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기적 알맹이 그림책 17
수지 모건스턴 지음, 최윤정 옮김, 첸 지앙 홍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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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어릴 적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가. 그런 아이들도 있긴 했다. 물으니까 대답은 해야겠고 억지로 생각해서 뭔가 근사한 답변을 하였던가. 난 그런 기억이 별로 없는데 요즘 아이들 교실 뒤 게시판에 가보면 어쩜 그리 근사한 장래희망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뒀는지 신기하다. "이 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고 물으면 아무렇게나 검사, 판사, 의사, 변호사...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아이가 있다. 사실은 잘 모르겠기 때문이란다. 솔직하다.

바람의아이들, 알맹이그림책 시리즈 <내 꿈은 기적>에 나오는 남자아이가 그애다. 약간 노란 얼굴(동양인)에 고집스럽게 보이는 눈과 입, 통통한 맨발을 한 이 아이는 어른들의 그런 질문에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고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아침, 아이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는데, 그것으로 이 그림책의 나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글자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제법이다. 7,8세 아이와 같이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만한 그림책이다.  처음에 아이가 하고 싶은 건 어쩌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늦잠을 자고 싶은 아이의 작은 소망 같은 것일 수도. 하지만 점점 책장을 넘길수록 아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심상치않다.  

존 레논의 Imagine이 떠오르는 희망사항을 꿈꾸는 아이는 기적을 이룰 수 있을까. '꿈'과 '기적' 모두 엄청난 무게의 단어인데 가볍고 통통 튀는 수지 여사의 글이 묵직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나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한다. 첸 지앙 홍은 고학년소설 <바다소>에 삽화를 그린 화가다. 붉은수수밭을 연상하게 하는 이글대는 배경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 시커멓고 굵은 붓질로 휘날리는 파도와 총알, 부활한 죽은자들의 율동감 있는 몸짓, 굵고 선명한 검은 윤곽선. 어딘지 모를 깊은 꿈속, 원체험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심오한 세상, 그 끝에서 아이는 양손을 옆으로 활짝 펼치고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다. 잿빛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며.  

아이가 꿈 꾸는 건, 이 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 것인데 그 이유를 하나하나 들어보면 아이답지 않을 정도의 폭넓은 사랑과 지혜가 담겨있다. 세상과 인생과 사람에 대한 이 정도의 이해와 사랑으로 산다면 세상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줄 한 줄 새겨읽을 만하다. 한마디로 말해, 세상을 지금보다 좀 낫게 만들기 위해서라니. 마지막 장은 뒷통수를 때린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참 대견한 아이다. 그래도 어른의 글이라는 게 표나서 별넷이다. 그만한 나이의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말이다. ^^  하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올바르고 바람직하고 만족스럽다. 수지 모건스턴다운 글을 최윤정님이 발랄하게 옮긴 흔적도 보인다. 가령 '이 다음에'를 '이 담에'로 번역한 것. 아이다운 말투다.

표지의 "내 꿈은 기적"이라는 붓글씨체는 한글을 모르는 첸 지앙 홍이 직접 썼다고(아니 그린걸까?ㅎㅎ) 한다. 힘이 느껴지는 필체다.  

그런데 아이의 꿈, 기적(뭘까???)은 이루어질까. 못 이루어진다고 할 수도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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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2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아이에겐 꿈 자체가 기적이겠죠?!
요즘 아이들은 참 좋겠어요, 나도 울 애들 보면서 맨날 부러웡~~ㅎㅎ

프레이야 2010-06-26 21:44   좋아요 0 | URL
저 아이 꿈이 기적을 이루는 건데요,
그 기적이란 게 발칙해요.
아니 발칙한 게 아니라 어쩌면 도발적이지만 의미있다고도 할 수 있구요.
아이랑 대화해볼 수 있는 그림책이에요.^^
우리 어릴 땐 이렇게 좋은 그림책이 없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풍요롭다 할 수 있지요.
어릴 적 엄마가 사주신 안데르센동화그림책전집이 생각나요. 흐흑~
그걸 아빠 몰래 사주셨다고 들켜서 야단났었더랬지요.

전호인 2010-06-2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 어릴 적에 물으면 "대통령이요!" 돈을 얼마만큼 벌거냐고 물으면 "백만원이요"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허상이었지만 결국은 그런 꿈이 있었던 것인데 먹고 살다보니 꿈을 잃고 살게 됩니다. 저의 또다른 닉네임이 "꿈을 가진 남자"라지요. 우리 또래 친구들의 어릴적에 가졌던 원대한 꿈, 대통령(이게 과연 원대한 것인지는....). 지금부터라도 작은 꿈이라도 꾸며 살고 싶네요.

같은하늘 2010-07-02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이기 때문에 기적을 꿈 꿀수 있는거겠지요.
그것이 안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어른들의 현실이 슬픈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