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 또는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까지의 거리나 공간을 " 사이 " 라고 한다. 그러니까 < 사이 > 라는 말 속에는 거리나 공간 같은 로컬리티 개념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사이'라고 부른다. 땔래야 땔 수 없는 젖은 땔감의 인간 버전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들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인간 관계가 되어서 한여름에도 붙어다닌다. 또한 둘이 서로 친한 관계라면 " 서로 가까운(좋아하는) 사이 " 가 되고, 선배와 후배라면 선후배 사이가 되며, 친구라면 친구 사이가 된다. 한자 親(친할 친)이 가깝다와 가까이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 친구 사이 " 라는 말에는 개인이 허용할 수 있는 간격 안으로 포섭된 사이1)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또한 친구라고 하기에는 데면데면한 관계라면 그냥 아는 사이'라고 하면 된다.
" - 사이 " 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관계이다. < 사이 > 는 관계의 성격과 계급의 차이에 따라 세분화된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로컬리티 topos 2)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 영화는 필연적으로 장소로써의 " 사이 " 를 다룰 수밖에 없다.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영화 << 화양연화 >> 는 < 사이 > 의 개념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영화는 욕망( 친밀한 거리 : Intimate Distance Zone:45.7cm미만)을 숨긴 채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Zone :2m~3.8m)를 유지해야 하는 기혼 남녀의 갈등을 다룬다. 감독은 그들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서 강박적일 정도로 좁은 복도와 좁은 골목을 형상화한다.
서로 데면데면했던 그들은 좁은 복도에서 몸을 비켜세우며 지나칠 때 균열이 시작된다. 잠깐 경험하게 되는 사이(친밀한 거리)에 남녀는 매혹된다.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접촉을 피했지만 그럴수록 욕망은 간절하다. 하지만 끝내, 그들은 사이가 가까워져 올수록 사이가 멀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 영화가 사랑 영화로써 탁월한 지점은 바로 사랑이라는 본질이 가지고 있는 로컬리티의 속성을 훌륭하게 형상화했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주도한 아우라는 양조위와 장만옥이 아니라 좁은 복도와 골목이다. 롤랑 바르트는 << 사랑의 단상 >> 에서 "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대상은 어떤 것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아토포스 " 라고 명명했는데,
이 해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실패한 사랑을 다룬 영화나 문학은 모두 아토포스(的 상황)를 다룬다. 실패한 사랑의 대상은 항상 " 그 장소 " 에 없는 존재이다(그 장소는 텅 빈 부재이다). 내가 대학로 카페 도어즈에서 강냉이 안주에 맥주를 마시다가 목놓아 울었던 것처럼 영화 << 길 >> 에서 짐파노는 " 그 장소 " 에 없는 젤소미나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그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재는 존재를 각인시킨다. 하여, 존재를 상기시키는 것은 부재의 힘이다 ■
1) 에드워드 홀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Zone:45.7cm미만), 개인적인 거리(Personal Distance Zone: 45.7cm~1.2m), 사회적인 거리(Social Distance Zone :2m~3.8m) 공적인 거리( Public Distance Zone:3.8m이상)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2) ‘어떤 장소에 고정되지 않은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특정 지을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다. 장소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토포스(topos)에 부정의 접두사 a가 붙은 단어로 프랑스 평론가이자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의 저서 《사랑의 단상》에 등장한 개념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자들이 소크라테스를 아토포스라 불렀다고 언급했다. 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한 장소에 머물러 있지 않아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대상은 어떤 것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아토포스와 같다고 표현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토포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