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서 있던 카를로는 모자를 들어올렸다. 마차와 불빛은 사라졌다. 카를로는 다시 깊은 어둠 속에서 있었다. 갑자기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둠이 그를 두렵게 한 것은 살아오면서 처음이었다. 그는 더 이상 한순간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흐릿한 감각 속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느낀 두려움이 눈먼 동생에 대한 고통스러운 동정심과 기이하게 혼합되어 그를 제로니모가 있는 집으로 가도록 내몰았다.
-눈 먼 제로니모와 형 - P201

그 밖에 내가 더 처리할 일은 없다. 내 유언은 오래전에 작성해 두었고, 그것을 고칠 이유는 없는데, 내 아내가 나에게 충실해 왔고, 그녀가 나에게서 낳은 아이는 내 아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 아이가 그렇게 독특한 피부색을 띤 데에 가장 간단한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악의와 무지만이 이 설명을 인정할 수 없을것이며, 감히 주장하건대 만약 우리가 악의적이지 않고 엉뚱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면 모두가 그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므로 나는 계속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그렇게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그들은 미소를 짓거나 웃는다. - 안드레아스 타마이어의 마지막 편지 - P226

내가 죽은 걸 알면 그 제빵사는 무슨 말을 할까? 빌어먹을 개자식! 아, 그자는 내가 왜 죽었는지 알게 될 거고 흔히들 말하듯 이렇게 내뱉겠지. "어떻게 장교가!" 그런 자식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거리에서 두들겨 맞을 수도 있지.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거야. 우리 같은 사람은 단 둘이 있는 가운데 모욕을 당하고도 죽음을 택하게 되는데. 그런 불한당 같은 놈이 때리려고 덤비면 - 맞서면 안 되지. 그런 놈은 더 세심하게 조심할 거고, 위험한 모험은 피하려고 할 테니. 그리고 그놈은 변함없이 계속 마음 편히 살아갈 거야. 반대로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야! - 구스틀 소위 - P169

알베르트는 잠시 그대로 서서 냉정하게 주의를 집중하여 죽은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물이 완전히 다시 멈춰버렸다.
갑자기 그의 고통은 완전히 시들어버린 텅 빈 껍질로 변해버렸다. 그는 죽은 그녀와의 이런 만남이 훗날 언젠가는 소름끼치면서도 동시에 우스꽝스럽게 여겨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 남자와 함께 거기서 흐느꼈다면 그는 아마도 몹시 우스꽝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 어떤 이별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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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05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각자 다른 점도 있지요.
때로는 기이하고 우스꽝스럽고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데가 있는 존재가 인간 같아요.

프레이야 2022-09-05 17:40   좋아요 1 | URL
정말 다 달라요 ㅎㅎ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 때론 피곤하기도 하고요.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 ^^
 

죽음에 대한 성찰과 태도

인간은 자신이 죽은 뒤에 일어날 모든 것을 내세에 투사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내세는 다소은유적인 표현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런 관념은 내세와 미래의 인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서보이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후손, 미래의 인류 속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류는 영원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종교가 전에 ‘신국‘이라고 불렀던 미래의 영광스러운 인류, 그리고 오늘날 ‘계급 없는 사회‘ 또는 ‘하나 된 인류‘로 지칭하는 이상향이 생겨나는 겁니다. 이제부터 추상적 관념과 상징의 영역, 게다가 순전히 도덕적인 표상 영역에 있게 됩니다. 나는죽게 되겠지만, 나의 생각은 확신은 없지만 제게 그런 생각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 그 후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내세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자에게 "안심하고 죽으세요, 당신의 생각은 계속 존재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는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그 신자가 믿는 것은 생각의 존속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징화된 알레고리가 수행하는 역할은 매우 큽니다. - P55

저는 비신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곧 삶에 대한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스피노자가 플라톤과는 반대로 지혜란 죽음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저는 죽음에 대한 철학은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실제로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삶의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죽음을 무시하고 외면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대로 저는 이 태도가 죽음을 가볍게 다루지 않고 진지하게 고려하는 유일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세에 대해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는 신자들은 흔히 죽음과 내세의 삶을 동일시하고, 내세는 현세가 보다 안락한 형태로 연장되는 것이라 여기기도 합니다. 내세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고, 모두 지복을 누리고, 질병이 없으며, 더는 살아 있는 게 아니므로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이런 이야기들은 죽음을 ‘경박하게‘ 만듭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겁니다. "나는 죽음을 전혀 모르고 알 수 없다. 만약 내가 무엇이든 알고 있었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죽음에 대해 상상하는 모든 것은 삶의 변이형이고, 여전히 삶입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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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0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 뒤에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 에 한 표를 주겠습니다.
58쪽의 글처럼 죽을 수도 없는 곳이 있다면 끔찍합니다. 죽음은 마치 휴식처럼 느껴지는 일면이 있거든요.^^

프레이야 2022-09-05 17:43   좋아요 0 | URL
우리 선택권 안에 있다고 여기면 아니 그게 보장되는 삶을 산다면 사는 게 좀 덜 버거울 수도요 ^^ 그저 우리의 상상과 기대에 있는 별세계, 세계 밖의 세계.
 

https://v.daum.net/v/20220830195253894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여사가 101세로 13일에 도쿄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서귀포 이중섭길과 미술관, 가족과 단란했던 작은 집이 생각난다. 

가난했던 화가는 서귀포에서 사는 동안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왜관 구상문학관에는 구상 시인이 1953년에서 1974년까지 왜관에서 살 때 친교 맺은 작가들 중 가족처럼 지낸 이중섭과의 교류도 구상 가족을 담은 그림 한 장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중섭이 그림을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보고 반가웠던 기억. 2016년 4월 사진 우측 끝에 벽에 걸린 그림.
 
2018년 7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이중섭 전시회의 기억도 난다. 애틋하고 고단하지만 사랑스러운 애칭으로 쓴 그림편지는 물론, 구상의 “초토의 시” 초판본을 보았다. 이 책 표지그림을 1956년 이중섭이 그렸다. 그해 중섭도, 1952년에 생이별한 가족을 그리워하다 병든 몸으로 가난한 세상을 떠나갔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
멀리 떨어져 있어도 … 언제나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고 끝없이 힘을 불어넣어 주는
내 마음의 아내, 다정한 남덕군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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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8-30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세기를 살다 가셨군요…. ㅎㅎ 프님 동시에 댓글 달었네요!! 일본에서 사셨군요. 자녀분들이 있다면 거의 칠팔십 되셨겠는데요.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시지 않으셨길…

프레이야 2022-08-30 22:58   좋아요 2 | URL
오래 사셨더군요. 온갖 고생을 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갔네요. 1952년에 아픈 아버지를 보러 아들들 데리고 일본으로 간 게 마지막이었다고 하지요. 저렇게나 이쁜 여러가지 애칭으로 부른 중섭도 귀엽네요. 얼마나 애틋했을까요.
거의 동시에 댓글^^

기억의집 2022-08-30 22:51   좋아요 2 | URL
그쵸. 요절해서 더 애틋했을 것 같어요..

프레이야 2022-08-30 22:58   좋아요 2 | URL
소의 말은 드높고 물질은 가난했던 화가 이중섭 ㅠ 안중근도 그렇고 자식대까지 이어지질 못하네요 정신이.

mini74 2022-08-30 2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프레이야님. 추모의 글에 어울리지 않는 글같아서 댓글 지웠어요 ㅠㅠ 부인분의 삶도 너무 힘드셨을 거 같아서요 ㅠㅠ 그 곳에선 사랑하는 이 만나 행복하시길.

프레이야 2022-08-30 23:18   좋아요 3 | URL
두 분의 이야기가 너무 유명하니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중섭이 절절히 부른 애칭들 생각하면 미소가 번져요.

얄라알라 2022-08-30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8년에 직접 찎으신 사진 찾아서 추모의 글로 엮어주신 건 가봐요.
역시나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22-08-30 23:41   좋아요 1 | URL
얄라 님 고맙습니다.
또 한 사람이 떠났네요.

희선 2022-08-31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힘들 때도 있었겠지만, 오래 사셨군요 구상 시인이 아팠을 때 이중섭이 천도복숭아 그림을 그려줬다고 한 이야기 생각납니다 그런 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겠네요


희선

프레이야 2022-08-31 10:10   좋아요 0 | URL
가난한 화가가 최대한 할 수 있었던 마음 다정한 사람이었던 같아요 중섭은.

거리의화가 2022-08-31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덕분에 소식을 알게 되었네요ㅠㅠ 부디 영면하시고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에는 어떤 생각을 하며 가셨을지 궁금하네요.

프레이야 2022-08-31 12:02   좋아요 1 | URL
백세를 상상하기도 힘드네요.
아빠가 지금 구순이니 요샌 그럼 상상도 해봅니다.

책읽는나무 2022-08-31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내분이 돌아가셨군요?
까맣게 잊고 지냈었는데...
그래도 꽤 장수하셨네요.
평안하게 눈을 감으셨길 바랍니다.
남편분과 그곳에서 만나실 수 있기를^^
아내분이 발가락이 플라타너스였던가? 발가락 다섯 개가 닮았다고 별명을 지어 그림도 그리고 편지를 썼던 글이 기억나는데 그 별명은 또 기억이 가물가물...^^;;;;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제주의 그 작은 방을 보았을 때 마음이 참 아팠었네요.

프레이야 2022-08-31 11:17   좋아요 2 | URL
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당연히 돌아가셨을 줄 알았는데 한 세기를 살다 가셨네요.
그 많은 그림과 편지들 은지화. 애칭이 넘 귀엽죠.
서귀포 그 작은 방 ㅠ

바람돌이 2022-08-31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중섭화가가 가족을 그리는 글이나 편지, 그림을 보면 너무 애틋하더라구요. 얼마나 그리웠을까? 우리 현대사의 아픔 한 가운데를 고통으로 살아간 분들이 부디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곳에서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요.

프레이야 2022-08-31 12:00   좋아요 0 | URL
편지글과 그림만 봐도 성품이 어찌나 다정다감한지요.^^
그렇게나 오래 살고 계신 줄 몰랐어요.
한 세기를 살다 간다는 건 어떤 걸까요.

2022-08-31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1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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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고 2년 후, 1978년  자유죽음을 완수한 장 아메리(Jean Amery)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집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차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무겁다. "무거운 가구"부터 무거운 몸, 무거운 짐... 이것들에 짓눌리면 심리적으로 "가슴이 무겁다"고 표현한다. 이 모든 건 발목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우리 삶의 부조리함과 비슷하다. 나라는 집 둘레에는 타인이라는 다른 집들이 이상하고 괴상한 지붕을 이고 앉아 나를 째려보고 비난하고 모욕한다.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 에셰크(L’echec)로 명명될 수 있다. 아메리가 말처럼 자유에 등급이 있듯 실패에도 등급이 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는 최고등급일 것이다.

 

자유죽음은 죽음보다 자유에 방점이 찍힌다. 아메리에 의하면 스스로 생의 종착역으로 성큼 다가가는 최후 프로젝트로서의 그 길은 '자유에 이르는길이다. 자유에 이른 길이라기엔 성급하다. 단지 자유를 향해 가는 길, 그 과정에 놓인 이 단어는 선택의 자유와 연결되는 인간 존엄성을 떠올려준다. 인간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죽음이라고 한다면 이 말은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으며 인간성과 존엄성을 지키는 삶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자유죽음의 반대 의미로 쓴 자연죽음(보통의 죽음)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한 인간의 시난고난한 사건과 감각다발으로서의 자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그 치욕과 고통을 이겨낸 후 맞이할 수 있다. 자유죽음이란 그렇다면 고문(같은 생)의 치욕과 늙어감의 모욕이라는 고통을 피해 도피하라는 것인가라고 이 책의 논지를 쉽게 단정하지 않아야 한다.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유(선택)에 대해 집요하고 치열하게 파고들어 문학작품과 철학, 심리학과 사회학 등 다양한 프리즘을 통해 사유한 이 책은 장 아메리 개인의 놀라운 역사를 담고 진실성을 보장한다.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다 나치스의 모진 고문을 이겨내고 망가진 몸으로 20년을 침묵하다 펜을 들었고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며 다 늙어서야, 그제야 비굴했던 모국 오스트리아의 호텔에서 자유죽음을 실행한 사람은 (비유적 표현으로) '뛰어내리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메리가 이 책에서 말했듯 그것은 구호요청의 신호가 아니라 메시지 전달이었다. 그는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이 유대인인 줄도 모를 정도의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유대인으로서 저항하고 항거하다 생환한 장 아메리는 자신의 이름을 가증스러운 모국에 내던져버린다. 망명한 유대인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런 위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삶이었다. 결국 이 책의 마지막 장 첫 단락은 절멸의 수용소 감방과 큰감방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거친 숨결을 내뿜으며 단호하게 히틀러를 언급하고 유대인을 호명한다. 프리모 레비의 시적이고 우아한 증언록 문장과는 또다른 느낌의 강건하고 강렬한 문장으로 가슴이 짓눌리며 연민이 치솟았다. 편안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그 시공을 상상하며 죽음본능(타나토스)이 아닌 생존본능(에로스)을 떠올렸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호응한 흔적이 많은 부분 드러나는데, 저자는 자유죽음에 선행해 존재의 구토를 상기시킨다. 욕지기 나는 세상, 에셰크는 죽음이라는 토사물을 낳는 주범이다.” 존재를 부정하는 구토(혐오감)의 감정은 생존본능과 죽음본능 사이의 대립을 야기하고, 이원론적 본능이야말로 생명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본능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다름 아니며 생명으로의 의지, 내가 내 세계 안에서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다자유죽음은 이런 본능에서 잉태된다. "죽음에 이끌리는 성향", 허무에 이끌리는 성향, 다시 말해 "추락하려는 성벽(性癖)"은 식물의 굴지성(屈地性)처럼 인간의 본능이라고 저자는 본다.

 

생명의 논리와 죽음의 논리는 각각 있음의 세계와 없음의 세계에 바탕한다. 그 사이에 다리가 놓여 있지 않은 탓에 우리는 죽음의 논리를 부르짖고 실천한 사람을 쉽게 단죄하려 든다. 생명의 논리만 앞세우는 사회 종교 윤리와 학습된 의무감이 자유죽음을 실행한 사람의 내면에 가까이 가보지도 않고 이런저런 말을 하는 동안 그들이 발화하는 일상언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감지하지 못한다. 아메리가 요구하는 한 개인에 대한 성찰과 공감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는 사이에 다리는 이들을 한 개인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일반적으로 삶의 권태나 아노미가 생을 스스로 마감하도록 부추겼다고, 책임감도 없이 가족을 버리고 어떻게 그럴 수가라고 말해버리기엔 석연찮다. 사회적인 기능으로서만 개인을 볼 때 우리는 놓치는 게 있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죽음의 노예이자 주인으로, 사회의 소유물이라기보다 에 속하는 존재다. 자기결단은 실존적이고 결코 나르시시스트적이지 않다. "우리 삶은 각자 우리가 살아온 것이기에"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하기에". 그 세계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사회적인 편견이 없이 죽음을 바라볼 때 우리의 지평 앞에 새로운 휴머니즘이 떠오른다. 희망이라는 원리를 놓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로 모순이지만 피할 길이 없는 허무라는 원칙도 함께 인정하는 게 우리의 새로운 휴머니즘이다. 세상의 피난민은 세계 정복자보다 못난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보면 더 낫기까지 하다. 기능성을 위주로 끊임없이 변하는 법칙을 제시하는 다수는 더 이상 최후의 발언권을 갖지 않는다. 통찰과 배려라는 관용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발언을 함께 저울대 위에 올려놓는다. -118쪽


장 아메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자유죽음을 실행하거나 했거나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소수자의 입장에 둔다. 이 관점에 손들어주고 싶다. 병적인 존재나 광적인 존재, 사회적으로 도태된 존재가 아니라 죽음(허무)에 이끌리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다. 누구나 품는 자유욕구, 해방욕구는 타인의 해방 수행과정과 충돌하게 마련이다. 아메리는 자유죽음을 해방의 가장 강력한 사례로 둔다. 해방은 부정, 파괴, 변화, 새로움의 도모와 나아감이다. 존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부정하여 실존한다. 그러나 이 지극한 부정은 무의미하다. 없음의 세계에서 자유 또한 없음이다.

 

아메리는 분명히 말한다. 인생의 부조리만큼이나 자유죽음은 부조리하지만 인생의 부조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줄여준다고. “유일하게 진솔한자유죽음의 의미는 자유에 이르는 길에 있다고. 존재에 저항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만큼 인간성과 존엄성을 담는, 자유는 소중하다고 역설한다. 자유죽음이 세계를 바꾸진 않는다. 존재가 사라지면 그 세계도 사라진다. 하지만 세계는 그대로 있다. 거침없이 폭주한 저자의 언어를 따라가다 숙연해진다. 흙으로 돌아가 누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부조리한 모래를 바라보며 마침내 안개(부조리하여 모호한 세상) 속에서 물에 잠기는 것이라고 자유죽음을 빗대어 말할 수 있으리라. (철학을 전공한 박 감독이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구체적 부분이 많았다.이 이야기는 다음에...)

 

나의 세계를 지키는 유일하고 진솔한 행위, 집에서 나와(ex domo) 집을 향하여(pro domo)

나에게서 나와(ex domo), 나를 위하여(pro domo)”(62)

 

인간은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상량식을 올리는 축제의 날에 허물어져 내릴 집을 짓는! 물론 인간은 자연적인 죽음을 희망한다. 그 같은 희망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언젠가는 떠나야 할 자기 자신의 일부를 짓는다. - 83



후반부, 절대자에 대한 사유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생존본능을 느낄 수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멸절의 고통과 굴욕을 당한 자의 말이기에 힘이 있다. -  "나는 '절대자'란 그저 하나의 말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실재도 절대자와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절대자는 단지 비현실적인 욕구, 있지 않은 것에서 구원을 기대하는 욕구의 산물일 뿐이다......어떤 사람은 자신이 갈망하는 게 절대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게 뭔지 그 자신이 모른다. 그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어떤 무엇에 등을 돌리고 싶다는 의중일 따름이다.(259쪽)"  역설적으로, 죽음을 선택하여 실행할 수 있는 자유가 사회적 편견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다면 구토의 대상으로서의 생을 당당하게 건너가는 데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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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8-22 23: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분 리뷰가 많이 올라오네요. 프레이야님 글도 참 좋고. 자유죽음, 그리고 북플님들의 닮은 듯 다른 이 분 책 리뷰들이 재미있네요 ~

프레이야 2022-08-23 17:14   좋아요 3 | URL
장 아메리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져요.
리뷰대회가 있다보니 많이 올라오나 봅니다.
잊고 있다가 마감시간 임박해서 급히 썼네요.^^

미미 2022-08-22 23: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박찬욱 감독 말씀이신가요? 다음에 더 해주실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 책 읽게되면 다시 보려고 페이지 찜해놨어요.^^*

프레이야 2022-08-23 12:25   좋아요 4 | URL
그분은 진짜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정 작가와 같이 쓰지만 이런 부분은 그분이 깔지 않았을까하는 ^^

얄라알라 2022-08-23 0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소 프레이야님 글의 분위기나 문체와 살짝 다른톤이라 더 매력있네요. 지난 달이었나, 한국청년의 자살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선택˝ ˝자유˝ 등의 가치를 두는 입장을 접했는데 잘 접수는 안 되더라고요. 철학 전공 박찬욱 감독님 이야기 꼭 담에 해주시와요!^^ 어떤 연결고리를 찾아내신 걸까? 예리하신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22-08-23 12:29   좋아요 4 | URL
감정이 격해지더군요. 저자의 삶을 우리가 감히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장 아메리는 전후에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오늘 뉴스에 초등생이 ‘나더러 실패작이래‘라는 표어를 걸고 자유죽음 놀이를
한다는 기사가 있네요. 요즘 뉴스 뭐 기분 좋은 건 없고 온통 **같네요.
박 감독은 진짜 얄미울 정도에요. ^^

희선 2022-08-24 0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유죽음이라는 말을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 마음은 알기 어렵죠 그 사람이 경험한 것도 알기 어렵겠습니다 장 아메리한테는 죽음만이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여겼나 봅니다 존엄도...


희선

프레이야 2022-08-24 11:58   좋아요 1 | URL
자유죽음이란 말은 니체가 먼저 썼더군요. 전 이 말이 좋습니다. 제 페이퍼에는 그래서 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요. 전 그말이 싫더군요. 자유죽음 좋습니다. 이 책은 여러가지 측면으로 제게 의미가 있었어요. 제 고민과 시기적으로 잘 맞았구요. 많은 생각이 일어나고 성찰해보게 되는 책입니다.

2022-08-25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25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2-09-01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리뷰대회 당선
추카합니다 🤗

thkang1001 2022-09-01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리뷰대회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9-01 1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22-09-02 0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thk님,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

mini74 2022-09-02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 !!! 글 참 좋다고 했는데 역시 ㅎㅎㅎ 축하드려요 *^^*

얄라알라 2022-09-02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북플 댓글에 뭔가 경사난 분위기여서 프레이야님 서재 들어와봤더니 !!! 오호!!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22-09-02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 .. 미니 님, 얄라님 감사합니다 😊
 

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700&key=20220808.22017001399

국제신문 시민기자 기사.

반려견 반려묘 부문으로 나뉜다.
반려인들 한번 응시해보면 어떨지요.
올해 공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진 교수는 부산의 시인이다.
반려인간! 이런 귀여운 책을 내신 걸 이제 알았다.
부산의 좋은 출판사 산지니에서 나왔다.
삽화도 귀엽고 다정하고 웃음이 묻어나는 내용^^
보내주신 책과 시집도 몇 권 가지고 있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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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8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부모되는 것도 시험쳐서 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뭐 생각만이지만 말입니다. ㅎㅎ
반려집사가 되는 것도 마음과 노력과 책임감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한번 느껴볼 수 있겠네요. 즐거운 기획이에요. ^^

프레이야 2022-08-18 20:00   좋아요 1 | URL
부모자격능력시험인가요 ^^
기획 좋지요. (주)동그람이라는 이름도 우영우 친구가 아니라 동물과 사람이라는 뜻으로 귀엽게 잘 지었구요. 마음과 정성 못지않게 반려동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앎을 강조하더군요.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사는 동물로서.

scott 2022-08-22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견 시험 (서류작성)있는 나라가 있는데(유럽)
구청에 반려견 분양 신청(유기견들) 해서 한 달 위탁 한 후 책임지고 키운다고 서류에 도장 꾸욱 찍어요 ㅎㅎ

동물에게 가장 무책임한 나라가 솔직히 한국 인 것 같습니다
지방 곳곳에 버려진 유기견 묘가 넘 많아요 ㅠ.ㅠ

프레이야 2022-08-22 10:35   좋아요 3 | URL
반려문화 선진국 사례들 보고 더 잘 적용했으면 좋겠어요. 도장 꾹 찬성요 ㅎㅎ
반려동물등록제도 차츰 시행되면 좋겠는데 찬반 많고 이전에 또 준비돼야 할 것들도 있겠지요. 유기하고 학대하는 사례가 많아 끔찍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