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는 팔렸습니다



                                                                                                     그동안 글'을 써서 먹고살았다. 본사'에서 매입한 개인 블로그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내가 관리하는 블로그는 대략 7,80개 안팎이었다. 나는 주인이 떠난 빈집을 관리하며 주인인양 글을 올린다. 팔 할이 광고'다. 물론, 사람들이 광고란 사실을 모르게 광고를 한다. 타인을 속여야 한다는 죄책감은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밀린 지 오래였다. 나는 영혼 없이 글을 썼다. 광고성 리뷰만 올리는 것은 아니다. 이웃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소소한 일상을 담기도 한다. 그게 내 일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댓글 하나가 달렸다. " 죄송하지만, 이 블로그를 포스팅하시는 분은 누구이신가요 ? 이 블로그를 운영한 이는 내 친구였는데 한 달 전에 생활고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령이 아니고서는 이 블로그에 포스팅이 올라올 수가 없죠. 아마도 생활고 때문에 블로그를 판 것 같군요. 좋은 친구였습니다. 당부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인을 모욕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입니다. "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글이었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러웠다1).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밀린 죄책감이 비로소 소금쟁이의 걸음처럼 내 뒤에서 스멀스멀 몰려왔다. 이 죄책감은 밀물이 들이닥치면 사그라드는 모래 탑처럼 내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나에 대한 연민이 깊을수록 그 사람에 대한 연민도 깊어졌다. 블로그를 판 대가로 받은 돈 200만으로 그는 과연 몇 달을 버텼을까.  나는 그 길로 이 일을 그만두었다. 인과응보란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 망막 박리 후 시력 상실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실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치어스 !  나의 불행 앞에서 건배를......               몇 달 후, 나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블로그를 팔아야 했다. 가족들은 앞으로의 생계를 위해 안마 기술을 배우라고 했지만 나는 안마 기술 대신 첼로 악기를 배우기로 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누리고 싶은 사치'다. 블로그가 팔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쓰는 글이다. 혹여, 누군가 내 글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를 드린다. 이제 이 블로그는 팔렸습니다. 아듀  

 

 


 

                                    
1) " 페루애 " 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블로거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2013년  9월에 내가 소속된 본사에 팔렸다. 블로그를 매매할 경우, 예를 들어 완판(완전판매)일 경우에, 보통 130~180만 원에 거래되는데 이 블로그는 250에 거래되었다. 콘텐츠의 양과 질 그리고 유입 인구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던 모양이다. 유입 인구가 많을수록 매매가는 올라갔다. 당시 내가 관리하던 블로그가 평균 7,80개이다 보니 다양한 블로그의 색깔에 맞춰 일거리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데 묶어 어제는 부산 맛집을, 오늘은 일산 맛집을 광고하는 식'이다. 페루애의 친구가 남긴 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가 남긴 글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때론 웃고 때론 울었다. 분석은 칼칼했고 감성은 부드러웠으며 문장은 단단했다. 나는 본사에 양해를 구한 다음 본사에 돈을 지불하고 이 블로그를 개인적으로 구입했다. 변명 같지만, 그의 재능이 안타까워서 나는 죽은 페루애를 다시 부활시키기로 결정했다. 생각을 훔치고 문장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마치 << 태양은 가득히 >> 에서 그린리프를 흉내 내는 톰 리플리처럼. 나는 그의 유령 작가이자 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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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9-23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님 향기(줄어서 발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이 서재는 아직 안 팔린 것 같습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3 20:21   좋아요 1 | URL
꿀꿀이 님 산후 조리는 잘 하고 계시는 거죠 ?

책한엄마 2017-09-23 21:22   좋아요 0 | URL
네-^^조리하는 덕에 더 빈둥대는 중입니다.

Clou:Do 2017-09-23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격!!!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4 15:21   좋아요 0 | URL
충격까지는 하실 필요 없습니다. ^^

Clou:Do 2017-09-24 15:34   좋아요 0 | URL
실화 같지않은 실화, 영화와도같은 현실. 거기다 까칠한 촌철살인의 글을 더 이상 보게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충격이네요. 한동안 북플에 뜸하다가 업뎃 기념으로 들어왔는데 ... 너무도 소설같아 바로 믿겨지지 않는다는 그 심정이 이해가 되버렸네요!!!

2017-09-24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ou:Do 2017-09-24 16:59   좋아요 0 | URL
한방 제대로 먹었네요. 북플 앱으로는 카테고리가 안나타나서 더 티가 안났어요. 현실같은 소설 이었군요 ㅎㅎㅎ 아무튼 충격!!!

bgkim 2017-09-24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먹하구만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4 15:20   좋아요 0 | URL
막막하군요.

2017-09-24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4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긴 어게인

                                                                                                  << 비긴 어게인 >> 이라는 JTBC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내놓아라 _ 하는 가수들(이소라,윤도현,유희열)이 해외에서 거리 공연을 하며 " 음악 " 으로 지구촌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줄거리로,  

" 음악은 만국 공통어 " 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방송이다. 시작부터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 성공한 뮤지션으로 일가를 이룬 < 이 > 가 굳이 영국이라는 머나먼 타관에서 가난한 가객이 되어 " 길거리 악사 " 흉내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  초심을 찾기 위해서 ?!  허, 허허허허허허허허.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서 ??!   카메라는 노래하는 버스커에게는 그닥 관심이 없다. 카메라가 포착하고 싶은 얼굴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낮선 뮤지션이 부르는 노래에 반응하는 영국인의 얼굴이다. 이소라가 자기 노래도 아닌 'Moon River'를 부를 때나  윤도현이 U2의 'With Or Without You'를 부를 때는....... 아, 민망하여라. 

한국을 대표하는,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가진 일류 뮤지션이 고작 영국에 가서 " - 존심 " 도 없고 " - 부심 " 도 내팽게친 채 그들 곡이나 부르는 것이 뭐가 그리 떳떳한가 ?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훈훈한 방송에 딴지를 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기도 하지만,  이 방송은 서구라는 대타자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동방 식민지의 사대주의 근성을 자극한다. 꼭 호부호형을 요구하는 홍길동을 보는 것 같아 민망하다. 비빔밥이 자랑스러운 한국 문화가 되는 순간은 마이클 잭슨이 비빔밥을 먹으며 엄지 척'을 들 때 작동할 때 발생한다.  마이클 잭슨이 아니었다면 비빔밥은 그까이꺼 그냥 그렇고 그런 한국 음식이었을 것이다.

음식을 가지고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름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뉴욕에서 김치를 먹으면서 문화적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면 같은 논리로 대한민국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으면서 일본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을 느껴야 한다. 오앗, 오뎅이 대한민국 곳곳을 정복했다니 !!!!!!!!!!!!                    또한 카레를 먹으면서 위대한 인도에 감탄해야 한다. 샨티 샨티 카레 카레야. 완전 좋아. 아, 레알 좋아                   내가 보기에 이 방송은 불고기를 외국인에게 선보이고는 그 맛에 감동하는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 같아 닭살이 돋는다.  

한마디 첨언하자면 : 한국의 위대한 식문화 유산인 불고기여서 특별히 맛있는 것이 아니라, 고기는 그냥...... 다, 맛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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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2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스트잇 2017-09-2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동감입니다.
바보같은 프로그램입디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3 19:28   좋아요 0 | URL
바보 ~

책한엄마 2017-09-2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기랑 msg면 게임 끝이죠!!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3 19:29   좋아요 1 | URL
불고기.. 햄버거 패티 맛이죠, 뭐..

시이소오 2017-09-23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야 채널을 돌릴수밖에.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3 19:29   좋아요 0 | URL
민망하죠, 많이.....

cyrus 2017-09-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소라, 윤도현, 유희열.. 최고의 뮤지션이지만, TV에 자주 노출돼서 그런지 식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4 12:24   좋아요 0 | URL
윤도현은 뭐 가수라기보다는 그냥 예능인이죠..
 



 

 

 

 

 















                                                                                                나에게 < 곁 > 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선물한 사람은.......     놀랍게도 이명박이었다. 그가 서울 시장'이었을 때 지하철 역사 안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의 출현은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를 중심으로 열댓 명이나 되는 참모들이 학익진 진형을 이루어 다가오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참모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굽신거려서 수하에 가까웠고, 수하라고 하기에도 얼굴 생김새가 천박해 보여서 졸개 나부랭이에 가까웠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등신 새끼들, 떼로 몰려다니는구나.                         그 당시에 그는 서울 교통 정책을 막 개편한 상태여서 민생 행정 시찰을 나온 모양이었다. 그가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쇠 긁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불행은 이어졌다. 나는 그가 꼴도 보기 싫어서 전철이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자(문이 열리자마자)

 심청이가 인당수에 냅다 뛰어드는 심정으로 전철 안으로 뛰어들어가 빈자리에 앉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앉은 곳은 한 자리 건너 내 옆자리였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대라 좌석은 텅 비어 있었지만 " 참모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굽신거려서 수하에 가까웠고, 수하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천박하게 생긴 놈이 대부분이어서 졸개 " 에 가까웠던 무리들은 아무도 앉지 않았다. 이명박은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참모들은 청솔모처럼 귀를 쫑긋 세운 채 두목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박장대소했고 심각하지도 않은 세태 진단에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심난한 표정을 지었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표정처럼 보였다. 운전기사 한 명쯤을 두었을 졸개 나부랭이들은 그렇게 20여분 간 서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은 젊은 경호원이 아니라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이명박은 절대로 곁을 내어주는 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평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서 있는 참모들에게 빈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하겠지만 그는 그런 배려를 잊은 듯했다. 그 후,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고 서 있던 졸개들은 청와대에 입성하는 영광을 누렸(으리라 추정된)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곁의 공간도 넓어진다. 권력은 "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이(공간) " 을 확보하는 놀이이다.  박근혜가 경찰 직원에게 잡혀서 호송차 뒷자리에 앉게 되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양쪽에 경찰 직원 두 명이 그녀와 함께 호송차 뒷좌석에 착석했다.  수인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한 수칙이었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첫경험이었다.  그는 차를 탈 때 평생 자기 옆자리에 누군가와 함께 동석한 적이 없다고 한다, 운명공동체였던 최순실마저도 !   우정의 조건이 곁을 허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은 우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처럼 보인다.

이런 관계를 그냥 " 우동 " 이라고 하자. 박근혜와 최순실은 어떤 사이였나 _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우동사리! " 곁의 공간 " 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 사이 " 가 된다. 이 공간은 보이지 않지만 거래가 가능하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30억에 낙찰된 사건이 좋은 예이다. 경매 응모자가 30억을 주고 산 것은 30억짜리 점심 메뉴가 아니라 " 1시간짜리 워렌 버핏의 곁 " 이다. 룸살롱 소비 문화도 대표적인 여성의 곁을 상품화한 것이다. 남성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것은 술값이 아니라 여성 접대부의 곁이다. 하지만 곁을 돈으로 사는 행위'는 윤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인간 고유의 장소를 물물교환하는 방식으로 物化한 거니까.


버지니아 울프가 << 자기만의 방 >> 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여성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가 가능한 장소성topophilia 이다. 그렇기에 << 자기만의 방 >> 은 가부장 사회에서 소비되는 여성의 장소 상실 placelessness에 대한 불안을 다룬 작품이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도 환대요, 참모에게 서 있지 말고 빈자리에 앉으라고 말하는 것도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또한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조건의 일자리를 주는 행위도 환대'다. 이 환대가 금지되는 순간 사회는 지옥이 된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9년 동안 환대 없는 사회를 몸소 체험했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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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0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503과 MB가 곁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를 바라면서....503MB 화이팅!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0 16:19   좋아요 0 | URL
깜빵 동기 사이 되겠네요. ㅋㅋㅋㅋㅋ

2017-09-20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0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한엄마 2017-09-2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동-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0 16:18   좋아요 1 | URL
, 저는 ˝ 아 우동 ˝ 을 ˝ 어우동 ˝ 으로 읽었습니다... 어우동, 이 영화 추억의 영화죠.

transient-guest 2017-09-21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와 503이라..나쁜놈과 천치의 조합이네요. 같은 방에 넣어두어도 좋을 듯...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1 12:36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둘은 혼숙한 사이 되겠네요..

2017-09-22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2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4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5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5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     이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 또는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까지의 거리나 공간을 " 사이 " 라고 한다. 그러니까 < 사이 > 라는 말 속에는 거리나 공간 같은 로컬리티 개념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사이'라고 부른다. 땔래야 땔 수 없는 젖은 땔감의 인간 버전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들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인간 관계가 되어서 한여름에도 붙어다닌다. 또한 둘이 서로 친한 관계라면 " 서로 가까운(좋아하는) 사이 " 가 되고, 선배와 후배라면 선후배 사이가 되며, 친구라면 친구 사이가 된다. 한자 親(친할 친)이 가깝다와 가까이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 친구 사이 " 라는 말에는 개인이 허용할 수 있는 간격 안으로 포섭된 사이1)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또한 친구라고 하기에는 데면데면한 관계라면 그냥 아는 사이'라고 하면 된다.

" - 사이 " 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관계이다. < 사이 > 는 관계의 성격과 계급의 차이에 따라 세분화된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로컬리티 topos 2)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 영화는 필연적으로 장소로써의 " 사이 " 를 다룰 수밖에 없다.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영화 << 화양연화 >> 는 < 사이 > 의 개념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영화는 욕망( 친밀한 거리 : Intimate Distance Zone:45.7cm미만)을 숨긴 채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Zone :2m~3.8m)를 유지해야 하는 기혼 남녀의 갈등을 다룬다. 감독은 그들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서 강박적일 정도로 좁은 복도와 좁은 골목을 형상화한다.

서로 데면데면했던 그들은 좁은 복도에서 몸을 비켜세우며 지나칠 때 균열이 시작된다.  잠깐 경험하게 되는 사이(친밀한 거리)에 남녀는 매혹된다.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접촉을 피했지만 그럴수록 욕망은 간절하다. 하지만 끝내, 그들은 사이가 가까워져 올수록 사이가 멀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 영화가 사랑 영화로써 탁월한 지점은 바로 사랑이라는 본질이 가지고 있는 로컬리티의 속성을 훌륭하게 형상화했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주도한 아우라는 양조위와 장만옥이 아니라 좁은 복도와 골목이다. 롤랑 바르트는 << 사랑의 단상 >> 에서 "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대상은 어떤 것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아토포스 " 라고 명명했는데,

 

이 해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실패한 사랑을 다룬 영화나 문학은 모두 아토포스(的 상황)를 다룬다. 실패한 사랑의 대상은 항상 " 그 장소 " 에 없는 존재이다(그 장소는 텅 빈 부재이다). 내가 대학로 카페 도어즈에서 강냉이 안주에 맥주를 마시다가 목놓아 울었던 것처럼 영화 << 길 >> 에서 짐파노는 " 그 장소 " 에 없는 젤소미나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그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재는 존재를 각인시킨다. 하여, 존재를 상기시키는 것은 부재의 힘이다 ■







​                                


1) 에드워드 홀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Zone:45.7cm미만), 개인적인 거리(Personal Distance Zone: 45.7cm~1.2m), 사회적인 거리(Social Distance Zone :2m~3.8m) 공적인 거리( Public Distance Zone:3.8m이상)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2)  ‘어떤 장소에 고정되지 않은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특정 지을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다. 장소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토포스(topos)에 부정의 접두사 a가 붙은 단어로 프랑스 평론가이자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의 저서 《사랑의 단상》에 등장한 개념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자들이 소크라테스를 아토포스라 불렀다고 언급했다. 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한 장소에 머물러 있지 않아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대상은 어떤 것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아토포스와 같다고 표현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토포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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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9-19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첫 사랑에게 이렇게 고백했었어요

‘나는.. 나와 너 사이의 이 공간과 시간을 사랑해..‘

어린 아이의 고백치고는 좀 철학적이였죠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9 18:25   좋아요 1 | URL
좀 철학적이었던 게 아니라 엄청 철학적인 고백이었네요.
고백이라는 게 사실은 좀 유치해야지 제맛이죠.
고백이 너무 멋스러우면 사기꾼입니다..

2017-09-19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0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리와 나 




 

 

 

 

                                                                                                     가끔 영화를 보다가 " 영혼이 털리는 경험 " 을 하게 된다. 영화관을 들어갈 때는 꼴뚜기처럼 탱탱한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으나 영화관을 나설 때에는 문어 다리처럼 흐느적거리게 되는 느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 거울 >> ,  왕가위의 << 아비정전 >> ,  데이비드 린의 << 아라비아의 로렌스 >> ,  팀 버튼의 << 비틀 쥬스 >> , 기타노 다케시의 << 키즈 리턴 >>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 차이 밍량의 << 애정만세 >> 를 보고 나면 영혼의 수분이 럭키금성 탈수기처럼 탈탈 털리는 기분이 들어서 극장 밖을 나서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바닥에 주저앉게 된다. 울지 않기 위해서, 울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남몰래 항문에 힘을 주었다. 눈구멍와 똥구멍은 하나이니까. 빔 밴더스 감독이 연출한 << 파리, 텍사스 >> 도 그런 경우'였다.

영화관을 나와서 신촌 굴다리를 걷다가 벽에 붙은,  이 영화 포스터 앞에서 나는 오래 멈췄다. 늦가을 볕에 말린 시래기 줄기처럼 생긴 배우 이름은 해리 딘 스탠튼'이었다. 감독보다 배우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해리와 나는 초면이 아니었다. 그는 << 관계의 종말 >> , << 딜린저 >> , << 대부 2 >> , << 에일리언 >> 에서 이런저런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였던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출연한 영화가 무려 250여 편이나 된다고 하니 관객인 우리는 기억은 못해도 오고 가다 한 번쯤은 마주쳤을 배우였다.

다만,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을 뿐이다. 주연도 아닐뿐더러 하물며 조연은커녕 주로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를 기억하는 것은 낭비에 가까우니깐 말이다(그가 영화에서 줄곧 단역만 맡은 것은 아니었다 비중있는 조연을 연기한 적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그지같았다). 더군다나 그는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명배우로서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배우였다. 그는 백만장자를 연기해도 거지처럼 보였고, 엘리트 과학자를 연기해도 거지처럼 보였고, 보안관을 연기해도 거지처럼 보였다........               

그런 배우를 원톱 원맨쇼에 가까운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한 영화가 << 파리, 텍사스 >> 였다. 모험에 가까운 캐스팅은 대성공이었다. 목석에 가까워서 표정이 읽히지 않는 그의 얼굴은 영화 속 주인공인 트래비스1)와 잘 어울렸다.  그 후,  나는 그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그가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를 일부러 찾아서 보았고, 그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그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곤 했다. 그것은 마치 " 히치콕 영화 " 에서 히치콕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을 발견할 때 느끼게 되는 즐거움과 비견될 만했다. 그런 그가 2017년 09월 15일, 91세의 일기로 영면했다. 나는 진심으로 백만장자를 연기해도 거지처럼 보였던 이 배우를 사랑했으며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눈물이 난다.

 

 

 

 

 

 

 

 

 

                              

 

 

1) 영국 롹 밴드 < 트래비스 > 는 영화 << 파리, 텍사스 >> 의 주인공 이름 트래비스에서 따왔다. 실제로 해리 딘 스탠튼은 배우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다. << 파리, 텍사스 >> 의 주제곡도 그가 불렀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삽입곡을 직접 부르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영화만큼은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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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9-18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8 16:34   좋아요 0 | URL
좋은 배우였죠. 이 배우 볼 때마다 저는 찰스 부코스키가 연상됩니다..

오드득 2017-09-18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분의 부고를 듣고 좀 충격을...
이로써 ‘스트레이트 스토리‘에 형제로 나왔던 분들이 다 돌아가셨군요.
그 영화에서의 해리옹도 참 좋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9 12:37   좋아요 0 | URL
그래요.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도 해리가 나왔죠. 이분은 30대나 80대나 얼굴이 똑같습니다.
한결같이 루즈핏으로 일관했던 분이셨죠.. 루저의 루즈 핏이라니.

yamoo 2017-09-1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런 분도 있었군요. 에이리언에 나왔다면 저도 분명히 봤겠지요. 3-4번 봤으니...헌데 이름과 얼굴이 도통 생각나지 않다가 사진 보니, 전혀 모르는 배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9 18:37   좋아요 0 | URL
이분의 특징이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첫반응이 대부분 이런 식이죠. 좋은 배우였어요.. 얼핏 보면 맥시코 배우 같기도 하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