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가

나대로의 입장을 표명한 글을 올렸지만, 역시나 '로쟈씨'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정도로 간주되는 듯하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것인데, 서재 활동이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꼴 사납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지지해준 분들이 더 많은 듯싶지만, '안티 로쟈'도 적잖다. 절충책으로 내년(내일)부터는 쓰는 글들을 나의서재 & 즐겨찾는 서재브리핑에만 노출하도록 하겠다. 애써 서재를 찾는 분들만 읽고 가시면 되겠다.  

세밑에 따로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논쟁을 길게 끌고 갈 생각도 없다. 어차피 평행선을 달릴 테니까. 대신에 5년전 바로 이맘때 쓴 글을 리바이벌해놓는다. 아마 모스크바통신에 '서비스란 무엇인가'란 제목으로 올려놓았던 듯하다. 모스크바통신을 비공개로 전환한 이후에도 한번 수정본을 올려놓았을 텐데, 다시 찾아보지는 않았다. 비정규직 착취 문제나 인터넷서점의 '착취적' 물류 시스템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가름한다.   

2005년 새해가 밝았다. 어제의 일이다. 러시아는 어제부터 1월 9일까지가 공식 휴일이다. 연말에 개정된 법에 따라 그렇게 됐는데, 덕분에 다음 한 주 내내 생활이 불편할 듯하다. 일단 휴일이면 기숙사가 있는 본관 건물의 중앙통로를 막아놓는 탓에 전철역이건 인터넷카페건 밖에 좀 나가자면 400미터쯤을 돌아나가야 한다. 게다가 인문대학 구내의 PC방이 놀기 때문에 디스켓을 사용하려면 카페막스(인터넷카페)에 가서 매번 10루블(400원)을 더 내야 한다.

10시간짜리 인터넷 이용료는 이미 지난달에 400루블에서 550루블로 대폭 올랐다(러시아는 인터넷 이용료가 더 비싸지는 드문 나라일 것이다). 그렇다고 1시간 단위로 끊자니 최고 90루블까지 하므로 (왜 이렇게 비싸냐고 따지는 대신에) 결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550루블을 주고 끊는 수밖에 없다(10시간을 한 달 이내에 써야 한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이라는 카페막스도 12월 31일에는 문을 닫았고, 듣기에 어제도 단축영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연초인바, 다시금 새겨둘 것은 “착취가 없으면 서비스도 없다”는 문구이다(이건 거꾸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서비스가 없으면 착취도 없다.” 이걸 운동주의적인 문구로 바꾸면, “서비스를 없애야만 착취도 없어진다.”).

자본주의화(민영화) 이후에 러시아 또한 ‘서비스(=착취) 없는 사회’에서 ‘서비스(=착취) 사회’로 이행해가고 있는바, 아직은 초보적인 구석이 많아서 어느 상점이나 식당에서건 불친절은 예사로 경험하는 일이다(그러니까 아직도 ‘서비스’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러시아와는 반대로 ‘서비스 사회’에서 ‘서비스 없는 사회’로 얼마간 거꾸로 이행해간 나라들도 있으니 영국과 프랑스 같은 서유럽의 ‘선진국’들이다(서로 비슷하게 ‘불편한’ 나라인 영국과 러시아는 둘 다 석유 수출로 먹고 산다는 점에서도 처지가 닮았다).

지난달에, 인구가 고작 100만 명임에도 영국의 제2도시라는 버밍엄에 유학중인 후배가 모스크바에 잠깐 들러서 전해준 얘기에 따르면, 멀쩡한 지하철이 예고도 없이 안 다니고, 버스 기사가 운전중에 손님들에게 그냥 다 내리라고 요구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일반 시민들은 거기에 익숙해서인지 곧바로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다고 한다(후배의 말이 프랑스는 이런 영국보다도 한술 더 뜬다고). 일반 교통요금이 모스크바보다 10배는 더 비싼 도시에서(전철요금이 모스크바가 400원인 데 반해, 버밍엄은 4,000원이다, 그것도 한 구간이) 그런 불편을 겪으면서도 불평 없이 살아간다는 건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그런 식으로 서비스가 없는/부족한 만큼 착취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만큼 ‘인간적’일 거라는 것. 적어도 ‘인간적인 사회’를 ‘착취 없는 사회’로 우리가 정의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서비스’란 무엇인가? 외래어로서 이미 국어사전에도 올라가 있는 이 말의 사전적 정의는 먼저, “생산된 재화를 운반/배급하거나 생산/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함”이란 뜻이다. 서비스 없는 사회, 즉 ‘보다 인간적인 사회’는 그런 재화나 노무를 제때에(혹은 아예) 배급/제공하지 않는 사회이다(생산자/노동자에겐 쉴 권리가 있다!). 당연히 ‘인간적인 사회’는 ‘없는 게 많은 사회’이며 ‘줄이 긴 사회’이다(‘인간적인 사회’가 고려하는 것은 인간의 필요(need)이지 욕망(desire)이 아니다). 부족한 재화나 노무를 배급/제공받기 위해서 ‘평등한’ 인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줄을 서는 것밖에 없다. 이 ‘줄 문화’를 전면적으로 다룬 문학작품이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인 소로킨의 <줄>이다(우리말로는 <세계의 문학>에 전재된 바 있는데, 단행본으로는 출간되지 않았다).  



모스크바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아직도 러시아에는 상점에서의 줄서기 문화가 남아있으며(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모스크바에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기 위해서는 1시간 이상씩 줄을 서야 했다. 그때 유학왔던 친구는 그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한번에 3-4인분씩 폭식을 하곤 했었다. 하긴 지금도 맥도널드에 가면 10-15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2004년판 회화교재에조차도 ‘상점회화’의 핵심으로 ‘줄서기’가 다루어진다. 가령, “당신이 (이 줄의) 마지막 사람입니까?”라거나 “제 자리 좀 맡아주세요” 같은 표현이 그런 것들이다. 당신 생각에 이 (인간적인) ‘줄 서기’가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왜냐하면, 자기 자리를 맡아달라고 해놓고 한 번에 여러 군데에 줄을 서기 때문이다(물건을 한 종류만 사는 게 아니므로).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줄을 짧게 서기 위해서는 절묘한 시간 계산과 순발력이 요구된다.

오랜 줄 문화의 경험 때문인지 러시아 사람들은 웬만한 줄서기에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는 듯하지만, 이런 걸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저절로 욕이 나온다. 가령,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짐을 들고 2시간씩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의 그런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하는데(거기에 익숙한 사람은 1시간 내로 입국장을 빠져나올 경우 ‘만세!’를 부른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국제공항이야말로 가장 ‘사회주의적’이며,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만하다. 일반적으론, 그걸 뭉뚱그려서 ‘러시아적’이라고도 하지만, 그건 불충분한 일반화이다. 요는 그러한 ‘인간적인’ 태도의 전제인바, 그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내가 왜 굳이 당신한테 애써 봉사해야 하는가?”이다(“당신이 그렇게 잘났나?”). 인간은 평등하지 않은가?!

거기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서비스’의 두 번째 사전적 의미인바, 그것은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듦”을 뜻한다. 이걸 달리 ‘봉사’ 혹은 ‘접대’라고 말한다. ‘봉사’란 ‘접대’를 순화시킨 말인바,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서비스가 없는 사회’로서의 ‘인간적인 사회’란 ‘접대가 없는 사회’이다. 그리고 그와는 대척점에 놓여 있는 ‘비인간적인 사회’, 돈만 있으면 ‘서비스 만땅’인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다. 예컨대, ‘돈 있는’ VIP는 모스크바 공항도 귀빈실을 통해서 바로 빠져 나간다. ‘자본주의 러시아’에서 2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건 ‘돈 없는 사람들’이지 자본가들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기본 원료는 봉사료/접대료이다(그래서 ‘봉사비/접대비’가 된다). “난 네가 돈을 주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가 자본주의의 캐치프레이즈다. 이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이현세 만화의 구호이자(‘까치’의 대사) 이장호의 <공포의 외인구단> 주제가를 패러프레이즈한 것인데, 그러한 패러프레이즈가 암시하는 바는 이 둘이 동형적이라는 것이다. 둘 모두에 걸려 있는 것은 ‘욕망(desire)’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욕망의 무한성에 대응하는 지표이다. 때문에 “돈을 그 정도 벌었으면 됐지”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동형성을 간과하는 태도가 ‘순진한 태도’이며, ‘소녀적 태도’이다. 즉,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에 감동하는 태도가 ‘소녀적 태도’인바, 물론 이것은 곧 ‘아줌마적 태도’로 전화하게 된다. “돈이나 벌어오면서 그런 소리를 해!”

자본주의의 기본 원료가 봉사/접대인 한에서, ‘접대 없는 자본주의’란 말은 ‘인간적인 자본주의’만큼이나 모순형용이다. 혹은 (지젝이 즐겨 인용하는) ‘카페인 없는 커피’나 ‘섹스 없는 섹스’ ‘아편 없는 아편’ 정도쯤 될까? 그렇다면, 접대의 한 유형이자 대표종(種)으로서의 성접대는 어떤가? 몇 달 전부터 한국에서는 새로운 성매매 방지법이 발효/적용 중인 듯한데, 좌파라면, (개량주의적/타협적 좌파가 아니라) 적어도 자본주의의 타파만이 인간적인 사회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근본주의적/비타협적 좌파라면 그러한 법안에 대해 반대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존권’을 주장하는 접대여성들(성노동자들)이나 포주들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 말이다. 

“우리가 레닌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이다. 즉 진심으로 빈민의 곤경을 동정하는 어떤 선한 신부를 동료 볼셰비키가 칭찬하는 것을 들었을 때의 레닌처럼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은 볼셰비키가 필요로 하는 것은 술에 취해 농민들에게서 부족한 자원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도 강탈하고 그들의 아내들을 강간하는 신부들이라고 논파했다. 그들은 신부가 객관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 농민들로 하여금 분명히 자각하도록 한 반면, ‘선한’ 신부들을 그들의 통찰을 어지럽혔다는 것이다.”(지젝, <이라크>, 198쪽)

조금 번안해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타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연말 보너스를 챙겨주는) ‘선한’ 자본가들이 아니라 (보너스는커녕 월급까지도 떼먹는) ‘악독한/악랄한’ 자본가들이다(다행히도/불행히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자본가들이야말로 노동자들로 하여금 정말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자각하도록”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사정은 성접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의 표본으로서의, 성의 무한 상품화이고 성노동자에 대한 악독한/악랄한 착취이다(군산에서인가 이리에서인가 시범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그러한 착취만이 전선(戰線)을 교란시키지 않고 분명하게 해줄 것이기에.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지젝은 금융 투기와 인도주의적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소로스 같은 인물들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시장 폭리자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이다(아이러니컬한 것은 헝가리 출신이자 칼 포퍼의 제자임을 자임하는 그 소로스가 하는 ‘인도주의적 활동’에 구 공산권 국가들의 “문화적이고 민주적인 활동을 위한” 재정지원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고, 러시아에서 출간된 지젝의 책들도, 전부는 아니지만, 이 소로스 펀드의 지원하에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지젝이 지난 미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된 사실에 전혀 유감스러워하지 않은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러한 레닌주의적 정신에 충실할 때, 이라크 파병(연장)에 반대하는 것은 개량주의적 좌파들, 혹은 얼치기 좌파들의 행태이다(물론 반대하는 척할 수는 있다). 오히려 적극 찬성해야 마땅하다(그래야지 ‘자본주의와의 전쟁’도 빨리 끝장을 볼 게 아닌가?). 즉, 친미 수구주의자들과 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 그건 성매매 방지 법안을 놓고서도 마찬가지이다. 포주들과 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 비록 전혀 다른 이유/계산에서이긴 하지만.(해방공간에서 제출된 한반도의 신탁통치안에 대해서도 ‘반탁’에서 돌연 ‘친탁’으로 돌아선 공산주의자들의 행태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적과의 동침’은 레닌주의이건 마오주의이건 간에 A급 좌파의 기본 ‘전술’이다(수단으로서의 모든 ‘전술’을 정당화하는 건 목적으로서의 ‘전략’이다).

반면에, 성매매/성접대에 반대함으로써 ‘접대 없는 자본주의’를 희구하는 태도는 ‘인간적인 자본주의’, 혹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용인하는 태도이다(‘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불가능한 만큼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도 딱 불가능하다). 그것이 소위 개량주의적/타협적 태도이며, ‘카페인 없는 커피’처럼 ‘무해한 자본주의’(적어도 ‘덜 유해한 자본주의’)를 우리가 가질 수 있다고 믿는 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량주의적 좌파(가령,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와 자유주의자(가령, 고종석) 간의 간격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가령, 고종석은 ‘마약 없는 마약’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지지하며, ‘섹스 없는 섹스’ 사이버-섹스를 지지할 법하다. 민노당도 마리화나와 사이버-섹스를 지지하나?). 적어도, 근본주의적 좌파나 우파(수구반동)와 비교해본다면 말이다.

이상에서 ‘서비스’ 문제에 대해 덧붙인 몇 마디는 내가 연말에 읽은 몇 개의 글을 따오기 위한 ‘서론’인바 이 또한 일종의 ‘서비스’이기도 하다. 서비스의 세 번째 사전적 정의란 “장사에서, 값을 깎아 주거나 덤을 붙여 줌”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덤으로서의 군말이었던 셈. 헤겔이 이미 지적한 바이지만, 모든 ‘서론’은 완전한 체계로서의 본론에 잉여적이란 의미에서 ‘군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어떤 상품의 제값의, 제대로 된 상품이라면 거기에 들러붙는 서비스 상품은 불필요한 잉여이다.(*그 서비스는 서비스하지 않는다.)  

0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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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10-01-01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게 올해 제가 내린 결론이네요. 나이가 드는 건지 상식과 원칙, 예의, 친절 이런 것에 더 공감이 갑니다.

로쟈 2010-01-01 10:12   좋아요 0 | URL
자본주의 유토피아도 상식과 원칙, 예의가 지켜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지요. 대신에 친절은 한 것 같아요. 서비스 정신...

Joule 2010-01-0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세 받으신 걸로 그분들께 장안동식 풀코스 마사지 쿠폰 한 장씩 돌리시는 건 어때요?

로쟈 2010-01-03 14:14   좋아요 0 | URL
쿠폰도 있나 보군요. 글쎄요, 싫어하시지 않을까요...
 

알라딘 불매운동과 관련하여 '로쟈'란 이름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기회주의적 지식인'의 전형이며 '코메디언'이라는 게 내가 얻은 새로운 별칭이다. 생각의 자유가 있고 명명의 권리가 있을 터이다. 사실 이번 사안에 긍정적인 면이 없진 않다. 한 임시직 노동자의 '부당해고'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로 '승화' 혹은 '성체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일 것이기에(해고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선 아직 모르겠다. 법률적 자문이 필요할 텐데, 알라딘 내부에선 그럴 만한 능력이나 의사를 가진 분이 없는 듯하다. 역시 좁은 동네다). 비록 아직까지는 알라딘 '내부'에만 국한된 일이긴 하지만.  

알다시피 알라딘쪽에선 담당자와 대표가 입장을 표명했다. 알라디너들에게 사과의 뜻도 밝혔다. 물론 충분할 리가 없다. 특히나 '질긴 놈이 이긴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소나기나 피하자는 임시방편의 꼼수요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할 것이다(용산참사 합의안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해고 노동자에게 백배 사죄하고 당장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그게 불가하다면 이런 사단이 벌어지게 만든 인사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어 면직시키는(여차하면 해직시키는) 조치도 고려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조유식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니 이왕지사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가 된 만큼 출판계 전체로 문제를 확장시켜볼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로... 그렇게 되지 않고서야 충분할 리가 없다. 아니 충분해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노동자를 해고시킬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장기근무를 약속받고 한달이나 묵묵히 헌신한 노동자를.      

불의를 보고 묵과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양심'의 기본일 터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행동하는 양심'은커녕 '양심에 털난 인간'이다. 나는 뭐라고 말했던가?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임시노동직이 한 달을 일하고 해고됐어요. 몇 사람이 이걸 문제로 지적했고 알라딘 불매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저는 불만스러웠던 게, 사실 지금의 한국사회가 다 그렇게 되어있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놀랍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알라딘에 항의를 하고,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게 웬 순수한 가장인가, 이게 과연 시급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불만스럽다고 한 건 비정규직(임시직)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이나 부당한 처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유독 알라딘의 경우만, 그것도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사례를 통해서 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가란 점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전략적인 판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내지는 이보다 더 중차대한 문제는 없다는 '순수한 가장'을 통해서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면, 피터 싱어의 예를 들어보자.  

출근길마다 작은 연못가를 지난다. 날씨가 더울 때면 가끔 연못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겨우 무릎까지 물이 차이 염려는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춥고, 시간도 이르다. 그런데 연못에서 첨벙거리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주 어린아이다.(...) 아이는 물 밖으로 겨우 몇 초 동안만 고개를 내밀 수 있는 모양이다. 뛰어 들어가 구하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것이다. 물에 들어가기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하지만 며칠 전에 산 새 신발이 더러워질 것이다. 양복도 젖고 진흙투성이가 되리라. 아이를 보호자에게 넘겨주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틀림없이 지각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21쪽.

물론 당연히 물로 뛰어들어야 옳다. 이것이 아마 불매운동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시는 분들의 입장일 것이다. 적어도 인간으로서 측은지심을 갖고 있다면, 신발이 더러워지고 양복이 젖고 하는 건 핑계가 될 수 없다. '양심에 털난 인간'은 이러한 구호의 요구를, 연대의 손길을 외면하는 인간일 터이니, 그러면서도 인문학을 떠들어댄다면 낯짝도 두꺼운 사이코패스라 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적 상황에서 아이가 둘이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오직 한 아이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혹은 정말 불운하게도, 아이들이 떼로 빠져 있다면? 싱어도 자신의 가상의 사례에 이어서 바로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국제아동기금 자료를 보면, 매년 거의 1천만 명에 달하는 5세 이하의 아동이 빈곤 때문에 죽는다." 그러니까 한 아이가 빠져 있는 게 아니라 1천만 명의 아이가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가깝다. 한국 실직 노동자만 하더라도 최소 수십 만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측은지심에 의해 발동한 즉각적인 행동의 효과에 대해서 재고해보도록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가령, 우리의 도덕감정은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을 동정하도록 이끌지만, 차가운 이성은 기회비용을 고려한다. 10명의 아이가 빠져 있는데, 10명이 달려가 가까이에 있는 한 아이에게만 매달려 있다면 '효과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한 사람이 아이를 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다른 아이를 구하거나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실직이 문제가 되는 건 보통 빈곤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알라딘에서 해고된 김종호씨는 현재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니까 최악이라고 볼 순 없다. 요즘엔 가족을 부양하면서 자신의 학비까지 벌어야 하는 대학생들도 드물지 않다). 다시 싱어를 참조하면, 세계은행의 절대 빈곤 기준은 매일 1.25달러이며, 그 이하의 수입밖에 없는 사람의 수가 지구상에는 14억명 가량이 있다. 반면에 10억명의 인구 정도는 "오늘날 일찍이 없었던, 있었더라도 왕이나 귀족들 정도나 누렸을 법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다른 게 '풍요'가 아니라 냉난방이 잘 갖춰져 있어서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정도면 '귀족적 호사'다.   

문제는 이 '귀족들' 또한 이 정도의 풍요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데 있다. 하여 '사람사는 세상'이 되려면, 14억의 빈곤도 해소해야 하지만, 10억의 욕구불만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전선은 이중적이다. 부당한 사회적 관계도 철폐해야 하지만, 동시에 가치있는 삶의 모델도 새롭게 주조해야 한다. 단지 빈곤층이 중산층이 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오늘날 자본가와 노동자가 같은 TV드라마를 보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늘씬한 아이돌들을 보고 똑같이 므흣해한다면, 그들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한국사회에서 '먹고사니즘' 이데올로기의 극복 없이는 대안도 진보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배부른 소리 하는 게야"라는 말들이 먹고사니즘의 구호다("책이 먹고 사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어?"라는 물음도 그 변이형이다). '생존' '생계'라는 프레임에는 진보/보수, 좌파/우파가 따로 없다. 한쪽에서 '생존권 투쟁'을 말하고, 다른쪽에선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한다.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모두가 '생명정치' 패러다임 안에서 움직이며, 그런 점에서 적대적으로 공모한다. 물론 생존이 중요하고 먹고 사는 일이 소중하다. 하지만, 가치있는 삶, 품위있는 삶이 생존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단견이다(이곳이 절멸수용소가 아니라면. 아니 절멸수용소에서도 사람들은 의미를 찾고자 했다). 먹고 살 만해야 책도 읽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편견이다(그래도 책을 읽는 노동자가 무식한 자본가보다야 우월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생존에의 욕구뿐만 아니라 가치있는 삶에  대한 욕망 또한 갖고 있으며 이것은 언제 어디서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 욕망을 안 갖고 있다면 배워야 한다. 욕망하는 법을... 

뭔가 충분히 '해명'하려고 했지만, 끝도 없는 일일 듯싶다. 그간에 나의 생각과 편향에 대해 '적게' 말해온 편도 아니건만, 오해와 오용은 불가피한 듯하다. 그러한 오용이 몇몇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면 말리지 않겠다. 나는 다만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 정도를 말하고 싶다. 물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하는 것, 부당하게 모욕받은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것, 당연히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길은 여러 가지다. 그리고 노자의 말대로 길흉화복은 길게 두고 봐야한다. 화 속에 복이, 복 속에 화가 엎드려 있다고 하니까. 좋은 괘를 얻었다고 희희낙락하지 않고 나쁜 괘를 얻었다고 하여 좌절하지 않는 것이 <주역>의 독법이라 한다. 이 또한 기회주의적 독법일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기회주의에 대해서도 연구해봐야겠다. 우선은 점심을 먹고서... 

0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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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하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31 19:29 
    나대로의 입장을 표명한 글을 올렸지만, 역시나 '로쟈씨'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정도로 간주되는 듯하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것인데, 서재 활동이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꼴 사납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지지해준 분들이 더 많은 듯싶지만, '안티 로쟈'도 적잖다. 절충책으로 내년(내일)부터는 쓰는 글들은 나의서재 & 즐겨찾는 서재브리핑에만 노출하도록 하겠다. 애써 서재를 찾는 분들만 읽고 가시
  2. 로쟈님께
    from nobami 2010-01-01 23:04 
    가끔 들러 고맙고 유용한 정보도 얻어가고 책구경도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알라딘 블로그 생태계가 제 서식처는 아닌지라 로긴하는 일도 거의 없지요. 알라딘 문제는 레디앙에 실린 김종호 씨 투고를 통해 처음 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이구 알라딘에서도 이제 책 못 사겠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만 했습니다. 김종호 씨 글만 읽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대형 인터넷 서점들이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거나 거기서 불거질 수 있
 
 
Mephistopheles 2009-12-3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상 이 페이퍼 때문에 점심식사 시간이 늦으신 듯...맛나게 드세요.^^

히드라 2009-12-3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로쟈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동감합니다. 세상은 넓고 싸울 것은 많은데, 왜들 자기가 싸우는 대상이 우선적이고 자신의 싸움 방식만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로쟈님이 근래 얻은 유명세의 질곡인 듯....^ ^ (저한테는 아무도 알라딘 불매운동에 대한 입장을 묻지 않으니, 아주 편안~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3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인터넷 서점이 물류를 외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자들이 몰랐고 이제와 새삼 깜짝 놀랐는가' 하는 점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많은데, 가장 크게는 내게는 알라딘이 진보(?)기업이 아니고 별로 독점적으로 책을 구매하는 곳도 아니라 그런듯도 싶어서 그저 조용히 있으려고 합니다.

라주미힌 2009-12-3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직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닥 모아진 의견도 없어보이는데
(어떤(?) 기준으로)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는 몽둥이질을 하는 것이 놀랍네요.
알라딘에 제대로 타격하지 못한 화풀이를 '기회주의적인 알라디너들' 찾아내서 푸는 걸로 밖에 보이질 않네요.
알라딘 서비스에 불편함 없이 잘 사용하던 사람들끼리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들의 순수함에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큰 벽을 느끼고 있기에, 계속 구경꾼 노릇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9-12-3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할 때는 도대체 얼마나 강도가 강해야만 합니까? 알라딘 외주업체에서 한달 일하고 잘린 김종호씨는 강도가 너무 약하니 최소한 수십명 정도의 집단해고라도 발생해야 그때서야 문제 제기가 가능한겁니까?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는데 강도를 따지고 게다가 비정규직 이라도 실직자에 비하면 '호사'다 라는 식의 논리(?)까지 피시는데,, 입장표명이 변명에서 자꾸 궤변으로 변질되는거 같아 좀 안타깝다는..(푸하님 의견에 따라 댓글 약간 수정했고 추가의견은 제 서재에 올렸습니다.)

푸하 2009-12-31 14:45   좋아요 0 | URL
(제가 볼 때는) 로쟈님의 주장과 충돌하는 선명한 논점을 말씀해주셨습니다만, 이 사안에 대해서는 공격성은 낮추고 좀 더 건조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키보이 2009-12-3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불매운, 이것도 소위 말하는 윤리적 소비로군요.

불매운동자체는 무척 정당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에 동조하는 방식은 여러모로 다를 테고, 그걸 빌미로 피아를 나누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다른 곳도 아닌 '알라딘' 불매운동인가에 대해, 이것이 어떤 개별적인 사건으로서 완결적인가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가는 고민해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라도 철저하게 윤리적이고픈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본적'으로 고민하고픈 사람이 있는거 겠죠.

방향은 같아도 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알라디너분들은 부디 두루 살필 수 있길 바랍니다.

biosculp 2009-12-3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이나 행동의 강도가 다를수 있을텐데요.
이론을 가지고 강하게 토론을 할수 있겠지만
정답이 없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서로 상처를 피할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합니다.
원샷에 해결될 세상사도 아니고,
더 고민하고 더 얘기해야 될 문제들, 그리고 쉽게 해결될수 없는 문제를 강하게 얘기하면 너무 힘들어지죠.

마태우스 2009-12-3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불매운동 관련 페이퍼를 쭉 읽어왔는데요
왜 갑자기 로쟈님이 타깃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로쟈님 때문에 불매운동이 잘 안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루체오페르 2010-01-01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이런 때는 법대로 하는것도 필요하고 전문가, 공인노무사같은 분들의 의견이 아쉽네요. 어디 안계신가요? ^^;
2.일단 불매운동에 대한 제 의견을 밝혀야 한다면 정말 간단하게 결과만 말한다면...
'중립' 입니다. 뭐,속에서야 이생각 저생각 나름 정리돼고 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공식적으론요.^^; 여튼...불매운동이란 방식에 긍정을 합니다만,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에게 너무 거친것같네요.
볼테르의 '나는 너와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네가 비난을 받는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위해 싸우겠다' 는 정신은 참 어렵군요. 여전히 불매가 진행되는 사태 자체에 대해서는 중립인데 이렇게 불매운동의 방식에 대해 불편해하는 의견을 밝혔단 이유로(제게는 처음으로) 단지 반대편으로 단정지어지고 평가를 받는다면 어쩔수없죠,뭐.
3.2009년 덕분에 많이 배우고 즐거웠습니다. 로쟈님,2010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로쟈 2010-01-0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적인 책임을 묻을 수 있는지, 아니면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아니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사회변혁의 단초로 이슈화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모호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씩 정리해볼 수 있을 텐데, 진전이 없는 듯해요...

nanousee 2010-01-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가끔씩 들러보는 로쟈의 서재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을 접한 느낌은 무척 씁쓸하네요.
잘 모르지만 제겐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여정에 손안에 쥘만한 나침판과 같은 곳이었는데 맥락을 무시하고 상식도 없이 불한당 같은 목소리로 깃발을 휘두르며 다함께 나아가자 외쳐대는 모양새여서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으로서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부단한 투쟁을 해나가야 겠지만 저같은 사람에겐 위축된 로쟈의 서재에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더 큰 슬픔입니다. 로쟈님을 기회주의자다 뭐다 라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제겐 그 분들이 완장찬 깡패들로 밖에 안보이네요..그 분들이 저같은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계신다는게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만들구요...진전없는 슬픔만 또 하나 덧붙여서 연초부터 죄송합니다. 로쟈님, 이견이 없는 블로그를 꿈꾸신게 아니라면 무심히 큰 그림을 보시면서 제 손 안에 쥐고 가끔씩 펼 수 있었던 나침반을 닫아주지 마시길 빕니다.

토탈리콜 2010-01-0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를 대통으로 뽑은 나라에서 이모든 얘기가 씨나락 까먹는 얘기가 아닌지..ㅋㅋㅋ

책읽는아저씨 2010-01-0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위 국가권력이 남용하는 공권력도 문제지만, 약자들의 대변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폭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게 정당한걸까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권력자가 남용한 폭력은 정당한걸까요? 아니면, 국가의 공권력 남용에 맞섬으로 발생된 사회적 약자들의 폭력은 정당한걸까요? 정말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은 둘 다 폭력이라고 볼 겁니다. 오히려 저는 가끔이지만, 정말 그들이 약자들을 대변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그들은 무서운 자기 확신을 가진 자들이 아닐까 하는.. 여하튼, 로쟈님을 아끼는 사람으로써, 블로그를 계속 볼 수 있게 되기를...

푸하 2010-01-02 21:47   좋아요 0 | URL
지금 이 상황이 사회적 약자들의 폭력이라고 보시는데 전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세세하게 보지 않으시고 말을 하시는 것 아니신가요? 그렇다면 브릿슬코파인님의 말씀이 폭력일 수 있습니다. 좀 더 상세히 상황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책읽는아저씨 2010-01-03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이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먼저 이 상황을 폭력이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폭력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낸것 뿐입니다. 기업이 한 개인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단순한 말이었고, 그 개인이 저항하는 가운데 기업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예기치 못한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었죠.

사람은 생각이 다르니 건설한 이야기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매도하거나 공격하는건 온당치 못합니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당신의 생각은 이러하구나..' 이렇게 접근해야지, 누군가를 계도할 대상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고, 소통이 가능합니까?

그리고 상대방의 글이 의미를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읽는 이는 더더욱 다르게 해석할수도 있습니다. 그런 걸 다 감안하고 상대방과 이야기해야 하는게 아닐까요? 무작정 단정짓고 이야기하다 보면,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오해하신 부분이 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저는 생각이 다 다르다 해도, 이 세상은 함께 살아가나는 곳이라 여깁니다

푸하 2010-01-03 05:29   좋아요 0 | URL
제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말씀을 드린 점 죄송합니다.

로쟈님의 페이퍼 내용과 브릿슬콘파인님의 댓글 내용에서 나타나는 맥락(제가 이해한 바로는)에서 저는 브릿슬콘파인님의 '단순한 의미에서의 폭력'이라는 말씀과 엮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판단이 맞다면 제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로쟈님과 의견이 다른 몇 몇 서재인들이 '매우 심한 분'도 있지만 대부분 상대의 글을 열심히 읽고 그 뜻을 정확히 헤아려 의견을 내시는 분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런 점에서 몇 몇 분들이 그 내용과는 다르게 매우 공격적인 언사로 로쟈님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저기 위에 제가 단 '정군'님에 대한 댓글에서도 나타날 거에요. 여튼 저는 그런 '공격성'은 폭력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좀 더 깊은 곳에서는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려는 욕구도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욱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상황이 복잡하고 현실이 애매하지만 저는 현재 로쟈님과 다른 분들의 다툼이 깊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의견교환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여튼 제가 짧은 글로 말을 함부로한 점 사과드립니다. 제 과제가 끝나면 좀 더 정돈된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네요.
 

1월의 읽을 만한 책을 꼽아본다. 아, 이제 2010년대로 접어든다! 새해를 맞이하는 감상은 별게 없지만, 2010년대라고 하니까 느낌이 좀 다르긴 하다. 2010년대가 다 가기 전에 50줄로 접어들 걸 생각하니 약간은 어이없기도 하고(!). 부지런히 읽고 쓰지 않고서야 반평생 날려먹기 십상이겠단 생각도 문득 든다(아니 반평생은 벌써 지났지 않나?!). 본전도 찾기 어려운 나이 얘기는 접어두고, 그냥 내달에 읽을 책들을 꼽는 걸로 해야겠다. 찾아보니 벌써 세 번째 '1월의 읽을 만한 책'이다. 한 열 번쯤 하다보면 감개가 무량할 수도 있겠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책은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문학동네, 2009)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작가의 신작이니 따로 소개가 필요하진 않겠다. 가족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이라고 하니, 슈퍼베스트셀러 <엄마는 부탁해>와 연관지어 볼 수도 있겠다. 신경숙씨는 이렇게 적었다.  

<너는 모른다>는 정이현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데 그녀의 전작들과는 다른 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경쾌하고 아포리언적인 느낌이 줄어든 대신 삶에 대한 성찰이 깊이 있게 담겨져 있다. 추리소설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계속 뒤가 궁금해서 읽히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가족소설이지만 누구 한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오월의 어느 일요일 한강변에 남자 시체 한 구가 떠오르고 과연 그가 누구냐! 하는 질문을 가지고 출발한 소설은 통속적인 기대를 저버리고 곧장 가족 이야기로 진입한다.

단숨에 읽히는 소설인 듯. 마찬가지로 단숨에 읽어볼 만한 소설로는 김윤영의 <내 집 마련의 여왕>(이룸, 2009)도 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데, 말을 붙이자면 '부동산 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리고 <걸프렌즈>(민음사, 2007)로 등단한 작가 이홍의 경장편 <성탄 피크닉>(민음사, 2009). 소개기사를 읽으니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608호에서 살인에 이은 전기톱 시체 유기 사건이 벌어진다." 시체와 아파트 얘기를 버무린 '강남 소설'인 듯하다. 거기에 작가 황석영도 인터넷에 연재한 <강남몽(夢)>을 곧 출간할 거라고 하므로, 새해엔 '강남'이 새로운 소설 트렌드로 자리잡을지 궁금하다(아, 시에서는 이미 전사가 있었다. 유하의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역사  

이덕일씨가 꼽은 역사분야의 책은 박홍갑 외, <승정원 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산처럼, 2009). 조선왕조가 보기 드문 '기록 국가'라는 건 잘 알려져 있는데,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대표적인 기록물이라 한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보니 의외로 일반 독자를 위한 관련서가 없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런 결핍을 채워주는 듯싶다. 추천의 변은 이렇다.

<조선왕조실록>이 여러 사료를 종합 편찬한 기록이라면 <승정원일기>는 가공하지 않은 1차 사료이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때 조선 전기의 것이 불타버려 후기의 것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전체가 남아 있는 <조선왕조실록>보다 5배나 방대하다. 또한 사관의 평이 들어있는 <조선왕조실록>은 국왕의 열람이 금지되었지만 <승정원일기>는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했다. <승정원일기>를 읽으면 흡사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자세하다. 그러나 방대한 내용의 일부만 번역되었기에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책 <승정원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는 이런 난점을 해결하면서 <승정원일기>의 방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인상 깊게 취합해 전해준다.

사실 나는 <조선왕조실록>도 읽어본 바 없으니 이 참에 <실록>도 같이 손에 들어봐야 할는지 모르겠다. 이미 박시백의 만화로도 출간돼 있지만, 한권만 읽는다면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웅진지식하우스, 2004)이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다. 신간으론 이한우 기자의 <조선사 진검승부>(해냄, 2009)도 눈에 띈다. '진검승부'라고 돼 있지만 주로 조선사 '뒷담화'를 다루고 있는 듯하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물푸레, 2009). 철학서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심리학 책이지만, 철학분야에서 다루는 듯하다. 취지는 이렇다.  

프로이트 이래로 심리학자들은 부정적 심리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조명해 봄으로써 그 본성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이제 긍정적 심리학의 출현은 자신의 미덕 강점에 초점에 맞추어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방법을 연구한다.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적 심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력 극대화가 행복, 즉 유데모니아를 이루는 길이라는 철학적 인간학에 기초를 둔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한데, 찾아보니 <긍정심리학>(물푸레, 2006)이라고 나왔던 책과 제목이 같다. 목차가 약간 다른데, 짐작엔 재편집한 듯하다. 원제는 ‘진정한 행복(authentic happiness)’. 그러고 보니 <완전한 행복>(물푸레, 2004)란 타이틀로도 나온 적이 있다. 역자가 바뀐 것으로 보아 번역이 좀 안 좋았던 듯. 어쨌든, 재탕에 삼탕쯤 되는 책이다. 책에 대한 거듭된 '긍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긍정심리학'이란 용어는 저자가 1998년부터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심리학에 열광하는 한국의 독자층이 건재하는 한 '긍정심리학'이란 용어도 자주 회자될지 모르겠다.

 

심리학 책만 골라놓고 넘어가기엔 좀 섭섭하기에 철학책도 몇 권 고른다. 대신에 무게잡는 철학서라기보다는 곁가지 철학서들이다. 프랑스 저자들이 쓴 <잘난 척하는 철학자를 구워삶는 29가지 방법>(살림Friends, 2009)은 제목과 표지가 주는 인상 그대로다. 개인적으론 어쩌다 보니 책에서 언급되는 주요 철학자들에 대한 해설 집필에도 참여했는데, 내가 받은 인상은 '프랑스식당에서 경험하는 프랑스 요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적은 추천사.   

철학자들과의 저녁 식사는 어떤 자리일까? 여기 맛깔난 철학 재담의 풀코스 성찬이 있다. ‘잘난 척하는 철학자’를 구워삶을 만한 ‘아는 척하는 철학’의 진수가 펼쳐진다. 교양 만점이다. 더불어 ‘옆집 여자’에게 슬쩍 말을 거는 비법까지 챙길 수 있다. 이렇게 많이 알아도 되는 것일까?

프랑스식 저녁식사에 '적응'할 수 있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여담이지만, 공저자 중의 한 사람인 미셸 엘트샤니노프는 파리1대학의 철학과 교수이면서 주로 러시아 사상가들이 전공인 듯하다. <도스토옙스키: 문학과 철학> 같은 책도 쓴 걸로 돼 있다. 이런 책이다.

  

프랑스쪽의 시각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지만, 아직은 '그림의 책'이다. 오모리 쇼조의 <일상을 철학한다>(가인비엘, 2009)는 사실 '1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혔던 것인데, 내가 건너뛴 바 있다. "저자는 세계와 나, 세계와 의식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시도한다. 그는 나와 세계와의 2원론적 분리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세계와의 대결구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최근에 나온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윤리적 노하우>(갈무리, 2009)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듯싶다. 바렐라의 책에 대해서는 안 그래도 내주치 한겨레21의 서평에서 다뤘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분야의 책은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코리브르, 2009)이다. 얼마전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국제회의가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된 바 있는데, 그런 시의성이 고려된 선정 같다. 오랜만에 기든스란 이름을 입에 올리게 되는데, 이 전지구적 이슈에 대한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저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식으로 현대 문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생태중심주의자의 관점을 거부하는 현실론적 접근을 취한다. 장기적으로 과학과 기술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화석연료 대신 재생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한 경제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정부와 기업 및 시장의 긴밀한 협조를 강조하면서 다층적 거버넌스를 활용할 것을 제안하며 국가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기 위해 ‘책임국가(ensuring stat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한편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이 사회복지의 증진 및 에너지 안보정책과 적절히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경제적 수렴’이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서는 저개발지역의 ‘개발 절박성’을 고려하는 ‘기후 정의’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남종영의 <북극곰은 걷고 싶다>(한겨레출판, 2009)이다. "지구온난화로 바뀌고 있는 북극과 남극, 적도 등의 현장을 여행하고 취재한 환경에세이"이다. 북극권 알래스카(아크틱빌리지, 배로, 카크토비크), 캐나다의 허드슨만, 남태평양 투발루,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극 킹조지 섬, 강원 고성 등 8곳을 여행하고 쓴 국내 필자의 취재 여행기여서 더 돋보인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서는 스티븐 레빗 등이 쓴 <슈퍼 괴짜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 2009). 제목에서 이미 <괴짜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의 속편이란 걸 표나게 내세우고 있다. 역시 전편만큼이나 재미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슈퍼 괴짜 경제학>은 경제학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또 다시 보기 좋게 뒤엎는다. 몇 개 장의 제목만 봐도 그 책의 내용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길거리 매춘부와 백화점 산타클로스가 노리는 것’, ‘자살폭탄 테러범들이 생명보험에 들어야 하는 이유’ 등 우리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제목들이다. 이 책의 주요 저자인 레빗이 비정통적인 경제학자여서 이런 책이 나온 것은 아니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J. B. Clark 메달을 수상할 정도로 경제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책은 부분적으로 최근 경제학 연구의 동향을 반영해 주고 있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영역 밖으로 눈길을 돌리는 경제학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개인적으론 마이클 셔머의 <진화경제학>(한국경제신문, 2009)에 이어서 피터 우벨의 <욕망의 경제학>(김영사, 2009)를 손에 들고 싶다. 이런 취지의 책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는 것은 분명 행운이며,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하지만, 나쁜 선택을 할 자유까지 보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행동경제학 이론을, 저자가 비만이나 중독에 빠져 괴로워하는 환자를 치료하며 경험한 실제 사례와 접목시킴으로써 기존 행동경제학 이론서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자유시장의 광기(한계)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과도 접맥될 수 있지 않나 싶다.   

 

6. 과학 

최영주 교수(포항공대 수학과)가 꼽은 과학분야의 책은 박상철의 <생명의 미학>(생각의나무, 2009)이다. 제목만으론 미학책이 아닌가란 생각도 갖게 하는데, 부제는 '어느 생화학자의 뜻으로 본 생명'. 저자는 노화 연구의 권위자라 한다. 나이를 잘 먹는 것을 뜻하는 <웰 에이징>(생각의나무, 2009)도 펴낸 바 있다. 생명과학자의 생명에 관한 에세이집.  

“생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관한 답을 과학자의 시각과 철학으로 생명 현상의 질서와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는 과학 에세이다. 저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명체의 모든 변화에는 순서와 법칙이 있으며 DNA 핵산에 수록된 염기서열이 주어진 길과 질서를 관장하는 생명의 정보임을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생명에 관한 에세이라고 하니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책은 프랑수아 자콥의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민음사, 1994)이다. 영역본도 구할 수 있는 듯하니까 다시 정독해보고 싶은 책이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이미 '11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았던 조선희의 한국 고전영화 이야기 <클래식 중독>(마음산책, 2009)이다. 소개의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고, 같이 읽어볼 만한 한국영화 감독론으론 이동진의 인터뷰집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예담, 2009)와 이탈리아 평론가들까지 가세한 <한국의 영화감독 7인을 말하다>(본북스, 2008)가 눈에 띈다. 그 '7인'은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 임상수, 김지운이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소래섭의 <백석의 맛>(프로네시스, 2009)이다. 제목의 '맛'은 중의적인데, 백석 시를 읽는 맛이면서 동시에 백석 시에 등장하는 음식의 세계도 뜻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국문학자인 저자는 현대적인 감각에서 백석의 시 100여 편 가운데 음식이 나오는 시 60편을 파고들어 110여 종 음식에 관한 시인의 노래를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멋에 맛을 더하고 맛에 멋을 부렸던 시인의 진가를 오롯이 복원해낸 것이다. 그렇다고 백석이 식도락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대 문화 속에서 음식의 의미가 어떻게 변질되어가고 있는지를 깊이 통찰한 다음 자신의 음식을 통해 당대의 지배적 문화에 대한 저항을 슬쩍 드러내는 동시에 잊혀져가는 우리 고유의 전통을 되살리려 한다.

말이 나온 김에 겸사겸사 백석에 관한 책들도 업데이트 해놓아야겠다. 전기로는 오양호 교수의 <백석>(한길사, 2008), 그리고 백석 시 전편 해설로는 이숭원 교수의 <백석을 만나다>(태학사, 2008)이 있다. 그러고 보면, 백석은 해마다 그에 관한 책이 나오는 드문 시인의 한 사람이다.   

9. 실용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추천한 실용분야의 책은 이영직의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스마트비즈니스, 2009)이다. 무슨 내용의 책인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추천의 변은 이렇다.  

세상을 살다보면 모호한 경우가 많다. 어떤 현상을 움직이는 원리,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를 좌우하는 법칙이 있는 것 같은 데, 희미한 그림자만 보일 뿐 머리 속에 명확히 잡히지 않는 것이다. 개념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 그 모호함의 정체를 알게 해 주는 책이 바로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이다. 삶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법칙이 어떻게 발견되고 발전하였는지, 또 세상을 관통하는 법칙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했다.

해서 나오는 것이  ‘하인리히 법칙’, ‘죄수의 딜레마’, ‘파레토 법칙’, ‘플라세보 효과’, ‘희생양 이론’ 등에 대한 설명이라는데, 100가지씩이나 되면 '법칙 사전'이라 부를 만하다. 혹 사마천의 <사기>를 이 법칙들의 실제 사례집으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처세서'로도 읽히는 <사기>는 실지로 그런 면모도 갖추고 있는 듯하다. '역사서'라기보다는 '교양서'이자 '실용서'. 한자오치의 <사기 교양강의>(돌베개, 2009)나 김원중의 <통찰력 사전>(글항아리, 2009)도 그런 쪽으로 기억해둠 직하다.   

10. 중국 자본주의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중국 자본주의'로 정해봤다. 개인적으론 얼마전부터 중국사 책들을 한두 권씩 사모으고 있고, 고전들도 차츰 읽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건 마흔 이후엔 역사쪽과 동아시아 고전, 그리고 한국 고전들에도 눈길을 주기로 한 오래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아마도 서른을 넘으면서 그런 독서계획을 세웠던 듯하다. 이사 중에 박스에다 책들을 쟁여넣으며 이 분야의 책들은 10년쯤 후에나 꺼내보리라 다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데, 그 10년이 훌라당 지나갔다. 이젠 퇴로도 없기에 슬슬 읽어나가야 한다.  

워낙 방대한 분야이기에 섣불리 손대기도 어렵지만, 일단은 '자본주의 중국'에 대해서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책들을 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아무래도 조반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길, 2009)가 관심을 자극한 듯하다. 아직 구입하지 않은 책인데, 두께나 책값을 고려하면 내달에 이 책을 읽을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여하튼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이산, 2003), 레이 황의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이산, 2001)를 나란히 읽으면 뭔가 '문리'가 트일 것 같기도 하다. 레이 황의 책으론 <중국의 출로>(책과함께, 2005)도 요긴하다.  

09. 12. 30.  

P.S. 1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맹자>다. 번역이나 주해서는 어느 것이 나은지 잘 가늠하기 어렵다. 고전학도들은 성백효본 <맹자집주>(전통문화연구회, 2005)를 많이 보는 듯하지만, 이후에도 책들은 더 나왔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은 일단 전체적인 이해 혹은 자리매김이다. 그래서 고른 책이 이혜경의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그린비, 2008)과 백민정의 <맹자: 유학을 위한 철학적 변론>(태학사, 2005), 그리고 프랑수아 쥴리앙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한울, 2004/2009)이다. 쥴리앙(혹은 줄리앙)은 언젠가 소개한 바 있는데, 파리 7대학의 동양학부 교수로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중국철학 연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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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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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30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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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12-31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준구 교수의 추천작과 박상철 교수의 저서를 읽고 싶은데요. <클래식 중독/조선희/마음산책>이 영화에 대한 것이군요. 음악에 대한 것이면 <굿바이 클래식/조우석/동아시아>과 비교해 읽고 싶었는데요. <사기 교양강의/한자오치/돌베개>와 <난세에 답하다/김영수/알마>도 함께 읽을만 하겠습니다. 프랑스와 중국은 학문적인 면에서 저서들이 자주 등장하네요. 노벨문학상 수상자중에도 프랑스로 귀화(?) 중국인이 있던데요. 맹자와 보수주의 그리고 계몽철학자도 호기심이 갖게합니다.
* 로쟈님 덕분에 책을 더 가까이 하게된 2009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9-12-31 09:01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 올해의 댓글상을 드려야 할 듯해요. 항상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독서가 이어지시길.

L.SHIN 2009-12-31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야 할 새 책이 10권이나 왔는데.. 이걸 또 클릭하다니. 내가 미쳐..ㅡ.,ㅡ

로쟈 2009-12-31 09:00   좋아요 0 | URL
아직 면역이 안 되셨나요?^^;

이진이 2009-12-3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퍼괴짜경제학]의 내용 중 '기후변화, 온난화 회의주의'와 관련해서 저자들과 폴 크루그먼과 조셉 롤 등의 환경학자들과 아직까지 논쟁-소위 키보트배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의 저자들이 KO패 수준이지만요. 이런 부분도 참고해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내로 번역되면 이런 논란은 묻어두고 괴짜경제학보다 더 기발한 속편이라는 광고만 하니깐요.

행복한 마무리, 벅찬 새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Kitty 2009-12-3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괴짜경제학 속편이 나왔네요! 왜 몰랐을까요? -_-;;;;
덕분에 잘 담아갑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

스모커 2009-12-3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 님의 글에 감히 댓글하나 달려다가 한참 쓰고나서 올리려 했더니 문제의 그 글엔 댓글도 못달게 막아 두셨으니... 제 블로그에 올려놨습니다요^^;; 님에게 쓴 글을 딴사람들만 와서 보는것 같으니..그건 쫌 아닌거같아서리... 이거 뒷담화도 아니고...

로쟈 2009-12-31 15:09   좋아요 0 | URL
"뭡니까? 문제의 그 글엔 댓글도 못 달게 막아 두시다니..다른글은 삭제해 버리고..이쯤되면 할 말이 없소이다." 근거 없는 사실을 유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모커 2009-12-31 16:12   좋아요 0 | URL
글 제목 '책을 윤리적으로 소비한다는것'의 댓글창은 분명 닫혀있습니다.
제가 좀 직선적이고 거친 놈이어도 근거없는 사실을 유포하진 않습니다.
panda님과의 댓글 대화중에 나도 좀 끼어들려고 했다가 닫아 놓으셨기에
부화가 치밀어서리^^::

로쟈 2009-12-31 17:46   좋아요 0 | URL
사회적 독서의 카테고리만 남겨두었다가 서재를 정상화하면서 빠트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떤 글을 삭제했다는 말씀인가요?

마태우스 2009-12-3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요즘 심기가 많이 불편하시죠.
힘내시기 바랍니다.
불매가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한들,
님 말씀대로 관망하는 것조차 용납을 못하는 작금의 태도는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남이사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할일만 하면 되는 걸텐데
왜 님의 인터뷰를 빌미로 그렇게 공격을 하는지 차암.
새해에도 님의 귀한 글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쟈니 2009-12-3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자본주의는 늘 관심있는 부분입니다. 중국의 역사와 자본은 그 성질이 매우 가깝다고 생각을 해서요. 아울러 그간 서양의 입장에서 보는 자본의 시각이 중국 자본력의 대두로 인해 새로운 관점도 가져올 거 같군요.

늘 많은 정보 꼼꼼히 정리해주셔서 로쟈님 덕을 많이 본다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 좋은 자료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

내일부터나 서재 활동을 정상화하려고 했지만, 2009년의 마지막 '대작'인 듯싶은 책이 눈에 띄기에 간단한 인사부터 적는다(밀린 원고를 쓰는 일은 이골이 났기에). 연초에 올해 출간될 주요 인문 사회과학 서적 목록에 올라와 있었던 이언 커쇼의 평전 <히틀러1,2>(교양인, 2009)가 문제의 책이다. 당초 예고는 이랬다.

히틀러 연구에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이 이미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그의 책은 1970년대에 씌어진 것이어서 이후 추가된 연구 성과는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교양인에서 준비 중인 히틀러 평전은 현재 세계적으로 제3제국 연구자들 사이에서 히틀러 연구의 저본으로 불리는 이언 커쇼(Ian Kershaw)의 <Hitler, 1889-1936 : Hubris>와 <Hitler, 1936-1945 : Nemesis>이다. 

  

그것이 이번에 나온 것. 두 권으로 나온 국역본은 무려 2,230여 쪽 분량이다(저자나 역자의 노고를 가늠하기 어렵다). 분량으로는 2,560여 쪽에 이르는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1,2>(들녘, 2009)에 조금 못 미치지만, 단일 인물 평전으로서는 최대작이 아닌가 싶다. 분량이 질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명성을 얻은 책이니 기대를 갖게 한다. 덧붙여, 딱 작년말에 나온 라울 힐베르크의 <홀로코스트 유렵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도 떠올리게 한다(힐베르크의 책도 1,770여 쪽의 분량이다). 왠지 짝지어 꽂아두어야(읽는 건 엄두가 안 나더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직 리뷰기사는 뜨지 않았다. 하여 '히틀러와 함께 2009년을!'이란 마무리는 곧 '히틀러와 함께 2010년을!'이 되기 십상이겠다.  

 

전쟁사에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플래닛미디어, 2009)와 <히틀러의 장군들>(플래닛미디어, 2009)도 챙겨놓을 만하다. 후자는 놀랍게도 '국내서'이다.  

<히틀러> 덕분에 '2009년 출간될 주요 인문·사회 서적' 리스트를 다시 훑어보았다. 예상대로 상당수의 책들이 해를 넘길 듯하다. 여전한 기대를 갖고서 좀더 기다려봐야겠다. 사실 오래 기다릴 것도 아니다. 2010년이 벌써 문턱까지 와 있으니!.. 

09. 12. 29.  

 

P.S. 이미 여러 매체별로 '올해의 책'들이 발표됐고, 개인적으로도 몇 곳에 추천 리스트를 넘기기도 했지만, 두 권만 꼽자면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길, 2009)과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이다. 기준은 한 가지다. 많이 배운 책이라는 것. 아직 완독하지 않았으니 더 배울 것이 남아 있다(<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의 번역은 '체첸'을 '케냐'로 옮기는 등의 실수가 적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건 '즐거운 부담'이다.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노라'는 탄식은 아직 나의 몫이 아니다...   

P.S.2. 내친 김에 러시아문학 전공자가 보는 '올해의 책'도 꼽아둔다. 나데쥬다 만델슈탐의 회고록 <회상>(한길사, 2009)과 미하일 엡슈테인의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서 <미래 이후의 미래>(한울, 2009) 두 권이다. 기준은? 번역되면 좋겠다(편하겠다!) 싶었던 책. 역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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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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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2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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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29 21:14   좋아요 0 | URL
옛날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재수생 책상 책꽂이에 꽂혀 있던 '나의 투쟁'을 슬쩍 훔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로쟈 2009-12-29 23:13   좋아요 0 | URL
<나의 투쟁>은 대학원때 리포트 쓰느라 부분적으로 본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다시 관심이 생기긴 합니다. 박정희도 그렇고...

다이조부 2009-12-29 21:41   좋아요 0 | URL

선생님 처럼 많은 책을 읽은 분도 아직도 더 볼 책이 많다는게....

이래서 공부는 끝이 없나 봅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어지간한 대학원생 보다 내가 낫다는 착각을 했는데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ㅋ

올 한해 이 블로그 구경하느라 즐거웠습니다

새해에도 건필 하시고, 댁에도 평안하길 기원합니다. 건강은 기본 ^^

로쟈 2009-12-29 23:14   좋아요 0 | URL
'많은 책'이래봐야 서가 몇 개 밖에 안됩니다. 나오는 책들이 비하면 왜소할 떠름입니다...

2009-12-29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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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2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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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2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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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2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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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2-30 00:01   좋아요 0 | URL
영어권의 또다른 대작인 존 톨랜드<히틀러>(1976년)의 번역도 기다리고 있는데,전혀 소식이 없군요.

2009-12-30 0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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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0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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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30 09:06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슬바보예 지젝/그림비>를 얼마 전에 구입해 읽다 말았는데, 700쪽 이상된 책은 '찾아보기'가 잘되어 있어 사전같던데요.'다문화주의'에 대해 찾아(38,108,401쪽) 읽으니 책이 궁금해 다시 읽혀지더군요.소설처럼 단 번에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진 모양입니다.

로쟈 2009-12-31 09:03   좋아요 0 | URL
장별로 나누어 읽으시는 게 좋으실 거 같습니다(현실적으로도요).^^ 시간이 나면 글을 좀 써보려고 해도 다른 원고 독촉 때문에 사정이 어렵네요.--;

페크pek0501 2009-12-30 12:13   좋아요 0 | URL
히틀러가 여자였다는 말이 있어 소름이 끼친 적이 있어요. 어쨌든 히틀러는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만큼 그에 관한 책은 읽어볼 만하겠지요. 저의 경우 히틀러에 관한 책을 따로 구입해서 읽지 않았는데도 이런저런 책 속에서 많이 만났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짜로? 책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어가게 되어 로쟈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지식과 정보는 돈과 달라서 남에게 퍼주어도 손실이 되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에게 새해, 행운이 가득 하기를 기원합니다. 시간은 모자라고 읽고 싶은 책은 많습니다. 새해엔 시간이 올해보다 많아지는 행운이 제게 오길, 함께 기원합니다.

로쟈 2009-12-31 09:06   좋아요 0 | URL
네, 지식 공동체는 얼마든지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공통의 앎(상식)은 마련되지 않을까도 싶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각종 '참사'는 없었으면 싶네요...

마녀고양이 2009-12-30 14:45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히틀러 1,2권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새해에 사려고 맘먹고 있는데 소개해주셨네요~ 좋은 년말되셔염~

로쟈 2009-12-31 09:06   좋아요 0 | URL
잘 엄두가 안 나는 책이긴 합니다. 어제 교보에 들렀는데도 구경을 못 했습니다. 뭔가 빼먹은 듯싶더라구요.^^;

2009-12-30 15: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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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1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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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이벤트

불미스런 일로 잠시 서재를 쉬겠다고 했는데, 제가 깜박 잊은 게 있습니다. <그 삶이 내게 왔다>(인물과사상, 2009) 출간 기념 '댓글 이벤트'의 결과를 오늘 공지하기로 한 것인데요. 휴가 중이라도 일처리는 해놓아야겠습니다.   

 

댓글로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총 14분이 응모해주셨고, 예고한 대로 3분에게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세 분의 당첨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rolla님 
Tomek님   
TatTvamAsi님  

당첨되신 세 분께 축하드리며, 주소를 (비밀)댓글로 알려주시면 출판사에서 책을 배송해드릴 것입니다. 조촐하지만 의미있는 선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09. 12. 28.   

P.S. 간밤에 '휴가'의 빌미가 됐던 글들이 내려져 '서재를 잠시 쉬겠습니다'란 공지도 뻘쭘해졌기에 저도 비공개로 돌리겠습니다. 서재 활동은 수요일부터 다시 정상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재는 '휴식'에 들어가더라도 사실 오프라인에서는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서 '휴가'란 말이 좀 우습지만, 잘 쉬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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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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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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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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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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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2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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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1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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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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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水未濟 2009-12-2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반가운 말씀이네요. 한참동안 당황했어요~.

2009-12-29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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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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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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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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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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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0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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