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가 어느덧 10년이나 되었다. 내가 알라딘에 적을 둔 것은 2002년 부터이고 살림을 차린 것은 2006년 부터이니 나의 알라딘 세간살이가 이렇게 많아진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처음엔 서재라는 존재를 몰랐다. 리뷰를 하나 썼는데 이달의 마이 리뷰에 당선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고 나서 서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인연을 만들어준 책은 가네시로 카즈키의 '스피드'다. 서재라는 존재는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 뭘 하면 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객센터에 질문도 남겼다. 페이퍼는 뭐에 쓰는 거냐고, 어떻게 사용하는 거냐고... 리뷰랑 리스트는 알겠는데 페이퍼는 생소했다. 요새도 가끔 그때 내가 했던 질문을 던지는 새내기 알라디너들을 보게 된다. 옛 생각이 나서 슬며시 웃게 된다.
서재는 변신한다.
지금은 '블로그'로 완전히 개편되었지만 초기 서재는 좀 더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있었다.
서재 지붕은 820*50 사이즈로 얇고 길었다. 알라디너들의 서재 지붕을 만들어서 서로 교환해 걸던 소박한 재미가 있었다. 욕심내서 움직이는 파일로도 만들고는 했는데, 이젠 오래 되어서 어떻게 만들었던 것인지 방법도 잊어버렸다. 개편된 블로그에서는 버튼 몇 번 누르면 배경 화면이 다채롭게 깔리니까 이런 수고를 할 일이 없어졌다. 편해졌지만 내 손이 타지 않는, 남이 차려준 밥상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서재 1,0이 사라지고 이제 2.0으로 바뀔 때엔 막내딸 시집보내는 것마냥 괜히 섭섭했다. 그러다가 알라딘 공지로 며칠 연기되어서 다행이다 싶어 했던 시절. 하하핫, 그러던 때가 있었다. 저 화면에서 서재 지붕도 굿바이 알라딘 서재 1.0이다. ^^ㅎㅎㅎ
지금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스크랩' 기능이 있었다. 이게 공개가 되어 있으면 서로 간의 소통을 좀 더 활발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비공개 폴더로 집어 넣으면 저작권 관련해서 불편한 일이 발생할 소지도 있었다. 요즘은 '별찜' 기능이라는 게 있지만, 찜해 놓은 글을 상대방이 숨기거나 지우면 고스란히 사라지고, 찜이 너무 많아지면 앞의 것을 찾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 실제로 찜해 두고 다시 되찾아 보는 일이 드물어졌다. 나중에 봐야지~ 해놓고 잊기 일쑤....
스크랩 기능 있던 시절에 '차력도장' 서재가 무척 활발했었다 한달에 한권 돌아가면서 책을 추천하고 리뷰를 올리면 차력님이 스크랩해서 서재에 글을 모아주셨다. 나는 거의 마지막에 합류해서 같이 읽은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천자의 나라'라는 책을 추천했는데, 두권짜리 책이었고, 무협과 역사와 추리와 팬픽이 결합된 복합적인 요소가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나보다. 아니, 어쩌면 당시 신생 회원이었던 나의 추천이 별로였을지도...;;;;; 아무튼, 마지막까지 다 읽으면 묵직한 감동을 주는 책인데 더 잘 소개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크다. (이 책은 제목을 바꿔서 개정판이 나왔는데 내게는 첫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서재는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알라딘 서재에 자리를 잡지 않았어도 독서는 꾸준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라딘에 내 집을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더 부지런해졌다. 내 공간을 알차게 채우고 싶었고, 재밌는 것도 담고 싶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고 싶었다. 그러니 부지런히 리뷰를 쓰고 페이퍼를 쓰고 리스트도 만들었다. 질문에 답해줄 것이 있을 때 기뻤고, 이벤트에 참여할 때는 재밌었다.
동화책 읽어주는 여자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말하다
신과 함께 가라
늘 참가상을 염두에 두었던 내게 뜻밖에 장원을 안겨준 것도 있었다. 알라딘이 TV 광고를 했던 시절, 패러디 광고 이벤트가 있었다. 당시 내가 참가했던 문구는 이것이다.
"가령 당일 배송으로 책이 온다면 나는 주문한 12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하하핫, 요새는 아주 급하지 않은 이상 당일 배송으로 주문을 잘 하지 않는다. 그게 택배기사님께 혹여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근데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알라딘의 당일 배송 서비스는 2시로 연장되었다.
서재는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리뷰 훌륭하기로 인터넷 서재에 소문이 자자한 알라딘 서재가 아니던가. 내가 즐겨찾기한 서재도 부지기수. 이들 무림 고수들이 깊은 내공을 펼쳐 책을 추천해 버리면, 귀얇은 나는 장바구니에 주워담기 바빴다. 서재 마실 다니면서 친해진 분들과 기념일을 챙기고, 또 건수 만들어서 이벤트를 자주 벌이던 시절, 일주일 내내 택배 기사님의 방문을 받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애인보다도 자주 보게 되는 기사님!(그러나 애인은 없었다는 게 함정!)
무수한 책 지름신으로도 모자라서 중고샵 오픈으로 더더욱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등록해 놓은 책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의 좌절감은 점점 더 빠른 클릭질을 유도했고, 가장 빨리 결제를 마치는 시스템(적립금으로 결제하기!)을 터득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면 무수히 쌓여버린 책들에 질리는 패턴!
연말이면 나오는 머그컵과 달력은 또 어떻던가. 한해의 마무리와 시작은 머그컵과 달력이 열어준다고 믿는 것만 같았다.
'머그컵-이라고 쓰고 '집착'이라고 읽는다.'
해마다 만우절만 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바로 이것들 때문이다.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인지, 꾀돌이 상을 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매번 낙제점. 단 한번도 문제를 다 푼적이 없다. 심지어 올해는 한 개도 못 찾았다. 그런데 모범답안도 안 올려줘서 아직도 정답 모름...;;;;;;
서재는 나를 으쓱하게 만든다.
서재 바깥 세상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고 내세울 수도 없지만, 여기서는 왠지 어깨 으쓱하게 만드는 기록들이 있다.
내 헤어스타일이 저럴 때였으니까 2년 전 여름이었나 보다. 서재의 달인과 리뷰의 달인과 리스트의 달인, 그리고 페이퍼의 달인까지 모두 종합 10위 안에 든걸 나름 자축하면서 캡쳐해 두었다. 사실 땡스투랑 태그도 모두 10위권 안이다. 하나도 안 중요한 거지만 나 혼자 좋아하는 숫자 놀이랄까.
지금은 택도 없지만, 2007년도에는 한해 동안 서재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서재로 알라딘이 결산해준 기록도 있다. 이 글 쓰느라고 옛 글 들춰보다가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랬던 적이 있단 말인가!
지금은 영화 서비스가 종료되어서 뽑지 않지만, 영화 리뷰도 뽑던 시절에는 이달의 마이리뷰와 영화리뷰, 포토리뷰와 페이퍼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기록도 갖고 있다. 음하하하핫! 역시 아무도 모르고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나혼자 으쓱해 하는 기록.
서재에서 책만 보지 않는다.
서재에서 책만 오고 갔던 것은 아니다.
멀리 미국에서 날아온 이 사진은 지금도 내 침대 머리맡에 붙어 있다. 하늘 바라보고 나무 쳐다볼 일이 그다지 없는 일상 속에서 내 눈을 쉬게 만들어주는 근사한 쉼터다. 턴님, 요새는 사진 안 찍나요?
엘신님이 열었던 와인 이벤트에 당첨되었더랬다. 내친 김에 대공원으로 소풍을 가서 알라디너들과 함께 마셨던 와인의 기억. 오프너가 없어서 터프하게 돌로 내리쳐서 병을 깨던 엘신님을 잊을 수가 없다!
2008년에는 광주에서 알라디너들이 뭉쳤다. 난생 처음 KTX를 타본 날이기도 했다. 이날은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또 맛나게 먹고, 그리고 마음 울컥했었던지... 518 국립 묘지를 들어설 때 가슴 터지게 울리던 임을 위한 행진곡... 그렇게 서럽고, 그렇게 아름답고, 또 그렇게 아픈 노래가 세상에 다시 있을까 싶다.
광주이벤트, 우리의 소중한 시간
2009년에는 제법 어린이날 다운 어린이날을 보낼 수 있었다. 알라딘 파주 물류센터 투어를 다녀왔던 것이다. 해마다 어린이 날 즈음해서 열리는 파주 책잔치 시즌이면 이때의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알라딘 물류센터 투어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가 다녀왔던 곳 중에서 최고 정점을 찍은 것은 유홍준 교수님과 함께 한 부여, 완도 답사였다.
그밖에도 많은 공부를 하게 된 각종 강연회가 있었고, 큰 즐거움을 갖게 한 여러 공연들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의 하루는 알라딘 서재에서 시작해서 알라딘 서재로 마무리하는 궤도를 갖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지금도 가슴 두근거리며 교제하고 있고, 여기서 산 책들을 읽고, 그 감상을 이곳에 적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일상들이 이곳에 가득히 스며들어 있다. 시간이 더 흘러서 찾아 보면 얼굴 빨개질 수도 있고, 어이 없어 웃을 수도 있는, 그러면서도 즐겁게 추억할 수 있는 많은 추억들이 이곳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러니 이곳 서재는 내게 앨범이고 일기장이며 거울이다.
내게는 알라딘 폴더가 있다.
내 컴퓨터 하드에는 '알라딘' 폴더가 있다. 가장 많은 것은 '밑줄긋기'를 적어 놓은 한글 파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알라디너들의 이름이 담긴 폴더가 있다. 그 안에는 사진도 있고, 노래도 있고, 기억도 있다. 누군가 결혼을 하고(알라디너 커플도 있고!) 아기를 낳고, 또 그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는 일련의 삶이 담겨 있다. 컴퓨터 하드를 여러 차례 날려 먹은 내가 이제는 백업까지 해두는 소중한 폴더가 되었다.
물론, 긴 시간 이곳에 있으면 늘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이름만 떠올리면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불쾌함을 넘어서 증오를 갖게 하는 인물도 이곳에서 만났다. 그러나 시간은 놀라운 치유력을 가져서, 애써 떠올리지 않는다면 이제는 그다지 자주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내게 아픈 손가락으로 자리한 분도 계신다. 미안함과 아쉬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차 옅어지고 있다. 그 모든 감정들이 모두 이곳에 녹아 있다. 그러니까 알라딘 폴더는, 내 마음에도 있는 것이다. 자주 열지 않지만 가끔 열어서 먼지도 털어내고, 기억도 환기시키는......
서재 10년, 나의 서재 생활은 8년. 앞으로도 어깨동무하며 잘 지낼 것이다. 좋은 책 보며, 좋은 사람 만나며, 그렇게 좋은 기억 담아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