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황





 


1. 최근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특히 낮에는 눈이 시려서 진물이 나고 안구 통증도 잦다. 안과에서는 빛에 노출될 수록 시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낮에 실외 활동을 할 때는 가급적이면 선그라스를 착용하라는 진단까지 받자 짜증이 몰려왔다. 매의 눈까지는 아니었어도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시력을 자랑했던 내가 시력 저하 때문에 외출할 때 선그라스를 착용하라는 진단을 받다니. 가끔 멋으로 쓰고 다녔던 사치품이 이제는 필수품이 되다니 울화통이 치민다.



2. 개와 함께 공원 산책을 하고 나면 털 검사를 하는데 눈이 나빠지다 보니 털에 매달린 " 짐승 " 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열심히 보는 시늉을 하는데,  이유는 며칠 전에 방바닥에서 진디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올해 살인진디기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8명이라는데 심란하다. 아직 모기도 없는데 내 몸 여러 군데 물린 것을 보면 진디기가 문 것 같기도 하다. 낯짝이 있지, 시바 !  하루 한 끼 먹는 빈자의 피를 빨아야겠냐 ?


3. http://blog.naver.com/waffel/221039946218 ( 무딘연필 님, 남성 판타지 ) : 한국 사회는 " 남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 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에 "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 은 인정하지 않거나 불온하다고 여긴다. 좋은 사례가 모 알라디너의 < 나야 좋지, 썅년 > 발언이었다. 공원에서 맥주 마시던 남자에게 여자가 다가와 합석을 한다. 주거니 받거니...... 몇 순 돌자, 취기 오른 여자가 제안을 한다. 우리 방 잡아놓고 술 한 잔 더 해요. 이 말을 들은 남자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야 좋지, 썅년 ! 그는 왜 속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를 쌍년이라며 계급을 강등하고 비하했을까 ?  아마도 남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는 관대하면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는 색안경 끼고 보는,  졸라게 좆같은 너님의 잰더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그는 자신의 글이 " 에세이 " 가 아니라 " 판타지 " 였다고 고백하다가 나중에는 감성이 폭발하며 징징거린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냐 ? 라는 변명이었다. 그런데 그 글이 에세이냐 판타지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잰더 감수성에 따른 애티튜드의 문제였으니까. 자신이 쓰는 글은 판타지'라고 주장한 그는 가상의 여성을 만들어서 성희롱을 일삼는다. 그가 쓴 페이퍼의 팔 할은 유방의 모양새와 유두의 색깔이었다. 블라우스 속 유방을 상상하며 어떻게 생겼을까_ 상상하거나 유두 색깔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물론 상상은 자유이지만 그 상상은 철저하게 사실적일 수밖에 없다. 여성을 단순하게 성적 대상으로 생각했던 태도의 상상적 발현이니까.


4. 아버지는 " 칠쟁이 " 였다. 당연히 나는 간판집 아들이거나 뺑끼 가게 아들이었다. 고객의 요구 조건은 하나였다. 멀리서도 잘 보여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나름 예술가였던 아버지는 멋진 캘리그래프로 도시 미화'에 도움이 되고 싶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고객은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간판 글자 폰트 크기와 색깔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미련한 것들 ! 대한민국 가로수는 대부분 팔다리가 잘린 채 전봇대처럼 서 있다. 상가 건물 입주자들의 민원 때문이다. 가게 앞 나무 때문에 조망권이 가려지니 가지를 쳐달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로수는 죄다 벌거숭이 나무가 되어서 흉물스럽게 보인다. 좋은 풍경은커녕 그림자조차 없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한숨이 생각나곤 한다. 조망권에 따른 가시 영역의 확장이 장사(광고 효과)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엉터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맛집 골목'이 행인 눈에 잘 띄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는 데 있다. 강이나 냇물에 사는 물고기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물풀이 많이 있는 곳이다. 그늘이 있으니 몸을 감출 장소로 적합하고, 물고기들이 모이니 상위 포식자인 물고기도 모이게 된다. 가로수도 마찬가지다. 수족이 잘리지 않은, 울창한 가로수는 그늘을 만들고 풍경을 만들며 삭막한 거리에 골목(거리)의 서정을 더한다. 당연히 수족 잘린 가로수길보다는 울창한 가로수길을 선택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유동인구는 많아지게 된다. 요약하자면 가로수가 조망권을 방해해서 영업에 지장을 주지는 점이다.


5.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 제일 바쁜 사람은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들이다. 강수량과 강설량이 많을수록 배달 주문도 비례한다. 밖에 나가지 않고도 집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좋은 세상이기는 하나, 배달하는 사람에게는 목숨을 건 질주를 해야 한다. 비 많이 오는 날, 오토바이를 타 본 사람은 모두 공감하리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아는 형은 배운 게 없어서 음식 배달이 생업인 사람이었다. 몇 번,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모두 다 악천후 때 발생한 사고였다. 속도는 늦출 수 없는 데에는 면이 불었다는 이유로 주문을 취소하거나 폭언과 폭력이 뒤따른다는 점과 배달 시간이 초과들 경우 벌금을 물어야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뇌수술 때문에 머리를 삭발한 형의 모습을 본 이후 ㅡ 나는 더 이상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다. 해외에 장기 체류한 적이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광속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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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9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29 1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일요일 대구에도 비가 엄청 많이 내렸습니다. 비 내리는 밤에 잠깐 외출을 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날 음식을 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외출을 한 이유가 편의점 치킨을 사서 먹으려고 했던 겁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1:53   좋아요 0 | URL
비 많이 내린 날 하이바 쓰고 오토바이 몰면.. 굵은 빗방울이 헬맷 창에 파편을 내면서 떨어져서 앞이 전혀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오토바이 배달하시는 분은 말 눈가리개 쓰고 달리는 것가 같은 거죠..

잠자냥 2017-06-2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번 글 읽고 눈물 찔끔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1:50   좋아요 0 | URL
다행이네요. 펑펑 우셨다면 제가 미안했을 겁니다..

나와같다면 2017-06-3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더 이상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다..

이 말이 뭐라고 왜 이리 마음이 아플까..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1:5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무심하게 툭 시크하게 던진 말인데..ㅎㅎ

samadhi(眞我) 2017-06-3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일이 아니네요. 시력저하. 제 절친도 병원에서 같은 진단 받았다고 서글퍼 하더라구요. 저는 눈동자 색깔이 옅어서 선글라스를 꼭 써야해요. 눈부심을 잘 못견디거든요. 사람들이 쟤 왜 저러고 다니니 할 거예요.
잘 지냈어요? 뭐가 그리 바쁘다고 그냥 다 잊고 지냈네요. 대선에 내가 선거운동 한 것도 아니면서 그때부터 오직 우리 달님만 생각했어요. ㅋㄷ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1:5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전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여름에 선그라스를 끼고 다녀서, 특히 노인분들이..
노인들이 늦은 나이에 무슨 패션이람.. 이랬는데.. 제가 겪으니까 알겠더군요..

늙어서 2017-07-03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곰생각하는발아 온동네 어그로 하더니 눈이 나빠졌구나. 늙어서 그런게 아니라 자업자득이다..얼굴도 x 생긴게

곰곰생각하는발 2017-07-03 16:40   좋아요 0 | URL
고마워, 여전히 옆집 누나 유방 훔쳐보며 딸딸이 치니 ? 섹스를 해.. 혼자하면 외, 롭다...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 편 ,   이   모     :

 







물건에 의존할수록

 삶은 제약을 받는다





                                                                                                        이반 일리치는 물건에 의존할수록 삶은 제약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단순한 지적은 꽤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쾌도난마'다.

몇 년 전, " 명문가(writer 名文家)의 명문가(house 名門家)의 명가(person 名家) " 로는 대한민국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뽑히는 오죽헌을 방문했을 때 규방의 규모가 작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8자 장롱이 가까스로 들어갈 정도 ?!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명색이 임금이 거처했던 장소인데 실내 크기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내실 규모가 작은 이유는 사대문 가문 양반들이 검소한 생활을 했다기보다는 다종다양한 가구와 물건이 없었다는 데 있다. 그 당시에는 쇼파나 침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요, 티븨나 냉장고 따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내실이 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생활품이 필수품이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물건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생활품이 필수품인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필리핀 이멜다 여사의 구두 수집(1220켤레)은 " 물건의 과잉 시대 " 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신지도 않는 구두가 많다 보니 신발장을 만들게 되고 신발장이 크다 보니 신발을 보관할 방을 만들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내실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말을 살짝 비틀자면 물건에 집착할수록 공간은 제약을 받는다. 물건으로 쌓이다 보면 안락한 휴식처가 되어야 할 공간이 < 아이구야, 이놈의 집구석 > 으로 변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권여선 소설집 << 안녕 주정뱅이 >> 에 수록된 단편 < 이모 > 는 최소주의를 실천하는 인물이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미니멀 라이프의 선두주자'다.  그는 " 한달에 65만 원만 쓴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30만원은 월세로 나간다는 것이다(85쪽) " 가능할까 ?    그녀는 " 안산의 외곽에 있는 오래된 소형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열평 남짓한 실내 공간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아니, 잘 정돈되어 있다기보다는 정돈한 것이 거의 없었다.  집에 없는 게 많았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집전화도 없었다. "  그녀는 물건에 대한 최소주의 실천뿐만 아니라 행위의 단순함도 실천한다.

" 담배는 하루에 네개비만 피우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 점심 먹고 둘, 저녁 먹고 셋, 잠자기 전에 마지막 담배를 피운다. 술은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밤에 소주 한병 정도를 마신다. 그날은 다소 사치스러운 안주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 84쪽) "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잘 정돈되어 있다기보다는 정돈할 것이 거의 없는, 집 안 전체가 수녀의 방처럼 텅 비어 있는 공간에 격하게 공감했다. 나도 몇 년 전부터 최소주의적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건에 집착할수록 공간은 제약을 받고 안식처는 집구석이 되기 일쑤였다. 비만도 음식에 의존하면서 삶의 제약을 받는 대표적인 현상이었다(운동 중독도 운동에 의존하면서 삶의 제약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삼시 세 끼를 한 끼로 줄이자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다. 또한 날마다 마셨던 술은 일주일에 한번 꼴로 마시면서 다음날 아침이면 출근하면서 술병을 남몰래 버리느라 눈치를 봐야 했던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주정뱅이라는 동네 평판이 두려워서 구멍가게를 순회했던 날들이 떠오르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당당하게 술병을 버린다. 봐라, 이 자식들아 !  나도 이제는 술병 따위 당당하게 버린다.                          옷도 3/4을 버렸다. 버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문제는 책이었다. 책은 적어도 정크푸드도 아니요, 백해무익한 술과 담배도 아니요, 유행이 지난 촌스러운 옷은 아니지 않은가.

책 좀 읽었다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장서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사실은 자랑질이 아니었던가. 그때, 이반 일리치의 저 문장이 내 눈에 박혔다. 물건에 의존할수록 삶은 제약을 받는다. 책의 절반을 처분했다. 텅 빈 책장을 보면서 입지도 않을 옷과 읽지도 않을 책은 동의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텅 빈 책장이 허전해 보이기는커녕 건강해 보였다. 마치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며 맑게 웃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그 사람 생각이 났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더 이상 쇼핑에 흥미를 잃더니 급기야는 자신이 소유했던 물건들을 하나둘 버리기 시작했다. 그가 아끼던 만년필을 내게 주기도 했다.

평소, 그의 생활 패턴을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모든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해결하는 쪽에 가까웠으니까. 얼마 안 가서 나는 그의 부고를 들었다. 자살이었다. 유서는 없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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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7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0:50   좋아요 1 | URL
앞으로는 유서를 쓴 사람의 심정으로 유서를 작성한 후의 삶처럼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순하니까 그렇게 좋더군요.. 그동안 책장이 포화되어서 다용도실에 박스에 담아 책을 보관했는데 다 치우고 보니 보기 좋더군요..

수다맨 2017-06-27 15: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권여선의 몇몇 책들(˝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숲˝ 등)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소 도회적인 공선옥 같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루하고 누추한 인생들, 사회 속에서 버림받은 이들의 모습을 연민을 담아서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때로는 이 연민이 인간(더 넓게 말하면 인류)에 대한 반감과 적의로, 사회와 좀 더 멀어져서 홀로 자족하고 싶다는 고독한 태도로 바뀔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권여선의 작품 경향이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괜찮은 작가라고 봅니다. 예전에 곰곰발님이 쓰셨던 글처럼 권여선은 글에 ‘비극적 기품‘을 입힐 줄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공지영/신경숙 이런 작가들보다 더 윗길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6:22   좋아요 1 | URL
부끄럽지만, 저는 권여선 작품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비극적 기품은
어느 평론가(지금 생각은 안나지만..) 의 말인데
이 작품에 딱 맞는 표현이라 저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좋더군요. 이걸 작가 스스로도 질색인 것 같습니다.
내 불행 때문에 너의 눈물을 구걸하지 않아.. 알았니 ? 이런 뉘앙스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그 자세가 마음에 듭니다...

참.. 그날 잘 들어가셨지요 ?

수다맨 2017-06-27 17:04   좋아요 1 | URL
넵. 한동안 급한 일들이 연이어 생겨서 곰곰발님 서재와, 제 서재에 들를 시간도 없더군요... 오늘에서야 겨우 들렀습니다.

몰리 2017-06-2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좋네요
여름날 비가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 오후 4시에
낮잠에서 깨며 듣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 기에 좋은 음악이기도 하네요.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6:19   좋아요 0 | URL
이 밴드 제가 요즘 애정하는 밴드‘입니다.
이 곡만이 아니라 전곡이 모두 마음에 드니 자주 들어보세요. 아주 좋습니다...

cyrus 2017-06-27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사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런데 이게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요즘 만화를 즐겨 보고 있어요. 만화를 계속 보다보면 책 생각이 나지 않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8:47   좋아요 0 | URL
만화 좋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화만한 것도 없습니다. 전 좀 우울하다 싶으면
< 이나중 탁구부 > 봅니다. 한 10번은 넘게 본 것 같습니다.. ㅎㅎ

cyrus 2017-06-27 19:13   좋아요 0 | URL
<이나중 탁구부>, 옛날에 투니버스에 방영해준 적이 있어서 그거 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온지 오래된 만화라서 그런지 무료로 애니를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없었어요. 이왕이면 자막 버전으로 보고 싶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9:30   좋아요 0 | URL
이나중은 만화보다는 만화책이 100배 재미있습니다..

alummii 2017-06-27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 ‘내가 지금 책을 읽기 위해 사는 것인가.. 사기위해 읽는 것인가..‘ 했을 만큼 책 사는데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집이 터져나가서 관뒀어요 ..잠시 정신적으로 공황상태가 왔다가 시립 도서관 책이 다 내꺼다 생각하니 맘이편해지더라구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9:31   좋아요 0 | URL
ㅎㅎ 좋은데요. 도서관 책은 다 내꺼다, 라는 과대망상.. 이런 과대망상은 좋습니다..ㅎㅎ

보슬비 2017-06-27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책정리 200권정도 했는데, 책장이 안비어서 살펴보니 구입하고 선물받은책이 200권 이상이되니 빈틈이 안보이네요.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8 08:57   좋아요 1 | URL
알라디너들에게 책 선물 받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긴 하죠.. 그런데 책 선물을 200권이나 받으셨다니
보슬비 님의 인성을 확인하게 되네요.. 보슬비 님을 국회로 !

보슬비 2017-06-28 09:34   좋아요 1 | URL
ㅋㅋ 선물받은책도 많지만 구입한책도 많아요. 자세히보시면 ‘구입하고‘가 읽히실거예요. ㅋㅋㅋ
보통 선물 받는것도 좋지만, 선물 주는쪽이 마음이 조금 더 편한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선물은 몰라도 책 선물은 주고 받는것 모두 좋아요.^^ 그런데 곰발님 댓글을 보고 궁금해서 올해 선물 받은 책을 세어보니 100정도 되는것을 알았았어요. 정말 많이 받았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8 09:40   좋아요 0 | URL
후후, 그래도 어마어마하네요. 대한민국에서 증정 말고 순수하게 선물로 책 100권 받는 분들 상위 0.1% 안에 드실 걸요 ? 도서관 보유수가 오이시디 꼴등이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보슬비 님이 국회 가셔서 동네마다 도서관 만들어주십시오..ㅎㅎ

yamoo 2017-06-2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을 줄여야 하는데 계속 사재기 하고 있네요..ㅜㅜ 처분하는 책은 한 달에 10권 남짓인데, 사는 책들은 100권을 넘고 있으니...ㅜㅜ

옷은 봄이 끝날 무렵 산더미 같이 버렸는데, 또 쎃여있네요..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9 10:07   좋아요 0 | URL
이제는 옷이 저렴해져서 굳이 옛날처럼 싸하둘 필요 없습니다.
유행 지나면 헌옷 모으는 기관에 주거나 하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그냥 춘추복 몇 벌, 넥타이 몇 개 정도면 딱인 거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7-06-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일을 해내셨네요. 곰발님 책장 멋진데. 책장에 안 들어가는 책을 처분하셨다는 거지요?
단순하게 살자고 머리가 터져라 마음만 다잡지만 결국 책에는 여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요. 헌책으로 팔려고 쌓아둔 책들도 바쁘단 핑계로 팔기를 미뤄두고 있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1:45   좋아요 0 | URL
아 , 진아 님.. 그렇지 않아도 늘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격조하신 것 아닙니까 ? 잘 지내고 계신지요 ?

책에 대한 미련은 버렷습니다. 사는 곳이 누추하다 보니 짐만 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절반을 덜어내니 절반이 넓어진 느낌이어서 만족합니다..

samadhi(眞我) 2017-06-30 12:0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냥 여유가 없었어요. 책도 거의 안 읽고 살다가 엊그제 독서모임 다녀와서 다시 나, 돌아갈래. 외칩니다. ㅋㅋ
멋집니다. 생각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제일 존경스럽습니다. 차라리 생각이라도 하지 말면. 하는 바보같은 생각도 가끔 하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2:06   좋아요 0 | URL
그동안 독서 모임은 꾸준히 하시는군요. 부럽습니다..

samadhi(眞我) 2017-06-30 12:13   좋아요 0 | URL
한 달에 한번인걸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라 책보다도 사람들이 보고파서 갑니다. 다녀오면 행복해집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그럴 수 있을지) 우리 모여유 모임에 곰발님이 오시어도 좋겠네요.
 

 

 

 

 

 

 

 

 

 


 

 


 

​                                        

 

그녀의 계통발생학적 분류법 :



 




감자의 힘

 


                                                                                                         격세지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지금은 강원도 하면 김진태 선생님이 연상되지만, 한때 강원도의 자랑스러운 랜드마크는 " 감자 " 였다. 주먹감자 먹고 힘 내드래요 !                              

내가 " 힘을 내요 감자 파워 ~ "  를 깨닫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3년 전, 나는 동네에 작은 사설 탐정소를 차렸다. 정식 명칭은 " 갈라파고스 섭지 코지 미스테리 사설 탐정 사무소 " 였다. 일종의 블루오션을 노린 사업으로 사건 규모가 작아서 꺼리는 일'을 타겟으로 삼았다. 하는 일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 쓰레기 무단 투기자 색출, 타이어에 빵구 낸 놈 찾기, 개똥을 치우지 않은 견주 찾기, 미용실 화단의 꽃을 뽑은 범인 찾기, 잃어버린 반려견이나 고양이 찾기가 주요 업무였다. 셜록 홈즈가 사업 파트너로 왓슨 박사를 선택했다면 나는 복덕방 주인과 내 구역을 담당하는 택배 기사를 섭외했다.

동네 장사이다 보니 팔 할의 정보는 복덕방 주인과 택배 기사에게서 나온다.  킁킁, 조사하면..... 다 나와.                                   나머지는 쓰레기봉투 속에 든 쓰레기를 관찰하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 할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패셔니스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입은 옷이 나를 말한다.  반면에 미식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나를 말한다.  그렇다면 " 갈라파고스 섭지 코지 미스터리 사설 탐정 사무소 대표이자 사우스코리아 시크릿 에이전트 협회 발기인 " 인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당신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봉투)가 당신을 말한다, 킁킁.

그러니까 당신이 버린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라 " 당신의 커밍아웃 " 이자 " 하이 퀄리티 인포메이션 " 이다. 이 글을 애독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     갈라파고스 섭지 코지 미스터리 사설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나는 몸무게가 35kg인 리트리버(예명은 봉달이고 본명은 펄럭이다)의 견주이기도 하다. 날마다 개를 산책시키는 일은 내 주요 업무인데 산책길에 오를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동네 주민이 있었다. 그레이트 캐슬 빌라 건물주이자 입주자'인데 그녀는 개를 끌고 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개가 동네 거리에 싼 오줌 때문에 냄새나서 못살겠다는 둥, 개가 싼 오줌 때문에 타이어가 녹았다는 둥, 개 짖는 소리에 불면증에 걸렸다는 둥......         한두 번 들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볼 때마다 내 뒤통수에 대고 악담을 퍼붓다 보니 화병이 생길 지경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개를 끌고 산책을 가는데 누군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 참치다 ! 맙소사, 참치가 개를 끌고 거리를 활보하다니. "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참치가 거리를 활보한다고 ?!   깜짝 놀라서 주위를 살폈으나 사람 흉내 내는 참치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변을 살피기 위해 도리질하다가 우연히 가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봉달씨를 끌고 가는 참치는...... 나였다.  참고 참고 참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참치가 되었던 것이다. 살다살다 개가 오줌을 싸서 타이어가 빵구 났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시바, 에이리언 괴물도 아니고........   언젠가는 복수할 날이 오리라. 일단 복덕방 영감님과 택배기사 김씨에게서 그레이트 캐슬 빌라 주민의 정보를 입수했다. 이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수십 억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알부자'라는 것. 이 동네 빌라는 대부분 부군이 지었다는 것,

봄이 되면 목련이 가장 먼저 피는 단독 주택 주민(http://blog.aladin.co.kr/myperu/9264413) 과 더불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동네 유지로 평소 없는 사람 무시하기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성질이..... 개같다는 것. 무엇보다도 공병 줍는 노인이 쓰레기 놓는 장소를 어지럽힌다고 주민센터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공병 팔아서 입에 풀칠하는 노인에게 할 짓이 아니었다. 복수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  http://blog.aladin.co.kr/myperu/7605617   :  잃어버린 감자를 찾아서


■  http://blog.aladin.co.kr/myperu/7640693   :  감자 상자 도난 사건의 전말




평소 동네 유지랍시고 없는것들 업신여겼던 마님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 - 뱅이 " 라는 접사가 붙은 단어였다. 가난뱅이, 게으름뱅이, 주정뱅이, 좁쌀뱅이...... 그는 동네 주민을 가난뱅이, 게으름뱅이, 주정뱅이, 좁쌀뱅이 따위로 분류한 것이다. 그녀가 정한 계통발생학적 분류법에 따르자면 나는 어느 쪽에 속한 계급일까 ? 좁쌀뱅이 ? 가난뱅이 ?? 주정뱅이 ??? 그랬던 그녀가 머슴의 16,000원짜리 감자 상자를 훔치다가 들통이 났으니 이만저만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그 사건 이후, 그는 나만 보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는 냉큼 그레이트인지 에메랄드인지하는 캐슬 안으로 숨기 바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는 표정으로 그녀를 " 바라 " 보았다. 보다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웃으면서 " 꼬라 " 보았다. 감자 상자 도난 사건 이후, 그녀와 마주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외출을 삼가고 있다는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궁금하여 복덕방 최씨 영감님'에게 물어보니 부자 동네로 이사를 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동네가 더럽고 시끄러워서 못살겠다는 변을 남긴 채 사라졌다고. 감자의 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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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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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과 오아시스

 

                                                                                                                                                                  그 옛날, 이창동의 << 오아시스 >> 를 극장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남자와 지체 장애를 가진 여자의 사랑이어서 좋은 느낌 ?!  아니다, 굉장히 불쾌했다.

전작인 << 초록 물고기 >> 와 << 박하사탕 >> 을 좋게 보았단 터'라 일종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문제는 불쾌한 감정이 어떤 원유에서 비롯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었다. 혹시, " 불편한 마음 " 을 " 불쾌한 마음 " 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  불편한 영화와 불쾌한 영화는 하늘과 땅 차이'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화를 다시 보았지만...... 여전히 불쾌했으며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해서 여전히 답답했다.   기껏, 내가 내놓은 변명이라고는 어떻게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벨 수 있는가 1) 였다. 나는 핏발 선 얼굴로 외쳤다. 나무가...... 아프잖아 ~                                  

어이가 없는지 친구들은 빈정거리기 일쑤였다. 니미. 인물 났다, 인물났어 !!!                        내가 봐도 궁색한 변명이었지만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 불쾌한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때 나는 동성인 설경구에게 감정이입을 한 것이 아니라 문소리 입장에서 이 영화를 이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간단하게 말해서 : 어떻게 항거불능에 가까운 여성(문소리)을 성폭행하려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문소리) - 라는 영화 설정이 남성중심적인 섹스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문제 제기였던 것이다. 이기적 욕망과 폭력을 사랑으로 환유하는, 후진 잰더 감수성을 가진 감독에게 불쾌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이 감정의 낌새를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 

 

권여선 소설집 << 안녕 주정뱅이 >> 에서 첫 번째 단편 < 봄밤 > 을 읽고 났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 < 오아시스 > 였다. 주정뱅이와 앉은뱅이의 사랑(봄밤)은 지적장애자와 지체장애자의 사랑(오아시스)과 겹치지만 결은 사뭇 다르다. 단편소설 < 봄밤 > 에는  영화 < 오아시스 > 에서 보여지는 " 이기적 휴머니즘 " 이 없다.  오히려 영경과 수환의 사랑은 서로에게 이타적이다. 수환은 영경의 술 마실 욕망을 긍정하며, 영경은 수환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음을 긍정한다. 그들은 서로의 욕망과 희망을 이해한다. 여자는 잠시 떠나고 남자는 죽음을 준비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최근에 읽은 최은영 단편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에 나오는 곰이라는 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 곰은 마지막 며칠 동안 너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 그런데도 곰아, 부르면 애써서 고개를 들고 꼬리를 치는 거야. 곰아, 밥 먹어, 말하면 곰은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했어. 그런 곰 앞에서 울었어. 곰이 단순히 아픈 게 아니라 죽어간다는 걸 느꼈거든. 한 밤을 자고 나서 개집에 가니 곰이 사라졌더라. 그애가 사라지고 한 달 내내 울면서 학교를 다녔어. 울고 또 울었지. 내가 괜히 곰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 곰이 집을 나갔다고 생각했어. 자기가 아픈 걸 보고 내가 마음 아파하니까 죽으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며 자책했지. 아무리 슬프더라도 내색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울지 말았어야 했는데. " 


- 최은영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사랑하는 주인 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나는 늙은 개처럼,  더 아픈 사람이 덜 아픈 사람을 위로한다. 수환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때에 맞춰 죽음을 맞이한다.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사랑만큼 어쩔 수 없는 사랑도 간절하다. 이 소설이 가장 낮은 자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 비극적 기품 " 을 유지하는 이유이다. 봄밤으로 시작해서 봄밤으로 끝나는, 회복불가능한 사랑 때문에 생강처럼 마음이 아려서 책을 덮었다. 오늘은 이 단편 하나면 족하다. 핑계삼아 저녁에 술 한 잔 해야겠다 ■














                                                        

 

1)     지체 장애 여성이 달밤에 집앞에 있는 나무 때문에 집안에 나무 그림자가 생겨서 무섭다고 하자 지적장애 남성은 그 나무를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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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7-06-21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강처럼 마음이 아려서... 너무 공감되는 구절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1 16:28   좋아요 1 | URL
일주일 금주였는데, 결국 이 소설 때문에 깼습니다. 오늘 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함 씨름 한판해야겠습니다..

2017-06-22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2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2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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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의  불 행 은  너에게는  힘  :




 




눈물이 난다 



                                                                                                                                                                                                                                                                                   조용필(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 그런지 얼터너티브 모던 롹 스피릿 " 에 충만했던 내 귀에 조용필은 뽕필 가득한 목소리에 불과했다.                      

특히나 콧구멍을 넓혔다가 내뱉는 염소 발성법은 내 귀에 도청 장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필 노래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노랫말이 주는 서사의 서정이 팔 할을 차지했다는 데 있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 > 노랫말은 흑인 래퍼의 과장된 스웨그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 " 이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오줌을 지릴 수밖에 없다. 한국 남자는 모두 다 " 21세기 " 가 자신을 간절히 원한다고 생각한다. 이 허세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묘하게 남심이자 낭심을 때리는 매력이 있다.

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으나 현실은 어쩔 수 없이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런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쌈마이 스피릿'이 이 노래에는 있다. 노래 속 화자가 자신의 지독한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 " 와 "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 이 있었기 때문이다.

 


                                  " 곰은 마지막 며칠 동안 너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 그런데도 곰아, 부르면 애써서 고개를 들고 꼬리를 치는 거야. 곰아, 밥 먹어, 말하면 곰은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했어. 그런 곰 앞에서 울었어. 곰이 단순히 아픈 게 아니라 죽어간다는 걸 느꼈거든. 한 밤을 자고 나서 개집에 가니 곰이 사라졌더라. 그애가 사라지고 한 달 내내 울면서 학교를 다녔어. 울고 또 울었지. 내가 괜히 곰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 곰이 집을 나갔다고 생각했어. 자기가 아픈 걸 보고 내가 마음 아파하니까 죽으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며 자책했지. 아무리 슬프더라도 내색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울지 말았어야 했는데. " 


- 100쪽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최은영 소설 << 쇼코의 미소 >> 는 전체적으로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 서사도 아니고,   아아,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는  -  서사도 아닌,  오리지날 " 눈물이 난다 " 에 방점이 찍혔다.   자칫 잘못하면 최루성 신파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하지만 놀랍게도 서정의 과잉과 난립이 없다1). 신인 작가라면 음식을 선보일 때 화려한 레시피와 현란한 플레이팅으로 미식가를 사로잡으려는 욕심을 낼 만도 한데,  최은영은 레시피와 플레이팅 없는 자연주의 요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낡은 양은냄비에 오신채 없이 끓인 맑은조개탕과 삶은 단호박 요리가 전부다. 담담하고 슴슴한 맛이다.

그것은 자극적인 향신료로 눈물을 억지로 짜내려는 신경숙 식 12첩 반상과는 다른 식탁이다. 최은영은 기교 없이 굴곡 없는 서사를 낮은 목소리로 전하다가 느닷없이 눈물을 쏟는다. 하지만 어느 독자도 이 눈물이 작위적이라거나 톤앤매너가 무너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독자는 최은영 문체가 주는, 꾹꾹 눌러담았던 기질적 우울이 어느 시점에서 임계점을 넘어 흘러넘친 것뿐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은영의 문장은 한여름, 습기를 잔뜩 품은 무거운 공기가 느닷없이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바뀌는 날씨를 닮았다. 새삼 놀라게 된다. 신라면과 캡사이신 없이도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것.

이 눈물의 힘은 더 아픈 사람이 덜 아픈 사람을 위로할 때 발생한다. 더 아픈 할아버지가 덜 아픈 손녀를,  더 아픈 쇼코가 덜 아픈 소유를 위로하거나1). 더 아픈 응웬 아줌마가 덜 아픈 엄마를 위로할 때2). 그리고 더 아픈 개가 덜 아픈 순애 이모를 위해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할 때,  더 아픈 순애 이모가 덜 아픈 해옥이를 위로할 때3), 그럴 때.......      아픈 그들은 그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멀어졌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다시 화해한다. 좋은 사과(謝過)는 날 벼린 화살 촉과 같아서 듣는 이를 아프게 한다. 사과하는 사람이 자신이 내뱉은 말에 먼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진짜 사과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과하는 사람의 아픔이 아니다. 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아팠다는 가해자의 고백은 가짜다. 위로도 마찬가지'다. 좋은 위로는 위로받는 사람을 아프게 만든다. 만약에 누군가가 괜찮아요 ? _ 라고 묻는 위로에 당신이 울컥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 던진 위로는 진짜다.  비록 그것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툭 던진 위로라 해도, 혹은 빈말이라 해도 말이다. 최은영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느닷없이 쏟아내는 눈물은 자기 상처에 함몰된 자기 연민이라기보다는 타자의 위로에 공감하고 소통한 결과'라는 점에서 구질구질하지 않고 따스하다.

다만, 최은영이 앞으로 계속 착한 서사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자칫 신경숙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문학 > 이란 덜 아픈 독자를 위해 더 아픈 꼴로 독자 앞에 나타나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독자를 위로하는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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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0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7-08-2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지만, 전 곰발 님 글을 너무 사랑해~~~!! 암튼 다른 분도 이 책 강추하신다고 하는데 곰발 님의 글을 읽으니까!!!!까~~~말이죠!!!불끈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3 11:32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더욱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