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불매운동과 관련하여 '로쟈'란 이름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기회주의적 지식인'의 전형이며 '코메디언'이라는 게 내가 얻은 새로운 별칭이다. 생각의 자유가 있고 명명의 권리가 있을 터이다. 사실 이번 사안에 긍정적인 면이 없진 않다. 한 임시직 노동자의 '부당해고'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로 '승화' 혹은 '성체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일 것이기에(해고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선 아직 모르겠다. 법률적 자문이 필요할 텐데, 알라딘 내부에선 그럴 만한 능력이나 의사를 가진 분이 없는 듯하다. 역시 좁은 동네다). 비록 아직까지는 알라딘 '내부'에만 국한된 일이긴 하지만.  

알다시피 알라딘쪽에선 담당자와 대표가 입장을 표명했다. 알라디너들에게 사과의 뜻도 밝혔다. 물론 충분할 리가 없다. 특히나 '질긴 놈이 이긴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소나기나 피하자는 임시방편의 꼼수요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할 것이다(용산참사 합의안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해고 노동자에게 백배 사죄하고 당장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그게 불가하다면 이런 사단이 벌어지게 만든 인사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어 면직시키는(여차하면 해직시키는) 조치도 고려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조유식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니 이왕지사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가 된 만큼 출판계 전체로 문제를 확장시켜볼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로... 그렇게 되지 않고서야 충분할 리가 없다. 아니 충분해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노동자를 해고시킬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장기근무를 약속받고 한달이나 묵묵히 헌신한 노동자를.      

불의를 보고 묵과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양심'의 기본일 터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행동하는 양심'은커녕 '양심에 털난 인간'이다. 나는 뭐라고 말했던가?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임시노동직이 한 달을 일하고 해고됐어요. 몇 사람이 이걸 문제로 지적했고 알라딘 불매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저는 불만스러웠던 게, 사실 지금의 한국사회가 다 그렇게 되어있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놀랍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알라딘에 항의를 하고,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게 웬 순수한 가장인가, 이게 과연 시급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불만스럽다고 한 건 비정규직(임시직)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이나 부당한 처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유독 알라딘의 경우만, 그것도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사례를 통해서 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가란 점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전략적인 판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내지는 이보다 더 중차대한 문제는 없다는 '순수한 가장'을 통해서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면, 피터 싱어의 예를 들어보자.  

출근길마다 작은 연못가를 지난다. 날씨가 더울 때면 가끔 연못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겨우 무릎까지 물이 차이 염려는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춥고, 시간도 이르다. 그런데 연못에서 첨벙거리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주 어린아이다.(...) 아이는 물 밖으로 겨우 몇 초 동안만 고개를 내밀 수 있는 모양이다. 뛰어 들어가 구하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것이다. 물에 들어가기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하지만 며칠 전에 산 새 신발이 더러워질 것이다. 양복도 젖고 진흙투성이가 되리라. 아이를 보호자에게 넘겨주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틀림없이 지각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21쪽.

물론 당연히 물로 뛰어들어야 옳다. 이것이 아마 불매운동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시는 분들의 입장일 것이다. 적어도 인간으로서 측은지심을 갖고 있다면, 신발이 더러워지고 양복이 젖고 하는 건 핑계가 될 수 없다. '양심에 털난 인간'은 이러한 구호의 요구를, 연대의 손길을 외면하는 인간일 터이니, 그러면서도 인문학을 떠들어댄다면 낯짝도 두꺼운 사이코패스라 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적 상황에서 아이가 둘이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오직 한 아이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혹은 정말 불운하게도, 아이들이 떼로 빠져 있다면? 싱어도 자신의 가상의 사례에 이어서 바로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국제아동기금 자료를 보면, 매년 거의 1천만 명에 달하는 5세 이하의 아동이 빈곤 때문에 죽는다." 그러니까 한 아이가 빠져 있는 게 아니라 1천만 명의 아이가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가깝다. 한국 실직 노동자만 하더라도 최소 수십 만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측은지심에 의해 발동한 즉각적인 행동의 효과에 대해서 재고해보도록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가령, 우리의 도덕감정은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을 동정하도록 이끌지만, 차가운 이성은 기회비용을 고려한다. 10명의 아이가 빠져 있는데, 10명이 달려가 가까이에 있는 한 아이에게만 매달려 있다면 '효과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한 사람이 아이를 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다른 아이를 구하거나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실직이 문제가 되는 건 보통 빈곤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알라딘에서 해고된 김종호씨는 현재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니까 최악이라고 볼 순 없다. 요즘엔 가족을 부양하면서 자신의 학비까지 벌어야 하는 대학생들도 드물지 않다). 다시 싱어를 참조하면, 세계은행의 절대 빈곤 기준은 매일 1.25달러이며, 그 이하의 수입밖에 없는 사람의 수가 지구상에는 14억명 가량이 있다. 반면에 10억명의 인구 정도는 "오늘날 일찍이 없었던, 있었더라도 왕이나 귀족들 정도나 누렸을 법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다른 게 '풍요'가 아니라 냉난방이 잘 갖춰져 있어서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정도면 '귀족적 호사'다.   

문제는 이 '귀족들' 또한 이 정도의 풍요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데 있다. 하여 '사람사는 세상'이 되려면, 14억의 빈곤도 해소해야 하지만, 10억의 욕구불만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전선은 이중적이다. 부당한 사회적 관계도 철폐해야 하지만, 동시에 가치있는 삶의 모델도 새롭게 주조해야 한다. 단지 빈곤층이 중산층이 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오늘날 자본가와 노동자가 같은 TV드라마를 보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늘씬한 아이돌들을 보고 똑같이 므흣해한다면, 그들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한국사회에서 '먹고사니즘' 이데올로기의 극복 없이는 대안도 진보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배부른 소리 하는 게야"라는 말들이 먹고사니즘의 구호다("책이 먹고 사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어?"라는 물음도 그 변이형이다). '생존' '생계'라는 프레임에는 진보/보수, 좌파/우파가 따로 없다. 한쪽에서 '생존권 투쟁'을 말하고, 다른쪽에선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한다.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모두가 '생명정치' 패러다임 안에서 움직이며, 그런 점에서 적대적으로 공모한다. 물론 생존이 중요하고 먹고 사는 일이 소중하다. 하지만, 가치있는 삶, 품위있는 삶이 생존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단견이다(이곳이 절멸수용소가 아니라면. 아니 절멸수용소에서도 사람들은 의미를 찾고자 했다). 먹고 살 만해야 책도 읽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편견이다(그래도 책을 읽는 노동자가 무식한 자본가보다야 우월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생존에의 욕구뿐만 아니라 가치있는 삶에  대한 욕망 또한 갖고 있으며 이것은 언제 어디서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 욕망을 안 갖고 있다면 배워야 한다. 욕망하는 법을... 

뭔가 충분히 '해명'하려고 했지만, 끝도 없는 일일 듯싶다. 그간에 나의 생각과 편향에 대해 '적게' 말해온 편도 아니건만, 오해와 오용은 불가피한 듯하다. 그러한 오용이 몇몇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면 말리지 않겠다. 나는 다만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 정도를 말하고 싶다. 물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하는 것, 부당하게 모욕받은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것, 당연히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길은 여러 가지다. 그리고 노자의 말대로 길흉화복은 길게 두고 봐야한다. 화 속에 복이, 복 속에 화가 엎드려 있다고 하니까. 좋은 괘를 얻었다고 희희낙락하지 않고 나쁜 괘를 얻었다고 하여 좌절하지 않는 것이 <주역>의 독법이라 한다. 이 또한 기회주의적 독법일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기회주의에 대해서도 연구해봐야겠다. 우선은 점심을 먹고서... 

0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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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하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31 19:29 
    나대로의 입장을 표명한 글을 올렸지만, 역시나 '로쟈씨'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정도로 간주되는 듯하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것인데, 서재 활동이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꼴 사납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지지해준 분들이 더 많은 듯싶지만, '안티 로쟈'도 적잖다. 절충책으로 내년(내일)부터는 쓰는 글들은 나의서재 & 즐겨찾는 서재브리핑에만 노출하도록 하겠다. 애써 서재를 찾는 분들만 읽고 가시
  2. 로쟈님께
    from nobami 2010-01-01 23:04 
    가끔 들러 고맙고 유용한 정보도 얻어가고 책구경도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알라딘 블로그 생태계가 제 서식처는 아닌지라 로긴하는 일도 거의 없지요. 알라딘 문제는 레디앙에 실린 김종호 씨 투고를 통해 처음 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이구 알라딘에서도 이제 책 못 사겠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만 했습니다. 김종호 씨 글만 읽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대형 인터넷 서점들이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거나 거기서 불거질 수 있
 
 
Mephistopheles 2009-12-3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상 이 페이퍼 때문에 점심식사 시간이 늦으신 듯...맛나게 드세요.^^

히드라 2009-12-3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로쟈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동감합니다. 세상은 넓고 싸울 것은 많은데, 왜들 자기가 싸우는 대상이 우선적이고 자신의 싸움 방식만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로쟈님이 근래 얻은 유명세의 질곡인 듯....^ ^ (저한테는 아무도 알라딘 불매운동에 대한 입장을 묻지 않으니, 아주 편안~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3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인터넷 서점이 물류를 외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자들이 몰랐고 이제와 새삼 깜짝 놀랐는가' 하는 점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많은데, 가장 크게는 내게는 알라딘이 진보(?)기업이 아니고 별로 독점적으로 책을 구매하는 곳도 아니라 그런듯도 싶어서 그저 조용히 있으려고 합니다.

라주미힌 2009-12-3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직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닥 모아진 의견도 없어보이는데
(어떤(?) 기준으로)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는 몽둥이질을 하는 것이 놀랍네요.
알라딘에 제대로 타격하지 못한 화풀이를 '기회주의적인 알라디너들' 찾아내서 푸는 걸로 밖에 보이질 않네요.
알라딘 서비스에 불편함 없이 잘 사용하던 사람들끼리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들의 순수함에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큰 벽을 느끼고 있기에, 계속 구경꾼 노릇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9-12-3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할 때는 도대체 얼마나 강도가 강해야만 합니까? 알라딘 외주업체에서 한달 일하고 잘린 김종호씨는 강도가 너무 약하니 최소한 수십명 정도의 집단해고라도 발생해야 그때서야 문제 제기가 가능한겁니까?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는데 강도를 따지고 게다가 비정규직 이라도 실직자에 비하면 '호사'다 라는 식의 논리(?)까지 피시는데,, 입장표명이 변명에서 자꾸 궤변으로 변질되는거 같아 좀 안타깝다는..(푸하님 의견에 따라 댓글 약간 수정했고 추가의견은 제 서재에 올렸습니다.)

푸하 2009-12-31 14:45   좋아요 0 | URL
(제가 볼 때는) 로쟈님의 주장과 충돌하는 선명한 논점을 말씀해주셨습니다만, 이 사안에 대해서는 공격성은 낮추고 좀 더 건조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키보이 2009-12-3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불매운, 이것도 소위 말하는 윤리적 소비로군요.

불매운동자체는 무척 정당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에 동조하는 방식은 여러모로 다를 테고, 그걸 빌미로 피아를 나누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다른 곳도 아닌 '알라딘' 불매운동인가에 대해, 이것이 어떤 개별적인 사건으로서 완결적인가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가는 고민해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라도 철저하게 윤리적이고픈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본적'으로 고민하고픈 사람이 있는거 겠죠.

방향은 같아도 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알라디너분들은 부디 두루 살필 수 있길 바랍니다.

biosculp 2009-12-3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이나 행동의 강도가 다를수 있을텐데요.
이론을 가지고 강하게 토론을 할수 있겠지만
정답이 없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서로 상처를 피할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합니다.
원샷에 해결될 세상사도 아니고,
더 고민하고 더 얘기해야 될 문제들, 그리고 쉽게 해결될수 없는 문제를 강하게 얘기하면 너무 힘들어지죠.

마태우스 2009-12-3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불매운동 관련 페이퍼를 쭉 읽어왔는데요
왜 갑자기 로쟈님이 타깃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로쟈님 때문에 불매운동이 잘 안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루체오페르 2010-01-01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이런 때는 법대로 하는것도 필요하고 전문가, 공인노무사같은 분들의 의견이 아쉽네요. 어디 안계신가요? ^^;
2.일단 불매운동에 대한 제 의견을 밝혀야 한다면 정말 간단하게 결과만 말한다면...
'중립' 입니다. 뭐,속에서야 이생각 저생각 나름 정리돼고 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공식적으론요.^^; 여튼...불매운동이란 방식에 긍정을 합니다만,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에게 너무 거친것같네요.
볼테르의 '나는 너와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네가 비난을 받는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위해 싸우겠다' 는 정신은 참 어렵군요. 여전히 불매가 진행되는 사태 자체에 대해서는 중립인데 이렇게 불매운동의 방식에 대해 불편해하는 의견을 밝혔단 이유로(제게는 처음으로) 단지 반대편으로 단정지어지고 평가를 받는다면 어쩔수없죠,뭐.
3.2009년 덕분에 많이 배우고 즐거웠습니다. 로쟈님,2010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로쟈 2010-01-0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적인 책임을 묻을 수 있는지, 아니면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아니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사회변혁의 단초로 이슈화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모호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씩 정리해볼 수 있을 텐데, 진전이 없는 듯해요...

nanousee 2010-01-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가끔씩 들러보는 로쟈의 서재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을 접한 느낌은 무척 씁쓸하네요.
잘 모르지만 제겐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여정에 손안에 쥘만한 나침판과 같은 곳이었는데 맥락을 무시하고 상식도 없이 불한당 같은 목소리로 깃발을 휘두르며 다함께 나아가자 외쳐대는 모양새여서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으로서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부단한 투쟁을 해나가야 겠지만 저같은 사람에겐 위축된 로쟈의 서재에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더 큰 슬픔입니다. 로쟈님을 기회주의자다 뭐다 라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제겐 그 분들이 완장찬 깡패들로 밖에 안보이네요..그 분들이 저같은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계신다는게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만들구요...진전없는 슬픔만 또 하나 덧붙여서 연초부터 죄송합니다. 로쟈님, 이견이 없는 블로그를 꿈꾸신게 아니라면 무심히 큰 그림을 보시면서 제 손 안에 쥐고 가끔씩 펼 수 있었던 나침반을 닫아주지 마시길 빕니다.

토탈리콜 2010-01-0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를 대통으로 뽑은 나라에서 이모든 얘기가 씨나락 까먹는 얘기가 아닌지..ㅋㅋㅋ

책읽는아저씨 2010-01-0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위 국가권력이 남용하는 공권력도 문제지만, 약자들의 대변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폭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게 정당한걸까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권력자가 남용한 폭력은 정당한걸까요? 아니면, 국가의 공권력 남용에 맞섬으로 발생된 사회적 약자들의 폭력은 정당한걸까요? 정말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은 둘 다 폭력이라고 볼 겁니다. 오히려 저는 가끔이지만, 정말 그들이 약자들을 대변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그들은 무서운 자기 확신을 가진 자들이 아닐까 하는.. 여하튼, 로쟈님을 아끼는 사람으로써, 블로그를 계속 볼 수 있게 되기를...

푸하 2010-01-02 21:47   좋아요 0 | URL
지금 이 상황이 사회적 약자들의 폭력이라고 보시는데 전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세세하게 보지 않으시고 말을 하시는 것 아니신가요? 그렇다면 브릿슬코파인님의 말씀이 폭력일 수 있습니다. 좀 더 상세히 상황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책읽는아저씨 2010-01-03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이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먼저 이 상황을 폭력이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폭력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낸것 뿐입니다. 기업이 한 개인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단순한 말이었고, 그 개인이 저항하는 가운데 기업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예기치 못한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었죠.

사람은 생각이 다르니 건설한 이야기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매도하거나 공격하는건 온당치 못합니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당신의 생각은 이러하구나..' 이렇게 접근해야지, 누군가를 계도할 대상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고, 소통이 가능합니까?

그리고 상대방의 글이 의미를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읽는 이는 더더욱 다르게 해석할수도 있습니다. 그런 걸 다 감안하고 상대방과 이야기해야 하는게 아닐까요? 무작정 단정짓고 이야기하다 보면,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오해하신 부분이 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저는 생각이 다 다르다 해도, 이 세상은 함께 살아가나는 곳이라 여깁니다

푸하 2010-01-03 05:29   좋아요 0 | URL
제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말씀을 드린 점 죄송합니다.

로쟈님의 페이퍼 내용과 브릿슬콘파인님의 댓글 내용에서 나타나는 맥락(제가 이해한 바로는)에서 저는 브릿슬콘파인님의 '단순한 의미에서의 폭력'이라는 말씀과 엮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판단이 맞다면 제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로쟈님과 의견이 다른 몇 몇 서재인들이 '매우 심한 분'도 있지만 대부분 상대의 글을 열심히 읽고 그 뜻을 정확히 헤아려 의견을 내시는 분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런 점에서 몇 몇 분들이 그 내용과는 다르게 매우 공격적인 언사로 로쟈님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저기 위에 제가 단 '정군'님에 대한 댓글에서도 나타날 거에요. 여튼 저는 그런 '공격성'은 폭력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좀 더 깊은 곳에서는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려는 욕구도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욱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상황이 복잡하고 현실이 애매하지만 저는 현재 로쟈님과 다른 분들의 다툼이 깊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의견교환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여튼 제가 짧은 글로 말을 함부로한 점 사과드립니다. 제 과제가 끝나면 좀 더 정돈된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