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라면 지긋지긋해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4
앨런 브래들리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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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인 하얀 밤에 함께 하면 좋을 책♥ 귀여운 탐정 플라비아와 함께라면 긴 밤도 금세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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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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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내가 중학교에 다닐 적이었을 것이다. 친구 중에 '상실의 시대'를 꼭 옆에 끼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꽤 두꺼워 보이는 책을 보물인양 가지고 다니는 그 친구가 왠지 멋져보여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모아 그 책을 구매한 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내 마음속에 새겨 진건 그때쯤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내가 용돈을 모아 책을 구매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고, 두꺼운 책을 읽어보겠다고 시도한 일은 더더욱 없었던 것이었다. 그랬으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을 수밖에. 

 그러나 '상실의 시대'를 끝까지 읽은 기억은 없다. 아마도 '상실의 시대'를 읽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지 싶다.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던 '상실의 시대'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나는 한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어려운 것'으로 치부해 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내가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집어 든 것은, 미처 완주하지 못한 레이스를 다시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끝까지 오르지 못한 산을 등정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도 같았을지 모르겠다. 결코 얇지 않은 책이었기에 짧은 레이스는 아닐 거라 짐작하면서 <1Q84>의 길에 올랐다.

 그리고 책을 펼쳐든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 레이스는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으리라 예감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흡인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킬러 '아오마메', 수학천재이면서 문학적 재능까지 겸비한 '덴고', 묘한 느낌의 수수께끼 소녀 '후카에리' 그들의 이야기가 나를 강렬하게 빨아들였다. 때문에 원래 책을 읽는 데에 몇 번의 낮과 밤이 필요한 나인데도, 3권까지 나와 있는 이 책들을 읽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궁금해 책 읽기를 멈추는 시간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한 장씩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하는데(3권에서는 우시카와까지 세 명이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 것 같다. 다음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는 하루, 또는 한주를 기다려야 하는 드라마처럼 이 책의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남은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아오마메가 권총을 입안에 집어넣고 자살을 하려는 2권의 마지막 부분은 3권의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주인공이 죽었다면 3권은 나오지도 않았겠지?',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주인공을 죽이는 것은 반칙이야, 그럴 일은 없어!', '덴고를 만나지도 못하고 죽는 건 너무 슬프잖아!' 이런 생각들을 하며 결국 아오마메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3권을 만났다.

 제일 궁금했던 것은 아오마메와 덴고의 '러브라인'이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3권은 그 둘의 사랑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아오마메가 그토록 기다렸던 '한 사람'과의 운명적인 해후를 나 또한 기다린 것이다.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그 진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그토록 간절하게 바란 적도,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용기도 없는 나지만 그들의 사랑을 응원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첫사랑. 그것이 나에게 언제 찾아왔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내가 남자에게 연애편지 비슷한 걸 써보고 선물이란 걸 주게 된 것이 바로 첫사랑이란 것 때문이었나, 하고 생각 할 뿐이다. 나에겐 이미 희미한 불빛이 되어버린 첫사랑이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도 가슴속에 오롯이 품고 있는 환한 등불이라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선구'의 추적을 따돌리고, 알 수 없는 세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등불 때문은 아니었을까. 흔히 말하는 '사랑의 힘' 말이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진심으로 위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분명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를 위하는 마음이 빛을 내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이가 생긴다면, 나는 후회 없이 모든 걸 던져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1Q84> 3권을 읽었다. 1,2권이 아오마메와 덴고 이외에도 생각할 것이 많았다면 3권은 주인공들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결코 닿지 못할 기찻길의 레일처럼 평행선만 그리던 아오마메와 덴고가 점점 한곳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권이 끝났음에도 4권이 기다려지는 것은 아직 못 다한 이야기들이 남았기 때문일까. 아오마메의 뱃속의 아이, 계속되는 선구의 추적, 아오마메와 덴고의 뒷이야기가 아직 나는 더 듣고 싶다. 그런데 아직 4권이 나온다는 확실한 이야기가 없으니 두고 볼 일이다. 어릴 적에 드라마를 볼 때 항상 불만이 생기는 것은 마지막 회였다. 어떨 땐 너무 싱겁고, 어떨 땐 너무 마무리가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더 나이를 먹고 나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우리 인생도 미완성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들이 너무 완성적이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남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4권을 기다리지만 아마 4권을 읽고서는 5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못 다한 이야기가 생길 것이기에.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도 새로운 장면을 기대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것이 <1Q84>의 마지막 이야기가 된다고 해도, 못 다한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았어도, 그것 그대로 받아들을 작정이다.

 이 책을 3권까지 읽었음에도 나는 이 이야기의 전체를 이해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소화시키지 못한 것들은 나의 상상 속에서 또 다른 형체가 되어 살아있다. 공기번데기, 리틀피플, 선구,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하늘은 나만의 변주곡으로 내 안에서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이 책을 즐겼다고는 말할 수 있다. <1Q84>를 읽으며 수많은 물음표를 만들어 낼 수 있어 즐거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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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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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부터 이맘때가 되면 작은 울렁증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어떤 이가 이 상을 거머쥘까 하는 궁금증을 조용히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올해는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의 막연한 기대가 올해는 실현이 되는 것이라 여기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수상 발표가 있는 날에는 오후 4시부터 TV를 켜놓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그렇게 하면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타는데 도움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아쉽게도 잡힐 듯 했던 꿈은 또다시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이제 다음을 기약해야 하지만 그날이 멀지않았다는 확신이 생겨 기다림이 지루하진 않을 것 같다. 한국 작가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고, 한국 문학이 큰 관심을 받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작정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그 관심의 일환이 되겠다. 이 책의 작가 헤르타 뮐러는 2009년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응축된 시정과 진솔한 산문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는 것이 수상 이유였는데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이 책을 펼쳐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읽기를 몇 차례나 반복해야했다. 글이 담고 있는 상징성과 함축성이 강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이 글을 이토록 비밀스럽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나는 책 읽기를 멈추고 작가 헤르타 뮐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공산 독재정권 하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졸업 후엔 기계공장에서 번역자로 일했는데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끄나풀이 되라는 요구를 거부하여 해직 당했다고 한다. 작품을 발표했을 때는 독재정권과 비밀경찰을 공공연하게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출판을 금지 당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잿빛의 시대를 살아 낸 작가이다. 그것이 이 글을 상징적이고 함축적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 생각을 하면서 읽자 책 넘기는 속도가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난해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의 열쇠는 바로 '그녀의 삶'이었다. 이 소설은 그녀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삶을 이해해야 하고 그녀가 왜 이 소설을 썼는지, 소설 속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이 책의 주인공 '아디나'가 그녀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공포의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팔게 될까봐 가장 공포스러웠던 아디나는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온당치 못한 일을 온당치 못하다고 말해 감시를 당하게 된 아디나 역시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겨울이 도시에 와 있던 시절(p.272), 하늘이 회색이던 시절(p.285), 도대체 정의는 어디 있어요, 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던 시절(p.267), 의지할 데 없던 시절(p.164), 독재자의 권력 아래에서 죽은 체 해야 했던 시절(p.58)의 증인이다. 한 시대의 증인으로서 날카로운 기억의 흔적을 이 책을 통해 남긴 것이다. 증인이라도 있어야 잘못된 일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테니까. 같은 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더이상 없어야 할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시대의 증인이 되어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어 줄 것이기에. 우리가 삶을 그려보다 생채기 나거나 목안에 혹이 생기지 않게 해줄 것이기에. 여러 가지 문제들로부터 인간의 삶을 지켜주는 삶의 도구가 되어줄 것이기에. 때문에 남은 이들에게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찾는 것은 가장 큰 의무이자 권리 일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삶을 글자라는 발자국으로 남겨준 작가 헤르타 뮐러에게 감사한다. 어두운 골목길을 비춰 준 외로운 등불이라도 있어 아류 인생도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 비록 그 시대가 반복되더라도.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나더라도.    

p.49 그들이 서로 얘기하지 않을 때, 그들은 살아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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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 추억을 잃어버린 모든 이에게 우리시대 대표 문인들이 전하는 특별한 수업 이야기
김용택.도종환.양귀자.이순원 외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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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수업을 들어왔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에게 크고 작은 지혜를 주신 스승님의 수도 역시 그렇습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무수한 인생의 수업을, 헤아릴 수조차 없는 스승님께 매 순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수업을 받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날에 배운 수업이 오늘을 살아갈 지혜를 주고, 또 오늘 무심코 얻은 지혜가 앞으로의 날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아닌지요. 

 제가 그동안 받은 수업 중에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어른들의 말씀도 있었고, 아직은 어린 양인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신 선생님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또한 친구들과 모여 함께 한 게임에서 배운 수업도 있었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창피한 순간을 통해 배운 수업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매 순간 인생의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리라는 것은 수업을 받을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권태현 작가가 "철봉대를 붙잡고 울어본 적 있나" 하고 물은 체육 선생님의 말씀을 십수 년이나 지나서 깨달은 것처럼 말입니다.
  
 더구나 그동안 제가 받았던 수업을 새까맣게 잊고 지내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의 요즈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제가 받았던, 그러나 잊고 지냈던 인생수업의 순간순간들이 마구 떠올랐습니다. 제가 최근에 받았던 인상 깊었던 수업도 떠올랐고, 또 제가 아주 어릴 때 받았던 수업까지도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제가 받은 많은 수업들은 대부분 저에게 좋은 말, 아름다운 말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관해서, 하루하루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일인지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저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박힌 것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수업이 아니라 저를 당황하게 하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저를 놀라게 한 수업이었습니다. 은미희 작가도 이 책에서 기뻤던 순간보다 자신을 슬프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 수업이 더 선명한 무늿결로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의 경우에도 그랬습니다.

 예컨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받았던 수업 같은 것 말입니다. 그때 저희 학교에서는, 우유를 먹고 싶은 사람들은 신청을 해서 2교시가 끝나면 먹었습니다. 저는 흰 우유를 너무도 싫어해서 엄마한테 신청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엄마는 우유를 먹어야 키도 크고 건강해 진다며 억지로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2교시가 끝나면 교실 문 앞으로 배달된 우유를 하나 가져다 먹어야 했는데, 흰 우유는 도저히 입으로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유를 아애 가져가지 않거나 선생님께서 우유 안 먹은 사람 가져가라는 말씀을 하시면 어쩔 수 없이 가져다가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런 제가 우유를 먹는 날도 있었으니 바로 딸기우유나 초코우유가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날은 딸기우유나 초코우유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저도 우유를 가져다 먹은 날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유를 신청한 한 아이가 우유가 없어 먹지 못한 것입니다. 우유 빈깍의 개수를 세어보면 신청한 사람 수대로 맞게 배달이 되었는데, 우유를 먹지 못한 아이가 있으니 문제가 된 것입니다. 누군가 우유를 신청하지 않고 가져다 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는지 선생님께서는 오늘은 꼭 누가 그랬는지 알아낼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그리곤 물이 담긴 유리컵을 하나 가져오셨습니다. 그 유리컵을 들고서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유리컵을 가지고 있으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유리컵에 손을 넣어라.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의 손은 그대로 있을 것이고, 거짓말 하는 사람의 손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를 거야." 그렇게 말씀을 마치시고는 앞에 있는 아이들 쪽으로가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가 우유를 가져다 먹었니?" 그러면 아이는 "아니요" 하고 손을 유리컵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저는 제가 신청한 우유를 가져다 먹은 것인데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우리들 중 누군가의 손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부풀어 오를까? 손가락이 얼굴 만하게 커지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아이도 저처럼 떨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 그때 선생님의 말씀을 거짓이라 의심하는 아이는 아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손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를 친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하며 안도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말 우유를 가져다 먹은 아이는 공포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명의 아이만이 유리컵에 손을 집어넣을 만큼의 짧은 시간이 흘렀는데 뒤쪽에서 한 아이가 "선생님, 제가 그랬어요." 하고 자수를 하였습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그 친구는 울고 있었습니다.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고 자세히 보니 그 친구는 오줌까지 지렸습니다. 아니 조금 지린 정도가 아니라 교실 바닥을 적실만큼 흥건하게 오줌을 쌌습니다.

 자수를 한 그 친구에게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공포에 질려 서럽게 울던 그 친구의 표정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까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거짓말을 한 사람이 손을 집어넣으면 손이 부풀어 오르는 그런 유리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 아이의 표정이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받은 이 수업이 저는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제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마냥 행복하고 기뻤던 수업보다 놀라고 긴장했던 수업입니다. 이순원 작가도 잘난 체하다 친구들한테 망신을 당한 일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문교부 장관이 누군지 아는 사람! 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과학책 겉장에서 '문교부장관 검정필' 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 있게 검정필이라고 대답했다가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어린 시절의 이순원 작가는 그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저한테도 그런 순간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창피 한 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인간이기에 실수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실수를 통해 지혜를 얻고 삶의 이치도 조금쯤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께 지혜를 얻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또한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면서 그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들을 회상해 봅니다. 참으로 고마운 세상입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김나정 작가의 말대로 저는 암만 노력해도 영영 불행한 사람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려는 분들이 있기에, 이렇게 자신의 수업을 나누어 주려는 책이 있기에 아무리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행복한 일이든 당황스러운 일이든 그 모든 것들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수업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이제 또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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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9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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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어릴 적부터 유달리 동물들을 좋아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듯이 사람이 동물을 좋아하는 데에도 이유가 없나봅니다. 그렇게 이유 없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제 동생도 저 못지않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샛노란 병아리를 팔았습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꼭 키우고 싶은데 엄마는 거기서 파는 병아리들은 건강하지 못하다며 반대하셨습니다. 그때 집이 아파트였던 것도 반대 이유였습니다. 엄마가 반대하자 저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오래도록 병아리들을 쳐다보면서도 집으로 데려갈 용기는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일을 냈습니다. 병아리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완강히 반대하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병아리들은 오늘 안에 우리 집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병아리를 보고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병아리를 내쫒지 못하고 상자로 집까지 만들어 주셨어요.

 그때는 마냥 좋았는데 엄마의 말씀대로 병아리는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 일로 얼마나 울었던지 목은 쉬고 눈은 떠지지도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로 일주일간은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하는 환청이 들려 잠도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병아리와의 이별로 대성통곡을 했던 동생과 저는 앞으로는 엄마의 말씀을 잘 듣기로 약속 했습니다. 이제 병아리는 키우지 말자는 데에 합의를 한 것이죠. 

 그런데 주택으로 이사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생이 또 일을 냈습니다. 물론 병아리를 키우지 말자는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미니 토끼를 집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눈이 까만 토끼를 보았습니다. 까만 눈에 조그마한 토끼가 어찌나 귀엽던지 동생의 용기에 기립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병아리 사건으로 이번에는 더욱 완강하게 나올 것 같던 엄마는 이번에도 토끼를 가족으로 받아주었습니다. 아마도 동생과 제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말썽을 부리는 토끼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집에 있는 토끼 생각이 자꾸 나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지요.
 
 하루는 토끼한테서 냄새가 나기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향수를 사고, 토끼털을 빗어줄 생각으로 빗까지 사가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토끼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엄마한테 여쭈어보니 엄마가 거실 청소할 때 토끼를 상자에 담은 채로 잠깐 밖에 내다놨는데 그 틈에 토끼가 집을 나갔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로 저는 틈만 나면 토끼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토끼를 찾는 것이 남은 일과가 되었지요. 자다 깨면 새벽에도 동네를 몇 바퀴 돌면서 토끼 이름을 불렀습니다. 결국 토끼는 찾지 못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는 토끼가 집을 나간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었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죽었다고 하면 동생과 제가 너무 슬퍼할까봐 집을 나갔다고 한 것이었죠.

 그렇게 또 한 번 슬픈 이별을 한 후에도 만남은 쉴 새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주택으로 이사 간 덕에 닭, 오리, 토끼, 개 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한적한 시골의 주택에서 살아서 저는 참 많은 동물 친구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네요.

 닭은 모두 6마리를 키웠는데 그 중 한마리만 수컷이었어요. 그 수탉에게 부인이 많다는 의미로 왕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순했던 왕건이 동생과 제가 달걀도 가져가고 장난도 치고 하니까 화가 났는지 어느 날부터는 달걀도 못가져가게 하고 장난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달걀을 꺼내려고 닭장 안에 손을 넣으면 왕건이 손가락을 쪼을듯이 달려들어서, 동생이 긴 막대기로 왕건을 막아 주어야만 달걀을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왕건의 난폭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습니다. 마당의 풀을 뜯어먹으라고 닭장에서 내보내주면 왕건은 부인들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나와서 이쪽저쪽을 보다가 갑자기 아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쪼았습니다. 그 때문에 아빠는 무릎에 피를 몇 번이나 보아야 했지요. 그래도 아빠는 왕건이 부인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시면서 용감무쌍한 왕건이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저는 왕건이한테 쪼이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왕건이는 아빠를 우리들 중 대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대장끼리 한번 싸워보자 뭐 이런 심보였지 싶습니다.  

 오리는 작은 덩치에 비해 먹성이 엄청나답니다. 포도나무가 있는 근처에 오리집을 만들어 주었는데 오리들이 포도가 열기가 무섭게 다 따먹어서 포도나무가 죽고 말았어요. 풀어주면 개들 사료도 뺐어먹을 정도로 못먹는 게 없습니다. 그래도 뒤뚱뒤뚱 걷는 그 폼은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만큼 귀엽답니다. 아참, 물장구 치고 털을 부르르 떨 때도 오리의 귀여움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리 중에는 왕건이처럼 사나운 아이는 없었습니다. 정말 다행한 일이었죠.

 집토끼는 동네 할머니가 가져다 주셔서 키우게 되었어요. 그런데 한 마리는 우리 집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고양이가 채가는 바람에 만나자마자 이별을 하게 되었죠. 아직도 토끼한테 너무 미안해요. 바로 집으로 넣어주지 않을 것이 얼마나 후회되던 지요.  

 개는 지금까지 열손가락으로도 다 못 셀 만큼 키웠어요. 그만큼 슬픈 이별도 많이 했죠. 동물들은 사람보다 나이를 빨리 먹는 탓에, 아무리 어릴 때부터 키워도 나이 들어 죽는 모습을 보게 되죠.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눈도 못뜨던 시절부터 봐도 어느새 관절이 퉁퉁 붓고 숨도 고르게 쉬지 못할 정도로 늙어버립니다. 동물들을 키우다 보면 제일 슬픈 일이 그거에요. 동물들이 사람과 같은 속도로 나이를 먹는다면 그렇게 많은 이별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 많은 동물들과 함께 했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가량은 동물들과 같이 보낸 것 같네요. 그런 제가 한 번도 키워보지 못한 동물이 있어요. 바로 고양인데요. 그동안 고양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키워보지 못한 것 같아요. 고양이는 주인이 불러도 흥!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줄 알았어요. 자기 기분 좋을 때만 가까이 와서 애교 부리고, 평소엔 도도한 모습으로 주인을 주인으로 대하지 않는 줄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고양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골골 소리를 내며 애정표현을 해주는 무리, 도리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골골 이중주가 정말 귓가에 들리는듯 했어요. 다나베 씨가 소냐를 잘못알고 타냐로 부르자 소냐가 서운하다는 눈빛으로 다나베 씨를 쳐다볼 때에는 꼭 안아주고 싶어졌습니다. 자신의 이름에만 반응하다니 이 얼마나 영리한 고양이인가요. 무리, 도리, 타냐, 소냐를 만나면서 그동안 고양이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동네 길을 가다가 길고양이를 만나면 저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갑자기 나타난 길고양이가 저를 할퀼까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제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길고양이는 그 자리에 멈춰서 저를 빤히 쳐다보다가 뒤돌아 갔는데, 혹시 그것이 자기를 보고 왜 소리를 지르냐고, 그러면 좀 서운하다고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나 싶네요. 갑자기 그 일이 왜 가슴이 아플 정도로 미안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니나처럼 고양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 것일까요.

 무리, 도리, 타냐, 소냐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무리가 도리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팠습니다. 타냐, 소냐가 새로 가족이 되었을 때는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도리가 가출을 했었는데 도리가 느낀 상실감을 알 수 있었어요. 타냐와 소냐에게 무리와 도리가 엄마, 아빠 노릇을 자처할 때에는 더없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고양이가 된 것처럼 그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양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던 것은 마리 씨의 통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네요. 그것이 무척 재미있어서 책 읽는 내내 웃으면서 봤습니다. 책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이렇게 아쉬운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궁금한 이야기가 많은데 벌써 끝나다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겐의 행방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고, 겐을 찾는 과정에서 입양한 노라의 이야기는 어떨 지 궁금하고, 소냐의 새끼들은 또 어떤 말썽을 부릴지 궁금한데 페이지는 이미 끝이라니요. 마지막 페이지의 작가의 말처럼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제 이 땅에 동물을 키우는 모든 사람들이 그 다음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겠죠. 제가 어릴 적 키웠던 병아리와 토끼 이야기를 이렇게 꺼냈듯이 말입니다.

ps. 이 책을 읽고 나면 몇 가지 후유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니나처럼 동물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는 거예요. 말을 걸면 동물들이 말을 해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두 번째는 고양이가 무지막지하게 키우고 싶어진다는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동물은 없으니 꼭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정말 인간 수컷은 필요없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됩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동물들만 있으면 인간 수컷은 필요없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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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03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리뷰를 몰라보다니 말이죠~
<인간수컷은 필요없어>,훅 땡기는 걸요.

어느멋진날 2010-08-03 18:43   좋아요 0 | URL
이거 정말 재미있어요^^ 이 책이 인연이 되었는지 고양이 식구가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