네요. 그리고 역시 좋아요 20개가 붙었습니다. 그러면 새벽과 아침 사이를 지나 당신의 마니아 점수는 다음과 같이 변동합니다.
a. 작품 <아주 편안한 죽음>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
a. 작품 <제2의 성 1권>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
a. 작품 <제2의 성 2권>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
b.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66점이 아닙니다)
c. 장르 “프랑스 소설”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아주 편안한 죽음>)
c. 장르 “여성학/젠더”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44점이 아닙니다)
d. 시리즈 “을유세계문학전집”에 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아주 편안한 죽음>)
d. 시리즈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에 대한 마니아 점수 +22점(역시 +44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한 페이퍼에 21세기 프랑스에서 출간된 모든 소설을 다 집어넣어도, 좋아요가 10개라면 당신의 “프랑스 소설”마니아 점수는 12점인 겁니다.
두 번째로, 마니아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리뷰보다는 페이퍼가 좋음을 알 수 있습니다. 페이퍼 하나에 100만 개의 작품을 넣어서 좋아요 10개를 받았다면 작품 각각마다 +12점이니 당신은 총점 1200만점을 얻는 셈이겠지요?
세 번째로, 페이퍼에 작품이 추가되기만 하면 그 작품에 대한 글이 있건 없건 마니아 점수는 획득이 됩니다. 페이퍼 전체가 어느 정도의 분량을 갖추어야 점수가 주어지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 본 바가 없어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책을 목록에 추가하고 그 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도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마니아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 분이 계시다면, syo라는 빨간 똥그라미가 여기저기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는 걸 발견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syo는 페이퍼에다가 읽은 책들 말고도 현재 읽고 있는 책들의 목록도 기록하는데, 마니아 점수 획득 관점에서 보면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습니다.
꼼수라면 꼼수겠지만 이걸 어떻게 하기에 북플 입장도 참 난처한 것이, 그 글 속에 책에 대한 언급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파악해서 하나하나 점수를 매기려면 페이퍼마다 좀 고급한 문맥 분석 알고리즘을 돌려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까지요? 아예 페이퍼에다가 마니아 점수를 부여하지 않는 방법이 있겠으나, 그것도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불 지르는 격일 거고요. 마니아 점수 높다고 뭐 적립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나 올 굿즈가 두 개 오는 것도 아닌데.
급마무리. 뿅.
--- 읽은 ---
122. 시를 읽는 오후
최영미 지음 / 해냄 / 2017
시가 문제다. 모든 번역이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왜곡과 손실을 거칠 운명이지만, 시는 난리난다. 운과 율은 언어가 저마다 독창적인 특성이고 시는 리듬이 반이다. 결국 시가 내 언어의 얼굴로 나에게 오기보다 내가 시가 쓰인 그 언어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 결국 이 책은,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시가 영어로 쓰였으니 네가 너 바깥에 있는 저 아름다운 세상을 놓친 채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가서 영어책을 꺼내들란 말이다, 이 그지깽깽이야- 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형식으로 윽박지르는 책이다. 윽, 빡.
그래. 그래서 내가…… 사포의 뒤틀린 위트와 아이러니에 매료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평범한 주부가 되어 적당히 편안한 중년을 보냈겠지. 너무 이른 나이에 사포에게 세뇌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시인이 되어, 더 폭넓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감히 나를 노래하는 모험을 택하지 않고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아리송하게 심각하게 포장하는 재주를 익혔다면 비평가들의 칭찬과 상도 뒤따랐으련만……. 그러나 나는 ‘나’를 노래하다 안개처럼 사라질 운명인 것을…….
_ 최영미, 『시를 읽는 오후』
123. 문장 교실 : 글쓰기는 귀찮지만 잘 쓰고 싶어
하야미네 가오루 지음 / 김윤경 옮김 / 2021
제목부터 멋지다. ‘귀찮지만’ 저것은 syo 인생의 화두다. 이번 생은 귀찮음의 침투에 맞서 사람 최소한의 사람 구실을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갈 모양이다. 귀찮게.
책에 대해서는 긴 말 하지 않겠다. 고양이가 나타나서 글쓰기를 가르쳐준다. 세상에. 끝난 거 아닌가? 저 뚱친 것 좀 보라지…….
선우 + 정아 = 도망가자?
124. 정치적인 식탁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9
입이다. 입이 여자가 되고 여자가 입이 되는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는 역사책에는 하나도 없었고 책이 되지 않는 모든 곳에는 있었다. 입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은 모두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필수적인 것들은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이 만들고, 필수적인 인간들은 필수적이지 않으면서 고상하고 훌륭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일을 했다. 고대 그리스가 그렇게 돌아갔고, 고대 그리스는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여기 이 땅은 그렇게 돌아간다. 돌아가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멀었다. 각자가 각자의 필수를 챙기는 세상에서 필수는 폄하되지 않고, 필수적인 일이 모두의 것이 되는 순간 고상하고 훌륭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일도 모두의 것이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명백하다. 그러나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해야 까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하려면 까지 않아야 한다. 아오 이, 불멸의 닭달걀프라블럼. syo는 그냥 닥치고 내 식탁을 내가 차리는 중.
상추를 봉지째 밥상에 올렸다고 죽이거나, 밥을 안 차려줬다며 살해를 시도한 남편이라는 이름의 폭군들.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밥 안 줘서 아내를 살해하는 남자들 덕분에 여성 일반을 조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나쁜 놈’을 남성연대는 꼭 필요로 한다. 모든 남성이 ‘나쁜 놈’은 아니더라도, 이 나쁜 놈 덕분에 남성은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 아내를 살해했거나 살해를 시도한 남편에게 법이 관대한 이유다.
_ 이라영, 『정치적인 식탁』
--- 읽는 ---
한나 아렌트 / 알로이스 프린츠
안녕은 작은 목소리로 / 마쓰우라 야타로
춘분 지나고까지 / 나쓰메 소세키
망자들 / 크리스티안 카라흐트
그래비티 익스프레스 / 조진호
내가 사랑한 공간들 / 윤광준
제가 어쩌다 운이 좋았습니다 / 김민조(민조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