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반란

 

 

 

1

 

프랑스의 어느 미식가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다고 한다. 과연 프랑스스럽달까. syo는 프랑스 사람도 미식가도 아니지만 저게 어떤 말인지 대충은 알 것 같다. 하루의 대부분을 활자를 먹는데 소비하는 사람은 그가 읽는 책과 비슷한, 그러니까 그 책 속에 들어있는 문장의 생김과 비슷한 기분으로 생활하고 말을 하고 글을 쓰게 된다. 최근 제일 안력을 가장 많이 소진하고 있는 장르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잔뜩 들어있는 책들이다.

 

그러나 그 수 개의 부동산 중 일부는 채무자의 소유이고 다른 일부는 물상보증인의 소유인 경우에는 물상보증인이 민법 제481, 482조의 규정에 따른 변제자대위에 의하여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대하여 저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그 물상보증인이 채무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피담보채권액은 공동저당권의 피담보채권액 전액으로 봄이 상당하다.


, 상당하네.

 

알라딘이 법원이 아닌 이상, 저런 상당한 문장들과 하루 10~12시간씩 씨름하는 사람이 쓰는 글이 제대로 꼴을 갖출 수 있을 턱이 없다. 가끔 뭐라도 끄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문체적 여유가 없어져서 큰일이다.

 

 

 

2

 

하루의 절반 정도를 저러는 데 쓰고도 책을 읽겠다고 잠을 줄여 보았다. 며칠은 괜찮았는데, 슬슬 피곤하다.

 

 

 

 

--- 읽은 ---

 


233.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이보람 지음 / 카멜북스 / 2020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행의 시대에서 소비시장을 운영하는 책임자들을 공급에 맞추어 욕구를 키우는 전문가들이라고 표현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내 욕구와 욕망의 자주성을 지키고/인정받고 싶어서 안달한다. 우리의 욕망이 대타자의 욕망임을 선언한 라캉의 철학적 금언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식으로 먹기도 좋고 보기도 좋게 조리되어 떠돈다. 저 말은 한 번만 들어도 아, 진짜지! 우리가 진짜 그렇지! 하면서 쉬이 공감하게 되고, 그 즉시 우리는 어떤 지혜를 깨치거나 탁월한 삶의 감각을 획득한 것같은 착각에 빠진다. 멋있는 말과 내 자아의 쉬운 일체화는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어쩐지 나를 더 멋진 인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 멋짐을 지키기 위해 경구 자체에만 집착하다 보니 실제 삶은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애초에 저 말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입김에 오염되지 않은 자신만의 욕망을 찾으라는 말이 아니라, 언어 구조에 포획된 신경증적 인간으로서의 현대인에게, 그런 탈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에 더 가까운데. 보기에 따라서는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벌써 어떤 담론에 포획되어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되지도 않을 일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되는 일부터 해나가는 게 좋다. 불순물이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내 욕망을 찾겠다는 꿈을 애초에 버리고 시작하면, 오히려 피할 수 있고 노골적인 타인의 욕망들을 직시하기 쉽다. 다시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로 돌아가면, “공급에 맞추어 욕구를 키우는이들로부터 내 욕망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 욕망을 조작해서 더 많이 팔아치우려는 그들의 욕망을 꺾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공급을 줄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공급은 어떻게 줄이면 될까? 수요를 줄이면 된다. 물질의 소비를 줄이는 일에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전체를 위해 좋은 선택이라는 거대한 이점 말고도, 내 욕망의 주도권을 조금 더 찾아오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이득도 있다.

 

스스로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자존감을 높여 나가면 나의 정체성을 물질로 대체하지 않고타인과 비교하며 흔들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쓸데없이 물질로 남과 경쟁하는 일이 줄어들면 물건을 많이 만들 필요도 없어진다과도한 생산이 멈추면 그에 따른 탄소 배출이 줄어들고 쓰레기도 감소할 것이다나는 내 건강만 챙겼을 뿐인데 그 영향은 나비처럼 날아가 온 지구에 퍼지게 된다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지구를 파괴하면 그 악영향은 돌고 돌아 결국 또 인간이 아프다.

이보람나는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234. 마흔에는 잘 될 거예요

권수호 지음 / 카멜북스 / 2020

 

마흔이 눈앞에 있다. 코앞은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마흔은 금방 코앞으로 올 것이다. 서른이 눈에서 코까지 가는데 걸린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면 눈에서 출발한 마흔이 충분히 코에 도착할 것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세상에 서른이 되면’, ‘서른에 알았더라면’, ‘서른에 꼭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마흔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는 오늘 보니까 세상에 있는 책의 80%가 마흔아’, ‘마흔에는’, ‘마흔이라면따위의 제목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서른 전에 보았던 서른의 책들이 서른을 돌파하는 데 아무런 실체적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마흔 앞에 만날 마흔의 책들을 그리 기대하지 않고 읽는다. 이 책은 그저 소소한 에세이고, 권수호 작가님의 필력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에세이들 사이에서 이 책을 낭중지추로 만들 정도는 아니다.

 

늙었다.”

  툭 하고 내뱉은 말이었지만 유난히 속이 시렸다바쁘게 사는 건 좋은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 과정이 보이지 않았다거울 속 나는 내가 소망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난 지금 행복할까앞으로 행복할 수는 있을까어쩌면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는 건 아닐까?

권수호마흔에는 잘 될 거예요


 

 


235.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

정인성 지음 / 북스톤 / 2019

 

책을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사랑에 한없이 가깝다고 해도 좋다.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현미경의 배율을 무한대로 보내서 마음을 들여다보면 결국 싦음에 수렴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원체가 그런 사람이다 보니, ‘북바라는 개념이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아서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읽었다. 오히려 북바보다 그 북바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 인간 정인성이 내겐 더 재미있는 개념 같았다. 정인성 작가님의 다른 책 소설 마시는 시간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표지도 그렇지만 안에 실린 술병이랑 술 마시는 사람들 그림이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 술도 안 좋아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다. 이후로도, 이 작가님은 술을 주제로 한 두 권의 책을 감수하신 것 같다. 아무래도 술+책 하면 정인성이 1빠지- 이런 개념이 저 판에 떠도는 건가. 뭐 그것도 재미있는 개념 같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곳에 있는 걸 더는 못 견디는 사람과, 저곳에 가고 싶어 더는 못 참는 사람. 물론 전자는 안쓰럽고 후자는 존경스럽다. 그건 내가 3자일 때, 그러니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일 때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전자가 되어서 후자를 볼 때, 혹은 내가 후자가 되어서 전자를 볼 때 드는 감정은 3자일 때와 같을 수가 없는 듯하다. 멋있는데 못내 아니꼽고, 부러운데 괜스레 흠잡고 싶고, 이 사람 잘 됐으면 싶으면서 또 너무 크게 잘 되면 어쩐지 좋지만은 않을 것도 같고.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좋다고 했다몇 시간 뒤계산대 앞에 선 그녀에게 압생트는 어땠는지 감상을 물었다역시나 맛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앉았던 자리를 슬쩍 쳐다보니 두 모금 정도만 비워진 압생트가 남아 있다. 90%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내가 그녀였어도 압생트를 주문했을 것이다취향과 관계없이궁금한 술을 맛보는 경험은 소중하기 때문이다술을 다 마시든 남기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마셔보면서 내 취향을 찾아가고그러면서 또다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그렇게 매번 새로운 도전을 통해 나라는 사람과 가까워진다.

정인성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


 

 


236. 공부는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

이종훈 지음 / 북카라반 / 2019

 

세상 모든 것이 그것에 열중하는 사람의 삶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실제로 공부를 포함한 몇몇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아무리 열중해도 삶을 바꿨다고 표현할 만큼의 전환점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심지어 이 책을 쓴 이종훈 판사님이 오늘날 갑자기 고2의 몸으로 돌아가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작해도, 비슷한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건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그렇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이런 성취를 이룬 사람에 대해서는 존경과 찬사 말고도 더 바칠 게 있는지 찾아보고 싶은 심정이다. 노력과 열정도 재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그게 없는 내 입장이 덜 비참해지잖아…….

 

하여튼 이런 책에 손이 간다는 건, 마음 한켠에 불안 같은 게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결국 글을 써야겠노라 마음 먹은 것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전국의 수많은 꼴찌들 때문이다이들에게 최소한의 성실성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 아마 학창 시절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해낼 수 있다면이 책을 읽을 누군가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종훈공부는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

 

 

 

 

--- 읽는 ---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동네의사와 기본소득 / 정상훈

파퓰러사이언스 2020. 11 / ()에이치엠지퍼블리싱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 폴커 키츠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 고요한

휴식의 철학 / 애니 페이슨 콜

엄마의 뜰 / 김살로메

유행의 시대 / 지그문트 바우만

성의 역사 1 / 미셸 푸코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 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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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06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은 적당히 자 가면서...건강 잘 챙기세요. 문체는 그 다음에 챙기세요 ㅎㅎㅎ

syo 2020-12-06 21:53   좋아요 3 | URL
누우면 또 잠이 안 와서 읽다보니 시간은 가고, 그래도 기상 시간은 변동이 없다보니 수면량은 줄어들고, 그런 악순환(선순환??)이네요 ㅎㅎㅎ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좀 피곤한 정도지 건강 이야기 나올 수준은 아니에요.
졸리면 낮에 쳐자거든요^-^

바람돌이 2020-12-07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상보증인의 소유인 경우에는 물상보증인이 민법 제481조, 제482조의 규정에 따른 변제자대위에 의하여..... 한국어인데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런 공부를 할 때 보는 책이 진짜 꿀맛이죠. 요런 때는 내가 이거 끝나기만 해봐. 보고싶은 책 24시간 풀로 다 읽어줄거다하면서 씩씩거리는....ㅎㅎ 견디기 힘들어서 일을 때려치웠든 다른 걸 간절하게 원해서 그랬든 그래도 그럴수 있는 용기가 아름답습니다. 그 용기가 syo님의 삶을 이끄는 힘이 될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당신은 좀 멋진 분 같아요. ^^

하나 2020-12-07 02:12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독서의 참 맛을 아시는 분 🙊

syo 2020-12-07 09:01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일을 때려쳤을 때 꼭 그런 마음이었거든요. 24시간 풀로 읽어줄 테다!
이틀 가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란 인간 으하하하하하

그리고 바람돌이님의 마지막 말씀에 관해서라면, 저희 엄마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ㅎㅎ

추풍오장원 2020-12-0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상당하다 답안지 쓸 때도 쓰게 되는 표현이네요. 안 쓰는 편이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다고 봄이 상당합니다...

syo 2020-12-08 14:54   좋아요 0 | URL
저는 답안지에 ‘현출‘한다는 표현도 공부하면서 처음 들어봤어요.
추풍님 말씀 들으니까 저런 문체를 ‘현출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라로 2020-12-0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몰랑요. 요즘 술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데 그동안 압셍트에 대한 글을 읽어도 이름 강하네 정도였는데 이 글을 읽으니까 막 마셔보고 싶어요. 술을 끊기 전에 후회 없도록. ㅎㅎㅎㅎㅎㅎㅎㅎ (핑계😅) 암튼, 뭘 하시든 전 언제나 토비 님 응원해!!!👍 (근데 무슨 공부인지 뭐 검은 것은 글자요 싶은... 머리 아플 땐 만화??😅)

syo 2020-12-08 14:5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저는 술을 싫어하지만 압생트는 이름부터가 싫었어요. ‘압생‘트.... 뭔가 생을 압박하는 이름이야.

그나저나 술과 작별인사를 하시는군요..... 성공하고 행복하시길, 설령 실패하신데도 그게 더 행복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실패하시는 길이 되길, 뭐가 됐든 행복하세요ㅎㅎㅎㅎㅎ

Angela 2020-12-08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글에 동감입니다~

syo 2020-12-08 14:51   좋아요 1 | URL
Angela님도 요즘 스타일에 안 맞다 싶으신 글을 읽는데 시간을 쓰는 중이신가 보네요 ㅎㅎ

공쟝쟝 2020-12-14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바 가봤는데! 나 가서 칼바도스 마셨는 데! 담에 가면 압생트 도전 해야지!!! 아마 밤일 낮쉼이 그분 책인 듯 하죠?
 

 

답은 정해졌다

 

 

 

낮잠을 자려고 누웠거든. 비몽사몽 골짜기를 헤롱헤롱 지나고 있는데 누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거야. 반품 택배 신청하셨죠? 내일 오실 줄 알았는데요. 코로나라서요. ? 코로나요. ……? 안녕히 계세요. 그러고 나니 잠이 달아나고 말았지. 아무 생각 없이 폰을 들고,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네이버에 들어가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뉴스를 보다 보니, 아 글쎄 경기도에서 배달특급이라는 공공 앱을 출시했다는 거야. 이재명 지사가 배달특급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더라고. 거대 배달 서비스 업체의 전횡으로부터 소상공인과 도민을 지키려고 만들었대. 그런 훌륭한 취지를 감지했는데, 훌륭한 경기도민으로서 어떻게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 우리 도의 공정한 경업질서 확립과 소비자 편익 증대를 위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는 거라. 그래서 당장 치킨을 시키기 위해 앱을 설치했지. 그런데 앱을 켜 보니까, 내가 사는 성남시는 아직 서비스 전이네? 서비스 일정표를 봤는데, 2021 일정에 우리 동네는 없네?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나의 사명감과 당황해서 눈알만 굴리는 나…….

 

그렇게 잠깐의 패닉 상태가 지나갔고 남은 거라곤 뜨거운 원망과 분노뿐이었어. 어떻게 이 사회는,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시민의 참한 마음을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는 데 능숙한가. 도대체 왜 이 사회는, 거룩한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을 때 좌절하고 상처 입을 개인의 여린 감성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무심한가. 도대체 왜, , ! 참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큰 사고를 칠 것만 같아! 도저히 안 되겠다, 사고를 칠 바엔 차라리 치킨을 시키자! 좋아! 도시의 평화를 위해 나는 오늘 치킨을 시키는 거야! 두 마리를 시키자! 이 태산 같은 울분을 누르고 태평양 같은 분노를 잠재우려면 닭 다리가 족히 네 개는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대의명분 빌드업 G렸다.

 

 

 

다시 말해 진화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지금 당장이익이 되는 특성은 무조건 선택된다그 결과 훗날 9대손쯤에서 너무 구닥다리 특성으로 고생하지 않을지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미래를 내다보고 반영한다든지 하는 것도 물론 전혀 없다이를테면 "이 특성은 지금은 좀 거추장스러워도 100만 년 후에는 후손들한테 진짜 유용하겠군좋아선택하자", 그런 경우는 없다진화의 원리는 앞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다그냥 먹을 것과 짝짓기에 굶주린 개체들을 인정사정없는 세상에 무진장 많이 풀어놓고 누가 제일 덜 망하나 보는 것이다.

톰 필립스인간의 흑역사


최근에 내가 말이야꿈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그 의미를 알려 주는 책 몇 권을 읽었어그런데 간밤에 자네가 돼지 머리를 하고 있는 꿈을 꾸지 않았겠나그건 자네가 돼지라는 소리라더군.

장자크 상페마주 보기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에는 손이 저절로 가는 법이지어쩔 수 없어돼지는 손을 내미는 대신 코를 내밀지돼지는 말이네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해두고 코앞에 맛있는 음식을 놓아두면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까 코끝이 점점 늘어난다고 하더군맛있는 음식에 닿을 때까지 늘어나는 거지정말 집념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니까.”

나쓰메 소세키산시로


  

 

--- 읽은 ---

 


229. 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

 

스무 살, 그것은 정말 설레는 단어다. 아직 스물이 되지 않은 이들에게도, 벌써 스물을 지나온 이들에게도. 표제작 스무 살에 아무래도 녹아있을 김연수 선생님의 자전적 정보를 읽으며, 나는 스물에 어디서 뭘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려보다가 기분이 더러워졌다. 젠장, 그 좋은 스무 살을 암담에 참담을 얹고 비참에 비루를 더하면서 소진했단 말인가. 그대로 책을 집어던지려다가 내 스무 살을 망친 건 책이 아니라 나라는 생각에 책을 그대로 내려놓고 나를 집어 던졌다. 침대 속으로. 한잠 자고 좀 눅눅해진 마음으로 다시 읽었는데, 과연 좋았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자 읽느라 수고했다며 선생님께서 약을 발라주셨다.

 

생에서 단 한 번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별들처럼 스무 살제일 가까워졌을 때로부터 다들 지금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이따금 먼 곳에 있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다이 말 역시 우스운 말이지만부디 잘 살기를 바란다모두들.

김연수스무 살

 

처음 읽은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요즘 사는 꼴이라는 게. 부디 잘 살아야겠다.

 

 

 


230.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제임스 설터 지음 / 최민우 옮김 / 마음산책 / 2020

 

syo란 놈의 성벽이란 저런 아련한 제목을 만나면 여지없이 흐물흐물 왈카닥 무너져내리는 물벽돌이라서, 작가가 설터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들춰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쓰지 않으면 사라져요라는 말이 설터의 입에서 나왔으니(그렇다면 “젊은 친구, 쓰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지.” 정도가 어울릴까?) 즉시 장바구니로 갈 밖에. 그런데 잡은 물고기의 운명이 늘 굶주림으로 귀착되듯, ‘산 책역시 언제나 읽을 수 있으니 언제나 읽지 않는 기이한 운명을 두르고 책장 속에서 먼지만 뒤집어 쓴다. 그렇게 천대의 세월이 축적되고, 어느날 우연히 책장을 뒤지던 주인의 손에 재발견되어 애절한 표정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읽지 않으면 말일세, 젊은 친구, 확 사라져 버릴 걸세. 좋을 줄 알았지만 좋았다.

 

설터 할아버지께 죄송스럽게도, 스키로 유명한 도시에 대한 리뷰랄지, 미국 육사에 대한 홍보글이랄지 하는 것들은 그냥 넘겼다. 설터 할아버지가 아니라 설터의 할아버지가 온대도, 안 읽어도 될 글이나 읽어도 뭣도 안 될 글은 읽지 않는다.

 

거투르드 스타인은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찬사를 받으려고요." 로르카는 사랑받으려고 글을 쓴다고 말했다포크너는 작가란 영예를 얻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나도 가끔은 이런 이유들로 글을 썼겠지만콕 집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대체로 내가 글을 쓰는 까닭은 어떤 대화로도또는 어떤 일련의 사건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세상비록 위대한 소설들이 감행하는 시도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기는 하지만어떤 소설도 완벽히 옮겨낼 수 없는 세상이 특정한 방식으로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설터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231. 사치와 평온과 쾌락

장자크 상페 지음 / 이원희 옮김 / 열린책들 / 2018

 

안다. 이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고, 그의 그림이, 그림 옆에 붙은 촌철살인의 말들이 든 책에 소장한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알게된 지 벌써 한참 되었는데도, 그래도 이걸 사서 집에 두면, 아 차라리 다른 책을 사서 볼 건데- 하는 후회가 없으리라는 확신이 그간 없었던 것이다. 밀리의 서재 사랑해요…….

 

언제나 똑같은 꿈이에요펠레가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고 플라티니에게 공을 패스하면플라티니는 골인을 시킬 수 있는 기차게 좋은 상황에서 내게 공을 차주죠나는 냅다 슛을 날려요비웃으면서 한 손으로 공을 막는 골키퍼는 내 마누라예요.

장자크 상페사치와 평온과 쾌락

 

 

 


232.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지음 / 강유나 옮김 / 열린책들 / 2010

 

내가 앞으로 한동안은 극문학은 읽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 등등이 휘몰아쳤다라고 쓴 게 고작 닷새 전인데……. 나조차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개똥 같은 결심을 뭉개고 읽게 되었는데, , 좋았다. 부디 syo님이 이번 주 안에 리뷰를 작성해서 올리면 좋겠다(유체이탈).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건 큰 실수예요갈매기나 물고기였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지금의 나는 한 번도 진짜 집을 느껴 보지 못한 이방인으로 남아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고 어디에도 녹아들지 못하고 언제나 약간씩 죽음을 갈망하고 있는 인간일 뿐이죠!

유진 오닐밤으로의 긴 여로

 

 

 

--- 읽는 ---


마흔에는 잘 될 거예요 / 권수호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 / 정인성

혼자 있기 좋은 방 / 우지현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 이보람

동네의사와 기본소득 / 정상훈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 롭 이스터웨이

공부는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 / 이종훈

베르그손 / 황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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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2-0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임스 설터 별로였는데 인용해주신 구절 읽으니 관심이 생겨요. 설터는 표지는 제 스타일인데 아직 한 권도 안 읽어봤네요.
닭다리 네 마리로 태평양 분노가 잘 마무리되었다죠! 기분 좋게 두 마리 시켜라. 세리 언니 말씀 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0-12-03 21:58   좋아요 1 | URL
설터를 한 권도 안 읽어보셨다면, 단편집 <어젯밤>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작가들의 작가라는 칭송을 받는 설터의 아름다운 문장을 노리신다면 장편 <가벼운 나날>을 추천합니다.

레삭매냐 2020-12-0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터 자신은 <스포츠와 여가>와 <가벼운 나날>
을 자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더군요...

syo 2020-12-06 21:4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 마음이 어쩐지 이해가 갈 것 같아요.
<스포츠와 여가>는 본격적으로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첫 작품일 테고,
<가벼운 나날>은 정말, 정말 아름다우니까요.....

cyrus 2020-12-03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저는 설렜다고 하기 보다는 ‘설레발’친 것 같아요. 진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라고 떵떵거렸는데, 정작 제대로 한 건 없었어요. 이제야 정신 차리고 시작하려고 하니까 군대 영장이 날아와서 또 물 건너갔죠.. ㅎㅎㅎ

syo 2020-12-06 21:50   좋아요 0 | URL
그때 하고 싶은데 못하고 지나친 것 중에 아직 못했거나 이제는 못할 것들이 많아서 서글프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12-04 0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치킨은 옳으니 옳은 일 하셨어요 꿀꿀

syo 2020-12-06 21:5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치킨의 ㅊ만 나와도 침이 고인다니까요. 침킨인가

2020-12-04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6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0-12-0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진 오닐 극 사랑하지만 읽다보면 우울함에 풍덩 ㅋㅋ

셜터 할배 콜로라도에서 빵집(베이커리 샵) 하셨어요.
아주 오랫동안 ,,,,
빵 반죽하다가 또다시 글쓰기로,,,
쓰고 또 쓰고 또 쓰는 삶이 자신에 운명이라고 하쉼 *ㅅ*

syo 2020-12-06 21:52   좋아요 0 | URL
설터옹이 직접 빵 반죽을 했다구요? ㅋㅋㅋㅋㅋㅋ
아 멋지긴 한데 왜 되게 맛없을 것 같지? ㅋㅋㅋㅋ
 

 

지금 따지냐?

 

 

 

1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박이문 선생님이 쓰신 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데, 감히 선생님께 맞덤비자는 것은 아니지만, syo라는 인간의 머릿속에도 철학적 개념이라는 것이 들긴 들었는지, 도무지 선생님의 말씀이 턱턱 걸려서 진도를 빼기가 힘들다.




ⓖ 한국 사람은 얼굴빛이 노랗다.

ⓗ 한국 사람은 마음이 착하다.

ⓘ 우주는 하느님이 만드셨다.

ⓙ 처녀는 결혼하지 않았다.

ⓚ 아름다운 처녀는 마음을 끈다.

ⓛ 금송아지는 금으로 되어 있다.

 

가 사실인가 아닌가를 알려면 실제로 한국 사람의 얼굴빛을 조사해봐야 하며한국 사람들의 마음씨를 경험을 통해서만 알아봐야 할 것이다그 이외에는 알 도리가 없다이 반면에 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결정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경험을 통해서 알아볼 아무것도 없다다만 그 진술에 쓰인 언어의 의미를 분석하면 결정될 수 있다전자의 예가 종합적 진술에 속하고 후자의 예는 분석적 진술에 속한다.

박이문철학이란 무엇인가』 54 


선생님은 명제, “아름다운 처녀는 마음을 끈다라는 문장을 분석적 진술, 그러니까 그 진술에 쓰인 언어 속에 이미 그 진술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아무런 새로운 지식을 보태주지 않는 진술로 보고 계신데,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뭐였을까?

 

심지어 수학에서 보면 아예 명제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저 문장이 분석명제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처녀라는 단어의 정의에 마음을 끈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름다운 처녀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는 사람의 예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처녀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 당연한 주체는 보편 주체가 아니라 특정 주체다. 박이문 선생님이 무엇을 당연시하면서 무엇을 백안시하는지가 선명히 드러나는 지점은 아닐까.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박이문 선생님이 유학하던 1960년대, 한국이라는 제3세계 끄트머리 국가 출신의 동양인이 세계 학문의 중심지에서 그야말로 변방인으로서 느껴야만 했던 비애가 있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의 학문, 그들의 언어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인간으로서 그들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며 일었던 소회 같은 것이 없을 수 있었을까. ‘인간이 당연히 서구의 백인(그리고 남성)을 지칭하는 언어로 이루어진 학문 체계 속에서 겪어야 했을 배제의 경험을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디폴트 인간에 대해 좀 더 첨예한 비판의 관점을 지니게 될 거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근데 그게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2

 

칸트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명제를 종합 명제분석 명제로 구분하는 그 이분법은 너무 기계적이다. 양극단 사이에서 언어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색깔들을 무시하고 무지개를 빨강색과 보라색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로 보이게 한다. 예를 들어, “처녀는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처녀라는 단어 속에 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분석명제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문장의 분석명제성이랄지, 분석명제력이랄지, 분석명제점수랄지 뭐 그런 것이 과연 금송아지는 금으로 되어 있다라는 문장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까?

 

처녀라는 단어와 금송아지라는 단어를 뒤흔들 수 있는 사태의 집합은 그 크기가 다르다. 다시 말하면 처녀=결혼하지 않은 여자라는 공식은 금송아지=금으로 만든 송아지라는 공식과 엄밀성의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더 간단히, 금송아지라는 단어가 초콜릿이라면 처녀라는 단어는 핫초코라고 할까. 결혼하지 않고 자녀도 없는 20세 여성을 처녀라고 칭하는 사람의 수와, 결혼하지 않고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을 키우는 40세 여성을 처녀라고 칭하는 사람의 수가 과연 동일할까? 그게 다르다면, '처녀'라는 단어에 합의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사용자가 동의해야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언어가 언어사용자들의 관념에 영향을 받는 걸쭉한 수프 같은 형상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처녀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문장과 금송아지는 금으로 되어 있다는 문장을 분석명제라는 집합 속에 밀어 넣을 때 칸트가 상정한 언어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박제였다.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답습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박이문 선생님은 줄곧, 언어의 세계(의미차원)와 존재의 세계(존재차원)의 이분법을 강조하신다. 베르그송이나 하이데거 같은 대철학자들과, 데리다 같은 젊은’(!) 철학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가 그 두 가지 세계를 자꾸 버무리는 데서 발생한다고 한탄하신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제시한다.

 

하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는 바닷속의 어류와 그것을 잡기 위해 만든 어망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우리는 흔히 필요에 따라새우를 잡느냐 오징어를 잡느냐에 따라 일정한 모양의 어망을 뜬다알맞은 어망을 사용할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물고기를 잡게 된다말하자면 그물에 고기가 걸려든다이런 의미에서 물고기와 어망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그러나 사실상 어망과 물고기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물고기는 존재하는 물체로서 그것대로 어떤 질서 속에 그것대로의 질서를 갖고 있으며어망은 물고기나 그것들이 살고 있는 환경과는 아무 관계 없이 어망이라는 조직으로 있다물고기나 그것들이 살고 있는 환경은 우리의 뜻대로 바꿀 수 없는 자연에 속하지만어망은 우리가 우리의 꾀대로 만들 수 있는 문화즉 사고의 체계에 속한다이러한 사고의 체계즉 어망은 물고기 잡는 일물고기 자체와 아무 상관 없이 여러 가지로 짜여질 수 있다그러나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때에 따라 물고기와 직접 관계없는 어망도 물고기를 얽어 잡아낼 수 있다.

  여기서 물고기는 사물에 해당되어 존재차원에 비유되고어망은 언어에 해당되어 의미차원에 비유된다.

같은 책, 63-64

 

그러나 선생님의 비유야말로, 언어와 존재 사이의 막강한 상관성을 증명한다. 커다란 물고기를 잡기 위한 어망은 다른 작은 물고기들이 그물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성기게 만든다. 어망이 고기의 크기를 반영하는 것이고, 돌려 말하면 목표 물고기가 어망의 특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어망으로 어부들이 오랫동안 그 바다에서 물고기를 분별없이 잡다 보면, 커다란 물고기는 점점 그 수가 줄어들게 되고, 같은 종이지만 덩치가 조금 더 작다 보니 그 어망 틈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는 녀석들이 생존 경쟁에서 유리하여 상대적 개체수를 늘릴 수 있다. 그 어종의 지배적 형태가 바뀌는 것이다. 어망의 특성이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 물고기의 특성을 바꾸는 상황이다. 거칠게 말해서, 어망이 고기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선생님 역시, 칸트와 마찬가지로 특정 시점에 정지된 상태의 언어와 존재를 분석하시기 때문에 비슷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면은 분석하기 좋고 아름다워서,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면 시간이 가는 것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인지.

 

 

 

3

 

따지지 않고 읽으려고 하는데 쉽지만은 않아서, 누르고 누르다 한 번 대든다. 그리고 또 누르고 누르러 간다.

 

 

 

--- 읽은 ---


 

226. ,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 / 2020

 

읽으면서는 발췌를 위해 캡쳐를 좀 해놨는데, 막상 옮겨 적으며 다시 읽는 과정에서 이건 안 옮겨도 되겠군, 이것도, 이것도, 이렇게 하나하나 자르다 보니 몇 문장 남지 않았다. 장강명의 소설이나 소설가로서의 장강명을 아끼는 마음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이래저래 나하고는 맞지 않아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을 그려봐도 그다지 설레지 않아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는 그냥 무심한 마음으로 끝났다. 시종 강조하는 말하고 듣는 인간읽고 쓰는 인간의 대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쓰는 인간 방향으로 가까이 갈 필요가 있는 듯하다. 내가 서 있는 해발고도에서는 그가 보는 풍경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227. 마주 보기

장자크 상페 지음 / 배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8

 

아무리 차가운 풍경을 그려도 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의 그림도 그림이지만, 말재간 진짜 어마어마하다.

 

 

 


228. 그림으로 내 마음을 충전합니다

이근아 지음 / 명진서가 / 2019


책 속의 한 대목을 책 생긴 그대로 옮겨본다.

 

직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친정엄마 도움을 받아야 했던 나는

결혼 5년 동안은

친정이 있는 강동구 언저리에 있어야 했다.

친정 가까운 곳에서

내가 가진 돈에 맞는 집은

 

시도 아닌데, 대체 이런 편집 왜지?

 

그렇다고 대단히 아름다운 에세이도 아니며, 대단히 특별한 이야기도 없다. 이 책으로 syo의 마음은 하나도 충전되지 않았습니다.

 

 

 

--- 읽는 ---

성의 역사 1 / 미셸 푸코

철학이란 무엇인가 / 박이문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 이규리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짐 홀트

스무 살 / 김연수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반부패의 세계사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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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1-30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지려고 읽는 거니 열심히 따지며 읽으십시다. 저거 친정엄마 나 시인 줄 알고 몰입해서 읽었는데...그런 의도의 편집인 거죠. (그리고 심지어 타겟에게는 먹히는 컨텐츠...)

반유행열반인 2020-11-30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가진 돈에 맞는 집은
하고 딱 끊어서 절묘했나 보네요 ㅋㅋ

syo 2020-11-30 08:5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실제로 보면 와 sns화면 캡쳐했나 싶은 정돈데요....

단발머리 2020-11-30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책을 이렇게 야무지게 꼭꼭 읽어주는 쇼님이 있어서 난 철학책 안 읽고 쇼님 글 읽을래요!! 룰루랄라~~~

syo 2020-12-03 21:28   좋아요 0 | URL
날로 먹으면 체해요. 인간은 불을 사용할 줄 아는 동물입니다....

stella.K 2020-11-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이문 교수는 철학을 에세이 같이 써서 이분 책은 읽어줘야겠구나
했는데 약간 뻘쭘하게 되네요.

syo 2020-12-03 21:2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관점의 차이에 가깝지 않을까요?
읽어줘야겠다 하신 책이라면 읽기를 권합니다.

syo에게도 관점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전 기뻤습니다 ㅋㅋㅋ

2020-12-03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3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3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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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확진자 수가 500을 돌파하면서, 코로나 때문에 syo는 연말까지 사실상 스케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한적한 인생. 좋은 친구 만나서 수다 떨면 그렇게 좋은데,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꼴 안 보려고 온갖 종류의 참신한 박해를 생각해내는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syo가 세상의 주인공이고 그 주인공에게 작은 난관을 제공하려는 절대자의 의지가 세상에 역병을 돌게 만든 것처럼 읽힌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 너는 원오브뎀오브빅뎀오브그레이트뎀오브올일 뿐이야. 이렇게 자꾸자꾸 현실을 주입시켜줘야 한다. 사람 얼굴을 발견할 기회가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간 말고는 없는 하루를 이어나가다 보면, 어쩌면 내가 세상이라는 연극무대의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연극은 아무래도 <고도를 기다리며> 인 듯. 일단 재미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


  

나는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의 절망감을 유지하고 있었다우리는 절망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고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며이따금 한순간 희망의 바람에 실려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문하기도 한다그러니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는 이내 부정으로 대답하고그럼에도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다실로 뭉클한 광경이다.

미셸 우엘벡세로토닌

 

그러다 그녀 이름으로 서명이 된 전보가 ― 난 그녀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 왔다. '라피도 5호 차월요일 오후에 와요.' 전보는 유고슬라비아의 루블라냐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기차역으로 마중을 갔다뒤에 가방을 든 짐꾼을 달고 플랫폼을 걸어오는 그녀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어떤 것들은 그저 처음에만 좋지만 그녀를 보는 건 늘 처음 같았다나는 그녀가 "자기야,"라고 말하리라는 걸 알았다나는 내가 "경애하옵나이다"라고 말하리라는 걸 알았다.

제임스 설터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스피노자는 인간의 주체적 오만을 질타하면서도역설적으로 인간의 주체적 자각을 촉구하기도 한다너를 끌어당기는 맹목적 충동의 주어는 네가 아니다인간의 의지는 신에게서 비롯한다그러나 꽃이 피는 현상이 봄의 의지인 동시에 꽃의 의지이기도 한 것처럼인간에게 투영된 신의 의지는 항상 인간의 주체적인 결단으로 실현된다스피노자의 명제를 따르자면신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나 욕망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다결국 만물의 의지가 실현된 그 모든 현상들이 신의 뜻이라는신의 절대성과 인간의 주체성을 모두 끌어안은 전복의 신학은 훗날 현대 철학의 거장 들뢰즈에 의해 '철학자들의 그리스도'라는 숭고한 지위로 추존된다즉 철학의 신약은 스피노자부터이다.

민이언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2

 

얼마 안 읽었지만, 스밀라는 아무래도 여간내기가 아닌 것 같다.


 

그건 단지 사소한 질문이다그렇지만 세상은 어쩌다 독신에다가 방패막이 하나 없는 여자가 내 나이대에 이르렀으면서도 결혼해서 귀여운 아기 둘을 기르면서 살고 있지 않은 건지 궁금해한다시간이 흐르면그런 질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페터 회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스밀라는 나보다 어리겠는데,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잘은 몰라도 뭔가 특별한 능력도 있어 보인다. 우리가 닮은 거라곤 주변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걸 묻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 거예요. 그리고 조용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겠죠. 이 개똥같은 세상 엿먹으라고 하고 우리 힘차게 살아봐요.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해요. 서재에 댓글 남겨요. 커피 한 잔 사줄게요. 저 스벅 벚꽃 피크닉 세트쿠폰 못 쓰고 가지고 있거든요. 벚꽃 필 때 받은 건데. 심지어 그 벚꽃 2019 벚꽃……. 아무튼 연락해요!

 

, 물론 거리 두기 1단계 되면요…….

 

 


3

 

책 읽는 사람이라면 독서량, 독서 방식에 관해서 저마다의 세계관이 있는 법이라, 다른 이들의 독서관이 내 관점을 침략하려 들 때, 독서가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책 두어 권 들면 후들거리는 그 여리여리한 팔뚝을 드러내며 종주먹을 휘두르게 마련이다. 관련하여 장강명 작가님도 언짢은 일을 몇 번 당하신 건지, 아닌 듯 하지만 말씀에 날이 섰다.


사실 내가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선호하고웬만하면 전자책으로 읽으려 한다는 말을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꽤 많다어딘가 비석에 '진지한 독서가=종이책 애호가'라는 등식이라도 적혀 있는 모양이다.

  독서가들 중에는 손끝에 닿는 책장의 느낌이니 종이 냄새니 하면서 종이책의 물성에 대한 애정을 호들갑스럽게 과시하는 이들이 있는데나는 그게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의심한다책은 정보를 담는 매체지 시각이나 촉각을 만족시키려고 만든 기호품이 아닌데.

장강명이게 뭐라고

 

syo는 새 책을 사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 숨어들어 문을 잠근 다음, 몸 안에 있는 숨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방출한 후, 책을 펼쳐 코를 박고 다시 할 수 있는 데까지 숨을 들이켜는 의식을 치른다. 그냥 평범하게 책 냄새를 킁킁 맡는 일도 자주 있고, 그런 간단한 정도는 남들 앞에서도 하곤 하지만, 저런 의식은 좀 남들 봬 주기가 아무래도 좀 그렇지. 하지만 이런 행동까지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하긴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장강명 작가님의 저 말을 물성파 입장에서 들으면 부당하게 가혹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긴 해도, 사실 스펙트럼의 관점에서 보면 저런 마음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냄새 맡는 syo’쓰다듬는 누군가를 당연히 이해할 수 있지만, 판권 페이지를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핥는 사람을 이해하긴 좀처럼 어렵고, 가장 야한 대목이 나오는 페이지에 페니스를 끼우고 책을 흔드는 방식으로 자위해서 30초 만에 사정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대로 저 ㅅㄲ를 패고 시원하게 영창 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물성이란 진짜 무엇이며, 인간이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동물인가.

 

사람들이 전자책의 장점이라고 하는 다른 특징들은나는 잘 모르겠다멀티미디어 기능이라든가 읽어주기 기능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이용하지도 않는다색인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든가궁금한 점을 하이퍼링크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든가 하는 특징도 마찬가지다.

  사실 하이퍼링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하이퍼링크는 단행본의 형식을 무너뜨리고 독서를 방해한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종이책의 물성이 아니라 책이라는 오래된 매체와 그 매체를 제대로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라는 행위다세상에는 그 매체를 장식품장신구장난감부적팬클럽 회원증후원금 영수증 등으로 소비하는 이들도 있다그것은 소비자의 자유겠으나그런 소비를 독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같은 책

 

그럼에도 장강명 작가님의 책과 독서에 관한 관점은 일견 협소하다 싶을 만큼 꼿꼿한 데가 있어서, 뒤이어 이런 대목을 쓰셨으니 말씀드리고 싶긴 하다.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 게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의심받으실 수 있음을.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이 그러하듯 사람 마음의 모양은 전부 다 다르다선을 긋지 않는다는 건모양이 없는 액체 괴물처럼 살아가라는 말로 들린다그러니까 선을 긋는 건여리고 약한 혹은 못나고 부족한 내 어딘가에 닿았을 때 '나의 이곳은 이렇게 생겼어'라고 고백하는 행위다.

김이나보통의 언어들

 

 

 

 

--- 읽은 ---


 

223. 상대성 이론은 처음이지?

곽영직 지음 / 북멘토 / 2019

 

처음 아녜요.


수식이라는 게 하는 일이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면 저 과학자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수식으로 작업을 할 리가 없다. 수식은 이해를 도울뿐더러 수식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잔뜩 있다. 단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을 따로 배워야 한다는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상대성이론을 수식 없이 설명하려는 과학책을 많이 봤다. 생각보다 잘하는 책도 있었고, ‘설명하려면 수식을 써야 하므로 여기에서는 더 깊게 설명하지 않겠지만하는 식의 주객전도가 이루어진 책도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언어는 수식보다 정밀하기 어렵다. 이과 나온 분들께는 권하지 않겠습니다.

 

 


 

224. 나의 첫 미술공부

최연욱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

 

미술에 대해서 공부해 봐야지 하고 덤벼들었는데 막상 책이 진짜 공부시킬 듯이 덤벼드니까 덤비지 않을게 덤비지 마라 싶다. ‘공부한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 나는 진심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 것으로.

 

 

 

 

225. 피그말리온

조지 버나드 쇼 지음 / 김소임 옮김 / 열린책들 / 2011

 

syo는 버나드 쇼의 그 쇼인지를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 쇼는 Shaw이므로 당연히 그럴 리가 없을뿐더러, syoShaw의 작품을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 상태여서 아주 간단히 아닙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syo는 그간 Shaw에 대해서, 영국의 극작가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고, 끝내주는 독설로 무장한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그의 글이라고는 그 유명한 한 줄짜리 묘비명 말고는 도무지 아는 바가 없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읽어 본 결과, 역시 극본이라는 건 뭔가 글로 보면 매력이 반감되는 걸 피할 길이 없다는 느낌과, 남자가 이런 멘트를 치면 여자가 왜 그렇게 대꾸하고 그 대꾸를 들은 남자는 또 왜 저렇게 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느낌과, 그래도 고도에 비하면 레알 삼백 배쯤은 재미있구나 싶은 느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앞으로 한동안은 극문학을 읽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 등등이 휘몰아쳤다. , 복잡한 독서였다.

 

 

 

 

--- 읽는 ---

다시 미분 적분 / 나가노 히로유키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지구의 과학 / 신규진

인간의 흑역사 / 톰 필립스

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 라이언 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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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1-26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세로토닌, 재밌어요? 우엘벡이 모 아니면 도라서 말입지요. ^^;;
그리고... 흠흠흠.... 좀 야한가요? ㅋㅋㅋ

syo 2020-11-26 21:18   좋아요 0 | URL
전 모든 우엘벡이 다 개걸이어서..... 이번에도 개걸 느낌이에요.
그리고... 흠흠흠... 저는 어떤 기대치가 있어서 읽는 순서도 새치기 시켜줬거든요.
......아 괜한 짓을 했더라구요ㅋㅋㅋㅋ

초란공 2020-11-2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피노자 생일이 24일이더라고요^^ 코로나/감기 조심하시기를~!! ^^

syo 2020-11-26 23:29   좋아요 0 | URL
코로나의 마수로부터 안전한 연말/겨울 되시기를!

반유행열반인 2020-11-26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로움은 하다하다 책 속 스밀라한테 추근덕거리게 만드는 것이로군요....

syo 2020-11-26 23:30   좋아요 2 | URL
그치만 당연히 연락 안 오겠죠? -_ㅠ

반유행열반인 2020-11-27 07:04   좋아요 0 | URL
저 아래 비밀 댓글 달리면 스밀라인 줄 알겠습니다 ㅋㅋㅋ

syo 2020-11-27 19:28   좋아요 1 | URL
안 달리는군요. ㅎㅎㅎㅎ 스밀라여.....

han22598 2020-11-27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식이 더 정밀할 순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어의 심오함을 대신할 수 없기에...그리고 (저도 이과생으로서) 나야 수식으로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선 언어를 사용해야기에 ㅠㅠ(글서, 수식없이 설명잘하는 것이 능력) 그저 애를 쓰며 언어사용 능력을 키워갑니다. (끙)

syo 2020-11-27 19:27   좋아요 0 | URL
훌륭한 이과생이시다.... han님의 분투를 응원합니다.
저는 타인을 이해시켜야겠다는 생각을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못된 이과생이다..

2020-11-27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0-11-29 15: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종이책도 전자책도 좋아하는 제 입장으로서, 종이책과 전자책은 읽는 쾌감의 비율과 효용이 다양하고 미세하게 다르다는 거예요.
전자책은 무엇보다 휴대성이 최고죠. 벽돌책도 내 손 안에😋, 배송 안 기다리고 읽고 싶은 즉시 사서 바로 읽을 수 있고, 다른 행위 중에도 귀로 들을 수 있는 멀티테스킹(때론 반강제ㅋ 들을 수 밖에 없뜸ㅋ)의 편의성, 가물가물한 부분을 키워드 단어 몇 개로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는 점 등등.
종이책 경우 강한 물성의 매력으로 독서 분위기를 충만하게 해주고, 읽는 과정 속 충족감, 읽은 후의 여운을 깊게 해주는 거 같아요.
그냥 다 좋아하면 안 되나. 종이책 vs 전자책 얘기 나올 때마다 좌우 진영들이 흔히 ˝당신은 틀렸어!˝ 전제로 하는 말씨름 같아 저는 늘 좀 그래요^^;

syo 2020-11-29 23:22   좋아요 0 | URL
‘취향‘을 가지면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즐거움 중에 가장 자극적이어서 도망치기 쉽지 않은 것이 또 ‘다른 취향 가진 사람들 비웃기‘ 잖아요. 차라리 ‘부먹/찍먹‘처럼 겉으로는 서로를 오랑캐취급하는 척 운동회를 즐기지만 실제로는 상대 취향을 가진 사람을 비웃지는 않는 그런 귀여운 취향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네요.

빠삐냥 2020-11-29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맞아요 고도는 재미가 없죠. 아무리 읽어도 재미가 없었어요! (←오늘 드디어 중고서점에 고도를 버리고 온 사람) 피그말리온 역시 글로 읽었을 땐 무덤덤했고 극으로는 본 적이 없지만,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명작 영화를 낳았으니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페레 보셨나요 마페레 좋아요.

syo 2020-11-29 23:23   좋아요 0 | URL
저도 지난 번 중고서점 방문시 고도를 버렸는데, 고도를 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은지 균일가 취급을 받더라구요. 이제 아무도 고도를 기다리지 않는군요. 대신 고도가 사람들을 기다리네요.

추천하신 영화는 꼭 볼게요! 감사합니다 빠삐냥님~^-^
 

 

우리는 늘 보충수업이 필요해요

 

 

 

제발, 남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재능을 주지 않으시려거든, 별것 아닌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이 별것 아닌 생각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지금보다 더 많이 읽다 보면, 얼핏 똑똑하고 있어 보이는 그따위 말이 실은 백 년 천 년 전부터 세상에 나와 있었고 그래서 그동안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사람이 백만은 족히 헤아릴 흔하디흔한 구절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챌 수도 있겠으니, 더 많이 읽을 수 있는 시간과 끈기를 주세요. 아니면 제발 그럴 때마다 남들 모르는 뭐라도 깨달은 인간 마냥 호기롭게 나불대지 않을 수 있는 염치라도 좀 주세요.

 

제일 먼저 저한테 주시고, 되도록 잔뜩 주시고, 혹시 남겠거든 여기저기 좀 주세요.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 어느 날에 저 사람들이 저처럼 쪽팔리지 않도록, 좀 도와주세요.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 읽은 ---

 


220. 카카오프렌즈 동네산책 : 서울

안또이 지음 / 시루 그림 / 대원앤북 / 2020

 

내용 자체는 거의 쓸모 없다시피한데, 제길, 애들이 너무 귀여워……. 이런 책 나오면 그냥 못 지나치고 참다 참다 결국 들춰보는 나도 좀 귀여워…….

 

 



221. 습관의 말들

김은경 지음 / 유유 / 2020

 

습관이 사람을 만드는 건데 사람이 습관을 만드는 거라서 습관을 만드는 사람은 습관을 만드는 습관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습관을 만드는 습관 역시 사람이 만드는 거고 그 사람은 습관이 만든다. 따라서 습관을 만드는 습관을 만드는 사람은 습관을 만드는 습관을 만드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닭-달걀 회로마냥 그저 어이없는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습관을 만들고 나를 만드는 일이 대충 그렇다. 어지럽다.

 

결심이 필요하다. 습관-사람-습관-사람-습관-사람의 연쇄 사이의 어느 순간에 단절점을 만들고, 거기서 새로 시작하는 액션이 필요하다. 여기 그 단절점을 놓기 위한 말 말뚝이 잔뜩 있다. 그중 하나라도 내 쇠고랑에 맞아 들어간다면, 그래서 만들어진 습관이나 만들어진 인간 둘 중 하나로부터 달아날 수 있다면, 그건 꽤 남는 장사겠다.

 

 

 


222. 문장부호의 기원 : ? ! . ,

이병주 이음 / 큐니버시티 / 2019

 

제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과잉입니다.

 

 

 

--- 읽는 ---

, 이게 뭐라고 / 장강명

리듬분석 / 앙리 르페브르

상대성 이론은 처음이지? / 곽영직

나의 첫 미술공부 / 최연욱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 제임스 설터

피그말리온 / 조지 버나드 쇼

잘 버리면 살아나요 / 손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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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0-11-2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과 이번의 syo님의 글은 저를 많이 각성하게 만드네요~~
왜이리 양심이 찔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쓰기가 두려워집니다 ㅠㅠ

syo 2020-11-26 20:14   좋아요 1 | URL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누구 보라고 쓴 글은 아니고, 실은 써놓고 누가 볼까봐 조마조마했는데요.
보통 이런 거 보고 찔리는 사람은 안 찔려도 될 사람이고, 안 찔리는 사람은 찔려야 할 사람이라는 게 난점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1-25 0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주세요.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syo 2020-11-26 20:14   좋아요 1 | URL
나눠 먹어요.

모운 2020-11-25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 못해 안해 돌아가

syo 2020-11-26 20:15   좋아요 0 | URL
혹시... 토끼의 신이세요?

잠자냥 2020-11-2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산책> 같은 책은 누가 읽나 했는데 syo 님 처럼 귀여운 분이 읽는 것이었군요!

syo 2020-11-26 20:16   좋아요 0 | URL
읽으면 귀여운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그게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북깨비 2020-11-26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Syo님 좀 많이 귀여워요. ㅋㅋㅋㅋㅋ 😂😂😂

syo 2020-11-26 20:17   좋아요 1 | URL
저는 귀엽다는 말을 순도 100%의 칭찬으로 받는 흔치 않는 성인남성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