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비행기 타고 내려와 아스완에서 멈췄고, 거기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 아부심벨을 향하는 중이다. 아스완의 위치는 북회귀선이 지나는 즈음인데 대만 즈음 위도인 것 같다. 아부심벨 아래로 수단이 보이는데 그곳이 옛 누비아 지역이다. 뮤지컬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이다'에 나오는 누비아 공주님이 바로 이 지명에 해당된다.
창가 쪽으로 앉았는데 멀리서 해가 뜨는 게 보인다. 순식간에 동그랑 땡 해가 쏙 올라오는데 무척 근사했었다. 끄트머리에 조금 보이던 해머리가 3분 만에 지상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30분이 채 못 되어서 7시에 아부심벨에 도착했다. 또 다시 학생 할인 거부 당했다. 안 된다고 강력히 말해서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 다른 한국인들 만나 보니 거기는 할인 받았다 한다. 우린 또 속았다.ㅜ.ㅜ
차에서 내리기 전 차량 가이드가 45분 내에 돌아오라고 해서 우리는 화들짝! 이런 곳을 어떻게 45분 내에 다 돌라는 말인가. 그것은 유적지에 대한 모욕이다!
아스완 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버린 나세르 호. 우리도 오후에 크루즈를 탈 예정인데 여기도 크루즈가 정박해 있었다. 이쪽이 좀 더 고급 코스라고 한다.
멀리서 잡은 아부심벨 전경이다.
정면에서 찍은 모습. 하늘이 얼마나 파랗던지, 사막에서도 느꼈지만 우리나라 가을 하늘을 더 이상 자랑하기 힘들어졌다. 건조기후 나라의 푸른 하늘은 달력 사진 이상이라는 것... 4개의 거상 중 두번째는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 커다란 거상 사이사이에 여자들이 있는데 이는 람세스2세의 엄마, 왕비, 딸들을 표현한 것이다. 사진을 줄여놔서 잘 안 보이는 게 흠이다. 거상 위쪽으로도 작은 조각들이 즐비해 있는데 원숭이 모양이었다.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세운 신전이다. 제19왕조의 파라오인 람세스 2세는 30세에 파라오가 되어 상,하이집트를 67년이나 통치하고 96세로 사망한 이집트의 정복 군주다. (여기서 상이집트는 나일강이 시작되는 남쪽이고, 하이집트는 나일강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삼각주 부근이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기원전 13세기. 어휴, 우리 사이의 간극은 가볍게 몇 천년이다.
내부 사진은 찍을 수가 없어서 책에서 사진을 한컷 빌려왔다.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이다. 읽은 지 한참 되어서 다시 또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ㅠ.ㅠ
자세한 설명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부심벨은 내가 이집트에서 보고 온 여러 유적지 중에서 가장 장관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느끼게 한달까. 보지 못했지만 진시황릉을 보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내부는 가운데 공간을 중심으로 양쪽과 위쪽으로 여러 개의 복도와 작은 방으로 뻗어 있다.
기둥마다, 벽마다, 천장마다... 그 어느 곳이든 그림이 비켜가질 않는다. 꽉 채워진 그림 속에는 람세스 2세의 정복 전쟁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마차를 끌고 가는 그의 손아귀에 쥐어진 여러 끈은 굴복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꿰고 있다. 전쟁으로 대입시켜서 생각해 보면 무서운 장면인데도, 그저 유적으로 바라보면 그 벽화들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웅혼한 느낌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권력이었을지 짐작하게 되는...
볼 게 너무 많았다. 방도 많았고, 눈에 담아두고 싶은 것도 많았다. 이 많은 걸 어떻게 45분 내에 보냐고 막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시간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옆의 소신전에 가기 전에 같은 버스 타고 온 백인 남성 둘에게 시간을 다시 물어보라고 시켰다. 그 둘은 진정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 컬렌 같은 미모를 뽐내고 있었는데 지켜보니 아무래도 연인 같았다. 항상 손 꼭 잡고 다니고 팔짱도 끼고, 버스 안에서도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며 무릎 베고 자고... 아, 어딜 가든 멋진 남자들은 꼭 품절남!
암튼, 확인 결과 1시간 45분이라고 한다. 앗싸! 한 시간 벌었다.
아부심벨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역시 헉!소리 나게 멋진 소신전이다. 람세스2세가 그의 아내 네페르타리('완벽한 아름다움'이란 뜻)를 위해 만든 신전이다. 아부심벨의 그 장엄함에 비해 소박하고 우아한 멋이 느껴지는 신전이었다. 두 신전 모두 아스완 댐 건설로 역시 수몰 위기에 처했으나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범세계적인 모금 운동을 거쳐 높은 지대로 옮겨 세워졌다. 신전의 조각과 장식을 모두 2,000개의 조각으로 잘라내어 옮기는데, 운송 작업만 2년이 걸렸다. 해체된 돌은 하나 당 무게가 10~40톤에 이르렀다. 복원작업은 계획에서 완성까지 모두 5년이 걸렸고 4천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새 신전은 물길이 닿지 않는 약 200미터 위에서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이렇게 놀라운 유적을 그냥 물에 잠기게 두겠다고 버틴 이집트 정부의 진심은 뭘까? 배짱 튕기면 전세계가 알아서 도와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것일까? 하여간 인류의 큰 선물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소신전을 구경하고 아쉬운 마음에 다시 대신전에 들어가서 눈이 황홀하도록 보고 또 봤다. 이때 갑자기 배에서 신호가 온 내 친구. 이미 1년 전에 한 번 관람했던 내 친구는 미련을 버리고 일단 화장실로 직행했다. 친구를 보내고 다시 천천히 감상해 본다. 한쪽 벽에서 반대편 끝까지 바라보는 기둥 사이사이의 그림들이 지나칠 만큼 아름다웠다. 아쉬워서 소신전도 다시 한 번 눈도장!
저 문의 손잡이 문양이 '앙크'다. 신일숙의 파라오의 연인에서 주인공이 귀걸이로 자주 하고 나오던 그 무늬.
백인 여성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관리인이 박시시(팁)를 받고 허락해 준다. 그나마 바깥 쪽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박시시면 뭐든 되는 곳인지라 아예 손잡이를 빼내어 손에 쥐어주기까지 한다. 난 그걸 뒤에서 사진으로 한 장 남겼다. 뽑으면 제법 길어진다.ㅎㅎㅎ
나도 1기니를 내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다시 버스를 3시간 반을 타야 하니까. 화장실 앞에서 돈 받으면서 휴지 몇 칸씩 떼어주는 장면은 정말 적응이 안 된다. 게다가 남자 사람이 서 있으면 더욱...;;;
버스에 탔는데 누군가 지각하는 바람에 20분이나 오버되었다. 이런 제길슨! 그 시간 동안 아부심벨을 더 봤다면 얼마나 좋을까.
되돌아 오는 길은 올 때보다 더 피곤했다. 좁은 버스에서 다리를 펼 수 없고, 공기가 많이 나빠서 문도 열 수 없는데 숨이 턱턱 막히도록 덥다. 그래도 그 피곤함 덕분에 졸며 졸며 그 시간을 견딘다. 아침에 우리보다 늦잠 잤던 대학생 2명이 뒷좌석에서 얼마나 웃기던지 웃다 졸다 웃는 것이 우리의 일과였다.
참, 만수한테 항의했다. 전날 계약한 것과 전혀 다른 동선으로 움직인 것과 펠루카는 타지도 못했던 것. 누비안 마을도 속였던 것 등등. 발도 못 디딘 펠루카는 전액 환불 받았고, 누비안 마을은 일단 가짜 비스무리하게라도 다녀왔기 때문에 절반만 환불 받았다. 크루즈부터 합류하게 되는 시니어 선생님들은 누비안 마을이 참 좋았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더 섭섭했다. 그분들은 거기가 제일 재밌어서 하루 자고 오고 싶다고까지 하셨으니..ㅜ.ㅜ 우린 비행기 일정 늦어서 엘리펀트 섬도 못 갔고 누비안 박물관도 못 가서 꽤 억울했다. 일이 꼬이면 그렇게 된다. 흑....ㅜ.ㅜ
숙소에 도착해서 맡겨둔 짐을 찾아 택시로 선착장까지 이동했다. 크루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더운 물 콸콸 나오고, 맘껏 세탁을 할 수 있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불은 생각보다 조금 지저분했지만 더워서 덮고 자기도 힘이 드니 큰 문제 없다. 창을 열면 나일강이 출렁인다. 내부가 워낙 더워서 빨아놓은 옷들이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다 말라버린다.
체크 인 하고서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뷔페 형식인데 웨이터가 좌석 지정에서 우리를 차별한다. 뻔히 남아 있는 빈자리인데 못 앉게 하는 게 아닌가. 코이카 시니어 샘 두 분과 동석해서 식사를 했는데 이번에도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ㅜ.ㅜ 옆쪽으로는 호주에서 온 노부부가 앉았다. 세계 여행 중이란다. 우와아! 그러고 보니 이 배 안에서 우리 둘은 꽤 젊은 층에 속한다. 대체로 중년 이상의 지긋하신 분들이 손님이다. 하긴, 느릿하게 움직이는 크루즈 여행은 젊은이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나도 우리의 2박 3일 크루즈 일정은 길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외국인은 무조건 2박3일 이상을 계약해야만 하는 규정이 있었다. 현지인은 하루만에도 내리더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비싼 숙박비가 안타까웠지만 어쩌랴...
배는 2시에 출발했다. 한차례 빨래하고 샤워를 했는데 친구가 빨래하던 도중 세면대 호수가 망가져 물 난리가 났다. 사람 불러서 급수습!
이제까지는 먼지와 땀에 찌든 나날이었는데 모처럼 럭셔리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 럭셔리 시간 대부분을 빨래에 바치긴 했지만...^^
햇볕이 무척 뜨거웠다. 갖고 갔던 반팔 티를 처음으로 입을 수 있었다. 4시부터는 갑판에서 차와 케이크가 제공되는데 빨래 하느라 4시 40분에 올라가보니 케이크가 이미 쫑났다. 아뿔싸...!
몹시 편한 나의 꽃바지를 친구가 외출할 때는 절대 못 입게 해서 배 안에서만 입을 수 있었다. 아줌마 패션이라고...ㅎㅎㅎ 저 바지도 칠부 바지. 어째 다 칠부로만 가져갔는지...
선베드에 편하게 누웠다. 내 입에는 몹시 싱거운 커피를 마시며 들고 간 pmp로 쾌도 홍길동을 10분 간 보았다.(길동이 멋쪄부러!) 보고 나니 다시 전조가 그리워져서 전자문서로 소설을 조금 읽었고 음악도 들었다. 강 건너편 갈대 숲 어디에 모세를 발견해 낸 바로의 딸이 있을 것만 같아 엄마한테 문자를 넣었는데, 엄마는 내가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그 문자를 확인하지 못하셨다. 한통에 300원짜리 문자였는데...ㅜ.ㅜ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하루 동안에 해가 뜨는 모습과 해가 지는 모습을 모두 구경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미 정박해 있는 다른 배들. 모두 5성 크루즈다. 우리 배도 저 배들 비스무리하게 생겼다.
저녁 6시에 도착한 곳은 콤옴보 신전. 호루스와 악어에 봉헌된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신전이다. 이곳 역시 의도적인 파괴의 흔적이 많아서 안타까웠다.
깊은 우물을 찍은 거였는데 아래 물이 찰랑거리는 게 보였다. 영화 300이 떠올랐다. 빠질까 봐 무서웠다. 내려가볼 수도 있게 되었지만 내려가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옆에 외국인 관광객은 영어 가이드를 아예 데리고 왔는데 대화 중에 '클레오파트라'가 나왔다. 그래서 상형문자로 적힌 이것들 중에 클레오파트라 이름이 있겠거니 찍어봤다. 근데 알파벳과 대조해 보니 맞지를 않는다. 잘못 찍어왔나 보다. 책을 뒤져보니 역시 안 맞다. 이럴 수가..ㅡ.ㅡ;;;
여기서는 사정상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 내 카메라는 사막에서 이미 망가졌고, 친구 카메라는 플래쉬가 고장인지라 날이 어두우면 사진이 잘 안 나온다. 찍기는 찍었는데 대부분 심령사진처럼 나와버렸다. 오호 통재라!!
악어에 봉헌된 신전 답게 곳곳에 악어 부조가 있다.
그나마 (아주 드물게!) 조금 잘 나온 사진.
한 시간 가량 관람을 했고,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7시 반부터 저녁 뷔페를 가졌다. 이번엔 중앙의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두분 시니어 선생님의 무대뽀 정신으로 이후 같이 하는 일정에선 그런 득을 좀 많이 봤다.^^
옆 테이블에는 이집트 남성이 부르카 입은 여자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눈 빼고 모두 가린 옷차림이어서 대체 어떻게 밥을 먹는지 궁금했다. 흘깃 몰래 쳐다보니 코밑으로 가린 천을 스윽 들어 음식을 입에 넣고 얼른 다시 천을 내려버리는 방식으로 식사를 한다. 흠, 그럼 그렇지. 굶고 살수는 없지.
밥 먹고 돌아와서는 다시 빨래를 했다. 빨래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친구는 11시가 되기 전에 곯아 떨어졌고, 늦게 머리를 감은 나는 보던 글과 영상을 조금 더 보다가 잠들었다. (길동이 멋져부러!!)
밤이 되어 조용해지니 과도한 엔진 소리와 배의 진동이 온몸에 전달되었다. 우리에겐 럭셔리 방이었지만 이 배 안에서는 가장 싼 방이었다. vip룸은 하루에 200달러라고 하는데 우리 방은 성수기여서 하루에 65불이었다. 스위치가 너무 많아서 몇 개를 꺼도 몇 개는 꼭 불이 켜져 있었다. 그거 다 찾아내느라 방을 빙글빙글 돌았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더워서 깨기를 반복. 이불이 무겁고 더워서 도저히 덮을 수 없다. 잠들기까지 내가 이렇게 예민한 인간이라는 걸 몰랐었다. 여행 다니면서 잠자리랑 음식이 까탈스럽구나 깨달았다.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 암튼, 그렇게 2월 1일도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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