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
내일부터나 서재 활동을 정상화하려고 했지만, 2009년의 마지막 '대작'인 듯싶은 책이 눈에 띄기에 간단한 인사부터 적는다(밀린 원고를 쓰는 일은 이골이 났기에). 연초에 올해 출간될 주요 인문 사회과학 서적 목록에 올라와 있었던 이언 커쇼의 평전 <히틀러1,2>(교양인, 2009)가 문제의 책이다. 당초 예고는 이랬다.
히틀러 연구에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이 이미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그의 책은 1970년대에 씌어진 것이어서 이후 추가된 연구 성과는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교양인에서 준비 중인 히틀러 평전은 현재 세계적으로 제3제국 연구자들 사이에서 히틀러 연구의 저본으로 불리는 이언 커쇼(Ian Kershaw)의 <Hitler, 1889-1936 : Hubris>와 <Hitler, 1936-1945 : Nemesis>이다.

그것이 이번에 나온 것. 두 권으로 나온 국역본은 무려 2,230여 쪽 분량이다(저자나 역자의 노고를 가늠하기 어렵다). 분량으로는 2,560여 쪽에 이르는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1,2>(들녘, 2009)에 조금 못 미치지만, 단일 인물 평전으로서는 최대작이 아닌가 싶다. 분량이 질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명성을 얻은 책이니 기대를 갖게 한다. 덧붙여, 딱 작년말에 나온 라울 힐베르크의 <홀로코스트 유렵 유대인의 파괴>(개마고원, 2008)도 떠올리게 한다(힐베르크의 책도 1,770여 쪽의 분량이다). 왠지 짝지어 꽂아두어야(읽는 건 엄두가 안 나더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직 리뷰기사는 뜨지 않았다. 하여 '히틀러와 함께 2009년을!'이란 마무리는 곧 '히틀러와 함께 2010년을!'이 되기 십상이겠다.

전쟁사에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플래닛미디어, 2009)와 <히틀러의 장군들>(플래닛미디어, 2009)도 챙겨놓을 만하다. 후자는 놀랍게도 '국내서'이다.
<히틀러> 덕분에 '2009년 출간될 주요 인문·사회 서적' 리스트를 다시 훑어보았다. 예상대로 상당수의 책들이 해를 넘길 듯하다. 여전한 기대를 갖고서 좀더 기다려봐야겠다. 사실 오래 기다릴 것도 아니다. 2010년이 벌써 문턱까지 와 있으니!..
09. 12. 29.

P.S. 이미 여러 매체별로 '올해의 책'들이 발표됐고, 개인적으로도 몇 곳에 추천 리스트를 넘기기도 했지만, 두 권만 꼽자면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길, 2009)과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이다. 기준은 한 가지다. 많이 배운 책이라는 것. 아직 완독하지 않았으니 더 배울 것이 남아 있다(<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의 번역은 '체첸'을 '케냐'로 옮기는 등의 실수가 적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건 '즐거운 부담'이다.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노라'는 탄식은 아직 나의 몫이 아니다...


P.S.2. 내친 김에 러시아문학 전공자가 보는 '올해의 책'도 꼽아둔다. 나데쥬다 만델슈탐의 회고록 <회상>(한길사, 2009)과 미하일 엡슈테인의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서 <미래 이후의 미래>(한울, 2009) 두 권이다. 기준은? 번역되면 좋겠다(편하겠다!) 싶었던 책. 역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