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으로 따 꼽을 수 없는 할일들 가운데 두 가지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서 정리하는 것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전자는 이번주 강의를 위해서이고, 후자는 다음달 연재를 위해서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강의도 한 적이 있어서 기억만 되새기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그래도 읽어야 할 자료들이 아주 적지는 않다(주로 논문들이다). 마침 극단 산울림에서 이번 가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린다. 1969년에 초연을 올렸다고 하니까 40주년 기념공연이다. 언제 시간을 내서 보면 좋겠다. 그 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정독해보고. 공연리뷰와 함께 이번에 참고할 책 몇 권의 리스트를 꼽아놓는다(정말 몇 권 되지 않는다).   

뉴스컬쳐(09. 09. 20) 영원히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연출 임영웅)는 지루한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블라디미르(애칭 디디/한명구 분)와 에스트라공(애칭 고고/박상종 분)은 하염없이 오매불망 ‘고도’만을 기다린다. 언제부터 그를 기다려왔고, 왜 기다려야만 하는지. 두 방랑자는 어떤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오로지 고도가 오면, 기다림이 끝남과 동시에 바라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뿐이다.

무대는 둔덕과 쇠꼬챙이를 휘어 만든 듯한 나무 한 그루가 전부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황량하고 적막한 공간은 마치 감옥 같으며, 두 방랑자가 겪는 지루함을 더 부각시킨다. “우리 이제 뭘 한다?”, “기다려야지”, “만약 안 온다면 어떻게 하지?” “끊임없이 지껄여야 생각을 안 하지” 디디와 고고에게 ‘말(言)’은 지리멸렬한 기다림을 참는 이유이자, 살아있다는 증거다. 이들의 장난과 춤추기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고도가 언제 올지 모를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초조와 낭패감을 극복하려는 온갖 노력들이 눈물겹다.

권력가를 상징하는 포조(전국환 분)와 운이 전혀 없어 보이는 하인 럭키(박윤석 분)가 가끔씩 등장한다. 부랑자들에게 아주 잠깐 재밋거리를 제공하지만, 역시 무의미한 언어와 행동들로 상황을 애매하게 만든 후 퇴장한다.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한 소년(윤준호 분)이 등장해 고도가 오늘밤은 못 오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는 전갈을 남기면서 1막이 끝난다. 그러나 2막의 다음날이 되어도, 고도는 오지 않는다. 우울함 속에서 잠시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를 향한 기다림은 계속 된다. 다시 와야 할 이곳을 멀리 떠나지 못한 채. 



이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e)의 희곡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주인공들의 연결 없는 대사들이 낯선 무대를 채우는 대표적인 부조리극이기도 하다. 다수의 부조리극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해답 없는 줄거리가 관객들을 당황하게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는 주인공 못지않게 관객들 역시 허무하게 만든다.

그러나 베케트는 전한다.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인도 모르고,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고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말이다. 뿌연 안개에 쌓인 듯 시간도, 장소도 희미한 현실. 애타게 바라고 있는 ‘고도’는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웃고 울면서, 고도를 계속 기다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영원히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이주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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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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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지음, 임성희 옮김 / 청목(청목사) / 1989년 10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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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조리극
마틴 에슬린 지음, 김미혜 옮김 / 한길사 / 2005년 5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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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사무엘 베케트 지음, 전승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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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9-27 23:51   좋아요 0 | URL
'고도'는 단일한 텍스트가 아니라 인간의 수만큼의 텍스트입니다.
저마다 기다리는 '고도'는 대를 이여, 시대를 넘어 기다려야 할
운명 같습니다.

로쟈 2009-09-28 01:40   좋아요 0 | URL
열린 텍스트이면서 채워넣는 텍스트도 되지요. 한데, 해석은 의미를 좁히는 작업이기도 하구요...

2009-09-28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0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9-09-28 02:10   좋아요 0 | URL
민음사 책을 읽고 연극을 보았던 기억이 있네요. 보는 내내 묘하게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고도'를 기다리는 저를 발견했었구요. 저마다의 '고도'가 무엇인지,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건지 고민하기도 했었습니다. 잠시 다시 생각하게 하네요.

로쟈 2009-09-28 09:50   좋아요 0 | URL
영화에 보면 교도소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연극이기도 하죠...

드팀전 2009-09-28 09:00   좋아요 0 | URL
지젝이 베케트의 '고도'에서 모더니즘의 전형을 찾으며 만약 포스트모던하게 '고도'를 다시쓴다면 '고도'가 육화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쾌락의 주체로 다닐거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 읽다가 오에겐자부로와 하루키를 비교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이 비유가 생각이 났습니다. 더불어 지젝과 고진을 읽어주신 로쟈님두..^^ 잘 지내시죠.

로쟈 2009-09-28 09:52   좋아요 0 | URL
네, 일이 많아서 게으르게 지내는 것 말고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연휴가 짧아서 잘 쉬시란 말씀도 못드리겠네요.^^;

2009-09-28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09-09-28 11:07   좋아요 0 | URL
고도를 기다라며라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아직 읽어 보진 않은 책이네요.고도는 어렸을적 비밀 일기라는 영국의 청소년 소설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소설속 주인공이 에스트라공의 이름은 무슨 피임약 이름 같다고 했다는....^^;;;;;

로쟈 2009-09-29 19:22   좋아요 0 | URL
'에스트라공'이 피임약이라... '에스트라'면 그럴 듯한데요...

목동 2009-09-29 20:53   좋아요 0 | URL
'에스트라'는 난포호르몬(estrogen) 대사물질을 관리합니다.
'estrogen'은 빈성(牝性) 발정을 유발시키며 부족하면 남성화(갱년기)됩니다.

봄날 2009-10-14 11:05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정말 몇권 안되네요 ^^;;
 

역사분야에서 '이주의 책'으로 꼽을 만한 것은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1,2>(역사비평사, 2009)이지만, 리뷰가 뜨지 않는 걸로 보아 다음주로 넘어간 모양이다(한데, 다음주는 추석 연휴라서 북리뷰도 쉬지 않을까). 영국사상연구소에서 펴낸 <논쟁 없는 시대의 논쟁>(이음, 2009)과 함께 고등학생들도 읽어봄 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술의 비중이 많이 줄어서, 이런 책들까지 챙겨읽는 고등학생은 아주 드물겠지만(논술강사들에겐 물론 아주 요긴하겠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를 제쳐놓으면 이주의 역사서는 류대영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푸른역사, 2009)이다. 기독교사와 미국사 전공자이기도 한 저자는 <미국 종교사>(청년사, 2007)도 펴낸 바 있다.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란 주제에 관한 한 적임자인 듯싶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9. 26) 친미반공·진보·뉴라이트… 한국 개신교 100년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는 순결하게 고유한 종교의 영역이 있다고 믿지 않게 됐다. 기독교만 하더라도, 교회의 역사는 곧 정치화한 종교, 종교화한 정치의 역사였다.”  

종교의 정치성를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 개신교만큼 적절한 사례는 없다. 서세동점의 격변기, 이 땅에 첫 개종자를 배출한 이래 개신교는 줄곧 문명과 야만, 중화와 서방,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최일선에 서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푸른역사)는 19세기 말의 개화당에서 21세기 뉴라이트까지, 한국의 근현대사에 새겨진 개신교의 정치적 발자취를 되짚은 책이다. 책을 쓴 류대영 한동대 교수는 말한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가장 종교적으로 보이는 현상도 정치·사회적 차원을 가지며, 종교적 신념과 이데올로기적 신념은 놀라우리만치 친밀도가 높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최근 한국 개신교의 정치활동은 정치적 극우파와 뚜렷한 친연성을 드러내지만, 류 교수가 볼 때 개신교의 사회참여가 처음부터 보수적 색채를 띄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 개신교 보수교단의 원류랄 수 있는 19세기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에는 당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선도하던 진보·개혁적 인사들이 많았다는 게 류 교수의 설명이다. 노예제 폐지와 여권신장, 교육기회 확대와 빈곤층 구제 등 사회개혁에 헌신했던 복음주의자들은, 그러나 러시아혁명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정치·사회·문화적 태도에서 ‘대반전’을 맞게 된다. 반공주의와 애국적 종말론이 결합된 극단적 근본주의가 그들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류 교수는 한국 개신교가 미국과 유사한 변화과정을 밟았다고 본다. 개화기 개신교는 말 그대로 ‘진보의 전도사’였다. 한글보급과 출판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고 축첩·조혼·신분제 같은 전근대적 구습과 대결하는가 하면, 인권을 신장하고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데도 앞장서 지식인과 민중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20세기 초 강제합병을 전후해 ‘대반전’이 찾아왔다. 그 계기를 류 교수는 1907년 정점을 기록한 ‘대부흥’에서 찾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 개신교는 뚜렷한 탈정치화 경향을 띠면서 내세지향적인 감성 종교로 빠르게 탈바꿈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 본격화된 탈정치화가 정치적 지배자에 대한 순응적 태도를 한국 교회에 심어놓았다면, 1920년대 유입된 사회주의와의 충돌은 뿌리깊은 반공주의의 기원이 됐다는 게 류 교수의 진단이다. ‘반공의 신학화’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나타났는데, 한경직 등 해방 직후 북한 정권과 충돌하고 월남한 교계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 여기에 한국전쟁의 경험은 공산주의에 대해 극복하기 힘든 증오심을 기독교인들에게 심어놓았다. 반면 전쟁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교회를 통해 대대적인 구호활동을 펼친 미국에 대한 친밀감은 한층 강화됐다.

한국 개신교의 친미·반공 코드를 교란해 놓은 것은 ‘1980년 광주’의 경험이었다. 1970년대 반유신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진보적 교회뿐 아니라, 침묵하던 보수교회 안에서도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 참여하려는 집단적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시대의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해방·민중신학 등 진보신학에 기초한 현실참여에는 동조할 수 없었던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신의 의지(정의)를 현실 속에 구현하는 것을 목표 삼는 ‘하느님 나라’ 개념에서 출구를 찾았다. 장로교 등 보수교단의 일부가 민주화 운동에 결합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김진홍·인명진·서경석 등은 이 시기 복음주의 참여파를 대표했던 성직자들이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세력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 대체 무엇이 자족적인 신앙 공동체에 머물러 있던 보수교회 교인들을 백주의 광장으로 끌어내 성조기를 흔들며 ‘좌파마귀 척결’을 외치게 만들었냐는 얘기인데, 류 교수는 답변은 복합적이다. 복음주의 개신교의 일부 집단이 갖고 있는 마니교적 선악이원론과 종말론적 위기의식에 집권 진보세력의 새로운 대외정책이 야기한 반공·친미주의 세계관의 균열, 여기에 진보세력의 분열과 미숙함이 만들어낸 ‘힘의 공백’ 상태가 정치적 보수주의와 유착된 일부 교회집단의 정치적 행동주의를 추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류 교수는 보수 개신교의 ‘행동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는 아니라고 본다. 거리로 나선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한국의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압도적인 정치적 힘 앞에 순종하는 관습을 오랫동안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 초반 복음주의 우파의 정치적 행동양식은 지금의 ‘힘의 공백’이 어떤 식으로 메워질 것이며, 이후의 정치적 세력판도가 어떻게 짜일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류 교수는 말한다.(이세영 기자)  

09.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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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9-28 03:29 
    아무래도 이 책 읽어봐야 할 듯 .. / 스크랩 — 로쟈
 
 
2009-09-28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랜신 프로즈의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민음사, 2009)의 말미에는 추천도서 목록이 실려 있는데, 이름하여 '소설 쓰기 두려운 날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런 류의 리스트를 좋아하는지라 꼼꼼히 읽어봤는데, 그 자신이 작가인 프로즈의 책은 포함돼 있지 않다. 여섯 쪽 정도니까 적당한 분량이다. 우리에게 생소한 작품들도 적지는 않아서 리스트를 만들까도 했지만 또 '마이리스트'로 만들어놓기에는 너무 많다. 그래서 러시아문학 작품만 골라놓기로 했다(팔은 안으로 굽는다). 영어권 작가의 리스트답게 단연 톨스토이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영어권 작가들이 꼽은 최고의 소설가가 톨스토이였다), 그래도 두어 권의 이채로운 책이 포함돼 있어서 눈길을 끈다. 모두 16종이며 배열은 가나다순이다.   

1. 고골, <죽은 농노>  

 

고골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이자 작가의 분류로는 '서사시'. <죽은 혼>이라고도 번역된다. 러시아어에서 'dusha'란 말이 '영혼'과 '농노'를 둘다 의미하는 중의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중에서 거의 구할 수 없으며 아직 한국어 결정판도 없다. 고골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한창 번역중인 걸로 아는데, 올해안으로 출간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2. 나보코프, <러시아문학 강좌> 

 

나보코프의 문학강의 시리즈는 세 가지가 있다. 모두 코넬대학 등의 문학교수 시절 강의한 것을 모은 것인데, <러시아문학 강의>, <문학 강의>(내용은 <서구문학 강의>), <돈키호테 강의>가 그것이다. 이 세 권 모두 러시아어로도 출간돼 있고, 나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을 모두 갖고 있다. 몇년 전 한 출판사에 번역 출간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시기상조'였다. 지금이라면 사정이 좀 다를지 모르겠다. <러시아문학 강의>의 경우는 전공 대학원생이나 강사들에게 아주 유익한 책. <문학 강의>는 상당한 분량이고, <돈키호테 강의>는 얇다.  

3. 나보코프, <롤리타> 

이건 따로 소개가 필요없겠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번역본은 두 종. 나보코프의 언어유희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영어본도 같이 읽어봐야 할지 모른다.  

4.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톨스토이에 비하면 상당히 인색하게도 프로즈는 <죄와 벌> 한권만을 골랐다(하긴 저자는 셰익스피어도 <리어왕> 한편만을 목록에 올렸다). <죄와 벌>은 앞으로도 서너 종의 국역본이 더 나올 듯하므로 한국어로도 풍족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5. 만델스탐, <희망에 반대되는 희망> 

러시아 시인 오십 만델슈탐의 아내 나데쥬다 만델슈탐의 회고록이다. 얼마전 <회상>(한길사, 2009)이라고 번역돼 나왔는데, 지난 세기말에 여러 지식인인들이 꼽은 '20세기의 책'에 포함되기도 했다. 남편 오십은 스탈린 시기에 체포되어 수감되고 사망한다. 개인적인 고통과 불우한 시대를 회상하고 있지만 치열한 성찰과 높은 격조를 보여주는 회고록의 걸작. 1970년에 영어판과 러시아어판이 뉴욕에서 동시에 출간됐고, 영어판의 제목이 <희망에 반대되는 희망>이다. 러시아어판은 <회상>으로 돼 있으며 나데쥬다는 이어서, 2권과 3권도 차례대로 썼다. 2권은 <버려진 희망>이란 제목으로 영역되었고, 3권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러시아아어로 '나데쥬다'는 '희망'이란 뜻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책.  

6. 바벨, <단편전집> 

이삭 바벨(이사크 바벨)은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대표적인 단편문학의 거장이다. 연작소설 <기병대>가 국내에 소개돼 있다. 덧붙여 바벨의 삶을 소재로 한 소설 트래비스 홀랜드의 소설 <사라진 원고>(난장이, 2009)도 번역돼 있고, 바벨의 책들에 대한 유익한 서평은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이후, 2001)에서 읽어볼 수 있다.   

  

'The Collected Stories'를 '단편전집'이라고 했는데, 영어판으론 선집과 전집이 모두 출간돼 있다. 전집은 1000쪽이 넘는 분량.  

7. 체호프, <서간문 모음집> 

 

체호프의 적잖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돼 있지만 그의 편지들은 아쉽게도 번역돼 있지 않다. 그의 전집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체호프는 많은 편지를 썼고, 영어본으로는 꽤 번역돼 있는 편이다. 옥스포드대학출판부에서 올해 낸 단편집의 표지들이 인상적이군. 

8. 체호프, <안톤 체호프 전집>  

어떤 판본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어판 전집 1-13권'이라고 돼 있어서 놀랐다. 국내에 출간된 두어 권짜리 선집으로는 아직 역부족이다.  

9. 톨스타야, <안개 속의 몽유병자> 

 

유일한 생존작가이자 현역 여성작가 타치아나 톨스타야의 작품집. 국내에도 두 권이 소개돼 있다. 톨스타야는 저명한 소비에트 작가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손녀인데, 만델슈탐의 <회상>에 보면 알렉세이는 만델슈탐 부부와 악연을 갖고 있다. 톨스타야는 한 TV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명 방송인이기도 하다.  



10. 톨스토이, <부활> 

 

이제부터는 톨스토이 퍼레이드다. <부활>도 따로 설명이 필요없겠다.  

11.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최근에 <안나 카레니나>도 새 번역본이 나왔다. 로마서 12장 19절에서 가져온 에피그라프는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라고 옮겨졌고, 유명한 첫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가 되었다. 다른 주요 대목들도 기존 번역과 비교해가며 읽어보면 좋겠다. 애독자라면. 

12.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외>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네댓 종 이상의 번역이 시중에 나와 있다. 후기 톨스토이의 가장 대표적인 중편소설.  

13.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전쟁과 평화>는 아직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 범우사판 외에 몇 개 판본이 있는 정도. 영어판으론 옥스포드대학출판부본이 저렴하다.  

14.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외> 

  

전기 톨스토이의 대표 작품집일 듯하다. 펭귄북에서 나온 <크로이체르 소나타>에는 <가정의 행복>, <악마>, <신부 세르게이> 등이 같이 묶였다.  

15. 투르게네프, <첫사랑>  

 

투르게네프의 자전적인 이 작품이 어느새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이 됐다. 청소년이 읽어도 좋을 만한 책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16. 파우스톱스키, <희망의 세월: 자서전> 

 

콘스탄틴 파우스톱스키(1892-1968)가 마지막 작가다. 작품집은 갖고 있지만, 이 서정적인 작가의 작품을 자세히 읽을 기회는 없었고, 그의 자서전도 생소하다. 영어판은 이미 1968년에 출간됐다. 당연히 좀 희소한 책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온라인에서 읽어볼 수 있다(http://home.freeuk.net/russica2/books/paust/hope/hope.html). 원작은 6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으로 영역본은 그 중 제4권을 옮긴 것인 듯하다.   

К. Г. Паустовский Повесть о жизни. В 6 книгах. Книга 1-3. Далекие годы. Беспокойная юность. Начало неведомого векаК. Г. Паустовский Повесть о жизни. В 6 книгах. Книга 4-6. Время больших ожиданий. Бросок на юг. Книга скитаний 

러시아본을 찾아보니 두 권으로 합본돼 있는 책이 눈에 띄는데, 분량은 총 1278쪽이다. 단편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산이었다. 한 세월의 무게가 묵직하다!..   

09.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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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7 1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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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7 1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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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7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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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7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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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9-27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찾아보니 고골 <죽은 혼> 2부를 중단하고 원고를 불살랐다 합니다.
작품에 대한 회의로 그는 차차 종교적 신비적 정신에 빠진듯 합니다.

국내 소설가중에도 절필하고 종교에 몰입한 분들이 있습니다.
<무진기행> 김승옥, <들불> 유현종 등은 지병에 의한 생각의
변화로 종교에 몰입했고,

'고골'은 작가로서의 정체성 변화에 의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은 정신적이든 육체적인든 작가의 변신을 뜻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름난 작가들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두 작품(들불,외투)을 거이 외우다 시피합니다.작품속의 약자에
대한 연민이 저를 항상 감동시켰습니다.



로쟈 2009-09-27 11:35   좋아요 0 | URL
네, 일리야 레핀의 유명한 그림도 있습니다. 고골이 자기 원고를 불사르는...

목동 2009-09-27 12:42   좋아요 0 | URL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은 리얼하군요.
'레핀'이 '고골'을 무척 좋아 했던 모양입니다.

고골 소설 <죽은 혼> -> 알리야 레핀 <분신>,
베르메르 유화 <진주귀고리의 소녀> -> 피터 웨버 영화 <진주귀고리의 소녀>,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 -> 임철우 단편 <사평역에서>,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 -> 이반 크람스코 유화 <미지의여인>.

화가 '레핀'의 스승이 '이반 크람스코'사실에 놀랍습니다.

글, 그림, 소리의 교감은 묘한 생명력을 느끼께 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한 번 본 중년 남자에 대한 캘릭터(외모)가 몇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 남자(캘릭터)속에 미지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막연한 상상때문에

로쟈 2009-09-27 12:41   좋아요 0 | URL
'크람스코이'입니다. 작가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09-27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24번 안동민 번역 <죽은 혼>이 완역본인데 영역본을 대본으로 했습니다.뒤에 '외투'가 함께 실려있어요.그런데 이 이후로 번역이 안 된 건가요? 은근히 재미있는데 안타깝군요.일종의 로드 무비같다고나 할까요? 요새 활자로 번역한다면 600쪽이 넘을 것 같아요.

갑자기 읽어보고 싶네요.읽은 지 몇 년 되었거든요.

로쟈 2009-09-27 17:11   좋아요 0 | URL
저는 <죽은 농노>라고 나온 정음사판으로 읽었더랬습니다. 다른 번역본도 더 있긴 합니다...

2009-09-27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10-12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3년에 삼성이 '톨스토이문학상'를 제정하였군요. 이런 경우도 있군요.

로쟈 2009-10-12 22:10   좋아요 0 | URL
러시아에선 그래도 상금이 센 문학상이라고 합니다...

털세곰 2009-12-03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죽은 혼은 어느 분에 의해 번역이 가열차게 준비되고 있나요? 혹 알려주시면^^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의 <신화 이론화하기>(이학사, 2009)에 대한 소개를 옮겨놓는다. 서점에서 두어 번 손에 들었다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다시 내려놓았던 책이기도 하다(언제 읽겠는가란 생각도 물론 했고). 필자는 공역자의 한 사람인 김윤성 교수로 <거룩한 테러>(돌베개, 2005)의 역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신화 이론화하기>는 <거룩한 테러>보다 먼저 나온 책이다.    

 

교수신문(09. 09. 21) 신화와 신화학, 낭만적 몽상에서 비판적 직시로  

한때 신화는 ‘성스러운 이야기’였다. 적어도 20여 년 전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1906~1986)가 세계적 인기를 누리던 당시엔 꽤 많은 이들에게 그랬고, 적지 않은 이들에겐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엘리아데와 그 독자들에게 신화란 우주와 인간을 있게 한 태초의 시원적 사건에 관한 이야기로서, 거듭 공연됨으로써 우주와 인간을 태초로 회귀시켜 재생시키는 성스러운 드라마, 즉 의례의 대본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신화의 성스러운 후광은 바랬다. 세상이 세속화돼서가 아니다. 불변의 본질적 실체로서 성스러움은 없다는 생각이 힘을 얻은 탓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엘리아데의 후배 동료인 시카고대 종교학자들만 보아도 충분하다. 조너선스미스에게 신화란 이상과 현실의 틈새로 인한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려는 일상적 담화 놀이다. 엘리아데를 독창적으로 계승한 덕에 엘리아데 석좌교수가 된 웬디 도니거조차도 신화란 특정 집단에게 성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시카고대의 가장 젊은 50대 후반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은 더 나아간다. 그는 성스러움에 관한 엘리아데식의 존재론, 스미스식의 인식론, 도니거식의 수용론을 다 거부한다. 그의 입장은 굳이 부르자면 성스러움의 권력론쯤 되겠다. 그는 엘리아데의 제자지만, 마르크스, 프로이트, 그람시, 바르트, 푸코 등을 취하면서 낭만적 몽상가인 스승의 그늘을 벗어났다. 그는 엘리아데가 청년 시절에 루마니아 우파 민족운동에 가담했던 경력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자인 자신의 생각을, 유대인 제자의 말을 경청해준 따뜻한 스승으로서 기억하고 존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링컨은 엘리아데의 학문에서는 배운 것도, 취할 바도 없다고 씁쓸히 고백한다.

스승 엘리아데의 낭만적 신화와 결별
스승 엘리아데와 제자 링컨의 차이는 링컨이 신화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신화란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한다. 짧지만 빛나는 이 문구에는 분류체계에 대한 뒤르케임과 모스의 통찰, 허위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지배와 저항의 헤게모니에 대한 그람시의 감각, 대립쌍의 향연인 사고 구조를 꿰뚫는 레비스트로스의 시선, 이차적 의미작용의 기호체계를 파고드는 바르트의 기민함, 권력과 담론의 그물코를 파헤치는 푸코의 열정이 모두 녹아있다. 링컨의 이런 신화 이해가 신화를 성스러운 이야기로 보는 엘리아데의 낭만적 신화 이해와 만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둘 사이의 심연에는 다리가 없다.  

링컨의 책 『신화 이론화하기』는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로서 신화 텍스트를 분석하고, 동시에 그런 텍스트를 다루는 또 다른 서사 형식의 신화로서 신화학의 역사를 해부하는 더블플레이다. 1부에서 링컨은 우리를 고대 그리스인들의 텍스트로 초대한다. 사실 그의 논의는 매우 단순하다. 뮈토스와 로고스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듯이 본래부터 비이성과 이성 따위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는 오랜 담론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느린 변화 결과다. 이 과정을 추적하는 그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이성의 진보 덕에 로고스가 뮈토스를, 이성이 비이성을 이겼다는 식의 근대주의적 승전보 따위는 던져버리게 된다.

2부에서 링컨은 근현대 신화학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신화학은 그 연구대상인 신화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이었다는 게 그의 논지다.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면서 신화가 민족 정체성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이렇게 재발견된(날조된) 신화는 자민족중심주의와 인종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림 형제의 민담학과 바그너의 오페라와 저술을 비롯한 숱한 신화와 신화학 담론이 링컨의 손안에서 그 은밀한 이데올로기를 폭로 당한다. 이어서 링컨은 니체에게서훗날 나치가 반기게 될 아리아주의의 원형을, 동양학자 존스에게서는 단일한 인도-유럽에 대한 착각을, 신화학자 뒤메질에게서는 우파주의와 반공주의를 들추어낸다. 3부의 첫 장에서 링컨은 좀 더 최근의 신화학을 개관한다. 그는 엘리아데에 대해서는 잠시 예우를 표한 뒤 접어두고, 대신 레비스트로스에 주목한다. 그의 구조적 방법은 계급, 젠더, 인종의 차이에 대한 감각과 이데올로기 작용에 대한 통찰로 보완하면 꽤 유용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어서 그는 고대 아일랜드 서사시에서는 젠더를 자연화하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고대 그리스 텍스트에서는 사상 그룹들 간의 위계 다툼을, 고대 점술 텍스트에서는 종교 집단들 간의 경쟁을, 고대 북유럽 서사시에서는 상업자본주의의 전조를, 고대 조로아스터교 경전에서는 피억압자의 목소리를, 존스에게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욕망을, 또 그 주변의 인도인들에게서는 유쾌한 전복과 저항의 몸짓을 읽어낸다.

학문 진정성 보여주는 통렬한 논평  
시대와 지역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링컨의 분석을 따라가는 것은 고되지만 그만큼의 보상이 따르는 즐거운 책읽기를 약속한다. 특히 흥미로운 건 결론에서 ‘신화로서 학문’을 논하는 부분이다. 그의 논지는 이렇다. 학문 역시 신화, 즉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그것은 각주 달린 신화다. 각주를 사기극의 수단으로 삼거나 아니면 각주를 지식 횡포로 매도해 치워버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각주와 학문성에 대한 링컨의 논평은 통렬하다. 각주의 역할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각주로 사기를 치거나 각주로 학문의 진정성을 지켜내는 상반된 사례들에 대한 분석은 학문에 필요한 정직성, 성실함,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신화 이론화하기』 읽기는 강 건너기다. 일단 한 번 건너가면 돌아올 수 없는 강. 물론 꼭 건너가야 할 당위는 없다. 싫으면 돌아서면 그뿐이다. 상상, 꿈, 실존, 의미, 성스러움 같은 기표들이 넘실대는 신화 정원의 낭만적 풍요는 등 뒤에 그대로 있다. 하지만 낭만적 신화 담론의 달콤한 향취에 신물이 났다면 과감히 링컨과 함께 강을 건너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링컨을 번역한 것은 이 책이 두 번째다. 나는 엘리아데를 통해 종교학에 입문했지만 마르크스와 푸코를 읽으며 링컨을 만났다. 그리고 그를 따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나 지금은 강 저편의 지난날보다 이편의 지금이 더 행복하다. 낭만적 몽상은 추억이 됐지만, 강 이편에서 이제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냉철한 직시의 즐거움을, 정직하고 성실한 분석의 흥분을, 학문하기의 진정한 열락을 비로소 맛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김윤성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09.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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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9-23 19:50   좋아요 0 | URL
고교독서평설 에서 로쟈님이 쓴 데미안 비평 글 잘 봤습니다.

학창시절 허영심에 몇 번 사보던 책이었는데 ^^

인물과사상 9월호에서 서민 교수도 로쟈님을 언급하는데 반갑더라구요

건필하시길!

로쟈 2009-09-23 20:06   좋아요 0 | URL
데미안에 대해서 하나 더 쓰고 있습니다.^^; 마태우스님 글은 저도 봤습니다.^^ 편집자가 보여주더라고요...

목동 2009-09-24 13:28   좋아요 0 | URL
아침에 독서평설에서 로쟈님의 글(알에서 나오기 위한 투쟁을 그리다)을
읽었습니다. 좋더군요. 헷세의 '알'이 오늘의 우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로 중,고시절에 '데미안'을 읽었다면 성인이 되
어서도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과 우리가 유독 잘 흡수한 것들
에 대해 말씀처럼 연구(비평)할 필요하겠습니다.

로쟈 2009-09-24 19:23   좋아요 0 | URL
독서평설도 챙겨 읽으시네요!^^

목동 2009-09-25 00:18   좋아요 0 | URL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학문 역시 신화, 즉 서사 형식의 이데올로기다" 등은 "꿈보다 해몽이 좋다"와 "헛소리" 등을 연상케 합니다. "모든 끈나풀은 허공에 메달릴 수 없다"는 것과 "이 끈이 지상을 묶는 살아있는 뱀"에 사로 잡힌 느낌. 본능같기도 하고요.

로쟈 2009-09-25 20:51   좋아요 0 | URL
신화에 대한 신비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야 한다는 발언을 해 '설화'를 빚고 있는(더불어 자신의 인지도를 확연히 높인)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이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란 요구 자체는 본인의 발언 의도와 무관하게 전체 노동자의 새로운 연대를 위한 대단히 혁신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다.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전도된 형태로서 이 '비정규직화'는 '정규직화'와 같은 효과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전체 노동자의 단일대오!). 그것은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라는 효과적인 노동자 계급 통제수단을 기꺼이 포기(?)하는 반자본주의적 발상이며, 뒤집어 말하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그것은 사회주의적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문제는 발언 당사자나 현 정부가 그런 정책을 실행할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사회주의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비전이 아니라 역량이다...    

경향신문(09. 09. 22) “박기성씨, 모든 노동자 비정규직화 주장”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던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이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박 원장이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노동 3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반노동 발언을 해왔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박 원장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노사관계연구본부 연구원들과 점심식사 중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수차례 공·사석에서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반노동 발언을 반복해왔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지난 17일 노동연구원에 대한 국정 정무위의 2008 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 심의에 출석, “사석에서 노동 3권을 헌법에서 빼는 게 소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는 유 의원의 질문에 “사석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저는 그게 소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박 원장은 2007년 <한국의 노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공동 저서에서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이 한국노동연구원에 산별교섭 참가를 요구하자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별 노조가 원칙이고, 산별노조는 인정할 수 없으며 내 학자적 양심이자 소신”이라면서 거부했다.

유 의원은 “박 원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연구소장이라면 반노동 언동을 이해할 수 있으나,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국책연구원장으로서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출신인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노동 3권은 국민주권의 핵심요체”라며 “헌법체제에 도전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위협하는 후안무치한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이인숙기자) 

09.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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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23 08:44   좋아요 0 | URL
저도 어처구니가 없는 한편 로쟈님과 비슷한 생각도 했답니다^^

로쟈 2009-09-23 17:45   좋아요 0 | URL
사실 허풍이어서 문제죠. 그럴 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목동 2009-09-23 15:25   좋아요 0 | URL
머릿속 삽자루!

로쟈 2009-09-23 17:47   좋아요 0 | URL
'반노동'이니 삽자루도 아닌데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3 10:30   좋아요 0 | URL
전 그저 놀라웠습니다.
그 직함과 발언의 부조화에 --;;

로쟈 2009-09-23 17:41   좋아요 0 | URL
노동부 장관의 행태에서 익히 보아온 것인데요.^^;

빵가게재습격 2009-09-23 11:44   좋아요 0 | URL
그래도, 편견과 오만을 솔직히 말하는 '정직함'은 있군요. 입만 열면 '거짓말'인 파란지붕 사람들로서는 놀라운 인물기용인데요. 오랜만에 들립니다. 로쟈님 안녕하세요?^^

로쟈 2009-09-23 17:41   좋아요 0 | URL
원장은 비정규직인지 궁금합니다...

빵가게재습격 2009-09-23 20:07   좋아요 0 | URL
원장이 비정규직이 아니면 정직한게 아니라 패러독스가 된다는 뜻인가요...'모든 그리스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로쟈 2009-09-23 20:05   좋아요 0 | URL
솔선수범한다면야 욕할 이유는 없겠죠...

이진이 2009-09-24 13:00   좋아요 0 | URL
노동연구원 선배한테 물어보니 연구소장은 3년계약의 비정규직이지만 전용차제공등 최상의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네요. 글고 짤리면 다시 교수로 돌아가면 되니 tenure 보장 받는 정규직으로 돌아간답니다. 쿨럭~
근데 비정규직은 2년계약후 정규직 전환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3년 비정규직이면 실정법 위반 아닌가...

로쟈 2009-09-24 16:24   좋아요 0 | URL
대학의 비정규 박사처럼 그것도 예외적 비정규직인가 봅니다.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philocinema 2009-09-23 12:02   좋아요 0 | URL
생각과 발언이 일치하는,
가면을 쓰고 위장하지 않는,

이 시대 보기 힘든 솔직하신 분이군요!

그의 가문 문턱위 벽면엔 이런 액자가 폼 나게 걸려있을듯,

"너의 생각을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가감 없이 얘기하라!"

로쟈 2009-09-23 17:38   좋아요 0 | URL
비정규직 발언만큼은 사회주의적입니다. 저는 스탈린시대 강제적인 농업 집산화를 떠올렸어요...

델러웨이부인 2009-09-23 12:41   좋아요 0 | URL
어쩜 바로 제생각입니다.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해야 합니다. 정규직이 없으면 비정규직 차별도 없을테고 정규직들의 무능과 횡포도 해결할 수 있겠죠. 모두가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자가 되는거져!!!

무해한모리군 2009-09-23 14:21   좋아요 0 | URL
일단 국회의원이랑 대통령부터 비정규직화했으면 합니다!

게슴츠레 2009-09-23 12:54   좋아요 0 | URL
일전에 몇몇 분에게서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더랬죠.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꿈꾸던 그러한 사회가 아니냐고 농반진반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재밌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으로 어떻게 생물학적/사회적 생존을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등, 로쟈 님이 '역량'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의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한 그럴싸한 레토릭 이상이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발상의 참신함에 미소짓기에는 약간의 쓸씁함이 들어 사족을 달아 보았습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23 17:17   좋아요 0 | URL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장.. 이라는 말은 언제나 불가능합니다. 누가 누굴 보장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지배자/피지배자의 구도가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사는 세상 설계.. 불가능한가요?

로쟈 2009-09-23 17:37   좋아요 0 | URL
모두가 비정규직이라면 '비정규직 독재'도 가능한 '혁명적' 상황인 것이죠. 문제는 밀어붙일 능력이 없다는 것이구요...

카스피 2009-09-23 19:35   좋아요 0 | URL
사실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을 두는 것부터 우습지요.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군 정규직,누군 비정규직입니까.근로자들도 은근히 차별을 인정하는 것 같더군요.

로쟈 2009-09-23 20:04   좋아요 0 | URL
그게 핵심이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 정규직 노조 같은 '분열'을 키워주니까요...

hereisnt 2010-01-18 13:24   좋아요 0 | URL
저 책 일괄적으로 받았는데 읽어야 되나 내내 마음이 묵직했습니다.
않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 지면서
저런 사람이 노동연구원장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정말 무거워 집니다.

로쟈 2010-01-19 09:56   좋아요 0 | URL
이후에 아마 사직한 걸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