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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하이네, 바이런, 슈만, 셰익스피어, 베이컨

 

서정시인에 대한 가장 최고의 개념을 내게 준 사람은 하인리히 하이네였다. 그 같은 감미롭고도 열정적인 음악을 찾아 나는 모든 세기의 전 영역을 다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신적인 악의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 없이는 나는 완전성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ㅡ 나는 인간과 종족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들이 신과 사티로스의 분리 불가능함을 얼마나 필연적인 것으로 이해하는지에 의거해서 평가한다. ㅡ 그리고 이네는 독일어를 어떻게 구사하는지! 단연 하이네와 내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예술가들이었다고 언젠가는 불릴 것이다 ㅡ 우리는 범속한 독일인들이 독일어를 가지고 해왔던 모든 것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바이런의 <만프레드>에 나오는 만프레드와 나는 틀림없이 아주 유사하다 : 그의 모든 심연을 나는 내 안에서 발견했었고 ㅡ 열세 살에 이미 이 <만프레드>를 이해할 만큼 성숙해 있었다. 만프레드가 있는 자리에서 감히 파우스트 운운하는 자들에게 나는 해줄 말이 한마디도 없다. 힐끗 쳐다볼 뿐이다. 독일인들은 위대함이라는 개념에는 무능력하다 : 그 증거가 슈만이다. 나는 언젠가 이 감상적인 작센인에게 분노가 생겨 그의 <만프레드 서곡>에 대한 반대 서곡을 작곡한 바 있다. 이 서곡에 대해 한스 폰 뵐로는 오선지에 그런 곡 같은 것이 그려져 있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노라고 : 음악의 뮤즈 에우테르페에 대한 강탈이라고 말했다. ㅡ 내가 셰익스피어를 최고로 표현해줄 만한 정식을 찾을 때면, 언제나 나는 '그는 카이사르 유형을 구상해냈었다'라는 정식만을 발견한다. . 그런 유형은 사람들이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ㅡ 그런 유형이거나 아니면 그런 유형이 아니거나 할 뿐이지. 위대한 시인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실재성만을 퍼내어 이용한다 ㅡ 그가 나중에 자기의 작품을 더 이상은 견뎌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도록 말이다 ······ 내가 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눈길을 던질라치면,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발작적인 흐느낌을 이겨내지 못한 채 방 안을 이러저리 30분가량은 서성이게 된다. ㅡ 나는 셰익스피어보다 더 가슴을 찢는 비통한 작가를 알지 못한다 : 어릿광대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그 인간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만 했단 말인가! ㅡ 햄릿을 이해하겠는가?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으려면 깊이가 있어야만 하고, 심연이어야만 하며, 철학자여야만 한다 ······ 우리 모두는 진실을 두려워한다 ······ 그리고 고백하거니와 : 나는 베이컨 경이 이 가장 무서운 문학의 창시자며 자기 학대를 하는 자라는 점을 본능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 미국의 혼란한 정신을 가진 자들과 멍청이들이 떠들어대는 불쌍한 수다가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가장 강력한 사실을 보려는 힘은 행동으로, 무시무시한 행동으로, 범죄로 향하는 가장 강력한 힘과 양립될 수 있을 뿐 아니라 ㅡ 전자는 후자 자체를 전제한다 ······ 우리는 오랫동안 베이컨 경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 실재론자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모든 위대한 의미에서 최초의 실재론자인 그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가 무엇을 원했는지, 그가 무엇을 체험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 그리고 빌어먹을, 내 친애하는 비평가들아! 내가 내 《차라투스트라》를 낯선 이름으로, 예를 들면 리하르트 바그너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더라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저자가 차라투스트라라는 환상가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2천 년이 흘러도 비평가의 식별력으로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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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종류를 다독하는 것은 내 독서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영양 섭취의 선택 ; 풍토와 장소의 선택 ; ㅡ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결코 실책을 범해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선택은 자기 자신의 휴양을 취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도 특정한 정신이 얼마나 독특한지에 따라, 그에게 허락되는 것, 즉 그에게 유용한 것의 범위는 좁고도 좁다. 내 경우에 독서 전반은 휴양의 일종이다 : 따라서 독서라는 것은 나를 내게서 떠나게 하고, 나를 낯선 학문과 영혼들 안으로 산책하게 하는 것의 일종이지만 ㅡ 나는 더 이상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독서는 나로 하여금 나의 진지함으로부터 휴식을 취하게 한다.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나는 어떤 책도 곁에 두지 않는다 : 누군가를 내 곁에서 말하게 한다든가 생각하게 한다든가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리고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라고 불릴 만한 것이리라 ······ 잉태 시에 정신과 모든 기관은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데, 여기에 우연과 온갖 종류의 외적인 자극이 격렬하게 영향을 미치고, 아주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것을 관찰해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우연이나 외적인 자극은 가능한 한 많이 없애버려야만 한다 ; 즉 일종의 자기의 성을 쌓는 일은 정신적인 잉태에서 본능이 취하는 첫째가는 현명한 일이다. 어떤 낯선 생각이 은밀하게 그 성벽을 올라타는 것을 내가 허락할 성싶은가? ㅡ 그리고 이런 것이야말로 독서라고 불릴 만한 것이리라 ······ 일하고 산출해내는 시간이 지나면 휴양의 시간이 그 뒤를 따른다 : 내게 오라, 너희 편안하고 영민하며 수줍어하는 책들이여! ㅡ 이런 책들이 과연 독일 책일 것인가? ······ 내가 손에 책을 들고 있다고 느꼈던 것은 반년 전의 일이다. 무슨 책이었던가? ㅡ 그것은 빅토르 브로차드V.Brochard의 《그리스 회의론자들》이라는 탁월한 연구서였는데, 내 라에티아나 논문들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이중적이고 심지어는 오중적이기도 한 철학자 대중들 사이에서 회의주의자는 유일하게 존경할 만한 유형인 것이다! ······ 이런 책 외에는 나는 거의 항상 몇 권 안 되는 똑같은 책들로 도피하는데, 이 책들은 내게 합당하다고 입증된 것들이다. 잡다한 종류를 다독하는 것은 내 독서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열람실은 나를 병들게 한다. 새 책들에 대한 신중함과 심지어는 적개심도 '관용'이나 '아량'이나 여타의 '이웃 사랑'보다는 내 본능에 더 적합하다. ······ 실제로 내가 항상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은 몇 안 되는 옛 프랑스인들이다 : 나는 오로지 프랑스적 교양만을 믿고 다른 유럽적 '교양'은 전부 오해라고 간주한다. 물론 독일적 교양은 말할 것도 없다 ······ 내가 독일에서 발견했던 몇 경우의 고급한 교양은 모두 프랑스적 연원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는 취향의 문제에 관한 한, 내가 들어본 중에서 단연 최고의 소리였다 ······ 파스칼의 책을 읽지는 않지만, 그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스도교가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다음에는 심리적으로 서서히 죽여간 그리스도교의 가장 교훈적인 희생물로서의 그를, 가장 전율스러운 형태의 비인간적인 잔인함의 논리 전체가 죽여간 그를 사랑한다는 것 ; 내가 몽테뉴의 변덕을 내 정신에 갖고 있다는 것, 또는 누가 알랴만은 내 육체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 내 예술가적 취향은 셰익스피어와 같은 황량한 천재에 대해 통분하면서 몰리에르나 코르네유, 라신 등의 이름을 옹호한다는 것 : 그렇다고 최근의 프랑스인들이 나에게는 매력적인 교제 상대가 아니라고 결국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어느 세기에서 현재의 파리처럼 그렇게도 호기심 넘치는 동시에 섬세하기도 한 심리학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을 것인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 시험 삼아 그 이름을 열거해보면 ㅡ 그 수가 결코 적지 않기에 ㅡ 폴 부르제, 비에르 로티, 지프, 메일락, 아나톨 프랑스, 쥐르 르메트르 등이다. 또한 강한 종족 중 한 사람이자 진정한 라틴인이며 내가 각별히 호감을 갖고 있는 기 드 모파상을 들 수 있다. 우리끼리 말하자면, 나는 세대를 심지어는 독일 철학이 몽땅 망쳐버렸던 그들의 위대한 스승들보다 선호한다 : 예를 들자면 친애하는 텐은 헤겔이 망쳐버렸다. 텐은 위대한 인간과 위대한 시기를 오해했는데, 이 오해는 헤겔 탓이다. 독일이 닿으면 문화가 부패한다. 전쟁이 비로소 프랑스에서 정신을 '구제'해냈다 ······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연에 속하는 스탕달은 ㅡ 그를 우연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 삶에서 신기원을 이루는 모든 것은 우연이 내게 몰아댄 것이지, 결코 누군가의 권유에 의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ㅡ 앞을 내다보는 심리학자의 눈과, 가장 위대한 사실적인 인물이 곁에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사실에 대한 파악력을 지닌 진정 귀중한 존재다. (손톱을 보고 나폴레옹을 알아차린다) ; 마지막으로 그가 프랑스에서는 드물고 거의 발견되지 않는 유형인 정직한 무신론자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ㅡ 프로스페르 메리메를 기리면서 ······ 아마도 나 자신 스탕달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바로 내가 할 수 있었을 그 최고의 무신론자 위트를 내게서 빼앗아가버렸다 : "신의 유일한 사과는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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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즐긋기)

 

즉각적으로 자명한 사실

 

'신', 영혼불멸', '구원', '피안'은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조차도 주목하지도 시간을 투자하지도 않았던 개념들이다. ㅡ 내가 정녕 어린아이답지 않았던 것일까? ㅡ 나는 무신론을 결코 결과라고는 이해하지 않는다. 사건으로서는 더더욱 아니다 : 무신론은 내게서는 즉각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너무 호기심이 많고, 의문이 많으며, 오만하여 조야한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신이란 하나의 조야한 대답이며, 우리 사유가들의 구미에는 맞지 않는다 ㅡ 심지어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우리에게 조야한 금지를 하는 것일 뿐이다 : 너희는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를 말이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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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무엇이든 믿지 말라

 

 - 알코올은 내게 해롭다 : 하루 한 잔의 와인이나 맥주는 내 삶을 '눈물 골짜기'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하며, 그러니 뮌헨에는 내 대척자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중략) 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 나는 어디서든 흐르는 샘에서 물을 길을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니스, 토리노, 실스) ; 개 한 말리가 내 뒤를 따르듯, 컵 하나가 내 뒤를 따라다닌다. (중략) ㅡ 간식도 하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라 : 커피는 우울하게 만든다. 는 아침에 마셔야만 건강에 이롭다. 약간만이되 강하게 마셔라 ; 차는 조금만 약해도 건강에 아주 좋지 않으며, 하루 종일 힘들게 만든다. (중략) ㅡ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말라 ;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무엇이든 믿지 말라 ㅡ 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아닌 것도 믿지 말라.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ㅡ 꾹 눌러앉아 있는 끈기 ㅡ 이것에 대해 나는 이미 한 번 말했었다 ㅡ 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진정한 라고.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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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것에 대하여

 

참으로, 모든 어제와 오늘은 글이나 갈겨 쓰는 잡것이 내는 고약한 냄새로 진동하고 있구나!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잡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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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타인과의 교제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야기시키는 내 본성의 마지막 특징에 대해 운을 떼어도 될까? 나는 섬뜩할 정도로 완벽하게 민감한, 순수에 대한 본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영혼의 근접을 또는 ㅡ 뭐라고 말해야 하나?모든 영혼의 가장 내적인 것, 영혼의 '내장'을 생리적으로 지각할 수 있다 ㅡ 냄새 맡을 수 있다 ······ 이 민감성은 내게 모든 비밀을 감지하고 파악해내는 심적 촉수를 제공한다 : 몇 가지 본성들의 밑바닥에는 수많은 은폐된 오물들이 있다. 아마도 나쁜 피 때문에 생겼을 터이며 교육에 의해 하얀 칠이 칠해졌어도, 나는 그것을 한 번만 접촉해보면 곧 의식할 수 있다. 내가 제대로 관찰했다면, 내 순수함에 해가 되는 본성들도 자기들 쪽에서 내가 구토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 그렇다고 그들의 냄새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 습관적으로 그래왔듯 ㅡ 나 자신에 대한 극도의 순수함은 내 생존 조건이다. 나는 불결한 조건에서는 죽고 만다 ㅡ 나는 말하자면 물속에서 계속 헤엄치고 목욕하며 첨벙거리고 있다. 어떤 완벽하게 투명하고도 빛나는 요소들 안에서 말이다. 그래서 내게 인간과의 교제는 내 인내심에 대한 작지 않은 시험인 것이다 : 내 인간애는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내가 그들과 공감한다는 것을 참아내는 데 있다 ······ 내 인간애는 끊임없는 자기극복이다. ㅡ 하지만 나는 고독이 필요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게는 회복, 내 자신에게로 되돌아옴, 자유롭고 가볍게 유희하는 공기의 숨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전체는 고독에 대한 송가이다. 또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순수에 대한 송가라고 할 수 있다. ······ 다행히도 순수한 바보에 대한 송가는 아니지만. ㅡ 색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자는 그것을 다이아몬드라고 부를 것이다. ㅡ 인간에 대한 구토, '잡것'에 대한 구토는 언제나 내게 가장 큰 위험이었다 ······ 차라투스트라가 구토로부터의 구제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보겠는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어떻게 나 저 역겨움에서서 벗어날 수 있었지? 누가 나의 눈을 젊게 만들어 주었지? 어떻게 나 그 어떤 잡것도 샘가에 얼씬대지 않는 이 높은 경지에까지 날아 올라온 것이지?

 

내가 느낀 저 역겨움이 내게 날개를 달아주고, 어디에 샘이 있는가를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인가? 진실로, 나 기쁨의 샘을 되찾기 위해 더없이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야 했거늘!

 

오, 형제들이여, 나 샘을 찾아냈다! 여기 더없이 높은 곳에 기쁨의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구나! 그리고 그 어떤 잡것도 감히 함께 마시겠다고 덤벼들 수 없는 그런 생명이 있구나!

 

너무나도 격렬하게 솟구쳐 오르고 있구나. 너, 기쁨의 샘이여! 너 다시 채울 생각에서 자주 잔을 비우고 있구나!

 

 

나 어떻게 하면 네게 보다 겸허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배워야겠구나. 너무나도 격렬하게 나의 심장이 너를 향해 육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짧고 무덥고 우울한, 그러면서도 행복에 넘치는 나의 여름이 작열하고 있는 나의 심장. 나의 뜨거운 심장은 얼마나 너의 냉기를 갈망하고 있는가!

 

우물쭈물 망설이던 내 봄날의 비탄도 어느덧 지나가고 말았구나! 유월에 날린 내 눈발의 심술궂음은 지나가고 말았구나! 나 온통 여름이 되었으며 여름의 한낮이 되었구나! 

 

차가운 샘물이 있고 행복에 넘치는 정적이 서려 있는 이 높은 산정에서의 한여름. 오라, 벗들이여. 여기 이 정적이 한층 더 행복한 것이 되도록!

 

이곳이야말로 우리의 높은 경지이자 고향이기 때문이다. 추잡한 자들이 올라와 갈증을 풀기에는 너무나도 높고 가파른 이곳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벗들이여, 맑은 시선을 나의 기쁨의 샘 속으로 한번 던져보아라! 그런다고 그것이 탁해지랴! 샘은 오히려 그의 깨끗한 눈길로 너희를 향해 마주 웃어주리라.

 

미래라고 하는 나무 위에 우리는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독수리가 부리로 우리 고독한 자들에게 먹을거리를 날라다 주리라!

 

진정, 깨끗하지 못한 자들이 함께 맛보아서는 안 될 그런 음식을 말이다! 저들은 불을 삼킨 것으로 착각, 그것만으로도 주둥이를 데고 말리라!

 

진정, 우리는 이곳에 추잡한 자들을 위해 그 어떤 거처도 마련해놓지 않았다! 저들의 신체와 정신에게 우리의 행복은 차디찬 얼음 동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주 거센 바람처럼 저들의 머리 위 높은 곳에 살고자 한다. 독수리와 이웃하고, 만년설과 태양과도 이웃하면서 말이다. 거센 바람이라면 그렇게 산다.

 

때가 되면 나 바람처럼 저들 사이를 휩쓸고 들어가 나의 정신으로써 저들의 정신의 숨결을 빼앗으련다. 그러기를 나의 미래는 소망한다.

 

진정, 차라투스트라는 온갖 낮은 지대로 몰아치는 거센 바람이다. 그는 그의 적들에게, 그리고 침을 토해 뱉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바람을 향해 침을 뱉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제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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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3-09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니체 전집은 오렌 님이 인용해 주시는 이런 글들만 봐도 얼추 읽은 효과가 날 거 같아요. 수고스럽게도 이렇게 인용해 주셔서 넘 고맙습니다!

oren 2016-03-10 00:13   좋아요 1 | URL
저는 책을 한 번 베껴쓰는 것만으로도 그 문장들을 몇 번씩 다시금 음미해 볼 수 있다는 게 참 즐겁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한 번 직접 옮겨 써 놓으면 언제든 생각날 때마다 `아무데서나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다는 사실`도 즐겁고요. 그런데 yamoo 님처럼 `함께` 읽어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저는 더욱 즐겁습니다^^
 

 

(밑줄긋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보적이다

 

 ㅡ 내 작품 중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보적이다. 이 책으로 나는 인류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그 어떤 선물보다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수천 년간을 퍼져나갈 목소리를 지닌 이 책은 존재하는 것 중 최고의 책이며, 진정 높은 공기의 책이다 ㅡ 인간의 만사가 그것의 에 아득하게 놓여 있다 ㅡ 그뿐 아니라 이 책은 가장 심오한 책으로서, 진리의 가장 깊숙한 보고에서 탄생했고, 두레박을 내리면 황금과 선의가 담겨 올라오지 않을 수 없는 고갈되지 않는 샘이다. 거기서는 어떤 '선지자'도, 종교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병과 권력의지의 섬뜩한 자웅동체도 말하지 않는다. 차라투스트라의 지혜의 뜻에 불쌍하게도 부당한 일을 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평온한 음조를 제대로 들어야만 한다. "폭풍을 일으키는 것, 그것은 더없이 잔잔한 말들이다. 비둘기처럼 조용히 찾아오는 사상, 그것이 세계를 이끌어간다" ㅡ

 

(중략)

 

여기서는 광신자가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설교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믿음이 요구되지 않는다 : 무한히 풍부한 빛과 무한히 깊은 행복에서 한 방울 한 방울, 한마디 한마디가 떨어진다 ㅡ 그 말은 부드럽고도 완만한 속도를 갖는다. 그 말은 선택된 자들에게만 들린다 ; 이때 그 말을 듣는 자가 된다는 것은 비할 바 없는 특권이다 ;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를 들을 귀를 아무나 마음대로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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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을 낄 뿐

 

 ㅡ 내 책들의 공기를 맡을 수 있는 자는 그것이 높은 곳의 공기이며 강렬한 공기임을 안다. 이 공기의 찬 기운으로 인해 병이 나게 될 위험이 적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공기에 알맞게,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게끔 되어 있어야만 한다. 얼음이 가까이에 있고, 고독은 엄청나다 ㅡ 그런데도 모든 것이 어찌나 유유자적하게 태양빛 아래 있는지! 어찌나 자유롭게 사람들은 숨쉬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사람들은 자기 발 아래 두고 있다고 느끼는지! ㅡ 내가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는 철학, 내가 지금까지 실행하고 있는 철학은 얼음과 높은 산에서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ㅡ 삶의 낯설고 의문스러운 모든 것을, 이제껏 도덕에 의해 추방당해왔던 모든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금지된 것들 사이에서 그렇게 방랑했던 내 오랜 경험에 의해, 나는 지금까지 도덕화와 이상화를 행했던 원인들을 그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 : 철학의 숨겨진 역사, 철학이라는 위대한 이름의 심리가 내게 분명해졌다. ㅡ 어떤 정신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뎌내는가? 얼마나 많은 진리를 감행하는가? 이것이 나에게는 점점 진정한 가치 기준이 되었다. 오류(ㅡ이상에 대한 밑음ㅡ)는 맹목이 아니다. 오류는 비겁이다 ······ 인식의 모든 성과와 발전은 용기에서,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순수함에서 나온다 ······ 나는 이상들을 반박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것들 앞에서 장갑을 낄 뿐이다 ······ 우리는 금지된 것일수록 애쓴다Nitimur in vetitum : 이런 표지 아래 나의 철학은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진리만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서문>, 제3절

 

 

 * * *

 

나는 폴란드 정통 귀족이다

 

 ㅡ 그런데 여기서 나는 혈통 문제를 언급하려 한다. 나는 나쁜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고 독일 피는 거의 섞여 있지 않은 폴란드 정통 귀족이다. 나와 가장 철저하게 대립하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스러운 본능을 찾아보게 되면, 언제나 나는 내 어머니와 여동생을 발견한다 ㅡ 이런 천민들과 내가 친족이라고 믿는 것은 나의 신성함에 대한 하나의 불경이리라. 내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를 대했던 것에 관한 내 경험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공포를 내게 불러일으킨다 : 이럴 때, 하나의 완벽한 시한폭탄이 작동을 시작한다. (중략) ㅡ 하지만 폴란드인으로서 나는 엄청난 격세유전질이다. 지상에 존재했던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이 혈통을, 내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 순수한 본능을 대중 속에서 발견하려면,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날 귀족적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나와는 다르다는 무제한적인 느낌을 갖는다 ㅡ 나는 독일의 젊은 황제에게도 내 마부일 수 있는 명예마저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가장 적게 닮는다 : 자기 부모를 닮는다는 것은 비천함을 표현해주는 가장 강력한 표시이다. 좀 더 고귀한 본성의 소유자들은 그들에게로 가장 오랫동안 모아지고 아껴지고 축적되어야만 했던 그들의 근원을 무한히 계속 소급해간다. 위대한 개인들은 가장 오래된 사람들이다 : 내가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울리우스 카이사르가 내 아버지일 수도 있으리라 ㅡ 아니면 알렉산더, 이 육화된 디오니소스가 ······ 이것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우편배달부가 내게 디오니소스의 머리를 배달한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제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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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

 

나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것은 싸움이다. 나는 기질상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이다. 적수일 수 있다는 것, 적수라는 것 ㅡ 이것은 아마도 강한 본성을 전제할 것이고, 어떤 경우라도 모든 강한 본성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저항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저항을 찾는다 : 복수심과 뒷감정이 필연적으로 약함에 속하는 것처럼 공격적 파토스는 필연적으로 강함에 속한다. 예를 들면 여자에게는 복수욕이 있다 : 이것은 그녀가 약해서 그렇고, 그녀가 타자의 곤경에 대해 민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ㅡ 공격자가 어떤 적수를 필요로 하는지는 그의 힘을 측정하는 일종의 척도이다 : 성장한다는 것은 좀더 강력한 적수를 찾는다는 데서 ㅡ 또는 좀더 강력한 문제를 찾는다는 데서 드러난다 : 호전적인 철학자는 또한 문제들에 결투를 신청하지만, 그의 과제는 정녕 적수들을 다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전 역량과 유연함과 싸움 기술을 힘껏 발휘하면서 전력을 다해야 하는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ㅡ 대등한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적과의 대등함 ㅡ 정직한 결투를 위한 첫 번째 전제. 적을 경멸한다면 싸움을 할 수 없다 ; 명령을 하거나, 어떤 것을 자기 밑에 있다고 얕잡아보면 싸움은 이루어질 수 없다. ㅡ 내 싸움 방식은 네 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 나는 승리하고 있는 것들만 공격한다 ㅡ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승리할 때까지 기다린다. 둘째 : 나는 내 우군이 없을 만한 것, 나 홀로 싸우는 것 ㅡ 내가 오로지 나만을 위태롭게 하는 것만을 공격한다 ······ 나는 위태롭게 하지 않는 일은 한 번도 공공연하게 해본 적이 없다 : 이것이 옳은 행위에 대한 기준이다. 셋째 : 나는 결코 개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ㅡ 다만 개인을 강력한 확대경처럼 사용할 뿐이다. 이 확대경은 일반적이지만 살금살금 기어다니면서 잘 잡히지 않는 비상사태를 보이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다비드 슈트라우스를 공격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낡아빠진 책 한 권이 독일적 '교양'에서 거둔 성공을 ㅡ 그 교양이란 것을 현장에서 급습했던 것이다 ······ 그래서 나는 바그너도 공격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교활한 자를 풍요로운 자로, 뒤처진 자를 위대한 자로 혼동하는 우리 '문명'의 허위와 본능의 불완전함을. 넷째 : 온갖 개인적 차이가 배제되고, 그 배후에서 나쁜 경험을 하게 될 것이 없는 것만을 공격한다. 내게서 공격이란 거꾸로 호의에 대한 증거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감사함에 대한 증거이다. 내 이름을 특정 일이나 특정 개인과 연관시킴으로써 나는 그것에 경의를 표하고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 내가 찬성하든 반대하든 ㅡ 내게는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내가 그리스도교와 싸움을 한다면, 내게 그럴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교 쪽으로부터 어떤 숙명이나 심적 압박도 체험하지 않는다 ㅡ 가장 진지한 그리스도교인들은 내게 항상 호의적이었다. 그리스도교에 꼭 필요한 적인 나 자신은 수천 년간의 숙명을 한 개인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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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3-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니체가 폴란드 정통 귀족이었다니..@_@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고 갑니다~~

oren 2016-03-10 00: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니체가 저토록 `고귀한` `폴란드 귀족`이었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