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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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편 ,   이   모     :

 







물건에 의존할수록

 삶은 제약을 받는다





                                                                                                        이반 일리치는 물건에 의존할수록 삶은 제약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단순한 지적은 꽤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쾌도난마'다.

몇 년 전, " 명문가(writer 名文家)의 명문가(house 名門家)의 명가(person 名家) " 로는 대한민국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뽑히는 오죽헌을 방문했을 때 규방의 규모가 작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8자 장롱이 가까스로 들어갈 정도 ?!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명색이 임금이 거처했던 장소인데 실내 크기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내실 규모가 작은 이유는 사대문 가문 양반들이 검소한 생활을 했다기보다는 다종다양한 가구와 물건이 없었다는 데 있다. 그 당시에는 쇼파나 침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요, 티븨나 냉장고 따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내실이 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생활품이 필수품이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물건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생활품이 필수품인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필리핀 이멜다 여사의 구두 수집(1220켤레)은 " 물건의 과잉 시대 " 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신지도 않는 구두가 많다 보니 신발장을 만들게 되고 신발장이 크다 보니 신발을 보관할 방을 만들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내실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말을 살짝 비틀자면 물건에 집착할수록 공간은 제약을 받는다. 물건으로 쌓이다 보면 안락한 휴식처가 되어야 할 공간이 < 아이구야, 이놈의 집구석 > 으로 변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권여선 소설집 << 안녕 주정뱅이 >> 에 수록된 단편 < 이모 > 는 최소주의를 실천하는 인물이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미니멀 라이프의 선두주자'다.  그는 " 한달에 65만 원만 쓴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30만원은 월세로 나간다는 것이다(85쪽) " 가능할까 ?    그녀는 " 안산의 외곽에 있는 오래된 소형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열평 남짓한 실내 공간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아니, 잘 정돈되어 있다기보다는 정돈한 것이 거의 없었다.  집에 없는 게 많았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집전화도 없었다. "  그녀는 물건에 대한 최소주의 실천뿐만 아니라 행위의 단순함도 실천한다.

" 담배는 하루에 네개비만 피우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 점심 먹고 둘, 저녁 먹고 셋, 잠자기 전에 마지막 담배를 피운다. 술은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밤에 소주 한병 정도를 마신다. 그날은 다소 사치스러운 안주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 84쪽) "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잘 정돈되어 있다기보다는 정돈할 것이 거의 없는, 집 안 전체가 수녀의 방처럼 텅 비어 있는 공간에 격하게 공감했다. 나도 몇 년 전부터 최소주의적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건에 집착할수록 공간은 제약을 받고 안식처는 집구석이 되기 일쑤였다. 비만도 음식에 의존하면서 삶의 제약을 받는 대표적인 현상이었다(운동 중독도 운동에 의존하면서 삶의 제약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삼시 세 끼를 한 끼로 줄이자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다. 또한 날마다 마셨던 술은 일주일에 한번 꼴로 마시면서 다음날 아침이면 출근하면서 술병을 남몰래 버리느라 눈치를 봐야 했던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주정뱅이라는 동네 평판이 두려워서 구멍가게를 순회했던 날들이 떠오르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당당하게 술병을 버린다. 봐라, 이 자식들아 !  나도 이제는 술병 따위 당당하게 버린다.                          옷도 3/4을 버렸다. 버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문제는 책이었다. 책은 적어도 정크푸드도 아니요, 백해무익한 술과 담배도 아니요, 유행이 지난 촌스러운 옷은 아니지 않은가.

책 좀 읽었다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장서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사실은 자랑질이 아니었던가. 그때, 이반 일리치의 저 문장이 내 눈에 박혔다. 물건에 의존할수록 삶은 제약을 받는다. 책의 절반을 처분했다. 텅 빈 책장을 보면서 입지도 않을 옷과 읽지도 않을 책은 동의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텅 빈 책장이 허전해 보이기는커녕 건강해 보였다. 마치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며 맑게 웃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그 사람 생각이 났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더 이상 쇼핑에 흥미를 잃더니 급기야는 자신이 소유했던 물건들을 하나둘 버리기 시작했다. 그가 아끼던 만년필을 내게 주기도 했다.

평소, 그의 생활 패턴을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모든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해결하는 쪽에 가까웠으니까. 얼마 안 가서 나는 그의 부고를 들었다. 자살이었다. 유서는 없었다고 한다 ■


 

 

 

 

 

 

 

 

 

 

 

 

부록 ㅣ 오늘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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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7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0:50   좋아요 1 | URL
앞으로는 유서를 쓴 사람의 심정으로 유서를 작성한 후의 삶처럼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순하니까 그렇게 좋더군요.. 그동안 책장이 포화되어서 다용도실에 박스에 담아 책을 보관했는데 다 치우고 보니 보기 좋더군요..

수다맨 2017-06-27 15: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권여선의 몇몇 책들(˝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숲˝ 등)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소 도회적인 공선옥 같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루하고 누추한 인생들, 사회 속에서 버림받은 이들의 모습을 연민을 담아서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때로는 이 연민이 인간(더 넓게 말하면 인류)에 대한 반감과 적의로, 사회와 좀 더 멀어져서 홀로 자족하고 싶다는 고독한 태도로 바뀔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권여선의 작품 경향이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괜찮은 작가라고 봅니다. 예전에 곰곰발님이 쓰셨던 글처럼 권여선은 글에 ‘비극적 기품‘을 입힐 줄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공지영/신경숙 이런 작가들보다 더 윗길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6:22   좋아요 1 | URL
부끄럽지만, 저는 권여선 작품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비극적 기품은
어느 평론가(지금 생각은 안나지만..) 의 말인데
이 작품에 딱 맞는 표현이라 저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좋더군요. 이걸 작가 스스로도 질색인 것 같습니다.
내 불행 때문에 너의 눈물을 구걸하지 않아.. 알았니 ? 이런 뉘앙스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그 자세가 마음에 듭니다...

참.. 그날 잘 들어가셨지요 ?

수다맨 2017-06-27 17:04   좋아요 1 | URL
넵. 한동안 급한 일들이 연이어 생겨서 곰곰발님 서재와, 제 서재에 들를 시간도 없더군요... 오늘에서야 겨우 들렀습니다.

몰리 2017-06-2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좋네요
여름날 비가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 오후 4시에
낮잠에서 깨며 듣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 기에 좋은 음악이기도 하네요.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6:19   좋아요 0 | URL
이 밴드 제가 요즘 애정하는 밴드‘입니다.
이 곡만이 아니라 전곡이 모두 마음에 드니 자주 들어보세요. 아주 좋습니다...

cyrus 2017-06-27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사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런데 이게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요즘 만화를 즐겨 보고 있어요. 만화를 계속 보다보면 책 생각이 나지 않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8:47   좋아요 0 | URL
만화 좋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만화만한 것도 없습니다. 전 좀 우울하다 싶으면
< 이나중 탁구부 > 봅니다. 한 10번은 넘게 본 것 같습니다.. ㅎㅎ

cyrus 2017-06-27 19:13   좋아요 0 | URL
<이나중 탁구부>, 옛날에 투니버스에 방영해준 적이 있어서 그거 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온지 오래된 만화라서 그런지 무료로 애니를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없었어요. 이왕이면 자막 버전으로 보고 싶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9:30   좋아요 0 | URL
이나중은 만화보다는 만화책이 100배 재미있습니다..

alummii 2017-06-27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 ‘내가 지금 책을 읽기 위해 사는 것인가.. 사기위해 읽는 것인가..‘ 했을 만큼 책 사는데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집이 터져나가서 관뒀어요 ..잠시 정신적으로 공황상태가 왔다가 시립 도서관 책이 다 내꺼다 생각하니 맘이편해지더라구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9:31   좋아요 0 | URL
ㅎㅎ 좋은데요. 도서관 책은 다 내꺼다, 라는 과대망상.. 이런 과대망상은 좋습니다..ㅎㅎ

보슬비 2017-06-27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책정리 200권정도 했는데, 책장이 안비어서 살펴보니 구입하고 선물받은책이 200권 이상이되니 빈틈이 안보이네요.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8 08:57   좋아요 1 | URL
알라디너들에게 책 선물 받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긴 하죠.. 그런데 책 선물을 200권이나 받으셨다니
보슬비 님의 인성을 확인하게 되네요.. 보슬비 님을 국회로 !

보슬비 2017-06-28 09:34   좋아요 1 | URL
ㅋㅋ 선물받은책도 많지만 구입한책도 많아요. 자세히보시면 ‘구입하고‘가 읽히실거예요. ㅋㅋㅋ
보통 선물 받는것도 좋지만, 선물 주는쪽이 마음이 조금 더 편한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선물은 몰라도 책 선물은 주고 받는것 모두 좋아요.^^ 그런데 곰발님 댓글을 보고 궁금해서 올해 선물 받은 책을 세어보니 100정도 되는것을 알았았어요. 정말 많이 받았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8 09:40   좋아요 0 | URL
후후, 그래도 어마어마하네요. 대한민국에서 증정 말고 순수하게 선물로 책 100권 받는 분들 상위 0.1% 안에 드실 걸요 ? 도서관 보유수가 오이시디 꼴등이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보슬비 님이 국회 가셔서 동네마다 도서관 만들어주십시오..ㅎㅎ

yamoo 2017-06-2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을 줄여야 하는데 계속 사재기 하고 있네요..ㅜㅜ 처분하는 책은 한 달에 10권 남짓인데, 사는 책들은 100권을 넘고 있으니...ㅜㅜ

옷은 봄이 끝날 무렵 산더미 같이 버렸는데, 또 쎃여있네요..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17-06-29 10:07   좋아요 0 | URL
이제는 옷이 저렴해져서 굳이 옛날처럼 싸하둘 필요 없습니다.
유행 지나면 헌옷 모으는 기관에 주거나 하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그냥 춘추복 몇 벌, 넥타이 몇 개 정도면 딱인 거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7-06-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일을 해내셨네요. 곰발님 책장 멋진데. 책장에 안 들어가는 책을 처분하셨다는 거지요?
단순하게 살자고 머리가 터져라 마음만 다잡지만 결국 책에는 여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요. 헌책으로 팔려고 쌓아둔 책들도 바쁘단 핑계로 팔기를 미뤄두고 있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1:45   좋아요 0 | URL
아 , 진아 님.. 그렇지 않아도 늘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격조하신 것 아닙니까 ? 잘 지내고 계신지요 ?

책에 대한 미련은 버렷습니다. 사는 곳이 누추하다 보니 짐만 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절반을 덜어내니 절반이 넓어진 느낌이어서 만족합니다..

samadhi(眞我) 2017-06-30 12:0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냥 여유가 없었어요. 책도 거의 안 읽고 살다가 엊그제 독서모임 다녀와서 다시 나, 돌아갈래. 외칩니다. ㅋㅋ
멋집니다. 생각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제일 존경스럽습니다. 차라리 생각이라도 하지 말면. 하는 바보같은 생각도 가끔 하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6-30 12:06   좋아요 0 | URL
그동안 독서 모임은 꾸준히 하시는군요. 부럽습니다..

samadhi(眞我) 2017-06-30 12:13   좋아요 0 | URL
한 달에 한번인걸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라 책보다도 사람들이 보고파서 갑니다. 다녀오면 행복해집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그럴 수 있을지) 우리 모여유 모임에 곰발님이 오시어도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