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전호인님 가족동반석에 한 좌석 빈다는 급보(?)를 듣고, 예약해두었던 고속버스를 취소했다.
취소 수수료가 10% 붙었지만 KTX를 첨 타본다는 사실에 급 흥분했던 나..;;;;; 전호인님, 제가 책 쏠게요^^
토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용산역으로 출발. 조금 여유있게 도착했던 나는 출발하는 남쪽문이 아닌 도착하는 북쪽문에서 엉뚱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일순 기차 놓치는 줄 알고 급 당황 모드! 어쨌거나 무사히 안착.
전호인님은 사진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던 얼굴이었지만 옆지기님은 처음 뵈었는데 참으로 미모로우셨다. 어찌나 날씬하시던지! 게다가 두분의 공주님 해람양은 사진을 초월하는 미모를 자랑했는데 박신혜와 보아를 섞은 듯한 얼굴? 아, 남자들 많이 울리고 말 인물이다. (사진은 웬디님이 찍으셨으니 거기서 확인을^^;;;;)
뒷칸에 타고 있던 웬디님을 우리 쪽으로 불러서 함께 수다 떨고 있었는데 진짜 자리 주인이 나타나 우린 각자 자기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시속 303km까지 달리는 KTX는 대전까지 한시간에 돌파해주는 기염을 보여주더니, 대전부터 광주까지는 두시간에 달려주는 초라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전호인님 설명에 의하면, 전용 노선이 대전까지고, 그 이후부터는 새마을호 노선을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서울서 동대구까지 한시간에 떨어지지만 부산까지는 2시간 40분에 떨어진다고. 뭐랄까, 참 실용성이 떨어지는 시스템이구만. 그래도 서울 대구간 한시간에 달릴 수 있다면, 노선 확보하고 달리면 남도에서 백두산까지 3시간이면 도착하지 않을까? 물론, 그 길이 열릴 때의 일이지만. 씁쓸한 상상 한가지 해 보았다.
9시 40분 도착. 순오기님과의 반가운 상봉. 이어서 클리오님 가족과 또 친구분 가족과의 만남. 생각보다 조촐한 인원의 참여였다. 조금 늦게 도착한 시니에님까지 포함해서 우리 일행 열 두명. 담양 군청에 투어 신청한 다른 분들과 함께 45인승 버스를 타고 출발. 해설사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셨는데 지역 문화유산과 자연에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신, 로맨틱한 분이셨다. 기념선물로 펭귄 책갈피를 만들어주신 순오기님. 무려 세장이나 받았다. 게다가 아침 굶고 온 우리를 위한 맛들어진 쑥개떡까지. 이 개떡 참말로 달더라. 아, 고마운 순오기님! 부비부빗!(^^ )( ^^)
죽녹원에서 하루에 40cm나 자라는 대나무 숲의 장관에 감탄하던 우리는 사진 찍으며 즐기다가 일행을 놓쳐 헤매는 실수를 감행. 그래도 결국엔 다 만나지더라. ^^
강릉 오죽헌의 자그마한 검은 죽과 대조적으로 쭉쭉 뻗은 대나무 숲을 보며 '와호장룡'의 놀라웠던 영상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이후 그런 스케일의 영화는 많이 나왔지만 그만큼 감동을 주는 대작은 보지 못한 듯. 그나저나 쿵푸팬더에도 대나무가 나오겠지? (갑자기 딴소리..;;)
돌아 나오는 길에 들린 채상장 전시관. 인간문화재 선생님의 놀라운 작품과 압도적인 가격에 경도되었다.
대나무로 만든 예쁜 브로치와 코사지가 참으로 탐이 났지만 꾸우욱 참아야 했다.
시집갈 때 하나 들고 가고 싶은 장식장. 참말로 폼나게 멋있었다. 당연히 값도 뻑가게 비쌌다^^
소싯적에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랑 예복입은 신랑을 종이공예로 만들어 선물하곤 했었는데 오래되어서 기억도 안 난다.
한지 공예로 이런 것 만들어도 참 재밌을 듯하다. 저 인형들은 12등신을 넘어 거의 16등신은 되어 보인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 '오병이어기적'이 제목이다. 깔끔 담백한 느낌? 어릴 때 이 노래로 율동도 많이 했었는데...
관방제림이다. 저길 건너다 보니 '직녀에게' 노래 한소절이 떠오른다. 노둣돌을 건너는 우리랄까.
시니에님이 앞쪽에 계시고 뒤로 해람이 클리오님, 전호인님 옆지기님과 해설사님, 그리고 행운의 총각과 절반만 나온 전호인님이 보인다.^^
청둥오리(아마도?)와 하얀 오리가 예쁘게 헤엄친다. 쟤들도 발밑에선 백조처럼 바쁘게 헤엄치고 있을라나?
뒷태마저도 예쁜 우리 웬디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사람이 많아서 쭉 뻗은 가로수길의 전경을 담긴 어려웠지만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이 길도 더 멋져보이는 것일 게다. 이런 가로수길이 무려 4km가 뻗어있고, 그 옆쪽으로 심어진 나무들의 연한이 3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사진은 생략) 미국인에게 이 길을 설명할 때, three hundred years ago로 기선 제압을 하셨던 일화를 얘기 해주신 해설사님. 그래그래... 미국도 전통 앞에선 컴플렉스가 있지..ㅎㅎㅎ
클리오님의 아기 예찬이와 친구분 아기 찬영이가 여기에서 한참을 즐겁게 놀았다. 이모 손 한 번 잡게 해달라고 알짱거렸지만 번번히 실패. 딱 한 번 성공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인줄 알고 잘못 잡았다는 이야기...댁은 뉘쇼!하는 예찬이의 표정. 흑흑..ㅜ.ㅜ
클리오님과 옆지기님은 예찬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완전히 자유로운 관람은 하기 힘들었을 텐데도 그 나름의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이 참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어요. 가족의 로망이랄까용.^^
이 길에서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 한정식 상을 닮은 근사한 한끼. 여기에 아까 말한 행운의 총각을 알라디너로 만들기 위한 우리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어떤 모임인가를 설명하다 보니 판이 커진 셈. 연신 우리네 만남이 참 신기해 보였나 보다. 사실 내 생각에도 우리의 만남이 신기하고 즐겁다. '알라디너'로 통하지만 사실 얼굴은 처음 보는 게 대부분이면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만남과 시간을 나눌 수 있다니.
점심 먹고 가장 기대했던 소쇄원으로 이동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찍어야 했는데 사람 없을 때 찍는다고 급하게 눌렀더니 아래쪽 하얗게 반사된 땅이 눈부시다.
저 담장의 굴곡이, 저 담장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들의 조합이 놀랍고 기이하다.
언젠가 옮겨왔던 구본준 기자의 담장 이야기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무질서함의 질서랄까.
제월당의 천장을 찍은 모습이다. 소쇄원 48영인 것 같은데 맞나?
각도의 오묘함을 느끼게 해주는 구도였다. 사람이 없다면 대청마루에 누워서 한잠 자고 일어나고 싶은 저곳. 졸졸졸 물소리가 자그마하게 울리는데, 수량이 줄어든 게 아쉽지만 고요할 때 더 크게 울려올 그 소리를 떠올려 보니 소쇄공 양산보 선생의 처사로서의 삶이 부러워진다. 물론, 땀흘려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수 있었던 양반님네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쪼오끔 불편해지지만, 흙탕물을 거부했던 당신의 삶은 더 멋졌노라는 것은 분명 인정한다.
문을 천장 쪽으로 완전 개폐한 상태의 광풍각. 소쇄원의 지도랄까. 도면이랄까의 목판 인쇄본. 액자 안에서 반짝인다.
역시 오묘한 각도가 신기하다고 생각. 핸드폰 사진인지라 해상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게 여러모로 아쉽다.
야외촬영 나온 새신랑과 새신부. 한복이 너무 고와서 찰칵! 찍었는데 핸드폰 카메라인지라 줌이 안 된다.
(클릭하면 커지긴 한다^^ㅎㅎㅎ)
황진이 버전의 한복이랄까. 전통식은 아니고 생활한복 식으로 고친 듯한데 입어보고 싶었다.
웬디님을 찍어주고 계시는 전호인님을 뒤에서 찍다. 가운데에 시니에님이 보인다. 어디 보고 계십니까??
우리를 초대해 주신 멋진 님, 순오기님이 가운데에 보인다. 그런데 사실 오른쪽 끝의 여자분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혼자 오신 분인데 어찌나 아리따우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니까.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비쥬얼을 자랑하신다. 차마 정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게 막 아쉽다.(이거 초상권 침해???)
가사문학관에선 탁본을 뜰 수 있게 해놨는데 시니에님이 '관동별곡'을 찍어주셨다. 성산별곡보다 관동별곡이 난 더 좋더라. 고마워요, 시니에님^^
가사문학관을 다녀오고 나서 올라간 식영정. 가장 기대했던 소쇄원을 제치고 광주 이벤트의 베스트 장소였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었던 꽉 찬 소쇄원보다 비어 있기에 더 가득 차 보였던 식영정 주변의 정경.
휘었지만 더 바르게 보였던 소나무의 기상이 늠름했고, 그 너머 강물의 푸른 기운이 조용히 다가오는 느낌.
두 팔을 벌려 한 바퀴 돌아본다.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상냥하고, 흙내음 풀내음 짙은 공기의 방문이 반갑기만 했다.
오래 전 화엄사 각황전의 탱화에 잔뜩 반했다가, 아무 것도 없었던 만복사지의 허허로움에서 더 깊은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어있기에 채워진 그 충만감. 이전 내 서재의 타이틀은 '비우고 채우기'였는데...
나이 들어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많아질 때면 대나무와 매화와 소나무와 난초를 그리는 것을 배우면 참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치가 많은 편인 나로서는 그 시간이 짐작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해설사 선생님께 브라보를 외쳐야 했던 순간이다. 당신만이 아는 비법(?)을 공개하셨는데, 식영정에서 내려오는 어느 길목에서 연못에 비친 두 처마의 꼭지점을 찍은 모습이다. 사진은 엉망이지만 이때의 감격은 잊지 못할 것이다. 행운을 끌어안아 배도 안 고플 지경.
답사 코스가 원래 정해져 있었는데 순오기님이 일정을 조정해 주셔서 우린 5.18 국립 묘지를 마지막 코스로 갈 수 있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도착한 그곳. 입구에서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리는데 추모탑에 이를 때에 노래는 절정을 이룬다. 그 넓은 곳에 메아리쳐 울리는 함성 '산 자여 따르라.' 벌써부터 눈물이 왈칵 난다.
전호인님이 대표로 향을 올리고 두번의 묵념이 이어졌다. 그 순간 내 마음에 차올랐던 간절한 기도...
더 이상 이같은 희생자가 없기를...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옳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를...
지금도 꺼지지 않는 우리의 촛불이 반드시 해방을 얻기를...
우리 뒤로도 단체 참배 행렬이 있어서 가이드 분의 설명은 듣지 못하고 일대를 둘러보았다.
5.18 추모관에서 영상 자료를 보다가 안쪽으로 굽어 들어간 곳에서 충격적인 사진들을 발견했다. 5.18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처참한 주검이었는데 두개골이 함몰된 모습은 차라리 성한 시신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끔찍했던 모습들. 단죄하지 못한 역사의 시간에 욕지기가 난다. 이럴진대, 그 유족들은 지난 30여 년 간 얼마나 참혹한 시간을 보냈을까. 여전히 기름진 얼굴로 건강하게 살고 있는 인간백정의 모습을 TV에서 볼 때마다 치미는 분노를 어떻게 다스렸을까. 저런 개새끼를 처단하지 못했기에 2메가같은 녀석이 또 나오는 것일 테지. 우리의 어깨가 무겁구나.
해설사 선생님과 투어팀과는 헤어지고 전통식당에서 보내준 카니발 승합차를 이용해서 5.18구묘역으로 이동했다. 이한열 열사의 무덤이 거기 있었고, 박선영 열사의 무덤도 있었다.
너는 살고 나는 죽었다던 박선영 열사의 어머니, 미처 알지 못했던 책을 검색해 보았다.
다큐멘터리도 있다던데 좀 더 찾아봐야겠다.
5.18 구묘역 입구에는 전두환이 다녀갔던 기념비를 바닥에 박아두었는데 아무리 쾅쾅 짓밟아도 분이 풀릴 리가 없다. 침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신발 밑바닥만도 못한 놈에게는 그조차도 사치스러웠다.
다시 카니발 승합차로 이동, 예약해 둔 한정식 집으로 고고씽! 무려 1인당 25.000원이나 하는 임금님 수랏상!
비싼 밥을 얻어먹으며 고마움과 미안함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금빛 놋그릇에 담긴 밥을 뚝딱 해치웠다. 마지막에 식혜 한잔까지 꿀맛같은 저녁식사.
한약 먹고 있는 중이라 금지 식품이 많았는데 그런 것 다 무시하고 열심히 먹었다. 아, 이렇게 과한 대접을 받다니 정말 송구스러운 일! 순오기님께 갚을 게 너무 많다. ^^
식사를 마치고 준비해 온 책들을 나누는 시간. 각자 짤막한 자기 소개와 책을 고른 이유를 설명하고 정겹게 책을 나누었다.
알라디너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들은 행운의 총각은 깐따삐야님의 공석을 대신 차지하고 수랏상을 받은 뒤, 책선물까지 받았다나 어쨌다나. 순오기님께 전화번호도 낚였으니(??!!) 이제 알라디너가 되는 일만 남았다.^^ㅎㅎㅎ
기차 시간이 있어서 서둘러 광주역으로 출발. 7시 40분행 기차를 타야만 했던 웬디님, 전호인님의 표는 9시 출발이었는데 매진이어서 기차표를 바꾸지 못했다. 비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금남로로 향하기로 결정. 그곳에도 촛불의 물결이 계속 출렁이고 있을 테니까.
전남도청 앞이다. 국기 게양대를 바라보니 참으로 쓰라리다.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시민들을 향한 총부리에도 불이 붙었다. 그 현장에 지금 내가 서 있구나...
금남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그 길목에 들어찬 사람들의 모습. 사진으로는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먼저 출발한 시니에님과 행운의 총각도 저기 어디메에 있을 것이다.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검은 깃발들이 나부낀다. 오늘은 고 이병렬 열사의 장례 행렬이 지난다고 했다. 계획하지 않았던 의미있는 시간에 동참하게 된 것.
장례 행렬이 뒤쪽에서부터 들어온다. 화물연대파업 투쟁자들도 그 뒤를 따른다. 유족들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21세기에도 열사들의 피를 요구한다니... 누구도 죽지 마라. 제발 죽지 마라. 함께 싸우자...
기차 시간 때문에 촛불 집회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광주역으로 돌아와 기차에 올라야 했던 우리. 끝까지 우리를 배웅해 준 순오기님과 아쉬운 작별 인사. 최고의 하루를 선사해 준 고마운 마음을 두고두고 갚을게요.
돌아오는 KTX 안엔서, 피곤한 몸을 쉴까 해서 잠들어 보려고 애썼지만 자꾸만 눈이 떠진다. 우리가 탄 열차는 게다가 518열차. 어쩌면 이렇게 짜맞춘 듯 생각을 몰아가게 할까. 떠나지 않던 사진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준비해 갔던 책을 펼치고 읽는다. 너무 빠른 속도에 귀가 멍멍하다. 눈 좀 붙일까 했지만 도착 10분 전. 12시에 도착해서 서울역행 막차를 타고 버스 두 번을 더 타서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반.
새벽 5시에 시작했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던 시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여러 일들로 인해 힘든 유월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생각의 파편들을 모처럼 잊고 지낼 수 있었던 소중한 하루였다. 이렇게 기쁘고 행복해도 좋을까 걱정이 될 만큼 멋졌던 내 하루의 시간. 함께 해서 더 멋졌던 소중한 알라디너들, 그리고 우리를 기꺼이 초대해 주고 물심양면 애써주신 카리스마 순오기님! 모두모두 고마운 내 이웃들, 고마운 우리의 인연.
그렇게, 2008년 6월 14일에 있었던 시간들의 기록에 마침표를 찍어본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집에 와보니 내 택배 상자를 누가 미리 개봉해 놓았다. 아마도 궁금해 하는 조카 때문에 언니가 열었을 것이다. 도착한 책들의 상태에 인상을 써본다.
최상품질이라고 해놓고는 변색에 젖었던 흔적으로 책주름까지. 변색은 좀 참을만한데 젖은 책 흔적은 못 참겠다.
반품을 요청해야지. 근데 알라딘 중고직배송 상품 반품 예가 있는가? 없어도 해야겠다.
<< 펼친 부분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