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장감이 실려있는 흥망성쇠의 이야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을 재밌게 읽었다. 다음편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는데 이번 편 역시 유홍준 교수의 필력은 여전했고, 누란, 투르판, 쿠차, 타클라마칸사막등 그가 보여준 현장감은 실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권의 책이 묶이기 까지 그는 여정을 더하며 에피소드를 풀어 나갔지만 이번 편만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한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그는 자료조사를 세세히 하며 영상과 책을 찾아 그의 여정길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다른 편과 달리 이번 편은 더 학술적으로 느껴진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은 1,2권에서 다룬 부분이 동부 구간이며, 이번 3권의 오이사시 도시 순례 부분이 실크로드의 중부구간(P.7)을 담았다. 교과서를 통해 몇 차례 무역의 중심지였던 실크로드에 대해 많이 들어봤으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동서고역이 이루어지던 곳.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 길이 열리던 곳이다. 유홍준 교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보는 것을 넘어서 한 권의 책이 꿰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 가를 알 수 있다.

책상머리에서 막연히 실크로드를 생각할 때면 동서교역을 위해 낙타를 몰고 가는 소그드 카라반, 또는 불경을 구하기 위해 황량한 사막을 건너던 현장법사나 혜초 스님 같은 구법승들, 또는 서역을 차지하기 위해 중국인과 유목민이 벌인 무수한 싸움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막상 투르판에 와보니 그것은 지나가는 자들의 이야기일 뿐 오아시스 도시에 뿌리내리고 오순도순 살아갔던 서역인들의 숨결과 체취가 살갑게 다가왔다. 그네들이 시련의 역사 속에서 남긴 유적에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애잔한 소망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 P.56

색채가 드러나기 보다는 황량한 사막의 길이었다. 나무와 돌, 모래의 바람이 물결치는. 그가 보여주었던 석굴의 벽화들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때때로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그림들과 조각상들이 있어 색채감을 더한다. 항상 화려한 색채감이 있는 풍경들만 보다가 색채감이 드러나지 않는 풍경들은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안에 모래가 저걱저걱 씹히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속에서 무역의 꽃을 피웠고, 장대한 바람을 꿈꾸던 도시의 길이었다.


 

미국의 색면파 추상화가인 마크 로스코는 대형 캔버스에 검은색 혹은 빨간색을 짙게 칠하고 또 칠하면서 색면의 라인은 번지기 기법으로 어스름하게 지워버렸다. 그렇게 해놓고 로스코는 "관객들이 내 그림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리길 바라며 그린다"라고 했고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감정이 복받친다고 고백한다는데, 이와 그대로 통하는 감상이다. 형체가 남아 있으면 그런 감정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추상의 매력이자 힘이다. - P.108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추상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곳에서 나 또한 오래 전 살았을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선명한 유적이 남았더라면 사람들은 곧잘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흔적이 사라진 곳에서도 사람들은 그것들을 지나가기 보다는 그 시대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측하며 그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이 살았을 시절의 이야기를. 그래서 원형이 있는 것 보다 더 큰 감동을 받고 오곤 한다. 그의 또다른 여정의 길은 문화유산답사기이기도 하지만 학술서 같기도 하다. 여정을 더하면서 더 깊게, 관심사를 꾸려나가기 때문이다.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 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이 중 자연 관광에 해당할 천산산맥은 땅덩어리의 생김새에 대한 나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어 경이로우면서도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P.186

쿠차에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장관의 모습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의 필력만큼이나 눈을 사로 잡았던 것은 실크로드의 많은 풍광들 때문이었다. 도저히 누군가가 만들어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내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실제 봤다면 더없이 좋았을 모습들이 책 곳곳에 사진으로 실려있다. 보는 것 만으로 좋았다. 단순했던 선들이 그의 손과 입으로 하여금 누군가의 역사가 되고, 시가 되어 흘러간다. 좋았던 호시절의 이야기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절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넘고 넘어 수세기가 지나 이방인의 발걸음이 더해져 책이 쓰여져 있으니 그저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귀신이 도끼질하고 신이 다듬었다. - 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닮아 있는 모습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일 텐데 몹시 먼 사람 같기도 하다.

딸을 편하게 대하지 못할 때면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관심과 애정을 원하는데 자꾸 헛짚는달까. 애정 표현이 때때로

이상해서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살짝 성가실 때도 있다.


그래도 내 몸의 절반은 아빠한테서 왔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아빠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 p.4


 마스다 미리의 글은 좀 독특하다. 음식을 하면서 나물을 무칠 때와 같은 맛이 난다. 나물을 무치다보면 심심한 맛이나 간을 더한다. 간을 보면 이제서야 맛이 삼삼하다. 삼삼하게 무친 나물은 짭조름한 맛이 나 입에 딱 맞았다면, 다음 날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보면 방금 했던 맛이 나지 않는다. 다시 심심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글은 심심한 나물 맛 같다. 비교적 글밥도 많지 않고, 그림 또한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어딘가 모르게 심심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맛에 중독되어 먹는 것처럼 마스다 미리의 글은 그런 여백 속에 톡하고 건드리는 작은 공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데코 없이 과하지 않는 모양이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일으키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감하게 만든다. 책을 펼칠 때만 해도 '아빠'와 '남자'라는 테두리 속에서도 국가간의 문화적인 차이가 많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시공간을 뛰어넘어 아빠라는 이름의 폴더는 국경을 뛰어넘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양의 문화권이라서 더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서툰 애정의 표현도 그렇고 좋아하는 것들도 닮아있다. 아마도 나이차대로 편차가 있겠지만 마스다 미리의 나이 때의 아빠라면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별이 다르고, 유년시절 살았던 시절이 달라서 그런지 그동안 형성해 온 가치관이 때때로 대립이 된다. 서로 닮은 꼴이면서도 다른 마음이 존재하고, 서로의 생각들이 달라 어색한 표현들이 서로에게 닿지 않고 빗겨 나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이보다 조금 더 가까이 친근함을 유지하며 맞닿아 있었을텐데. 어느 순간부터 닮음이,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어느 순간 어색해진 공기가 정화되지 않고 흘러가고 있지만 순간순간 내가 아빠의 이런 모습은 닮았구나 하는 자각이 들 때가 많다. 마음의 거리는 조금 멀어졌을지 모르지만 마스다 미리의 글처럼 내 몸의 절반은 아빠에게 있으니 어쩌면 닮은 것은 당연한데 느끼는 순간순간이 생경하기만 하다. 서로 다른 성별을 갖고 있어서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던걸까? 아빠의 소소한 즐거움이 나에게는 소소한 즐거움 보다는 마냥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봐왔던 것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다 보니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시절에 만난 것들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마스다 미리 역시 그런 아버지의 소소함을 이해 못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아버지의 성격이 급하지만 취비는 그와 대비된다. 낚시와 독서인 그의 모습들. 애정표현이 달디 달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애정모드가 있는 남자. 마스다미리는 그렇게 아버지를 표현했다. 가족이기에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고, 그 안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모습들이 엿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아이를 닿던 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아니라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 또한 많은 인내와 노력이 닿아야 했을텐데. 그것을 내가 많이 느끼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닐까. 서로에게 애정은 있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엇갈리는 시간들을 줄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오해의 시간들이 아니라 조금 더 정겨울 수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도를 타는 삶 


 한동안 일상이 바쁘다 보니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과 함께 쓰는 시간이 확 줄어버렸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 된 것인지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 되면서 금단증상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집에만 오면 힘들어서 풀썩 쓰러져 자기 바빴으니 몸도 마음도 체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다 다시 만난 한가한 나날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들이다 보니 이제는 널널한 시간이 쥐어졌음에도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 생각한 만큼 책을 읽지 못했고, 휭하며 속도를 내던 차가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로 속도를 내며 달리는 것처럼 천천히 글을 읽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뺏긴 책이 선현경 동화작가의 글과 이우일 만화가의 그림이 더해진 <하와이하다>였다.


평소에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는데 일상이 빡빡해지니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싶었다. 시원한 바다내음도 맡고 싶고, 맛있는 회도 먹고 싶다.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하와이하다>를 읽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가고 싶었던 곳을 눈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시원한 바다내음이 물씬 느껴지고, 파도를 타 보는 생경한 느낌을 갖게 해 준 책이다. 부부의 토닥임도 재밌고, 중간중간 멀리 보내논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찡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그들의 활기찬 생활의 소소함이 더해져 물빛 만큼이나 반짝거렸다.


 

 

 

파도를 타려면 좋은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 긴 기다림이야 말로 좋은 파도를 탈 수 있는 적격의 기회라고 하니 무엇하나 쉬운게 없나보다. 미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쉼없이 파도를 탄다. 부부가 햇볕에 그을리는지도 모르고 파도를 타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즐겁게 느껴진다. 파도에 대한 끊없는 열망은 아내보다 남편이 더하다. 컬렉터의 면모를 더하는 것도 남편이다. 다양한 것을 배우고 풀어내는 것이 아내는 선현경 작가라면 이우일 만화가는 애정하는 것에 있어서라면 더 깊이를 더하는 이다. 그래서 아내로 하여금 인내심을 끌어 모으게 하기도 하지만 오랜시간 함께한 이라 그런지 그의 집착같은 모습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스르르 놓으며 그를 이해한다. 수십년간 함께 살았다 하여 모든 것이 맞지 않기에. 그렇게 토닥이고 싸웠다가도 다시 안쓰러워하며 이해하는 모습이란.


처음 만화가 이우일의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은 김영하 작가의 <오빠가 돌아왔다> (창비,2004)부터 였다. 제목도 눈에 띄었지만 표지 그림도 만만치 않았기에 눈길을 사로 잡았는데 후에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마음산책, 2003)로 도장을 꾹 찍었다. 김영하 작가의 맛깔난 글 만큼이나 그림 또한 좋았기에 그의 이름이 찍힌 책이라면 즐겁게 선택해서 보게 되었다.


소소한 삶의 테두리 속에서, 하와이의 기상천외한 모습, 풍경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요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계속해서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파란 하늘,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을 빼앗겨 버렸다. 당연하게 언제까지나 우리가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그런 일상이 없어지고, 여행 조차도 쉬이 나설 수 없는 시간들이 더해지다 보니 <하와이 하다>속 일상들이 마냥 부러워진다. 더불어 그 일상을 즐기며 읽어나간 책 속의 명언, 생활 속의 글귀가 마음에 콕하고 박혔다. 더불어 읽었다 덮어 두었던 책들도 책장에서 꺼내왔다. 20년차 부부의 하와이안 라이프를 활기찬 모습으로 즐기는 것처럼 나 또한 지금 이 순간을 즐겨봐야겠다.


----

 

"그래, 힘들고 귀찮지. 근데 왜 살아? 그려려고 사는 거지."

(생략) 얼마 전 우울한 어느 목요일에 요가 수업을 했는데, 수업 후 수다를 떨다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치료받은 느낌이었다. 엄마 말대로다. 이러려고 사는 거다. 마음을 다해 시간을 할애할 누군가가 있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거다. -p.52~53 


노래 몇 곡으로 오랬동안 꺼져 있던 마음 한쪽 깊은 방의 스위치가 커졌다.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 어지러웠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 나도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내 작은 방의 스위치를 켜고 보니 그의 수집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우일도 내가 모르는 그만의 어릴 적이 그리워 옛 음반을 들이고 장난감을 사는 걸까? 짐이 또 이렇게 늘기만 한다며 구박했는데 문득 그가 이해되었다. 따져보니 가장 좋아했던 점을 살면서 가장 큰 결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결점이 내가 그를 사랑항 이유였는데 말이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때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있거든." 김애란 단편소설 <가리는 손>을 읽으며 적어둔 말이다. 부부관계란 품이 드는 일이다. 그동안 피곤해서 집어던져버린 이해를 이제야 다시 집어 들고 있다. - p.60~61


"경계에 있을 때는 두렵다. 모호하고 불안하다. 이불안과 모호함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받아들여라. 너를 가두고 있는 '우리'에서 탈출해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 우리는 널 가두는 우리다." - p.66


"모든 변화에 기쁘게 반응하세요. 결국엔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 때가 아닌 거죠."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에서 나온 대사가 생각난다. - p.94


"우리는 때때로길을 잃어야 한다. 세계를 일어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에 나온 말이다. - p.100


영화 <마지막 사중주 A Late Quartet>에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제2바이올린만 고집하는 필리 세이모어 호프만에게 한 여인이 이야기 한다. "가장 좋은 때란 없어요. 그 말은 언제나 가장 좋은 때란 걸 말하죠." 어쩌면 매일매일이 그 기회, 그때일지도 모른다. 우린 요즘 밥을 먹으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 넷플릭스 Netflix 영화를 고를 때에도 보디보드에 관해 이야기한다. 알면 알수록 큰 파도를 타는 일은 무섭고 어려워 보인다. 일단은 퀸스 해변에서나 잘하자.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풀잎을 노래한다>를 통해 도리스 레싱의 작품을 접한 이후부터 꾸준하게 읽고 있는 작가군 중에 하나다. 그녀의 글은 전작주의를 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책장 가까이에 두고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싶은 작가는 아니지만 그녀의 책을 펼쳤다하면 다시 닫기까지 여러번 가슴에 생채기를 낸다. 책의 재미를 떠나서 글의 흡입력이 뛰어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도리스 레싱이 그려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언젠가 느꼈을 미묘한 감정들을 끌어내고, 상황과 공간 속에서 갖는 이질감과 날 것들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더 도리스 래싱의 글에 심취하지만 여러번 반복해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 너무나 많은 감정의 결계들이 남아 잔상처럼 머릿속을 떠돌아 다녔다.


책을 펼치기 전에 황인숙 시인이 책의 소개를 했을 때만 해도 여러 산문집이 그러하듯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시인의 말처럼 포근하고 따듯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도리스 레싱의 산문집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는 나는 과감하게 책을 펼쳤다. 책의 첫문장을 읽고, 또 읽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도리스 레싱의 책이라는 것을 간과한 죄(?)로 날 것 그대로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고양이들의 희노애락을 넘어 몇 십년전 우리가 생각한 고양이들과의 혈투에 가까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총만 안들었을 뿐이지 '도둑 고양이'로 명칭되었던 길고양이들이 갖는 수모와 핍박, 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는 더 날 것 같았다.


내가 살았던 시절 보다 더 오래 살았던 도리스 레싱의 시골에서의 이야기는 더 깊은 고양이들의 역사가 그려졌고, 사람과 동물의 대립은 결국 사람 손에 의해 생과 사가 좌지우지 되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나서서 집안을 둘러싸고 있는 길 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나쁜 역할을 자청 할 수 밖에 없었다. 대개는 그런 역할이 살림을 맡아서 하는 엄마나 바깥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들이 맡아서 했다. 그래야 주변에 길 고양이들이 키우는 가축을 해코지 않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일을 해야 하는 인간으로서는 참담했을 것 같다. 글 속에서는 도리스 레싱의 어머니가 그 일을 맡았고, 여러해 동안 어쩔 수 없이 길고양이들을 죽여나갔다. 그런 시간 속에서 길고양이, 집고양이의 수난이 계속되었고, 아끼는 고양이가 피해를 본 적도 있었다. 살림살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막이었지만 고양이들 나름의 삶이었으니 글을 읽는 내내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는 내내 고양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지만 몇 십년전만 해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만 해도 고양이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빴고, 야옹~하고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와 같다하여 불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했고, 더 예뻐 했었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고양이를 애틋해하고,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지나야 했고, 사회적인 인식 또한 바뀌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고양이를 죽이고, 잡아야 하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 뿐만 아니라 고양이의 출산과정이나 다정하게 고양이를 예뻐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양이가 태어나는 순간이나 함께 몸을 부비며 생활한 적이 없어 더 생경한 모습 마저도 도리스 레싱의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져 있다. 산문집 마저도 도리스 레싱 답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키우는 고양이 마저도 아름답고, 부드러운 필치를 그려내는 것 보다 더 깊은 피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와 인간, 시골과 도시에서의 모습들 마저 다른 고양이의 이야기들까지. 벽과 벽 사이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암흑의 시대를 넘어 충만한 아름다움을 함께 하기를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역가가 들려주는 문학 속 달콤쌉싸름한 맛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늘, 기분이 좋다. 익숙한 맛이 주는 반가움과 언제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 고유맛에 자꾸만 그 음식을 찾게 된다. 새로운 맛을 즐기기 보다는 익숙한 맛에 길들여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취향이 변하기 시작했다. 먹지 않았던 도라지와 더덕의 쌉싸름한 맛을 느끼게 되고, 물컹하다고 잘 먹지 않았던 가지도 잘 먹는다. 책 읽는 습관 또한 맛있는 음식을 접하는 것과 같아서 늘 같은 루트로 책에 빠져 든다. 책의 굵직굵직한 가지와 숲을 걸어가는 인물들의 발걸음만 쫓다보니 숲에서 느꼈던 향취나 동물들의 발자국은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책 속의 세밀화와 같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먹고 마시던 것들을 한아름 꺼내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마치 우아한 레스토랑에 들어온 듯 메뉴에는 빵과 수프, 주 요리, 디저트 외에 그 밖에 부록의 이야기 조차도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탄탄하게 메워져 나간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하이디>와 <소공녀>를 비롯해 미국 문학의 대표적인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영화 속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스칼렛 오하라의 앙칼졌던 모습이 엿보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이야기도 나온다. '단추로 끊인 수프'라는 민담과 함께 주 요리로 나오는 거위 구이, 바닷가재 샐러드의 진귀한 만찬도 등장한다. 인물들이 접하거나 먹을 수 있는 음식에서는 그들의 위치와 배경, 한계점이 드러난다.

 

누군가의 매혹적인 데이트의 매개가 되는가 하면 지금 당장 끼니를 때워야만 하는 비정함이 숨어있다. 누군가의 자부심이기도 하고, 지금 이순간만을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 낯선 제목을 가진 작품 보다는 익숙한 제목들이 주는 친근함이 컸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먹고 마시던 음식들은 낯설었다. 어딘가에서도 보지 못했던 음식들과 과자들이어서 차근차근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충 만드는 음식은 먹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있듯 정성스럽게 고아온 음식 또한 섬세하고 깊은 빠져든다. 이 책 역시 또다른 책을 읽는 것 처럼 섬세하고 세밀한 글 덕분인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J. 라이언 스트라돌의 소설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2018, 열린책들)을 펼치면 천재 셰프인 에바가 어린 시절 이도 안났을 때부터 그의 아버지는 이유식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개발한 최상의 맛을 아기에게 맛보이고 싶어서 이유식 조차도 어느 아이와는 다른 레시피로 만들어간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은 아버지의 맛. 책의 초반에 나오는 내용이었음에도 라루스 열정과 사랑이 에바에게 줄곧 전해졌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애잔함 때문인지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읽고 있으니 다시 라루스의 부엌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맛보이고 싶었던 맛이었을 만큼 진귀한 성찬의 이야기는 다시 문학 속으로 들어와 그 이야기를 읽고 싶게 만든다.

 

그중 가장 읽고 싶고, 먹어보고 싶었던 작품은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오 헨리의 <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과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다. 일러스트를 통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맛 볼 수는 없었지만 대체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이것이 상상의 음식인지 아니면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음식에 대한 연유에 대해서. 음식과 더불어 어렸을 때 느꼈던 생각들을 넘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픈 다음 장면에 대한 이야기 또한 책을 더 펼쳐 보고 싶게 만든다. 너무도 유명해 나 한 명쯤 안 읽었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작품 또한 다시금 쳐다보고 싶을 정도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같은 뜻을 가진 단어이지만 어감이 주는 맛이 틀리다. 번역을 하는 이가 아니기에 세밀한 것에 대해 기민하지는 못하지만 번역을 하는 이의 수고로움과 적확하고 새로운 단어에 대한 고충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소설을 한층 더 좋아할 수 있는 내밀한 시간이었기에 더 충만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옛날 이집트에서는 신의 이름에는 신의 정수가 깃들어 있어서 그 이름이 알려지면 신이 힘을 빼앗긴다고 믿었다. 조선 양반들은 본명에 그 사람의 운명이 들어 있다고 여겨서 웬만하면 부르지 않고 자나 호를 따로 지어서 불렀다. 아끼는 자식이나 애인에게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은밀한 애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너무 신성해서, 너무 귀해서, 너무 사랑해서, 마치 귀중한 물건을 서랍 안에 고이 감추듯이 단어들을 독점하고 싶을 때가 있다. - p.2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