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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뻐라, 옛 여인의 치레걸이


                                                                    이 무 열



 내 어쩌다 옛 여인네들의 치레걸이에 담긴 속멋과 그 의미와 마음결을 좇아가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돌이켜 보니 이십 수 년 전 예천 출장길, 허드레 민속품을 취급하는 고미술상에서 소꿉같이 조그맣고 반달같이 휘어진 얼레빗 하나를 만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줌 안에 쥐고 얼마나 매만졌던지 발갛게 손때 묻고 빗살 틈에는 때도 끼어 일견 무심하게 보아 넘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살을 고르고 맨 것인지도 모를 그 얼레빗이 품고 있을 곡진한 사연은 알길 없어도 왠지 정감 있게 가슴에 다가왔던 건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아마 어린 시절, 동백기름 발라 윤이 나고 앞가르마 단정하게 쪽진 머리에 비녀 꽂은 외할머니의 정겨운 모습과 따뜻한 목소리를 떠올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속의 외할머니 경대는 윗대에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무와 나무가 맞물리는 부분을 사개짜임으로 옛 법식에 따라 짜 맞춘 제대로 된 조선시대 목물이었다. 그 치장이랄까 꾸밈을 위해 서랍에는 복을 가져다준다는 박쥐문양의 들쇠를 달았다. 옆면의 부재는 오랜 세월 옻칠이 살아 나뭇결이 선명할 정도로 얼비쳐 보였다. 안정감을 고려하여 조금 두드러진 받침다리와 경대 몸체에는 고추잎과 국수형감잡이를 사용하여 견고한 부착성과 미관을 위한 배려를 하였다. 느티나무의 자연스런 결을 살리면서 단순 간결한 형태의 이 경대는 정작 경대의 윗두껑을 열어 젖혀 놓고 보았을 때 더욱 그 진가를 발휘했다. 유리 뒷면을 깎아 대나무를 조각하고 상단엔 둥그런 달이 떠있는 상태에서 아말감을 올려 물체를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진작 세상을 버리시고 거울을 보며 문득 홀로 남은 외할머니의 기나긴 봄밤은 어떻게 속절없이 깊어 갔을까. 무서리 내리는 그 가을날의 국화꽃은 외할머니 가슴에 또 어떤 빛깔로 사무쳐 진저리치며 피어났을까.

 굳이 외할머니가 아니라도 우리네 옛 여인들은 자르르 손때 묻어 윤기마저 흐르는 경대 앞에서 그 무슨 생각을 하며 단장에 골몰했을까 자못 궁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자신을 가꾸기에 온 정성을 괴었으리. 더러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의 못 이룬 소망이거나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는 추억에 젖어 아슴아슴 눈시울을 붉히는 시간도 있었으리. 또한 제 나름의 마련된 호사와 한껏 스스로의 만족감으로 넘칠 듯이 가득한 미쁜 사랑을 가만가만 두 손 꼽아 헤아리기도 하였으리라.

 경대 서랍에는 일반적으로 분통이나 족집게와 빗이나 장식과 실용의 기능을 위한 뒤꽂이와 비녀 빗치개 등속을 넣어 두곤 했는데, 오밀조밀 고만고만한 것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할 수 없이 요긴하게 소용에 닿는 것들이었다.


 예천의 출장길 이후 언제부턴가 내 마음은 허둥거리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출장비에서 애써 여투어 낸 푼돈은 홀린 듯 옛 여인네들의 생활용구들과 바꾸어지기 시작했다.

 애써 눈 주어 돌아보고 마음 가 닿지 않고서는 그냥 태무심하고 지나칠 도리 밖에는 없던 것들이 저마다 의미를 갖고 앉은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화접뒤꽂이에는 부부간의 화합과 자손의 번성을 희구하는 여인들의 소담스런 마음이 담겨 있었다. 십장생 수저집에는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으로 동양의 장생사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비녀에 새겨 넣은 모란 문양은 부귀와 명예를 의미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수복문을 담은 베갯모에는 다복과 장수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호랑이 발톱 같은 노리개는 모든 악귀를 물리치는 힘을 상징하여 장신구에 사용하게 된 것도 알게 되었다. 나달나달 닳아졌지만, 뇌문이나 아자문으로 난간을 두르고 겹국화, 벌, 박쥐, 초롱을 금박 물린 제비부리댕기 속에는 그넷줄 매어 창공을 치오르며 마음껏 자태를 뽐내고 싶던 날의 수줍음과 설레임이 보이는 듯 했다.

 안동이나 영주, 예천, 봉화, 상주, 의성, 점촌을 거쳐 장안평이나 인사동으로 내닫아 찾고 구하고자 했던 것은 돌이켜 무엇이었던가. 궁벽진 시골이거나 애써 옛 전통과 문화의 한 자락을 쉬 저버리지 못하고 부둥켜안고 안간힘 쏟던 사람들에게서 내가 귀하게 얻어낸 것은 진정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옥같이 흰 살결, 가늘고 수나비 앉은 듯 한 눈썹, 구름을 연상시키는 검고 숱 많은 머리카락, 복숭앗빛 뺨, 앵두빛 입술, 박 속같이 흰 이, 가는 허리, 그리고 백모래밭의 금자라처럼 아기작거리는 걸음걸이와 옥반에 진주를 굴리는 듯 낭랑한 목소리의 여자…….’


 우리 옛 선조들이 예찬한 이런 이상적인 여인상은 부덕과 지혜와 건강한 신체와 올곧은 정신을 지닌 이성적인 아내상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상적인 여인상이라고 여겨졌던 이들은 짙고 화려한 화장을 한 반면 대부분의 여염집 여인들은 한 듯 만 듯 옅은 화장(談粧)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특히 정성을 들이고 애정을 품고 만난 여인네들의 치레걸이 중에는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어도 빠져들 듯한 옛 화장용구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후 구워낸 조선시대 청화백자 화장용구는 소담스럽고 앙증스러울 정도로 깜찍해서 내 마음 홀라당 빼앗겨 홀리지 않고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살펴보면 옛 여인들은 얼굴에 분단장하고 눈썹 그리고 연지를 바르되 본래의 생김새를 크게 바꾸지 않는 자연스런 화장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고 주근깨 없으며 투명한 피부, 즉 옥 같은 피부를 갖고자 애썼던 것이다. 이러한 피부를 가꾸기 위해 미안수를 만들어 사용하고 꿀 찌꺼기를 펴 발랐다가 떼어내는 미안법(팩)을 하는가 하면 오이를 얼굴에 문지르기도 하였다.

 옛 여인들의 치레와 단장을 위한 화장품들은 스스로 제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백분의 경우 분꽃을 집 주변에 심어 거둬 그 씨앗을 그늘에서 말리고 맷돌에 빻고 체에 쳐서 만들었다. 연지의 경우에는 홍화(紅花)를 재배하여 꽃잎을 거두어, 이를 말려 빻고 비비고 체에 치는 과정을 반복하여 제조하였다.

 기억 컨데 내 유년의 뜰에도 동네 누님들과 봉숭아 꽃잎 콩콩 찧어 백반과 잘 섞은 다음 비닐로 싸고 실로 손톱에 칭칭 동여맨 시간들이 머물고 있다. 그 여름날의 해질녘 노을빛 곱게 물든 것 같던 분홍의 손톱에 피어오르던 아련한 그리움이나 못 다한 소망 같은 것이 수줍은 얼굴로 떠오르는 것이다.

 분합이나 유병, 분접시, 분물연적, 향유병, 참빗, 빗치개, 청동거울 등을 수집하면서 내 마음은 늘 숨겨둔 애인을 몰래 만나듯 기쁨과 설렘으로 움달아 두근거리게 했다.

 개중에 아끼는 것으로는 고려시대의 청동봉황문모자합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진작 박물관에는 도자기로 만든 비슷한 유물이 몇 점 보이지만 당초문양으로 테두르고 아래, 위 두 마리의 봉황이 은상감으로 새겨져 서로를 희롱하는 모습이 자아내는 신비는 유래가 없도록 아름다운 것이었다.

 최초의 근대적인 화장품인 박가분(朴家粉)은 또 어떠한가. 일제 강점기 공산품 1호면서 박(朴)이라는 상표로 등록된 가로 세로 4.5cm에 불과한 이 분통 하나를 위해 삼 년을 소망하고 기다린 보람은 말로 다 이를 수 없는 것이었다. 종이로 만든 그깟 분통 하나 라지만 살아계셨다면 백 세가 넘었을, 어쩌면 내 외할머니의 혼수품 물목에도 있었음직한 그리움과 추억의 시간을 반추해 낼 수 있는 유물이었다.

 헤아려 보면 마음이 가고 애틋한 연분을 맺은 유물이 어찌 한두 개 일까 보냐. 월궁경이라 이름 지은 오래된 청동거울은 색다른 것이었다. 서왕모에게 받은 남편 예(羿)의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하늘로 달아나 달의 정령인 두꺼비가 되었다는 항아가 있고, 불로장생의 약을 방아에 찧는 토끼와 월계수가 있는 문양이 눈길을 끌었다. 그 문양 아래 이 월궁경을 간직했을 어느 이름 모를 여인이 쇠끌로 새긴 ‘京成女高普’ 라는 글씨에 담긴 사연을 더듬어 궁리해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었다.


 아아, 세월의 뒤안길 돌아 이제는 가고 없는 날의 여인들이 목숨처럼 아끼고 가까이했을 옛 장신구와 화장도구며 생활공예품이여!

 솜씨 좋은 조이질로 은을 다듬고 칠보를 올리던 장인들도 죽고 그 연연하게 이어져 온 전통은 단절되고, 가물거리는 등불 아래 졸리는 눈을 껌벅이며 수틀과 마주 앉았거나 금박댕기를 접던 어머니들의 손길을 다시는 보기 어려운 시절이 되고 말았다. 한 땀 한 땀 사랑과 꿈과 소망을 누비고 감치고 박고 이으면서 바느질을 하고 매듭을 매어 혼수품을 장만하던 처녀의 사연도 먼 이야깃거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마음이 가닿는 상상의 저편에는 부드럽고 긴 머리채 곱게 빗질하고 고운 댕기 드려서 칠보 은비녀를 반태스레 지른  여인 하나 있었다. 경대 앞에서 오랜 분단장 후 칠보단장 화접뒤꽂이 꽂고 쪽진 머리 들어 그 어디 먼 길 가시는가 치마꼬리 살짝 들어 외씨버선 사뿐히 마당을 나서는 상상을 가만히 해보곤 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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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작가 사전 파랑새 청소년문학 3
마뉘엘라 모르겐느 지음, 클레르 뒤부아 그림, 김주경 옮김 / 파랑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 프랑스는 18세기 백과전서파가 활동했던 나라입니다. 백과전서파의 주축이었던 디드로, 볼테르, 루소 등은 감정보다 이성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계몽하고, 구체제의 권위와 종교를 비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펼친 백과사전 편찬 운동은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지요.(역자서문 9쪽)


역자서문에는 프랑스 백과전서파가 기여한 18세기 의식의 개혁이 간략히 서술되어있다. 21세기, 이 책은 백과사전에 대한 기존의 체계를 탈피하여 탄생되었다. 작가의 배열이 알파벳 순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백과사전의 전형적인 내용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작가의 탄생연도와 대표작 정도에 대한 코멘트도 역자가 우리나라 독자를 위해 넣은 친절이다. 논픽션에 분류되어 있는 청소년 책이지만 판타지 기법을 도입하여 읽는 재미를 주며 백과사전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날마다 독자는 쌍둥이 주인공의 한밤중 모험에 동참한다. 알파벳 26자의 이니셜로 시작하는 문학작가를 한 명씩 차례대로 골라 대표작품 속으로 이들의 모험이 펼쳐지는데, 다만 X와 Y는 묶어서 작자미상으로 처리한다. 방정식의 미지수 XY가 연상되어 독자로 하여금 해당되는 작가를 찾아보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Yeats는 시인이라 제외되었나. 이 책에서 XY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작자미상의 <천일야화>다.


책의 후반에서도 쌍둥이들이 언급했듯이 여성작가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작가이다. 여성작가를 찾아 추적해보니 가명을 쓰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당시 훌륭한 여성작가들에 대해 작가는 쌍둥이의 입을 빌어 “가명 뒤에 숨은 작가들은 이미 모험을 한 거야. 그래도 사람들은 결국 그들을 찾아내지만 말이야.” 라고 말하고 있다. 글쓴이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의 국적은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하다. 부끄럽게도 내가 처음 들어보는 작가도 있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혹은 외국문학을 읽기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 귀설은외국문학작가들의 이름이 어느 정도의 호감을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행여 낯선 작가의 이름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찾아 뒤지게 되고 문학작품에 심취한다면 작가와의 내밀한 만남을 조금 일찍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쌍둥이 주인공은 밤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틈을 타 헤드라이트를 켜고 서재에 간다. 아마도 아빠의 오래된 서재일 테다. 아이들의 키로는, 고목의 수피에서처럼 책냄새가 훅 하고 콧속으로 들어오고 아빠가 동서고금의 책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숨막히는 방일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읽기에 부담스러운 고전문학작품을 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흥미로운 모험으로 접근하다. 가장 꼭대기의 책에서부터 아래로 차츰 내려오며 특별한 체험으로 작가를 엿보게 되고 그들이 쓴 책 속으로 빠져들며 모험을 한다. 무시무시하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고, 부조리하기도 한 모험들은 모두 작가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물론 이 책에서 각 장마다 판타지형식으로 나온 짧은 일화가 한 작가의 모든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다른 면모와 정신세계를 엿보는 시간으로도 흥미롭다. 쌍둥이와 함께 독자는 알려져 있지 않거나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화와 함께 작가의 내면세계로 짧지만 강렬한 여행을 하는 셈이다. 이들은 여러 작가들의 다채로운 면모를 엿보고 보통 사람이 아닌, 작가로서의 삶과 독특한 생각,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의 정서와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작가별로 작품탄생의 심리적, 환경적 영향도 조금 짚어볼 수 있다.


각 편마다 글의 길이가 길지 않다. 책의 두께도 얇고 손에 쥐기에 아담하다. 문장은 압축적이고 늘어지지 않는다. 한밤의 판타지이지만 눈 한 번 깜박 하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흐른 것뿐이라는 인상을 주어 신비하다. XY편을 제외한 24명의 작가를 나타내어 주는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 인물의 개성을 잘 담았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달리의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한 그림들에는 작가의 실제생활과 작품, 정신세계를 단적으로 담아내려는 의도가 보이며 내용과 삽화가 잘 어울려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각 편마다 반복구절이 배치되어 글 전체가 하나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밤이다. 드디어 집 안의 불이 모두 꺼졌다. 뷔바르와 리코세는 서재의 책장 위로 올라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모두 일곱 개의 선반이 있었다. 두 아이는 선반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땅이 아득하게 보이는 곳, 그곳에서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라는 글귀가 각 편의 서두에 나온다. 그리고 각 편의 마지막에는 작가들에 대한 주인공들의 이해가 나름대로 서술되어있다. 예를 들면, 루이스 캐럴 편에서 “작가들은 우리가 새로운 시각으로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때로 우릴 물구나무 세우기도 하는 것 같아.” 라고 기발한 생각으로 이끈다. 그러고는 침대로 돌아와 깊고 달콤한 잠으로 빠져든다.


이 책은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에 대한 환상을 가져보았던 이들, 작가의 일화에 놀라웠던 기억이 있는 이들도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청소년 시리즈로 나온 만큼 문학작품 읽기에 빠지려는 이들이나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손 내밀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욤 아폴리네르로 시작해서 에밀 졸라에 이르기까지, 고전문학작가와 그 책을 통한 여행으로 밤잠을 설친 쌍둥이가 만들어 낸 독특한 작가사전이다. 하지만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상상의 세계를 기대하면 부족하게 느낄 것이고 그저 문학작가와 작품의 맛을 살짝 보고 독자가 더 깊은 맛을 찾아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데에 의미를 둘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에밀 졸라에 대한 쌍둥이들의 진지한 생각을 읽어보자.

 

- 뷔바르와 리코세는 전혀 몽상적이지 않은 이 작가, 사회 문제에 진지하게 참여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살았던 이 작가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맞아, 졸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으로 우릴 데려가 주었어. 아마 그는 우리가 낮 2시에 정오의 시간을 구하는 법 없이, 그냥 우리의 시간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 작가는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 - 156쪽


나름의 방식으로 삶과 인간, 세상을 그려내려고 한 작가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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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1-3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 안내에서 보고 궁금했던 책이에요.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진달래 2007-02-0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

프레이야 2007-02-0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청소년/어린이 책 분야에 우리나라에선 이런 소재의 책은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 작가들로도 이런 식의 작가사전을 만든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의 고전 작가들 말이죠^^

카페인님/ 네, 흥미로웠어요. 파랑새출판사라 믿음도 가구요.^^

부엉이 2007-02-0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재밌는 리뷰 넘 감사드려요. 가끔 신간 보내드릴게요. 그치만 절대 리뷰의 압박을 느끼시진 말고요! 제맘 아시죠? ^^;;

짱꿀라 2007-02-0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품있는 리뷰를 만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향기로운 2007-02-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멋져요^^;; 저도 보관함에 담아두어요^^

프레이야 2007-02-0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좋은 책 흥미롭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당연 부엉이님 마음 알지요^^
산타님/ ^^ 고맙습니다.
향기로운님/ 초등학생이 읽기엔 재미없을 것 같지만요... ^^
에고 오늘도 우체국 갈 시간을 못 내어 버렸어요. 애들 방학도 다 끝나가는데..
 

오늘따라 희령이가 부쩍 말수가 많다.

어젯밤에는 엄마와 아빠에게 각각 장문의 편지를 써서 주더니...

엄마랑 산책하고 싶다며 종알거리는 애를 데리고 오후 늦게 나갔다.

공원을 산책하려다가 왠지 가까운 바다로 가고 싶어졌다. 아이를 꼬드겼더니 금세 발길을 돌려준다.

토요일 오후라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물론 자동차들도 서서히 기어가고 있다.

어렵게 주차할 곳을 찾다가 별다방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들어갔다. 한 시간은 무료가 되니까.

희령인 오렌지주스를 나는 카페라떼를.  통유리 밖으로 마주보이는 광안대교 불빛이 보라빛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바다색이 어느새 짙어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희령이랑 이야기를 나누면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들 이야기,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 지금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

앞으로 아나운서보다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말, 자기가 생각하는 남편감과 자녀계획까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고 하느님이 주시는 대로 딸이든 아들이든 감사한 거라고 말해주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응, 그러면 남매가 좋겠네, 란다. ^^

장난꾸러기 남학생들이 방학 때 길에서 만나니까 무지 점잖고 착해졌더라며 이상하다고 갸우뚱..

철이 드는 거겠지, 라고 했더니 어제 수업온 5학년 오빠들은 왜 그렇게 유치하냐고 반문한다.

남학생들은 원래 좀 유치해, 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근데 이거 맞나? ^^

내일 노랑할아버지 생신 카드 써야겠다는 말,  자기는 누구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하면 좋지만

너무 아이 취급하면 싫다는 말, 하지만 어른들은 젊어보이는 게 좋더라며 할아버지는 올해 일흔여섯

되는데도 참 젊어보인다며, 엄마 아빠도 그렇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을 알고 기혈을 누르듯 꼭꼭 짚어주는 아기여우~

난 엄마가 참 마음에 들어,,, 엄마는 우리희령이가 제일 좋은 걸,,,

이렇게 닭살멘트를 서로 날려주었다.

결론은 희령이는 엄마아빠 같은 사람의 딸이라 무척 행복하고,

난 행복해 하는 희령이를 보면 제일 행복하다는 것.  ㅎㅎ 사진이나 한방 찍자꾸나, 김치~



<마음 내키면 꼭 저렇게 귀걸이를 하고 나오는 희령꽁주, 귀찌인데 귀를 뚫은 것 같이 보이고 예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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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1-27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마음 먹으면 바로 바다를 볼 수 있는 부산 사시는 님이 부럽습니다. 저두 바다가 보고 싶어요~~~~
희령이와 님 참 예쁘십니다.

水巖 2007-01-2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령이가 서울에서 보았을때 보다 더 예뻐졌는데요.

프레이야 2007-01-27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그래서 참 좋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수암님, 네 그동안 또 좀 자란 것 같아요. 여전히 통통한 게 식성이 워낙 좋아서요^^

춤추는인생. 2007-01-2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희령이ㅎㅎ야무지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이곳까지 다 들리는데요?^^
귀찌한 희령이는 아가씨같구요! 혜경님 표정에서 사랑스러운 딸을 두신 엄마모습이 엿보여요...
아......참..평화로운 풍경이네요. 혜경님..*^^*


프레이야 2007-01-2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추는인생님/ 왜 그렇게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었던지, 이제 알게 되었어요. 방금에야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내네요. 금요일오후에 잘 놀던 친구의 한 마디에 마음이 무척 상해 속이 많이 아팠나 봐요. 어쩐지 그날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표정이 좀 안 좋더라구요.^^ 그래도 그런 일을 나한테 말해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속으로만 끙끙 앓는 건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님, 편히 쉬세요^^

서연사랑 2007-01-2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녀의 모습입니다.^^

hnine 2007-01-2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혜경님이 부럽고, 희령이가 부러워요...

글샘 2007-01-27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늘 저랑 같은 바다를 보고 계셨군요. 오늘 유난히 광안리 바다색이 예쁘더라구요.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한다더니, 좋은 엄마와 따님의 모습입니다.^^

꽃임이네 2007-01-2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가 보고싶으면 볼수있는 부산에 사시니 부럽네요 ..
다정한 모녀모습이군요 . ~~ 저도 그런 날이 언제 올까요 ..
너무아름다운 님의 모습입니다 .희령이도 이쁘구요
전 대학로에서 음악체험 하고 옆지기 만나서 찜질방에서 늦게까지 놀다 왔어요 .
주말 잘보내세요 ^^*

프레이야 2007-01-28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사랑님/ 고맙습니다.^^ 님이 따님과 함께 하는 모습도 풋풋하게 느껴지더이다.
hnine님/ ^^ 고마워요. 오늘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글샘님/ 작은애가 좀 그래요^^ 친구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상했을까 생각하면 속상
하지만, 스스로 그런 감정도 다스리고 건강하게 풀어가는 것 같아 뿌듯해요.^^
같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는 말이 듣기에 좋습니다.^^
새벽별을보며님/ 닭살 풍경! 때론 괜찮지요 ㅎㅎ
꽃임이네님/ 꽃임이가 조만간 그런 역할 할 것 같은데요^^
옆지기님이랑 찜질방도 가시고, 따끈따끈한 시간 보내셨네요.
대학로 음악체험도 무척 좋았겠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래요^^

건우와 연우 2007-01-2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가(부모가) 마음에 든다고 말 할 수 있다는건 그만큼 아이와의 공감대가 많다는 거겠죠.
희령이와 님은 정말 행복한 모녀지간이시군요.^^

프레이야 2007-01-2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연우님/ 오늘 좀 쉬고 계신가요?
아이가 고민이 있을때 제일 먼저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되고 싶어요.
언제까지 그렇게 유지할 수 있을지... 아이가 크면 점점 멀어질지도 모르는데..
긴장하고 노력해야겠어요.

진주 2007-01-28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정하고 자연스럽네요. 저는 제가 워낙 무뚝뚝한데다가 머스마들은 커갈 수록 엄마와 멀어져서 저런 다정한 모습은 연출하기 힘들어요. 큰놈은 팔짱끼면 기절초풍해요.

프레이야 2007-01-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전 팔짱끼고 기댈 아들녀석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딸은 딸이라 좋고 아들은 아들이라 좋을 것 같아요. 욕심이지요.^^
윤이는 팔짱끼면 기절초풍한다니... 사춘기인가 봅니다.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에요. 좋으시겠어요. 아들, 딸 골고루 있으니...^^

마노아 2007-01-2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시간 나누셨군요. 한폭의 그림같고 영화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따스하네요. 님이 보셨을 그 바다도 부러워요~ ^^

무스탕 2007-01-2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큰 아가들... 이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시겠어요.
바다가 가깝다는건 참 좋은일이에요 ^^

바람돌이 2007-01-29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딸의 대화가 너무 정겨워보입니다. 미모를 자랑하는 사진까지.... 딸아이들은 점점 커갈수록 엄마의 친구가 되가는 것 같아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모녀의 모습입니다. 그리 멀지않은 저의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맘대로.... ^^

icaru 2007-01-2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딸을 낳아야 해. (으아~ 자매같슴다!..) 희령이 동그랗고 맑고 오목조목 정감가는 얼굴이어요..

짱꿀라 2007-01-2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보기 예쁜 사진입니다. 다정히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행복해 보이시는 것 같네요....... 행복의 미소를 지어보고 봅니다.

전호인 2007-01-2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글동글한 희령이가 귀엽습니다. 못지않게 혜경님 또한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 만큼이나 곱네요. 아이~~~ 고와라! ㅎㅎ. 바다와는 거리가 워낙 멀다보니 말만들어도 운치가 느껴집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겨울바다의 서정적인 이미지에 반하여 인천 월미도 쪽을 찾은 적이 있지요. 추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꿈과 현실은 다르더라구요. ㅋㅋ, 행복한 미소가 얼어붙은 마음을 녹게합니다.

토트 2007-01-2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너무 보기 좋아요. 역시 딸이 좋군요.ㅎㅎ
배혜경님 너무 미인이시네요. 희령이도 너무 예쁘고. ^^

향기로운 2007-01-2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미소가 너무 예뻐요^^ 엄마를 좋아하는 딸하고 딸을 좋아하는 엄마. 보기 좋습니다^^

춤추는인생. 2007-01-2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희령이가 님께 조곤조곤 고백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희령이의 고민을 생각해서는 그러면 안되겠지만. 얼마나 귀엽고 예쁠까.. 그생각이 먼저드는거 있죠?
희령이 마음 빨리 풀리기를 언니가 기도한다고 전해주셔요..^^.

프레이야 2007-01-2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겠지만, 잠시라도 이런 시간 좋은 것 같아요.
바다... 자주 보실 시간이 없어시죠? 우린 자주 보게 되는데도 늘 새롭네요.^^
무스탕님/ 혼자 앓지 않고 엄마에게 털어놓아주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그렇게 건강
하게 자라면 좋겠어요. 아이 왈, 바다를 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나요 ^^
켈님/ 분위기로 승부하는 ㅎㅎ
이카루님/ 자매 같단 말에 헤벌쭉 합니다.^^
산타님/ 갖고 있던 폰으로 찰칵.. 행복은 작은 것에서..^^
전호인님/ 꿈과 현실을 다르던가요 ㅎㅎ 월미도라면 저도 20년 쯤 전에 가 보았어요.
배를 타고 영종도로 들어갔지요. 저도 그때 겨울이었는데... ^^
토트님/ 딸이 좋지요. 그날 희령이가 자기는 딸만 낳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꼭 딸만 좋은 건 아니고, 그건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더니
그럼 하나씩이 좋겠다고 하더군요^^
향기로운님/ 님은 희령이 말대로 하나씩이니까, 최고지요^^
춤추는인생님/ 그날 나랑 이야기하고 일기 쓰고, 그러더니 스스로 풀리고 있나
봐요. 예쁜 언니가 기도해 주었다고 전할게요^^

박예진 2007-01-29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꿈이 비슷하네요 :) 바다 가까워서 너무 좋으시겠어요.

프레이야 2007-01-3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진님/ 반가워요. 외교관의 꿈? ^^
정말 잘 해낼 것 같은 걸요. 방학 즐겁고 보람되게 보내고 있겠죠?

바람돌이님/ 해아와 예린이는 더블로 더할 것 같은데요. 애들이 참 예쁘던걸요.
아마 엄마랑 잘 맞고 친구처럼 좋은 사이가 될 거에요.^^

sooninara 2007-01-30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쟁이 미모의 모녀라니...정말 부럽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찻집 데이트..좋은데요. 저도 나중에 딸이랑 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07-01-3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 은영이랑 당장 하셔도 좋을 걸요. 딸, 은영이가 친구 같고 더 좋지요 ㅎㅎ
 
헨쇼 선생님께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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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물리적 무게와 책값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무게에 대한 쓴소리도 있지만 난 이런 종류의 하드커버 책을 좋아한다. 어린이책도 디자인이나 장정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책을 고를 때 옆에서 가만 보면, 품격 있어 보이는 모양과 색상, 삽화 그리고 한눈에 매료되는 어떤 것들에 무의식중 좌우되는 걸 알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손에 쥐고 펼쳐보고 싶은 책이라야 소유욕이 있기 마련인 아이들도 가까이 하고 싶어할 것 같다. 늘 믿거니 하고 고르게 되는, 보림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우선 내 맘에도 들었다.


주인공 리(Leigh)는, 이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자기 이름을 못마땅해 하고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평균치 소년’이라고 평가했지만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그리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과 사려 깊고 자립심 강한 사고가 엿보이는 아이다. ‘리’가 2학년에서부터 6학년이 되어서까지의 성장기록이 그가 쓴 편지와 일기를 통해 드러난다. 편지와 일기는 어린이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이다.  편지는 채도를 낮춘 연두색 종이에, 일기는 약간 노란 종이에 씌어있다. 종이질감도 좋고 눈이 아주 편안하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읽어주신 무척 재미난 동화에 반해, 그 동화작가 Mr. Henshaw 에게 보내기 시작한 편지로부터 이 아이의 글쓰기는 시작된다. 그 과정을 보면 글은 자라고 변하고, 침체기도 있으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글을 쓰면서 ‘리’는 자신의 갑갑한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표현하며 보살핀다. 글쓰기가 아니라면 이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와 갈등을 표출할 수 있었을지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쓰고 생각하며 자신을 돌보는 과정에서 ‘리’는 이혼한 후 홀로 자기를 키우며 늘 집세를 걱정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야간에는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기대에 어긋나게도 전화를 자주 해주지 않는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도 외로워 보이는 아빠의 어깨를 보며 왠지 슬픔을 느끼는 마음으로 점차 바뀐다. 오랜만에 보게 된 아빠가 전처럼 커 보이지 않았다는 대목은 ‘리’의 성장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리'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다른 대목은 좋은 책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어가는 부분이다. 처음 헨쇼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개를 재미있게 해 주는 방법>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나 헨쇼가 쓴 신간 <가난뱅이 곰>을 읽고 '리'가 가진 감상은 정신적 성장과 함께, 우리가 좋은 책, 혹은 좋은 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다운 글귀로 헨쇼에게 보내는 편지에 '리'의 생각을 담아보낸다. "(작가는 늘 생각하는 버릇을 길러야 된다고 하셔서요) 좋은 책이라는 게 반드시 내용이 웃겨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웃기는 내용이 종종 이로울 때가 있지만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는 책이에요......"(62쪽)  이 대목은 어린이책 작가로서의 비벌리 클리어리의 신념이기도 할 것이다. 키치 문화가 만연한 요즘 아이들도 가볍고 신기하고 기이한 것만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진중한 생각을 물어다주는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리’의 성장을 보며 한 아이가 자라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이는 이미 많은 것을 안고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씨앗처럼, 그 안에 이미 나무가 있고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래라저래라 가르치고 고치려드는 게 아니라 품고 있는 것들을 끌어내어주는 게 어른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리’의 주변에 있는 의미 있는 타인들이다. 이들이 건네는 관심과 따스한 한 마디는 스스로 자신을 사랑스럽게 대하는 아이로 만든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전학 온 학교에서 자신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말을 걸어오는 프리들리 아저씨와 도서관 사서 선생님, 자꾸 없어지는 맛있는 점심식사의 도둑을 잡기 위해 도시락경보장치를 만들 재료를 사기 위해 갔던 동네 철물점 주인아저씨. 이들은 잠깐씩 등장하는 조연이지만 ‘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생의 순간을 소중한 기회로 만들어 주는 배려심 깊은 타인들이다.

 

이 책에서는 아이의 성장과정과 함께 글쓰기의 성장과정이 병행한다. '리'는 글쓰기에 점차 자신감이 붙고 끈기있게 '쓰기'를 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된다. '어린이 작품집'에 낼 글을 쓰려고 고심하는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하다. 먼저 다른 아이들처럼 재미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써보려고 의도하지만 그게 뜻대로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헨쇼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한 편지의 답장으로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문제를 해결하든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구상하기가 만만치 않다. 시를 써보기로 마음을 바꾸지만 '시는 이야기보다 리듬이 중요'하더라는 것을 알게된다. 이점은 꼭 동의되진 않지만. 또한 '이야기를 만들어 쓰는 능력은 살면서 얻는 경험이 더욱 풍부해지고 이해하는 힘도 깊어졌을 때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은 후반부에서 만나게 되는 또다른 작가가 해준 말이다. 이 작가는 미래의 작가 '리'에게 중요한 말을 들려준다. "너는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않고 네 자신 그대로, 가장 너답게 글을 썼잖아. 그게 바로 네가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증거야." 라고.


<헨쇼 선생님께>는 읽을수록 잔잔한 울림이 있다. 문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런데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가 쓴 편지와 일기라는 점을 감안하여 번역하였는지 약간 궁금해진다. 초반에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의 문장으로 보기에는 너무 단정한 문장이다. 후반에는 ‘개인적으로는’ 이라는 말이 이 문장 중에 나오는데 6학년 아이가 이런 단어를 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에는 별 다섯을 주고 싶다. 그시절을 지내온 어른이 보기에도 울림이 담담하고 진솔하며 형식면에서도 주제성과 어울림이 있다. 톡톡 튀는 아이다운 말투와 발상도 곳곳에서 재미나다. 헨쇼 선생님에 대해 독자가 상상하는 몫도 흥미로운데 끝에 가서 나오는 한 구절은 대개의 상상보다는 의외라서 더 그렇다. 그리고 이승민님이 그린 삽화가 한 몫 한다. 마치 목탄으로 거칠게 스케치한 느낌을 주는 흑백의 삽화가 아련한 그리움과 왠지모를 슬픔을 자아낸다. '리'라는 아이가 어른이 된 후 지나간 날들을 반추하는 기억 속의 필름 같다.  책표지에는 금발의 남자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고 있다. 초등 5학년이상이면 권하고 싶다. 특히 글쓰기를 어려워하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 피하거나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드는 아이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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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7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1-2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그 나이에는 아직 읽기가 지루할 것 같구요 내년 쯤이면 좋아할 것 같아요.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아이라면 더 ... 어른들이 읽기에 더 좋은 것 같은 동화...
맞아요. 그게 동화 쓰는 사람들이 넘어야 할 부분 같아요. 그래서 더 어렵구요.
아이들 나름대로 느끼고 건져올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해요.^^

비로그인 2007-01-28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책으로 보이는데요? 어른이 봐도 재밌어요?

프레이야 2007-01-2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님, 전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특별한 사건이나 신기한 일들을 원하는 독자는
그저그렇게 여길 것 같아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최상철 2007-03-04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동 도서에서 느끼는 감동은 포장되어 있지 않아 좋은 것 같습니다.
느끼면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생각하는대로...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찰리맘] ^^*

프레이야 2007-03-0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찰리맘, 상철군이랑 좋은 책들을 많이 읽으시더군요. 반갑습니다. 아동도서의 감동은 남다르지요. 아이랑 소통 가능한 매개이기도 하구요^^

봄날의왈츠 2015-07-3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클럽 때문에 원서로 이 책을 읽었는데 다 읽고도 왜 좋은 책인지 몰라 검색하다가 들렀어요.
님의 글을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다른 글들도 얼핏 봤는데 참 좋네요.

프레이야 2015-07-31 09:35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썼던 리뷰로 만나게 되어 더 반갑습니다. 아이들과 독서수업 하며 함께 읽고쓰고 하던 시절이었네요. 원서읽기 북클럽인가요? 차츰 더 알아가며 좋은정보 공유하기로 해요. 고맙습니다~
 
 전출처 : 동그라미 > 씨팔! / 배한봉 님




씨팔!


배한봉


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앗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 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공부를 하고
공책에 <씨8>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질문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경남 함안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흑조(黑鳥)》(1998), 《우포늪 왁새》(2002) 출간
계간 <시와 생명> 편집위원
웹진 <詩鄕> 편집주간

 

왠 욕!!!!....

욕이라서 깜짝 놀라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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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1-1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랐습니다. 더구나 혜경님과 같은 성씨라 더더욱...윽!

다락방 2007-01-1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잖아요. 하하 :)

짱꿀라 2007-01-19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너무 놀랐는데 내용은 그게 아니었네요.

마노아 2007-01-2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멋져요^^

프레이야 2007-01-20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질문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해 본 적 있나..
자잘한 일에나 큰소리 치고 말이에요^^
놀라셨죠, 님들.
저도 화나면 마구 욕해요... 이 욕은 안 해 봤지만요..

행복희망꿈 2007-01-2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만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 졌네요. 내용은 그게 아니네요 ^*^

푸하 2007-01-2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는 정말 휩싸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있는 태도가 갖고 싶어요.

프레이야 2007-01-2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희망꿈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푸하님, 정말 저도 그런 태도 가지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