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파마 국시꼬랭이 동네 10
윤정주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카시아로 파마를 한다니.. 제목만 봐도 기대되는 일이에요. 잃어버린 우리 자투리 문화라고 하는데요. 민속학자 임재해 선생의 감수를 거친 그림책이니 신뢰감이 들지요. 전체적인 그림의 색조 또한 차분하고 따뜻해서 끝장면을 맞을 때까지 내내 마음이 푸근하네요. 아이들의 대화가 있는 그대로 들리는 것 같이 꾸밈 없어요. 글자체도 다른 그림책과 달라서 좋아요.

꼬마 여자 아이 영남이와 미희 언니의 얼굴도 볼이 통통하니 얼마나 귀엽고 친근감 드는 우리의 얼굴이라구요. 한 손에 엄마의 손거울을 들고 미희언니의 손에 붙들려 아카시아 숲으로 가는 영남이 뒤로 동생 영수와 삽사리가 달려갑니다. 낮은 나무 울타리에 초가집, 울타리에 붙은 공명선거 벽보, '20일은 쥐잡는 날' 이라는 종잇장까지 보이네요.

아카시아 숲에서 미용실 놀이가 벌어져요. 손거울은 아카시아 나무 줄기에 걸어두고 영남이는 발그레한 얼굴로 미희 언니의 손길대로 머리를 맡기고 앉았어요. 미희 언니는 능숙한 솜씨로 영남의 머리를 만집니다. 영수는 삽사리의 털을 미희 누나처럼 감고 있네요. 버둥거리는 삽사리에게 하는 말, "사자처럼 멋있게 만들어 줄게." ^^ 애가 타는 듯 보채는 영남이를 달래는 미희언니의 말투가 참 다정스러워요. 파마가 잘 나오기를 기도하듯 두손 모아 기다리는 영남의 뒷덜미가 그렇게 진지하게 보일 수가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아이들은 모두 토란밭으로 달려갑니다. 비를 긋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이미 파마는 풀어져버렸네요. 정말 울고 싶겠죠. 빗줄기가 마치 손에 잡힐 듯 그려져있어요. 일러스트레이션이 멋집니다. 토란잎을 우산 삼아 앉아 펑펑 우는 영남이 머리 위로 무지개가 걸려요. 아카시아 파마하러 가자는 미희 언니의 말에 언제 울었냐는 듯 벌떡 일어나 따라가는 영남이의 통통한 다리가 사랑스러워요. 토란잎은 집어던지고요. 이번엔 삽사리가 앞장서네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엄마가 나서서 파마 시키고 귀 뚫어주고 그러던데요. 돈도 들고 몸에도 해로운 그런 것보다 이런 파마가 참 좋아보여요. 저도 어제 파마를 했지만요, 이런 파마 한 번 해보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깔을 부르는 아이 풀빛 그림 아이 25
디터 콘제크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빈센트라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살았던 세상엔 모두가 마법사들이다. 그 마법사들은 온통 잿빛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설정은 그리 드물지 않은 배경인 것 같다. 하지만 이 그림책의 미덕은 여러가지 면에서 살아난다.

우두머리 마법사에 의해 열리는 매달 한 번씩의 마법대회에서 우리의 빈센트는 대단한 마법을 해낸다. 그것은 우연히 자연에서 배운 것이다. 저 혼자 잘 자라는 갈대. 그 갈대 잎이 자연스레 가르쳐준 마법이다. 하기야 빈센트가 살았던 세상에서는 색깔만 없었던 게 아니라 소리라는 것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빈센트의 대단한 마법이 그냥 세상을 밝게 한 것으로 끝났다면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두머리 마법사는 현명하다. 그리고 빈센트에게 날카로운 자극이 된다. 그 합당한 이유로 빈센트는 좌절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번더 일어나는 우리의 빈센트는 참 어여쁘다. 그 아이를 도우는 것은 역시 자연이다. 새들.. 종종종, 홍알홍알 노래하는 새들도 처음엔 자기네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빈센트의 참된 미덕은 공을 자기만의 것으로 돌리지 않는 태도다. 모두가 함께 한 일이라며 즐거워한다. 이 그림책을 보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결정적으로 흐뭇해할 것 같다. 색색으로 물든 세상은 생각보다도 훨씬 아리땁고 다채롭다.

반전이 최고의 미덕이다. 이 세상이 늘 색색깔이라면 우리는 색깔의 소중함을 잊을 지도 모른다. 즐겁게 파티를 하고 있는데 어느새 색들이 사라지고 세상은 다시 잿빛으로 변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새운 사람은 빈센트이다. 어느 순간 세상은 다시 색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물론 새들의 지저귐이 여기저기 들리면서부터다. 우리들 세상에 밤이 되면 색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한 재치있으면서 진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늘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기 일쑤이니 말이다.

1학년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보았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여러가지를 들었다. 음악, 공기, 동물, 나무, 꽃, 질서, 사랑하는 마음, 물, 책, 그림... 아이들 성향에 따라 대답이 나왔다. 이 그림책을 보다보니,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이 떠올랐다. 시인 프레드릭과 음악가 빈센트. 역시 잿빛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예술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림도 독특한 향기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관에 핀 해바라기 크레용 그림책 28
제임스 메이휴 지음,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미술관에 핀 해바라기>에는 세명의 화가가 소개됩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대표되는 고흐, 고갱, 세잔입니다. 케이트는 해바라기를 좋아합니다. 할머니랑 마당에서 꽃씨를 심고 있다가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하자 꽃씨 심는 일을 멈추고 나들이를 갑니다. 장소는 평소 케이트가 좋아하는 미술관으로 합니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케이트는 혼자서 미술관을 둘러보기로 하네요.

먼저 고흐의 자화상이 보이고 그 옆엔 해바라기 그림이 큰 액자에 담겨 있습니다. 그 옆엔 <별헤는 밤>이네요. 그림 속의 해바라기는 '바싹 말라 보였고 꽃씨로 가득 차 있'습니다. 꽃씨를 심다가 온 케이트는 그 해바라기 씨를 가져다 마당에 심고 싶어집니다.  케이트가 천천히 그림 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케이트에게는 놀랍고 신기한 일이 펼쳐집니다.

꽃병이 밖으로 떨어지면서 해바라기랑 꽃씨가 바닥에 흩어집니다. 이어서 고갱의 <춤추는 브르타뉴 소녀들>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네요. 케이트는 그 속에 있는 소녀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미미와 강아지 조이는 케이트를 따라나섭니다. 그런데 일은 예기치 않게 또 다른 방향으로 벌어집니다. 여기서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가 등장합니다. 밤하늘의 풍경이 신비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 조이를 붙잡기 위해 케이트와 미미는 그림 속으로 따라 들어갑니다.

뒤이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케이트는 깜찍한 꾀를 발휘합니다.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의 그림 <사과와 오렌지> 속에 있는 하얀 식탁보가 쓰임새가 있네요. 고갱의 <타히티의 전원>에 들어간 케이트는 보물상자에서 금화를 얻네요. 여기부턴 다시 <사과와 오렌지>부터 역순으로 돌아갑니다. 카페주인아저씨에게 금화로 깨진 그릇에 대한 보상도 하고 꽃병도 제자리에 갖다 놓습니다. 미미와도 작별인사를 나누네요. 케이트는 그림을 수동적으로 감상한 게 아니라 그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적극적인 아이입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그림을 만나는 또다른 방법을 재미나게 보여줍니다. 그림 속에 들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상상만으로도 멋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오랜만에 미술관에 아이를 데리고 한번 가야겠습니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유도하고 아이가 조잘대는 자기만의 이야기에 귀도 기울여줘야겠습니다. 케이트처럼 해바라기씨를 갖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들이 지금 제일 바라는 게 무엇일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2004-09-17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 본다 본다 하면서도 못 봤거든요. 얼른 구해봐야겠네요^^
 
똥떡 국시꼬랭이 동네 1
박지훈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그림책 시리즈는 기획의도가 마음에 듭니다. '언어세상'이라는 출판사에서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라는 의도로 연이어 내보내고 있는 그림책 연작 중의 한 권입니다. <고무신 기차>라는 그림책으로 먼저 이 시리즈를 만났는데, 우연히 <똥떡>을 만나게 되었네요.

그림이 주는 느낌은 둘다 비슷합니다. 한지느낌이 나는 종이에 그린 것 같은 그림은 눈을 편안하게 하는 채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라서 인물들도 보기에 정겹습니다. 작은 눈에 동그란 얼굴, 납작한 코, 누렁개 한 마리도 친근합니다.

이 그림책들은 '국시꼬랭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동네란 '아이들이 겪은 일과 놀이, 풍숩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이 생생히 흐르고 있는' 마을이랍니다. 기획의도가 마음에 들어 책에 있는 그대로 좀 소개를 하자면, '크고 화려한 문화 대신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여서 지나쳐 버린, 자투리와 틈새 문화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겨운 우리 동네' 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국시꼬랭이는 어머니가 밀가루반죽을 밀대로 밀어 칼국수가락을 만들고 난 끄트머리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이들은 아궁이에서 구워 바삭바삭 야금야금 먹었네요. 사실 전 이런 경험이 없지만 이런 경험이 있었던 어른들이라면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도 나누면 호기심에 눈이 동그래질 것 같습니다.

<똥떡>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실수담이 나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실수는 양변기에 볼 일을 보는 요즘 아이들은 하기 힘든 실수입니다. 뒷간에서 똥통에 빠지는 것이지요. 똥독을 없애고 아이의 자신감도 살려주는 의미로 액막이떡을 했네요. 우리 민간신앙에는 집안 곳곳에 신이 있습니다. 그만큼 조신하게 몸과 마음을 가지라고 금기도 많지요. 할머니와 엄마는 뒷간에 빠진 준호를 위해 똥떡을 얼른 만들어 뒷간귀신에게 먼저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성질 나쁜 각시귀신을 먼저 달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귀신이 똥떡을 좋아하거든요.

뒷간귀신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얼굴은 불에 탄 듯 시커멓고 머리카락은 무지하게 깁니다. 무섭게 생긴 그 귀신이 나타나 똥떡을 먹으려고 다가오자, 누렁이도 겁이 나서 뒤로 물러납니다. 똥떡을 맛있게 먹는 뒷간귀신 표정이 참 재미납니다. 더 이상 무서워보이지 않네요. 이제 준호는 귀신에게 드린 똥떡을 이웃에 돌려야합니다. 이불에 오줌을 싸면 키를 쓰고 이웃을 다니며 소금을 얻어야했던 것과 비슷하지요. 아이는 자기의 실수를 감추거나 그냥 호되게 야단을 맞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기회로 삼게 됩니다. 조금은 창피하지만 '복떡을 가져왔구나' 하면서 실수한 아이를 반겨주는 마을사람들 때문에 아이는 성큼 자신감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참 푸근해집니다.

누렁이랑 빈소쿠리를 흔들며 들판을 뛰어 집으로 가는 아이의 표정이 밝습니다. 황금빛 하늘엔 뒷간귀신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려져있네요. 우리 조상들은 참 지혜로왔습니다. 똥떡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특별한 것도 없고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뭐든 나누고 작은 것으로도 마음을 담아 정성을 드렸습니다. 흔히 요즘은 민간신앙을 미신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에 담긴 소중한 마음과 지혜로움에 대해 아이와 눈높이를 같이 하여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영엄마 2004-09-1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입하려고 마음 먹고 있는 책이어요. 추천~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이호백 아저씨의 이야기 그림책
이호백 글 그림 / 재미마주 / 200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호백님의 이 그림책이 탄생된지는 제법 되었지만 나는 이제서야 자세히 보게되었다. 요즘 일곱살 작은 아이가 아주 재미있어하며 보는 그림책이다. 특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잘 펼치는 아이의 구미에 잘 맞는다. 게다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친구인 토끼가 마치 자신인 것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토끼가 신나는 모험을 하는 공간은 별다른 곳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늘 보아왔던 사람들의 공간이다. 토끼가 자신의 신나는 상상을 현실화한 공간은 베란다 유리문 한 장을 넘는 것으로 가능하다. 우리의 현실과 환상의 범주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마음의 문을 살짝 열고 한발만 내딛는 것. 그러므로 환상과 상상의 기회는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기회를 어른들은 간과해버리고 미처 잡지못하거나 잊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따분한 일상이라 투덜거리며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좀 다르다. 어른들도 모두 거쳐온 시절이지만 지금은 퇴색된 흑백사진처럼 상상력의 고갈로 마른 샘 하나를 가슴에 간직하고 산다. 아이들은 만나는 모든 대상이 마음에서 살아움직인다. 하물며 장난감 강아지에게도 말을 걸고 밥을 주고 잠자리를 봐주며 재워주는데, 살아서 눈을 깜박이는 토끼가 무슨 일을 못 할까.

베란다에서 얌전히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하얀 토끼는 의외로 쉽게 열리는 유리문을 살짝 넘어 평소에 해보진 못하고 마음으로 꿈만 꾸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본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아주 특별나고 대단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사람들이 날마다 하는 평이한 행위들이다. 토끼에게 이런 작은 바람이 있었다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 같다. 작가는 소박한 모험으로 충분히 신나는 경험을 하게 하며, 이 그림책을 함께 보는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아이 적에 엄마의 하이힐 구두를 신고 싶어 몰래 신고는 뒤뚱거리다 넘어지기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을 보며 묘한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던 그 옛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토끼는 예쁜 돌복도 입어보고 화장도 해보고 그 집 아저씨의 서재에 앉아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토끼의 신나는 모험 중에서도 가장 신나는 장면은 롤러블레이드를 마치 썰매처럼 타는 모습이다. 토끼의 긴 귀가 마치 스카프처럼 뒤로 날리고 튀김젓가락을 양팔에 쥐고 몸을 앞으로 약간 기울인 자세에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블레이드위에 올라 앉아있는 토끼는 마냥 짜릿한 표정이다.

이 장면은 책의 양면을 펼쳐서 화면 가득 그려져있다. 주조색인 채도 낮은 갈색톤에 카키색 블레이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그림책의 그림은 내용과 참 조화롭다. 현실감있는 상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 미덕을 잘 살려주는 부분이 바로 이 장면의 그림에서도 눈에 들어온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호백님의 세심함이 무척 기쁘다. 블레이드의 조이는 부분이 모두 풀어져 있다는 점이다. 토끼가 신기에는 너무 커서 그 위에 그냥 올라앉아 타고 있는데 만약 블레이드가 제대로 다 잠겨있다면 앞뒤가 맞지 않았을 것이다.

감쪽같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우리의 토끼는 자신의 똥을 치울만큼 치밀하지는 못하다. 아이처럼 순진하고 허술하다. 꼭 나의 작은 딸 같다. 자신의 영역 표시라도 하는 양 온집에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앉아 능청을 떨고 있는 토끼를 한번 쓰윽 보고 어른은 무언가 미심쩍지만 알고도 모른 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토끼 곁에 가서 뭔가 속닥속닥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몰래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짓을 도모한 동지끼리 나누는 귓속말 같은 것일 게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4-07-1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읽었는데 그림이 아주 힘있고 좋더라고요.
이호백 씨의 글과 그림이군요.^^
보관함에 담습니다.

진주 2004-07-2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을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림책 볼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림책을 사기가 쉽지 않군요. 서점에서 마음에 쏙 드는 그림책을 만나면 그저 넋이 나간 듯 보기만 한답니다. 속으론 치열한 전쟁을 하면서요-살까 말까 살까 말까...결국엔 만원짜리 한 장 허투루 쓰는 것 같아 사고 싶은 마음을 접고 만답니다. 이호백화백을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프레이야 2004-07-2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오랜만이네요. 더위에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그림책과 멀어지기 시작하는 건 슬픈일에요. 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