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리처드 번스타인의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아모르문디, 2009)와 함께 구입한 책은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 2009)이다. 후자에는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이란 다소 긴 부제가 붙어 있는데, 부제에서 살짝 암시되는 바대로 2004년에 제출된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다듬은 책이다. '자기계발하는 주체'라는 주제 자체가 신선하고도 흥미롭다. 마침 저자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12. 03) 한국 신자유주의가 낳은 ‘자기계발 시민’   

제약업체 직원 오모씨(33)는 매달 한 번씩 숙제를 하느라 골치가 아프다. 사장이 정해주는 책을 읽고 월말까지 독후감을 내는 숙제인데, 매번 책은 바뀌지만 늘 같은 얘기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책은 ‘자기계발서’들이다. 오씨는 “처음엔 이런 숙제를 왜 하는지 짜증났지만, 점점 효율적인 인간으로 바뀌어가는 듯한 나 자신을 보며 놀랐다”고 말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일 것이다. 

이번에 나온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42)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는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이 직장인처럼 자기계발을 하는 주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분석한 책이다. ‘자기계발하는 주체’는 과거의 영업사원에 국한되지 않고 주부, 학생, 어린이 등 모든 사람을 아우른다.

서 교수는 지난 1일 “자기계발이라는 거대한 문화산업이 생겨난 것은 민주화를 계기로 일어난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한국 자본주의는 1980년대 축적의 위기를 겪으며 변신을 시도해 왔지만 노동조합의 성장으로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상황을 바꿔놓았다. 노조의 저항이 약해졌고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른 ‘비전’이 ‘지식기반 경제’와 ‘국가 인적자원 개발계획’이다. 이 말들은 김대중 정권이 벌인 ‘신지식인 운동’을 통해 담론의 장에 진입했고, 국책 연구기관·각종 부처·위원회에서 발간한 백서, 경제학자들의 저술, 기업연구소의 보고서,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기업에서는 팀워크, 전략경영, 지식경영 등 최신 경영기법으로 노동자들을 자기관리하는 주체로 재탄생시켰다. ‘바람직한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리더십 있고, 자기 업무는 물론 대인관계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유연한 노동주체’여야 했다.

이러한 생각은 참여정부 때 공직사회로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정권 당시 본격화된 행정개혁, 그 중 교원평가제가 대표적입니다. 전교조가 10년째 싸우고 있는 것은 이러한 자기계발 주체로의 변화에 대한 저항입니다. 대학은 강의평가제 실시 후 이미 그렇게 넘어갔죠.”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철주야 자기계발하는 시민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다. 반세기 가까이 반공 권위주의에 눌려서 늘 더 많은 자유를 원했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폭 좁은 자유의 대열에 자신을 가두게 된 것일까. 그것이 한국의 민주화가 가진 역설이라고 서 교수는 말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민주화운동이 가졌던 자유화의 꿈이 자본 자유화의 꿈과 유착하며 이뤄진 과정입니다. 반공·훈육사회로부터의 탈피라는 민주화 세력의 정치·문화적 프로그램은 선단식 경영을 통한 ‘회장님 족벌운영체제’를 넘어 기업을 유연화하자고 했던 자본이 가진 자유의 꿈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그래서 진보세력이 갈팡질팡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공장 같았던 학교를 넘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자며 이룬 학교의 민주화가 자율형 사립고이건, 홈스쿨링이건 지금처럼 스스로 인적자원으로서의 능력을 키워야 하는 곳을 낳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능동적 복지’ ‘생산적 복지’로 표현된 국가의 복지 포기도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을 그 사회에 기생하며 공적인 부를 빼앗아가려는 악당으로 몰고, 결국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이게 한다.

서 교수는 자본이 요구하는 ‘미시적인 테크놀로지’가 사회의 모든 영역에 뿌리내리게 된 것이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제 자유에 대한 기대를 접은 듯했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저 역시 현실사회주의 붕괴 후 자유주의와 심각한 불장난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10년쯤 지나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종의 반성문 차원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인터뷰 내내 ‘우울하다’는 말을 반복했던 서 교수. 자유란 아무리 새롭게 상상해도 결국 자기계발을 하는 주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손제민기자) 

09. 12. 02.   

P.S. 저자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는 듯하지만, 경제 불황과 함께 출판계에서 가장 타격을 입은 쪽이 (몇 년간 호황을 누렸던)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라고 하는 걸 보면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자기계발의 주체가 특수한 시대적 조건과 상황의 산물이라면 그로부터의 탈피 또한 그러한 조건/상황과 연동돼 있지 않을까. 거기에 상상력을 보태자면, 가령 '자기파괴적 주체'도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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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음의 사회학과 진정성의 운명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19 09:50 
    사회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문학사회학자라고 해야 하나?) 김홍중 교수의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 2009)이 출간됐다. 엊그제 산 책인데, 어제 한 송년모임에서 우연히 저자와 몇 마디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서문만 읽은 상태라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진 못했는데, 그런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면 몇 개 장 정도는 미리 읽어볼 걸 그랬다. 오늘자 한겨레에 책에 대한 리뷰가 실렸기에 옮겨놓는다. 주로 첫 장인 '진정성의 기원과&#
 
 
turk182s 2009-12-03 09:45   좋아요 0 | URL
얼마전까지 회사에서 개인에게 부자아빠,마쉬멜로,시크릿 등등이 지급 되더군요,
전 물론 안읽었습니다만..자기계발서빠들한테는미안하지만 이런책들보면 종이낭비같다는...
입사동기들이 심심하면 자기계발못하면 못난이 소리듣는다..(저보고 하는얘기?)
하는거보면..
MB가 괜히 만들어진게 아닌듯합니다..

로쟈 2009-12-04 09:16   좋아요 0 | URL
스펙 열풍도 마찬가지요. 벼랑 끝 치킨게임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