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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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의  불 행 은  너에게는  힘  :




 




눈물이 난다 



                                                                                                                                                                                                                                                                                   조용필(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 그런지 얼터너티브 모던 롹 스피릿 " 에 충만했던 내 귀에 조용필은 뽕필 가득한 목소리에 불과했다.                      

특히나 콧구멍을 넓혔다가 내뱉는 염소 발성법은 내 귀에 도청 장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필 노래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노랫말이 주는 서사의 서정이 팔 할을 차지했다는 데 있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 > 노랫말은 흑인 래퍼의 과장된 스웨그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 " 이라고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오줌을 지릴 수밖에 없다. 한국 남자는 모두 다 " 21세기 " 가 자신을 간절히 원한다고 생각한다. 이 허세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묘하게 남심이자 낭심을 때리는 매력이 있다.

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으나 현실은 어쩔 수 없이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런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쌈마이 스피릿'이 이 노래에는 있다. 노래 속 화자가 자신의 지독한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 " 와 "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 이 있었기 때문이다.

 


                                  " 곰은 마지막 며칠 동안 너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 그런데도 곰아, 부르면 애써서 고개를 들고 꼬리를 치는 거야. 곰아, 밥 먹어, 말하면 곰은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했어. 그런 곰 앞에서 울었어. 곰이 단순히 아픈 게 아니라 죽어간다는 걸 느꼈거든. 한 밤을 자고 나서 개집에 가니 곰이 사라졌더라. 그애가 사라지고 한 달 내내 울면서 학교를 다녔어. 울고 또 울었지. 내가 괜히 곰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 곰이 집을 나갔다고 생각했어. 자기가 아픈 걸 보고 내가 마음 아파하니까 죽으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며 자책했지. 아무리 슬프더라도 내색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울지 말았어야 했는데. " 


- 100쪽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최은영 소설 << 쇼코의 미소 >> 는 전체적으로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 서사도 아니고,   아아,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는  -  서사도 아닌,  오리지날 " 눈물이 난다 " 에 방점이 찍혔다.   자칫 잘못하면 최루성 신파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하지만 놀랍게도 서정의 과잉과 난립이 없다1). 신인 작가라면 음식을 선보일 때 화려한 레시피와 현란한 플레이팅으로 미식가를 사로잡으려는 욕심을 낼 만도 한데,  최은영은 레시피와 플레이팅 없는 자연주의 요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낡은 양은냄비에 오신채 없이 끓인 맑은조개탕과 삶은 단호박 요리가 전부다. 담담하고 슴슴한 맛이다.

그것은 자극적인 향신료로 눈물을 억지로 짜내려는 신경숙 식 12첩 반상과는 다른 식탁이다. 최은영은 기교 없이 굴곡 없는 서사를 낮은 목소리로 전하다가 느닷없이 눈물을 쏟는다. 하지만 어느 독자도 이 눈물이 작위적이라거나 톤앤매너가 무너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독자는 최은영 문체가 주는, 꾹꾹 눌러담았던 기질적 우울이 어느 시점에서 임계점을 넘어 흘러넘친 것뿐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은영의 문장은 한여름, 습기를 잔뜩 품은 무거운 공기가 느닷없이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바뀌는 날씨를 닮았다. 새삼 놀라게 된다. 신라면과 캡사이신 없이도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것.

이 눈물의 힘은 더 아픈 사람이 덜 아픈 사람을 위로할 때 발생한다. 더 아픈 할아버지가 덜 아픈 손녀를,  더 아픈 쇼코가 덜 아픈 소유를 위로하거나1). 더 아픈 응웬 아줌마가 덜 아픈 엄마를 위로할 때2). 그리고 더 아픈 개가 덜 아픈 순애 이모를 위해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할 때,  더 아픈 순애 이모가 덜 아픈 해옥이를 위로할 때3), 그럴 때.......      아픈 그들은 그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멀어졌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다시 화해한다. 좋은 사과(謝過)는 날 벼린 화살 촉과 같아서 듣는 이를 아프게 한다. 사과하는 사람이 자신이 내뱉은 말에 먼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진짜 사과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과하는 사람의 아픔이 아니다. 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아팠다는 가해자의 고백은 가짜다. 위로도 마찬가지'다. 좋은 위로는 위로받는 사람을 아프게 만든다. 만약에 누군가가 괜찮아요 ? _ 라고 묻는 위로에 당신이 울컥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 던진 위로는 진짜다.  비록 그것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툭 던진 위로라 해도, 혹은 빈말이라 해도 말이다. 최은영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느닷없이 쏟아내는 눈물은 자기 상처에 함몰된 자기 연민이라기보다는 타자의 위로에 공감하고 소통한 결과'라는 점에서 구질구질하지 않고 따스하다.

다만, 최은영이 앞으로 계속 착한 서사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자칫 신경숙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문학 > 이란 덜 아픈 독자를 위해 더 아픈 꼴로 독자 앞에 나타나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독자를 위로하는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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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0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7-08-2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지만, 전 곰발 님 글을 너무 사랑해~~~!! 암튼 다른 분도 이 책 강추하신다고 하는데 곰발 님의 글을 읽으니까!!!!까~~~말이죠!!!불끈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3 11:32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더욱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