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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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근대철학사를 이해하기에 이보다 좋은 입문서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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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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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인류역사상 3대 (정치)경제학자를 애덤 스미스, 칼 맑스, 존 메이나드 케인스를 꼽는다. 나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칼 폴라니이다.



폴라니는 세계가 왜 이토록이나 개판이 되어버렸을까를 정치 경제학적으로다가 고민한 사람이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일로나 두친스카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살이 마를 정도로 고통스럽게’ 고민 했다고 한다.



폴라니는 이 세계가 지옥의 아가리가 되어버린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상품이 될 수 없는 토지, 노동, 화폐를 상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 상품 허구(Commodity fiction)를 기반으로 하는 ‘자기조정 시장’(오늘날의 말로 하면 시장경제)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라는 것이다.



폴라니에 따르면 노동이란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인간 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함께 붙어 있는 것이며,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활동은 생명의 다른 영역과 분리될 수 없으며, 비축할 수도 사람 자신과 분리하여 동원할 수도 없다.


그리고 토지란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인데, 자연은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의 화폐는 그저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며, 구매력이란 은행업이나 국가 금융의 메커니즘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노동, 토지, 화폐가 거래되는 시장들은 바로 그러한 허구의 도움을 받아 조직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장메커니즘은 현실 세계에서 이 허구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어떤 제도나 행위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토지, 노동, 화폐는 결코 이런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으로 이 세계는 개판 더하기 지옥의 아가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끝으로 얼마 전에 읽은 강유원 선생의 <인문 고전 강의>에도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 강유원 선생은 폴라니의 ‘자기조정 시장’도 문제이지만 ‘자유주의 입헌국가’도 문제 삼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선생의 말에 따르면, 자유주의 입헌국가란 개인의 사적 이익을 모든 것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헌법에 명시한 나라를 말한다.

자유주의 입헌국가의 사상적 배경은 ‘개인주의’이며, 그 시작은 가족, 국가, 공동체와 연결을 끊고 오롯이 독자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데카르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가 그 시작점인 셈이다.


첨언하면 ‘내 몸과 내 정신’은 온전히 나의 것이란 말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사회적 함의다.

이것은 사적 이익이라는 로크의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인간의 신체와 그 신체의 산물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데카르트적 자아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적 개인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노동의 산물이 오로지 그 개인의 것일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개인의 소유권’ 위에 세워진 ‘자유주의 입헌국가’ 역시 허구적인 것이다.



칼 폴라니의 말에 강유원 선생의 말을 더하면, 우리는 결국 정치적 허구와 경제적 허구 위에 세워진 현실 속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셈이다.



“매트릭스 돋는다.”

“볼까?”
 


뱀발 : 역자 홍기빈 선생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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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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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수준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을 받은 게 나 뿐만은 아닐게다.

소설 읽는 '재미'를 주는 작품은 그나마 박민규 선생의 작품이다.
특히 수상작인 '아침의 문'이 좋았다.
왜나하면 이전의 선생의 작품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수상작가 추천작인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박민규스러운 작품이어서 박민규 선생의 애독자라면 수상작품보다 이게 더 낫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 외

배수아 <무종> : 카프카, 조이스 혹은 이상에 대한 오마쥬인가? 확실한 것은 재미가 없다는 것. 그것도 무지하게.

전성태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 이런 이야기라면 서정주의 시 한 편 읽는 게 드는 품이나 시간을 아끼는 지름길이란 생각이 든다.

윤성희 <매일매일 초승달> : 이외수와 성석제의 단점만을 모아 놓은 것 같잖은가.

김중혁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 필립 K 딕과 비교해 볼까? 아니 그 전에, SF에 기댔으면 좀 더 SF스러운 면을 보여줘야지, 이건 성의 부족 같잖은가.   

편혜영 <통조림 공장> :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한 번 더 보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의 삶을 이해 혹은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비교불가하게 더 낫다. 
그리고 추리소설의 기법을 도입했으면 확실하게 끝을 보여줘야지, 이건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 똥을 눴으면 최소한 밑은 닦아야지.

손홍규 <투명인간> : 유령뿐 아니라 인간 역시 결국은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와 같은 주제는 영화 '식스센스'에서 샤말란 감독이 써 먹었잖은가. 영화가 나온지 십 년도 더 지났지만 플러스 알파가 없다. 
가족, 가정, 가장, 해제에 대한 얘기를 하려거든 좀 더 참신한 소재를 고르든가 아니면 사드가 이성의 극한을 향해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나아갔던 것과 같은 용기를 보여준든가. 용기가 없다면 만용이라도 한 번 부려보든가. 
이건 너무 식상하잖아. 

위에서 언급한 소설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재미'가 없다는 것일 게다.
그러니 일본 소설이 대거 국내에 상륙해서 그나마 코딱지만한 시장의 돈이나마 다 거둬가고 있잖은가.

예술 혹은 순문학을 해도, 좀, 대중들도 재밌게, 무엇보다도 즐길 수 있는, 그런 예술 혹은 순문학은 할 수 없는건가.

문학을 순문학이라고 부르는 웃기는 짓거리도 이제 좀 그만두고 말이다.
순문학이란 말 자체가 우리 외엔 다 불순문학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잖은가.  

그런 경계 그음 자체가 하나의 지독한 폭력이란 걸 모르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다. 

올해부터는 아니 최소한 내년부터라도 재밌는 우리 소설 보며 살고 싶다.
그게 나의 새해 소망이다. 




뱀발 : 설이 지난지 일주일 조금 넘었으므로 '새해'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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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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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무슨 자기 계발서 같은 책인 줄 알았다.
책의 제목에서 내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불쾌함과 경멸감이었다.
의미 없는 토톨로지(tautology)를 남용한, 돈 좀 벌어볼까하는, 사람들 눈에 좀 띄어 볼까하는, 도발적이고도 노골적인 제목 짓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치듯 힐끗 본 지은이의 이름이 '정민'이다.
어?
내가 아는(물론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다) 그 정민 선생인가 싶어 저자 약력을 보니. 맞다. 
그 정민 선생이다. 
그래서 읽었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그저 하고 대충 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하다 혹 운이 좋아 작은 성취를 이룬다 해도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노력이 따르지 않은 한때의 행운은 복권 당첨처럼 오히려 그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지켜보는 이에겐 광기로 비칠 만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는 결코 남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가 없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좋아 옮겨 쓰고 보니,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에 거슬리는 말도 있어 몇 자 끄적여 본다.


1.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물론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여기고 실제로 본인에게 세상이란 만만해서 아무렇게 대해도 되는 그런 존재일 뿐인 사람도 분명 있다. 이를테면 이건희 전 삼성회장 같은 사람들 말이다. 세상을 만만하게, 아니 우습게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지 못할 일들을 태연히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오래(상대적이긴 말이긴 하지만) 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세상은 가진 자와 쥔자에게는 더없이 만만했다. 그렇지 못한 자에게만 만만치 않을 뿐.


2. 왜 복권 당첨이 당첨자의 인생을 망치리라고 생각하는지 그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짐작키로, 간혹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어느 날 문득 생긴 일확천금 때문에 인생을 망친 복권 당첨자들의 사연이 그 말의 배경인 듯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주 소수다. 나머지 복권 당첨자들은 잘 먹고 잘 산다.

비율로 따지자면 복권에 당첨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인생을 망치는 비율이나 복권에 당첨 된 사람이 인생을 망치는 비율이나 (역시) 짐작키로 비슷할 거다.

그러므로 운이 좋아 작은 성취를 이룬 사람 중에도 오래도록 그 성취를 우려먹고 사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둘러보면 세상은 그런 사람들 투성이다. 세상엔 진짜보다 가짜가, 큰성취보다는 작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말이다.


3. 미치기(及) 위해서 미친(狂) 사람들의 일생이 결코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설사 본인은 행복하다 할지라도 그 주위의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끼치는 피해는 작심하다 못해 극심하다.

더불어 무언가에 미친(狂) 사람들이 남들이 도달하지 못한 어떤 경지에 미친(及)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모든 미친(狂) 사람들이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미친(狂)건 분명 아닐 거다. 그냥 그 무언가가 좋아서 거기에 미친(狂)거고 미치다 보니 미친(及) 것일게다. 쉽게 말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는 결코 무언가에 미칠(狂) 수 없다는 얘기다.





4. 사람이 벽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다. 대저 벽(癖)이란 글자는 질(疾)에서 나온 것이니, 병 중에서도 편벽된 것이다. 하지만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고 전문의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이 있는 사람만이 능히 할 수 있다. - 박제가 <백화보서(百花譜序)>


좋은 말이다. 하지만 어떤 벽(癖)을 가지고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독창적인 정신을 이루어 내고 전문의 기예를 익혀도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사람 되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5. 책 속의 여러 인물들 중에 특히 눈길이 갔던 사람 넷이 있는 데, 이덕무, 김득신, 홍대용, 홍길주다.


특히 김득신의 전설 같은 노둔함은 이 책을 읽는 많은 둔한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될 것 같다. 나 역시 김득신 편을 읽고 웃음과 함께 그의 힘찬 응원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 그중에서도 [백이전]을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더 대단한 건 이렇게 읽고도 길가다 우연히 들려온 백이전 한 구절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을 끌던 말구종도 기억하는 걸 말이다.


그는 만 번 이상 읽은 글이 36편이라고 <독수기(讀數記)>에 기록해 놓았다. <독수기>의 끝에 그는 이렇게 썼다.

<장자>와 <사기>, <대학>과 <중용>은 많이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읽은 횟수가 만 번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독수기>에는 싣지 않았다. 만약 뒤의 자손이 내 <독수기>를 보게 되면, 내가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

 

김득신의 노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도 인간이 같은 책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의 한계지점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나는 여태껏 같은 책을 두 번 읽어 본 적이 드물다.  요즘 들어서야 반복해서 읽는 다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다. 사실 한 번 읽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책도 두 번 세 번 읽는 사이 절로 이해가 되고 또 이해가 되는 책도 반복해서 읽으면 놓쳤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며 세 번 반복해서 읽으니 책의 내용에 더해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더라.  

세종대왕께서도 한 책을 최소한 오십 번은 반복해서 읽었다는 말을 어딘선가 들은 듯 하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언어학자가 그냥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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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 김홍희 사진산문집
김홍희 글.사진 / 마음산책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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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은 묻는다. 그 많은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고, 내 대답은 언제나 간단하다.
"사랑에 빠졌던 곳"

책의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 마음에 들어, 사진도 좋아서, 무엇보다도 글자 수가 많지 않아서, 끝까지 읽었다.
서문에 나오는 위의 구절만큼 마음에 드는 문장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비슷한 정도로 마음에 드는 문장은 만났다.
"중요한 것은 머문다는 것"


2.
"진실로 울어본 자들은 알 것이다. 운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인지."

이 문장을 읽고 문득 자문해봤다. 
나는 진실로 울어본 일이 있는가?
물론이다.
철들고 난 이후의 나의 울음은 늘 진실이었다. 
나이 든 성년 남자의 울음은 늘 진실일 수 밖에 없다. (드물게 거짓 울음을 우는 놈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건 논외로 치워두자.
울면서 거짓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는 어린애와 여자 뿐일 게다.) 

그렇다면 다시 자문해보자.
울고 난 후의 내 영혼은 맑아졌는가?
내 대답은, 
"모르겠다."이다. 

나는 영혼이란 것이 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것이 맑아졌는지 어쨌는지 역시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자문해봤다.
"울고나면 정신은 맑아지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여지껏 나는 지극한 슬픔을 살아내 본 적이 없으므로, 역시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3.
"천상천하에 혼자 설 기회를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라."
지은이의 일본인 스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이 말은 나를 두렵게 만든다. 
나 역시 천상천하에 혼자 서 보고 싶다.
하지만 하늘 위에 하늘 아래서 오로지 혼자 견뎌야 할 고독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두렵기가 한량이 없다. 

그래서, 나는 평생동안 누군가에게 기대 살고 싶다. 
그게 내가 오로지 바라는 바다.  

그래서일까, 사람 '인(人)'자가 유독 정겨워 보인다. 
이 정겨움이 나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따뜻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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