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상자 도난 사건의 전말
지난번 글에 감자 상자를 도난당한 일을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어머니가 도난당한 감자 상자 가격은 16,000원이다. 토요일 주말,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날 저녁 교회에 두고 온 감자 상자'를 차에 실어 문 앞에 두고는 " 들것 " 을 가지러 잠시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 중이라 철문 문턱을 넘긴다는 게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때마침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가 밖으로 나가보니 감자 상자'는 감쪽 같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 짧은 시간에 도난당한 것이다.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문득 그 길목을 지나쳤던 한 노인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서둘러 뛰어가니 그 노인은 아슬아슬하게 빌라 안으로 들어가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살고 있는 연립 주택보다는 고급 빌라 단지'였다. 8가구가 한 동으로 묶여 총 2동으로 나뉘었는데, 한 동에 주차 공간은 16대'였다. 그러니까 이 빌라에 사는 거주자는 한 가구 당 차를 두 대 주차할 수 있는 주차권을 가진 족속이었다. 한 가구 당 차 두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이라는 사실은 이 빌라 거주자가 중산층 이상'을 겨냥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 달에 세 번, 외주 청소업체가 건물 청소를 해주는 곳. 바로 이 지점에서 내 계급 의식이 발동했다. 상자를 도난당했던 장소로 되돌아와 주변 지형을 살피던 중 감시용 cctv를 발견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 신고한 다음 날, 바로 경찰이 현장 답습을 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황스러웠다. 16,000원짜리 감자 상자 도난 사건에 대하여 경찰이 현장을 찾아 조사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범인이 돈 20,000원을 놓고 갔다는 소식이었다. 파출소에 도착하니 감자 도둑은 없었다. 경찰은 조근조근 말했다. 범인을 찾았다, 노인이더라, 하지만 아들과 어렵게 사는 가난한 이더라, 안 된다, cctv를 확인시켜 줄 수는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불쌍한 노인이다, 강제는 아니다....... 나는 분실 대금 20,000원을 받는 선에서 사건을 종료하자는 경찰의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얼굴은 봐야겠습니다 ! 경찰 입장에서는 한 동네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사실을 원치 않을 것이다. 사소한 일 때문에
나중에 칼부림 사건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그 사람을 만나야 했다. 잔인하게 말하자면 쪽을 주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그 노인이 사는 곳이 그 빌라 주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그 노인이 그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경찰이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잠시 후, 노인이 도착했다. 내가 예상했던 그 노인이 맞았다. 그 골목을 지나다니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노인이었다. 말이 노인이지 성성한 중년 여성이라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개와 산책을 하다 보면 그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투덜대던 노인이었다. 개똥이 거리를 더럽게 만든다나 ? 혼잣말이지만 누가 봐도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그 노인이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예상 가능한 변명이 이어졌다. 됐고요 ! 앞으로는 거리에 버려진 것이라 해도 함부로 손을 대지는 마십시오. 요즘은 cctv가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 노인은 상기된 얼굴로 내게 20,000원을 건냈다. 내가 4,000원을 거슬러주려 하자 노인이 자상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나는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 지랄도 풍년이네 ! " 노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쩨쩨하게 사내새끼가 16,000원 때문에 그 난리를 피우냐고 말이다. 통 크게 놀라고, 대폿집에서 젖가락 두들기지 말고, 배,배배배배벤츠 타고 루, 루루루루룸살롱에서 시바스 리갈 마시며 젖가슴 두들겨야 남자라고. 미안한 소리지만, 양주 마시며 술집여자 젖가슴 만질 생각 없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소한 것에, 쩨쩨한 것에 자주 분노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굳이 내가 분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00억을 훔치지 위해서 살인을 한 살인범에게는 관심 없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쩨쩨한 규모다. 시장 한켠에서 24시간 영업하는 순댓국 가게 주인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손님이었다. 그는 밥을 먹다가 태연히 가게 주인에게 다가가 목을 졸라 죽였다. 그가 그 가게에서 훔친 돈은 6만 원이 채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