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선생님과 함께 한 부여 답사
<답사기>의 유홍준과 시골의사 박경철의 대화
유홍준 교수님과 함께 한 창비 남도 답사 여행 첫째날!

새벽 6시 반 기상, 7시에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메뉴는 전복죽! 

 

전복죽은 죽집에서도 가장 비싼 메뉴이기에 늘 호기심에 차지만, 먹어보면 결국 회맛이 나서 먹지 못하곤 했다. 이번에도 재도전했지만 목구멍에서 안 넘어가...ㅜ.ㅜ 어릴 때 오징어 먹고 크게 두번이나 체한 이후로, 그런 질감의 음식들을 먹지 못하고 있다. 입안에서만 맴돌고 잘 삼켜지지 않는다. 게다가 전복이 비리기까지 해... 흑, 그래서 그냥 죽만 먹었다. 비싼 전복을 남겨서 참 죄송한 마음... 누군가는 아침 메뉴가 전복죽이란 소리에 더 자려다가 일어났다더만....;;; 

식사를 마치고 마당을 잠시 거닐며 꽃구경을 했다. 내친김에 다른 곳에서 찍은 꽃 사진도 함께 모아본다. 

 

아침에는 제법 여유시간이 있었다. 출발 시간 까지는 두시간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전날 밤중에 보았던 바다를 밝은 와중에 다시 보기로 했다. 

 

민박과 펜션 쪽은 무척 밝았는데 바닷가 쪽은 무척 어두워 보인다. 아마도 해가 구름에 가리웠나 보다. 

 

이렇게 캄캄했지만 금세 해가 났고 환해졌다. 

(사진 펑!)

아, 나는 어쩌자고 저렇게 배시시 웃었단 말인가! 

 

돌틈 사이에 꽃게 한 마리! 어제 본 토종 닭처럼 엄청 빠른 발놀림을 보여주었다. 언니가 동영상도 찍었는데 용량이 크네...;;; (작업했다!) 

 

 

어제는 어두워서 못 본 안내판이다. 이곳 해변은 몽돌이 유명한데 파도가 밀려왔다가 쓸려 나가면서 비탈진 해변가의 돌들이 굴러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가 무척 예쁘다. 21년 전에 이곳에 왔다고 하셨던 교수님 부부도 예전만큼 소리가 길게 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몽돌이 많이 반출되어서 돌이 구를 수 있는 거리가 줄어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돌아올 때 버스 안에서 답사 소감을 얘기할 때 보니 몇몇 교수님들이 몽돌을 갖고 오셨나보다. 자신은 작은 것 들고 왔을 뿐이라고 말하신 분도 계셨는데, 크나 작으나 가져온 건 가져온 거죠...;;;;; 

해변가와 파도 사진을 연이어 감상해 보자. 

 

 해조음은 밤보다 아침에 더 잘 들렸다. 밤에 녹화한 것보다 아침에 녹화한 것을 올리고픈 욕심에 무리를 해보았다. 일단 파일 이름이 mov로 되어 있어서 다음팟 인코더로 avi 파일로 바꿨고, 세로로 눕혀서 찍은 거라서 90도 회전하기 위해서 버츄얼덥을 해보다가 안 되어서 통합 코텍을 깔고, 그리고도 안 되어서 윈도우 무비 메이커로 90도 회전을 시켰다. 그 다음에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드 했지만 링크가 안됐고, 파란과 싸이 역시 링크가 안 되어서 유튜브로 갔다. 거기서도 엄청 헤매다가 드디어 업로드 성공! 아, 눈물 나려 한다....ㅜ.ㅜ 

 

 

올려놓고 보니 파일을 압축한 게 살짝 아쉽다. 그렇지만 다시 하자니...;;;;; 

(기어이 다시 해봤는데 파일 상태 차이가 보이지 않아서 다시 업로드 하지는 않았다. 하나 성공하고 기뻐서 꽃게 촬영한 것도 업로드 했다. ㅎㅎㅎ) 

숙소에서 출발하면서 전날 들렀던 부용동 원림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세연정 주변 일곱 바위를 지칭하여 칠암이라 불렀는데, 그중 사투암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 데 발받침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유교수님, 포즈 취하시는 김에 활시위 당겨달라고 하니 바로 자세 잡아주신다. 근데 왼손잡이셨나요? ㅎㅎㅎ 

 

 

사진 올리면서 동영상도 같이 올려본다. 사진만큼의 해상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꽤 흔들리기도 했지만, 대략적인 느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윤선도의 스케일은 보일 것이다. ^^ (앗, 자세히 들으면 내 목소리도 나온다!)

 

 

그리고 사진을 어떤 각도에서 찍느냐에 딸라 달라지는 다리 길이 인증샷! 

(사진 펑!) 

전날 공룡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과 둘째날 부용동에서 찍은 사진. 카메라 든 사람보다 윗쪽에서 찍힐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가져간 모자는 관리 잘못으로 좀 휘었는데, 그 바람에 옆으로 비틀어서 써야 했다. 저 사진 찍을 때는 그늘이어서 목에 둘렀는데 마치 갑옷같다. 혹은 아주 짧은 케이프?? 

부용동 주변을 아쉽지 않게 휘휘 돌아보고 노화도 동천항에서 완도행 페리호를 탔다. 구름은 꼈지만 햇볕에 바닷물이 반사되는 것이 무척 예뻤다. 

 

배 안에서 유교수님이 그린 화첩을 구경했다. 오호라, 그림 솜씨도 빼어나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무릎팍 도사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정말 손재주가 많으신 것 같다. 글씨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참 폼이 난다. 아, 이걸 보고 나니 붓펜이 갖고 싶어졌다. 붓펜으로 글씨 쓰기 좋아하는 엘신님 생각도 나고...^^    

일정표에 따르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완도 화홍항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갔던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화홍항인지 잘 모르겠다. 원래 일정은 완도 청해진 유적지를 가는 거였는데, 그곳은 테마 파크 분위기여서 유적 답사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여 급하게 신지도로 방향을 바꾼다고 했기 때문이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너무 눈이 부셔서 파라솔 밑에 앉아 있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선글라스를 챙긴다는 걸 깜박한 게 어찌나 아쉽던지... 

(사진 펑!) 

눈부셔 죽겠다는 저 표정을 보시라! 

나만 덥고 눈부셨던 게 아닌가 보다. 화장실 다녀와보니 벌써 모두 차에 탑승해 있다. 아, 난 에어컨 바람이 좋아...ㅜ.ㅜ 

다시 배에 올랐다. 유교수님의 그림에 대한 감동이 아직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더 큰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말았다.  (유교수님 쏘리!) 

 

바로 김정헌 선생님 그림 등장이다. 두둥!!  

순오기님과 민주양에게 선물한 완소 보길도 세연정 그림!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김정헌 선생님!  

 

사진을 붙였더니 그림이 작아서 잘 안보이는 게 흠이다! 

그리고 빼앗긴 시선을 되찾아오고자 하는 유교수님의 고군분투!  

 

소박하지만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 시적으로 표현되었다.  
두분이 사용하는 펜이 다르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직업 화가이신 김정헌 선생님이 사용하는 게 더 전문적인 펜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진은 김정헌 교수님과 찍기! ㅎㅎㅎ  

(사진 펑!) 

여전히 눈부셔서 눈이 안 떠지고 있다. 두고두고 후회되는 썬글라스...ㅜ.ㅜ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배뒤로 하얀 물보라가 일어나는 모습이 재밌었다. 마치 모세의 기적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림 구경에 바다 구경까진 좋았는데 반팔 차림으로 내내 버티기엔 지나치게 추웠다. 추위를 피해서 1층으로 내려오니 기관실 소리가 또 너무 시끄럽다. 그래서 아예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바다를 달리는 배 안의 버스 위에 들어가 있으니 마치 내가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베드로가 된 기분? 자꾸 성경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찍고 나의 카메라는 장렬히 사망해 주셨다. 밧데리 충전기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동영상 촬영하느라 많이 소모됐나보다. 이렇게 준비 정신이 없어서야..ㅜ.ㅜ 

신지도는 원교 이광사가 유배를 갔던 곳이다. 강화학파인 이광사는 소론 출신으로 영조 때 나주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는데 글씨로 이름을 떨친 서예가이다. 추사 김정희가 그의 글씨를 혹평했다고 하는데, 둘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시간 차가 존재한다.  

 

글씨에 대해서 아는 바 없는 나로서는 추사의 글씨나 원교의 글씨나 읽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로 교육 문제를 당부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광사도 아들들에게 그리했다. 그의 둘째 아들은 '연려실기술'로 유명한 이긍익이다.  '연려실'은 아버지 이광사가 직접 지어준 서실(書室) 이름이기도 하다. 이긍익은 아버지의 유배지인 신지도에서 연려실기술을 지었는데 약 30년에 걸쳐 저술했다고 한다. 100년 전에 간행되었다는 기록과 1966년에 발행됐다는 기록은 보이지만 지금 구할 수 있는 한글 번역본이 보이지 않아 무척 아쉽다. 혹시 지금 열심히 한글번역 중이려나???


그나저나, 신지도에 내려서도 이광사 유적지는 가보지 못했다. 표지판이 없고 다 함께 이동하기 곤란하다고 해서 교수님만 마을 주민들께 길을 물어서 다녀오셨다. 유배지 터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상상으로도 무척 쓸쓸하다. 

 

기다리는 동안 찍어본 신지도의 별다방! 

그리고 달리는 차 안에서 찍은 장보고 동상. 청해진 테마파크(?)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렇게나마 아쉬움을 달래본다.^^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논을 보니 벼이삭이 마치 파도타기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토록 파란 것을 보니 이번 추석이 얼마나 이른지 새삼 감이 온다.(이 글을 쓰는 시점은 이미 추석이 지났지만...ㅜ.ㅜ)

차 안에서 무릎팍 도사 재방송을 시청했다. 산길을 꼬불꼬불 달리느라 전파가 닿지 않아 DMB가 자꾸 끊겼지만 그래도 다시 보니 또 재밌다. 애석하게도 재방송인지라 편집이 좀 되어 몇몇 이야기들은 잘렸다. 못 보신 분들은 필히 다시 보기를 이용하시라!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게 해미식당에 도착했다. 점심 메뉴는 매운탕 지리! 

 

사망한 카메라 대신 핸드폰으로 찍었다. 맞은편에서 사진 찍고 계신 순오기님 손이 보인다.^^ 

차 안에서 간식을 많이 먹어서 배가 덜 고팠다. 역시 시장이 최고의 반찬인 법!! 

애석하게도, 점심을 먹고 나서 나의 일행은 곧바로 터미널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언니는 김해에서 왔는데 우리의 일정이 뒤로 조금씩 밀리고, 또 미황사 방문이 추가되는 바람에 집으로 가는 시간이 아주 애매해졌던 것이다. 광주를 거쳐서 김해로 가던가, 부산으로 갔다가 김해로 되돌아가는 방법 등등이 있는데, 여하튼 모두 완도로 돌아간 다음에 밟을 수 있는 수순이어서 그곳에서 서울 가는 것만큼이나 오래 걸린다고 했다. 터미널 시간표를 검색하고, 전화도 해보고 갖은 방법으로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가 결국 미황사는 포기하고 일어서기로 한 것이다. 언니 빠빠이! 더불어 언니의 아이폰 카메라도 빠빠이! 아, 디카보다 성능 좋은 아이폰 카메라라니....  

언니와 헤어지고나서 도착한 미황사. 유교수님은 미리 사찰에 방문한다고 얘기해 놓으셨고, 사찰 측에서는 간식을 준비한 채 우리를 기다려 주셨다. 다과상을 준비해 놓으신 분은 미리 답사기 책을 챙겨놓고 교수님이 들어서자마자 사인부터 부탁했다. 무척 고대했다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오르는 길에 한 컷 찰칵! 핸드폰으로 찍었다..;;;; 자그마하지만 물살이 힘차게 뻗어내려와 보는 이를 시원하게 해준다.   

 

유명한 대웅보전을 먼저 보고 싶었지만 손님의 예는 다해야 하므로 자하루에 먼저 집결(?)했다.  

 

주지 스님은 출타 중이셨고, 젊은 스님이 미황사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셨다. 법명이 생각나질 않는다. 다경스님이셨던가? ㅜ.ㅜ
우리는 맛난 한과와 매실차, 그리고 복숭아로 목을 축이며 설명을 들었다. 

 

 

여기서 등장한 우전국은 인도를 뜻한다.  

 

입구에서 찍은 달마대사다. 

 

내친 김에 서산대사 이야기도 잠깐~ 

 

미황사에 관한 이야기는 답사기 1권에 나온다고 말씀해 주셨다. 해남강진 편에서 소개되었나 보다.  

스님도 창건설화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셨고, 유교수님도 이곳에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생각이 안 난다. 맙소사..ㅜ.ㅜ  

자하루에 걸려 있던 그림과 관련해서 안견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기억이 마구 섞여 있다. 정녕 나는 그곳에서 한과 두 개와 복숭아 세조각, 그리고 매실차 한 잔 밖에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 

 

자하루에서 나와서 대웅보전을 바라보고 올라갔다. 카메라가 나가긴 했지만 다시 켜면 한 장 쯤은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모험을 해보았다. 켜자마자 바로 찍는 거야, 하나 둘 셋!! 

 

헤헷, 다행히 한 장 건졌다. 대웅보전은 단청이 보이지 않아서 무척 이색적이었는데, 단청을 칠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건물을 중수하고 난 뒤 250여 년 동안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색이 바래져버린 것이다. 색이 바래어 오래된 사찰의 그윽한 느낌이 더 짙어져서 오히려 더 감동적으로 보였다. 뒤에 보이는 산이 남도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는 달마산이다.  

 

느티나무 기둥 아래 쪽에 게와 거북이가 새겨져 있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인도에서 경전과 부처님상을 싣고 땅끝 사자포구에 배가 한 척 닿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배의 상징으로 대웅보전을 지었고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기둥의 주춧돌에 새겨 대웅보전이 배임을 묵언 중에 설명하는 것이라 한다. 

 

물고기 주춧돌이다. 물고기의 눈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건 무얼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다. 설명 들을 때 딴 생각한 불량학생....ㅜ.ㅜ 

  

보물 947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내부 모습이다. 가운데가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천장 곳곳에 천 명의 부처님이 그려져 있어서 세 번만 절을 올리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부처님이 천 분이니 세 번이면 삼천 배가 되는 셈이라나. 아주 마음에 드는 셈법이다.^^  

사진에서 잘 안 보이지만 천장의 동글동글한 무늬는 산스크리트어 문자라 한다.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곳이었다.  

 

보물 1183호로 지정된 응진당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 중에서 신통력이 뛰어난 16명의 아라한들을 모신 전각이라 한다. '응진'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히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라한'의 한자어다.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리 전통 건물의 처마는 정말 아름답고 우아하기 그지 없다.  

 

이곳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면 멀리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진도가 보인다. 실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날이 흐렸고 가끔 빗방울도 떨어졌지만 다행히 우리가 이동 중일 때 주로 비가 내리는 천운이 따랐다. 이날도 날이 흐려서 시야가 밝지 못했지만, 구름낀 하늘 아래의 바다도 운치 있어 좋았다.  

미황사를 휘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유교수님의 걸음이 멈춰졌다. 

 

예쁜 화분들이다. 디자인 비따 실장님께 선물로 드리겠다고 집어들었는데 가장 마음에 들어한 그릇이 깨져서 팔지 않는다고 한다. 깨진 그릇까지 포함해서 퉁쳐서 오만원권을 내미신 교수님. 원래 하나에 2만원이었던가? 3만원이었나? 그릇들이 예뻐서 실장님 마구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교수님은 무지 부채도 세 개(이건 기억난다. 세개에 12,000원!)를 사셨는데, 옆에서 보아하니 이것저것 많이 선물해 주시는  스타일인가 보다. 좋아, 좋아!!  

 

템플스테이와 괘불재가 유명한 미황사답게 안내도 잘 되어 있다. 템플스테이는 연인원 5천 명 정도를 수용한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다. 사찰 측에서는 몹시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을 텐데 잘 정착이 되었나보다.  

미황사의 괘불은 보물 134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높이가 12미터고 폭이 5미터에 이르는 큰 규모여서 괘불을 거는 데만 10여 명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직접 보면 꽤 장관일 것 같다. 이렇게 생겼다. 

 

1년에 한 번 공개되는 괘불재는 10월 8일 토요일 오후 1시에 진행된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찾아가보시라! 소박한 음악회도 같이 진행된다고 하니 무척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얼마 전에 뉴스에서 성악하시는 비구니 분이 성당에서 노래를 하는데, 앉아 있던 신도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노래하신 분은 찬불가로 불렀을 것이고, 듣는 이들은 그 대상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였겠지만, 감동은 똑같이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황사에서도 그런 기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내려오는 길에 찍은 일주문이다. 이 사진 다음에 찍은 사진이 더 멋졌는데 핸드폰에 저장 공간이 없다고 사진이 지워졌다. 카메라는 더 이상 회생 불가능인지 오래이고....;;;;  

아쉽지만 미황사를 떠나면서 순오기님과 민주양과는 헤어져야 했다. 두 분은 다른 분들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우리는 서울로 향하는 길이 되어버렸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서 처음 계획했던 시간 내에는 결코 도착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게 억울할 리는 당연히 없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시 부채 위에 그림을 그리시는 교수님. 두 개는 본인이 그리고 하나는 김정헌 샘께 맡겨서 박석무 이사장님께 드릴 선물로 마련한다. 

 

휴게소에서 멈췄을 때 자리에 두고 내리신 것을 가서 핸드폰으로 찍었다. 좀 흔들리기는 했지만 훌륭한 솜씨를 엿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앞면과 뒷면 사진을 한 장으로 붙인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잠시도 마이크가 꺼져 있을 수가 없다.  

유교수님은 북한 다녀온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그림으로 알고 있던 금강산 계곡 길이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나 있는 것을 지적했더니 홍수로 인해 길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한다. 영남대 계실 때 도서관이 22층이었는데 그게 김일성 대학이 21층 건물이어서 한 층 더 높여서 그랬다지만, 그 이야기는 생략한 채 김일성 대학의 건물 층수를 맞추니, 교수님을 안내한 북한 쪽 인사는 얼마나 놀랐을까. ㅎㅎㅎ 

화첩에서 본 금강산과 실물 금강산이 다른 것도 충격이었다고 하신다. 진경산수화가 실물을 그대로 옮게 게 아니라 화가의 재해석이었다는 것을 확인하셨을 것이다. 

 

 

 


중앙일보가 북한 문제만큼은 한겨레보다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셔서 무척 놀랐다. 오홋, 그렇단 말인가! 

김정헌 선생님도 마이크를 이어 받으셨다. 이제 나이가 차서 지하철도 공짜로 탈 수 있는 백수라며 복지 혜택을 누리고 계시다고 해서 웃음을 자아내셨다. 본업이 화가이니 곧 복귀하려고 준비 중이라 하셨다. 당신의 인기를 확인한 답사였다며 상업적 성공도 가능하겠다며 웃으셨다. 아하하핫,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공대사(65세 은퇴로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님! 

80년대부터 농촌 관련 그림을 많이 그리신 김정헌 샘은 마을운동을 계속 하셨다고 한다. 프레시안에도 관련 글을 연재하셨는데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현재 작년부터 제천의 폐교를 빌려 마을 이야기 학교를 만들고 계시는 중이라고...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주민 대상의 마을 영화제, 마을 책장, 미술, 한글 교실 등이 열리고 주민 그림으로 전시회도 열린다고 하니 진정한 예술가가 사는 마을이 탄생하는 것이다. 마을 속으로 직접 뛰어 들어서 그 안에서 예술과 삶을 하나로 화합시키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근사하다. 

80년대 민중 미술 운동 때부터 유교수님과 함께 활동을 하셨다는데 신촌 우리 마당에서 서초동으로 옮길 때 답사를 같이 해보고서는 무척 놀라셨다고 한다. 준비가 엄청 철저했다는 것이다. 강의 장소 없이 쫓겨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문화유산 훼손한다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늘었다고... 그렇게 유교수 싫어하는 사람들을 중간에서 모두 커버했다고 장담하시는 김정헌 선생님의 표정이 악동같이 순수하게 빛난다. 유교수님의 부여 새집이 작은데도 나무는 수십종을 심었다고, 이름도 다 모를 거라며 욕심쟁이라 말씀하시지만 그 안에 부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모두 담겨 있다.  

유인태 선생님도 마이크를 이어 받으셨는데 이분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뭐랄까... 쎄다! 김어준 삘이 나는 시원스러움에 속이 다 후련해지는 기분. 차마 글로 옮길 수는 없다.^^ㅎㅎㅎ 

그밖에 유교수님의 다음 답사기가 될 제주도 편 소개를 약간 들었고, 답사에 참여한 여러 교수님들과 창비 편집진들, 그리고 민간인(!) 나까지 소감을 한 마디씩 전하고 눌와 대표님의 인사로 마무리가 되었다. 모두를 향한 감사와 격려의 박수가 아름다웠던 시간이었다.  

유교수님은 직접 그림을 그린 부채 중 하나를 내 앞자리에 앉은 최연소 학생(중3)에게 선물하셨다. 아버지 따라 참가한 여학생이 횡재하는 순간, 나는 의자 너머로 그림을 훔쳐보면서 짱구의 눈빛 공격을 마구 발사했다.  

 

요렇게! 그러자 마음 약해지신 교수님은 내게도 부채를 하사하셨다. 음하하하핫! 이렇게 생겼다.^^ 

 

받자마자 찍은 사진인데 잠시 후 왼쪽 공백에 내 이름도 적어주셨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글씨를 어찌나 잘 쓰시는지 감탄에 감탄! 50년 뒤 진품 명품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농담도 건네셨는데 아무렴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겠어요.^^ 

내 앞자리 학생이 받은 그림은 배 안에서 그리셨던 요그림이다. 

 

부채를 직접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건 스케치북 사진이다.  

앞쪽에만 그림이 그려져 있고 뒤쪽은 무지 상태이므로 김정헌 샘께도 그림 한장을 부탁하고 싶었는데, 모두의 소감을 다 듣고서 인사까지 하고 나니 이미 양재역에 도착해 버렸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두손 덥석 잡고 인사했다. 그리고 내려서는 유교수님과 악수를 했는데 손이 참 따뜻해서 기분이 더 좋아져버렸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도 흥분과 여운이 가시지 않아 괜히 히죽히죽 웃어버렸다. 아, 나는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냈던가. 얼마나 행운을 가졌던가! 인복도 많지, 브라보! 이렇게 자축하는 시간이었다.^^ 

노래 '광야에서'를 참 좋아하는데 가사 중에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이라는 대목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비록 광활한 만주 벌판은 느끼지 못했지만 뜨거운 남도는 가슴에 품을 수 있지 않았는가. 

급작스럽게 떠난 여정이어서 미리 공부도 못했고 준비도 부족했지만, 눈과 마음에 깊은 인상을 새겼으니 욕심 부리지 않으련다. '공부'의 측면에서 본다면 지난 부여 답사 때 더 많은 것을 담아온 것 같은데, 남도의 정취를 가득 느낀 이번 답사도 그 못지 않게 좋은 시간이었다.  

벌써 3주나 지나버려서 기억은 마음만큼 충족시켜 주지 못했지만 벅찼던 기억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다. 유교수님과 함께 하는 답사라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좀 더 내공을 쌓아 스스로도 멋진 답사를 다녀올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가고 싶은 곳이 참 많다. 배울 것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역시,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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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09-1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황사도 가셨었군요. 좋은 곳만 다녀오셨네요~~

마노아 2011-09-18 23:40   좋아요 0 | URL
행운이 따라왔어요. 좋은 구경을 많이 했네요.^^

같은하늘 2011-09-1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렸는데 마노아님 프로필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리고 답사여행기도 부러운데, 유교수님의 부채까지 받으시다니...
길이길이 가보로 남겨야 할 것 같아요.ㅎㅎ
아쉬움은 울집 컴 자판이 잘 안먹어 아이패드로 보고있는데,
이상하게 아이패드로 마노아님 서재에 오면 사진이 안보이는게 많아요.ㅜㅜ

마노아 2011-09-19 01:37   좋아요 0 | URL
헤헷, 칭찬 감사합니다.^^
우리집 가보로 지정된 부채, 고이 모셔두고 있어요~
답사기는 사진이 핵심인데 보이지 않는다니 안타까워요!
사진만 피씨로 다시 보셔요.^^ㅎㅎㅎ

순오기 2011-09-19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배시시 웃은 마노아님의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페이퍼에요.
심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우리딸이 받은 김정헌 선생님 세연정 그림도 훌륭하지만, 마노아님 선물받은 부채그림도 훌륭해요.^^
창비가 진행하는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 하는 답사라면, 휴가를 내서라도 꼭 가겠어요~ 불끈!!

마노아 2011-09-19 12:39   좋아요 0 | URL
그치요?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있다면 열일 제쳐놓고 다녀와야지요.
우린 큰 행운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요새도 한 번씩 고개르 ㄹ돌려 부채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어요.
김정희의 세한도보다 더 훌륭하다는 착각마저 들고 있어요. ㅎㅎㅎ

조선인 2011-09-19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이건 정말... 흑흑흑

마노아 2011-09-19 12:40   좋아요 0 | URL
저의 여름 휴가는 남도 답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스탕 2011-09-1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둘째날 답사기가 있다는걸 잊었었어요;; 이렇게 된건 다 마노아님 책임이니 열심히 읽었어요! (뭔 말? ㅎㅎㅎ)
아침 바다에서 정말 뭐가 좋아서 저렇게 배시시 웃으셨답니까? 유교수님이랑 사진 찍을때도 좋아서 표정 관리가 안되더니 저 사진은 유교수님이 찍어주셨나? ^^
미황사는 몇 년전 여름휴가 갔을때 들렀었는데 너무 더웠던 날이라 애들이랑 신랑은 얼른 가자고 재촉하고 난 더 보고싶어 징징거렸던 기억이 있어요. 담엔 꼭 여유있게 다녀와야지! 결심한 곳이지요.
유교수님의 손을 탄 부채, 정말 볼때마다 뿌듯하시겠어요.

마노아 2011-09-19 12:4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이렇게 오래 걸려서 쓸 줄 몰랐어요..;;;
배시시 컷은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하냐고 사진 찍어준 언니가 한 마디해서 저도 모르게 빵 터진 뒤였답니다.^^
미황사 다녀오신 분들이 꽤 되네요. 저만 이리 좋은 곳을 늦게 알아차렸어요.^^
부채는 이제 저의 가보예요~ ^^

꿈꾸는섬 2011-09-1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얼마나 좋았을까요?
10여년전에 남해에 갔다가 보길도에 들렀던 기억이 나네요.
미황사의 기둥에 새겨진 바다 생물들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같이 갔던 분이 이런 저런 얘기해주셨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해요.
언제든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마노아님 요새 부쩍 더 미모로워지시는 것 같아요. 게다가 바위 위에서 찍은 사진은 정말 다리가 엄청 길어 보이더라구요.^^

마노아 2011-09-19 12:41   좋아요 0 | URL
역시 보길도와 미황사는 인기 지역이었던 겁니다.^^
저는 한 달도 안 되어서 들었던 설명을 벌써 까먹었어요. 이 머리를 어쩜 좋습니까...;;;;
바위 씬 다리 끝내주죠? 저렇게만 사진을 찍으면 좋겠어요.^^ㅎㅎㅎ

달사르 2011-09-1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읽을 게 많아서 북마크 체크했어요. ^^ 두고두고 봐야징~~
일단 마노아님의 환히 웃는 모습만 눈에 담았어요. 어쩌자고 그런 해맑은 미소를 띄워서 (여자의 마음까지) 두근거리게 만듭니까! 마노아님의 역사탐방기 및 강연회 후기, 예술 작품 감상기 등은 정말 매력 만점! ^^

마노아 2011-09-19 21:51   좋아요 0 | URL
헤헤헷, 저는 달사르님의 댓글에 가슴이 두근두근콩콩이에요.^^
강연회 후기, 전시회, 공연 등등...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