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
스탕달 지음, 강주헌 옮김 / 이마고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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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시대는 예술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발전시켰다. 예술의 모든 유형을 대신할 수는 있지만 다른 유형의 것으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것에 온 정열을 쏟았다. 말하자면 회화를 통해서 가장 생생한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배양시켜준 시대였다. 평온한 삶의 시기를 알기 쉬운 즐거움으로 더욱 윤택하게 해주고, 슬픔이 닥칠 때에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회화라는 예술을 그 시대는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회화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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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SACD] Jacques Loussier Trio - The Best Of Play Bach
Jacques Loussier Trio 연주 / TELARC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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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바흐의 Jesus, Joy of Man's Desiring이 흘러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무 맥락 없이 그랬다는 게 너무 황당하고 기이했다. 

이 음악을 각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즐겨듣는 것도 아니었는데 

무심결에 흘러나온 가락에 순간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의식적으로 웃음이 터진 것이다. 

1, 2년은 지난 일인데, 지금도 그때의 그 기이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다. 


조금 전에 이 음악을 틀었다가 또 한 번 아주 순간적이지만 뭔가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제니퍼 애니스톤 신경처럼, Jesus, Joy of Man's Desiring 신경이 있는 걸까.

어떤 피실험자에게 제니퍼 애니스톤을 보여주었더니 유독 반응하는 신경이 있다던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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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오늘에 썼던 글.

지금은 그때의 그 고역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진짜 사는 게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1년 뒤에는, 이런 글을 읽어야만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일들을 가지고 뭐 그리 고민을 해쌌나 싶은 생각. 고로 정답은 그냥 순간을 즐기며, 정말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지거나 싸우는 게 싫었고 그런 일을 막으려고 내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그랬는데, 1년 전 이 사건을 겪은 이후로 좋게 말하면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렸고, 나쁘게 말하면 애착을 버린 것 같다. 

십수 년 전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 남자친구도, 나를 이렇게 무너지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힘듦의 종류가 다소 다르긴 했지만, 누군가를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드러난 못난 나 자신을 죽도록 미워했던 아주 생소한 경험이었다. 돌려 말하면 내가 숨기고 싶어서 가장 깊숙이 넣어둔 이런저런 것들을 다 까발려버려서 너무 놀랐다고 해야 할까. 

비겁하지만 나는 그 사람과 '단절'하는 법을 택했다. 아주 정중하고 아주 티 안 나게. 

가끔,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기억에 떠오르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아마도 그 사람은 본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악의 없이 또 누군가를 그렇게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뭐 상관없다. 혹 그 사람으로 인해 또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 사람이 잘 딛고 일어서 자신의 다른 면을 보게 되길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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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속으로 한발짝 두발짝 들어가는 동시에 자기 삶을 전과 다름없이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추락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느껴질 때 언제나 부여잡게 되는 건 신앙과 책. 불변의 뭔가를 원하는 인간의 욕구 때문인 것 같다. 

어제 카페인 초과로 위와 정신이 아우성치고 있을 때 어둠을 틈타 묵주를 꺼내들었다. 요즘 거의 무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묵주를 찾는다는 게 너무 파렴치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누군가 당신은 천주교 신자입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곳에서 강요하는 형식이 아닐지라도 신은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죄와 벌>을 꺼내들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질투와 시기, 강박, 비하 등등 이 저렴한 감정이란 것의 실체와 원인을 알아야 뿌리를 뽑고, 다시 이런 게 찾아왔을 때 무던하게 넘겨버릴 수 있을 거란 희망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익숙지 않았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특히 최근에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더욱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왠지 사로잡았다.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생기면서, 그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한 달 동안이나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고민과 음울한 흥분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한순간이나마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다른 세계에서 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이 굉장히 더러웠지만, 그래도 기꺼이 술집에 남았던 것이다."(p.22)


세입자들은 이상하고 은밀한 만족감을 느끼면서 한두 명씩 문 쪽으로 물러났다. 이 만족감은, 친한 사람에게 불행이 닥쳤다고 할지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으레 마음속에 품게 되는 감정이며, 아무리 진실한 슬픔과 동정심을 갖는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예외없이 느끼게 되는 그런 감정이었다.-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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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 뇌를 이해하면 내가 이해된다
카야 노르뎅옌 지음, 조윤경 옮김 / 일센치페이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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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기관 중에서 가장 신비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뇌'가 아닐까. 뭐 다른 기관들도 그 작동 원리를 파고들면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모든 동물 중에서도 가장 고등한 인간의 뇌는 최고가 아닐까 한다. 
사실 이러한 뇌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낸 여러 학자들의 연구 역시, 고차원적 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두엽, 대뇌피질, 변연계 등등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뇌의 영역들이나, 시냅스, 미엘린, 축삭돌기 같은 미세한 구조와 기능방식까지, 복잡하고 유기적인 구조도 구조이지만 그걸 알아낸 학자들에게도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을 만난 건 운명적이었다. 요즘 심리학과 뇌과학을 통해 인간관계의 해법을 찾는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뇌 구조와 관련한 설명에서 참고도서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겸사겸사,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이후로 진득하게 책 읽기가 몹시 힘들어진 상황이라 '강제성'을 부여할 필요도 절실했다. 그러던 차에 SNS에서 이 책의 서평단 모집 게시물을 봤고, 평소 이런 '당첨'의 운이 별로 없긴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덜컥 신청했다. 

다행히 과학의 '과' 자도 모르는 문과 무지렁이가 봐도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가속도가 있는 책이다. 더 심각한 걸 원하는 분들에겐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뇌과학도 내지 신경과학도를 꿈꾸지 않는 이상 속인들의 지식욕을 채우기엔 아주 딱인 책이지 싶다. 
전문적인 용어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음에도, 정갈한 번역과 편집, 일목요연한 구성, 적절한 예시들로 가끔가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통찰도 선물해준다. 

목차를 살펴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4장 내 머릿속 내비게이션 -뇌 GPS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훈련으로 머릿속 GPS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세상 모든 길치에게 희망을'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길치인 나는 어렸을 적 가장 큰 공포가 '어딘가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햇수로 6년째 제주에 살고 있으나, 아직도 여기가 동쪽인지 서쪽인지 잘 구분을 못하고, 남편이 '여기 왔었던 거 기억하지?'라고 물으면 우물쭈물 자신있게 대답을 못하는 중증 길치다. 가끔 왼쪽과 오른쪽도 헷갈려서, 혹시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왼쪽 깜빡이를 켤까 봐 운전면허도 따지 못한, 딱한 뚜벅이가 바로 나란 사람이다.

방향감각이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지만, 뇌의 GPS에 해당하는 해마를 단련하면 길치 탈출이 가능하다니, 나에겐 정말 희망적인 소식이다. 생각해 보니, 아직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동생과 유럽여행을 갔을 때 지도에 의지해서 이곳저곳 길을 찾아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나보다는 길눈이 밝은 동생이 더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일단 생판 모르는 곳에서 숙소를 찾고, 어딘가를 돌아다니다 다시 숙소로 무사귀환 했다는 게 남들보다 작을 나의 앙증맞은 해마 덕분이라니, 고맙다 해마야!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스마트폰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뇌에 독 같은 존재란 걸 여실히 깨닫는다. 훈련을 통해 해마를 단련시킬 수는 있지만,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종이로 된 지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일본의 한 실험은 굉장히 흥미롭다(150쪽부터 관련 내용). 피실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에는 내비게이션 앱이 있는 휴대폰을 주고, 두 번째 그룹에는 종이 지도를 주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말로만 설명을 해주었다. 목적지에 도달한 뒤 이들에게 걸어온 경로를 지도로 그려달라고 했는데, 누구나 예상한 바대로 가장 힘들게 지도를 그린 그룹은 첫 번째 그룹이고, 가장 쉽게 그린 것은 세 번째 그룹이었다.
놀라운 것은, 내비게이션을 사용한 첫 번째 그룹이 가장 먼 경로를 택했고, 가능 도중 가장 많이 멈칫거렸다는 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진짜 소리내어 '오호~'라고 말했다. 남편도 늘 그런다. 평소에는 내비게이션을 잘 안 쓰지만, 처음 가능 장소라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고 나면 항상 "저 길로 가면 될 것을, 내비 때문에 한참 돌아왔네"라고 투덜거리는 것이다. 

또 인간의 기억에 관해 설명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기억은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온갖 감각 정보들로 과부하가 걸리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보호 장치"(130쪽)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만 구성해서 '기억의 골격'을 형성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들은 하위로 분류하거나 아예 없애버리지는 않더라도 구석탱이에 밀쳐놓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그럼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건 누구지?' 이건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지 않나? 왜 가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 더 선명하게 떠오르고, 기억하고 싶은 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나? 
기억의 왜곡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 구정에 친정에 갔다가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을 가지고 왔는데, 일기를 읽어보곤 멘붕에 빠졌다. 나름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일기 속에는 시험을 많이 틀려 고뇌하는 6학년의 내가 있었다! 가끔 시험을 좀 잘 본 적도 있었는데, 아마도 내 기억의 골격은 이 정보를 가장 중요한 사실로 저장했는가 보다. 어쨌든 기억도 생존본능의 하나로, 분명 나에게 유리한 정보를 선별하여 저장하는 것이겠지.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반성의 기회를 가져본다. 스마트폰이 여러 모로 독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 '읽지도 않을 책 뭐하러 사'라며 핀잔을 주는 남편에게 '읽을 거야, 읽을 거라고' 소리만 지르는 나. 여기서 벗어나려면 스마트폰은 눈과 뇌를 늙게 하고 결국 치매로 귀결될 확률을 아주 많이 높인다는, 고로 건강한 100세 시대를 위해서는 건강한 식습관과 적절한 운동, 그리고 해마 단련이 중요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이제 마음에 담아두지만 말고 실천에 옮기자!
진짜 끝으로, 좋은 책과 좋은 영화를 보면 결국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데, 이 책을 통해 별 고민 없이 오랜만에 긴 수다를 부려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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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작업을 하면서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너무 술술 읽혀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몇 페이지가 훌쩍 넘어간 뒤에야

알아차렸던 책이다. 

사실 직업상 계속 뭔가를 읽고는 있지만 

뭘 읽어도 '내가 읽는 게 읽는 게 아니야' 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해준 책이랄까. 

일하면서 이런 책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키르케고르에게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작가 자신은 어찌 보면 너무도 예민하고 우울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그런 고통에서 우러나온 성찰로부터 위안을 받는다는 게

어쩐지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 책도 그렇고, 이 책을 작업하기 위해 들춰본 책들도 그렇고,

요즘 서점가에 나와 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을 두루 살펴보면

나 자신을 응원하는 책이 무척 많다.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도 마찬가지..)

그만큼 개인이 오롯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이겠지만, 

한편으론 이제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해 비로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뜻이기도 해서 반가운 마음도 든다.


'괜찮다'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이란 생각을 어제 문득 했다. 

모든 상황의 껄끄러움을 한방에 녹여내는 마법 같은 말. 

남에게는 잘 쓸지언정 자신에게는 잘 쓰지 않던 말을,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참 많이 되뇐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성공한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며 하는 이야기보다는

진창 같은 삶을 딛고 지금의 자리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 와 닿는 법이다. 


'실존, 실존주의'라는 말을 삶과 동떨어진 철학적 용어가 아닌,

생계형(?) 철학으로 삶에 밀착해서 해석한 작가의 따뜻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자기계발서를 폄훼하는 (나 같은!) 이들을 살짝 나무라며

'모든 책은 자기계발서다'라고 일갈한 부분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려본다. 


*그나저나 언제 다시 성당에 나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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