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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윤동주 유고시집, 1955년 10주기 기념 증보판 ㅣ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윤동주 지음 / 소와다리 / 2016년 1월
평점 :
그러니까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를 보고 나서 감동에 취해 있던 나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을 사두고 읽지 않은 게 퍼뜩 생각이 났다. 지하철을 타고 오가면서 조금씩 짬을 내어 읽었는데, 아아... 이건 이동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시적 감수성이나 감동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한자' 때문이었다. 초판본 그대로를 옮긴 것이기 때문에 인쇄 상태도 나빠서 글자도 흐릿한데 한자는 왜 이리 많은지! 익숙한 시들은 대충 감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한자가 많았지만 뒤로 갈수록 산문이 나오는데 이 빽빽한 한자의 향연이란!
그래서 집에 와서 검색하면서 읽자니 흐름의 맥이 끊기네.... 슬펐다...;;;; 내 친구는 아예 읽기를 포기했다. 한자의 진입장벽이 꽤 높다.
윤형주 씨가 윤동주 시인의 육촌형제라고 했던가? 예전에 콘서트에 갔을 때 윤형주 씨가 본인이 작곡한 CM 송들을 메들리로 불렀다. 목소리로 기억하는 익숙한 곡들이 많았는데 몰랐던 곡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때는 그저 윤형주 씨의 노래라고만 여겼던 것들이 윤동주 시인의 시라는 것을 알게 되자 굉장히 가슴이 뭉클했었다. 시인의 시어들이 이렇게 노래로 회자되다니... 그것이 윤형주 씨에게서 비롯되어서 더 의미 있었다.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었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33쪽
무얼 먹구 사나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 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어 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150쪽
'별똥'이라고 추임새를 넣고 싶구나!
가장 벅찼던 건 '달을 쏘다'가 윤동주를 생각하며 만든 뮤지컬의 제목이 아니라 그의 시 제목임을 알았을 때였다.
뮤지컬을 처음 볼 때는 그의 시집을 읽기 전이어서 그저 '대사'로 여겼는데, 시집을 거의 다 읽고 가서 볼 때는 저 대사가 모두 시집의 시였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달을 쏘다'란 시가 거의 마지막에 나와서 이것도 시였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이 뮤지컬의 대미는 감옥에 갇힌 윤동주가 울며 불며 '별 헤는 밤'을 처절하게 외치는 장면인데, 그때 음악이 터져 나오면서 '달을 쏘다' 노래가 시작된다. 마지막에는 웅장한 합창으로 끝나는데 그쯤 되면 관객은 손수건이 젖어들 수밖에 없다.
앞의 영상은 '별 헤는 밤' 영상이고, 뒤의 영상은 '달을 쏘다' 부분이다. 꼭 이어서 감상하기 바란다!
여전히 정치 시사 관련 팟캐스트를 많이 듣고 있는데 그래서 출퇴근 길은 늘 그런 방송들을 끼고 있다. 그러다가 직장에 도착하기 직전 한 5분 정도의 여유가 남으면 내 핸드폰 속 뮤지컬 폴더 속에서 '달을 쏘다'를 클릭한다. 이 노래로 마무리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매번 그렇지는 않지면 단 몇 분의 시간이 남으면 그렇게 한다. 오늘도 간만에 이 노래들을 들어야겠다. 실황 앨범이 나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시인의 십주기에 이 책 초판본이 출간됐다. 윤동주를 따르던 후배 정병욱이 후기를 썼는데, 윤동주에 대한 소회를 윤동주의 시를 빌려 표현하는데 이 역시 명문이다. 다만 한자가 너무 많아... 읽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나 11시 반부터 읽었는데 지금 한 시 반이야...;;;;; 요즘에도 시집 뒤에는 평론가들이 시집에 대한 해설을 싣곤 하는데(사실 이 부분은 안 읽고 건너뛰기 일수다. 지루해서 읽을 수가 없...;;;) 정병욱의 후기는 감동 깊게 읽었다. 윤동주의 생애를 윤동주의 시로 표현하는데 건너뛸 재간이 없다. 그리고 마무리로 윤동주의 생애를 중간중간 송몽규와 함께 기록했다. 사망 전보가 먼저 도착하고 열흘 뒤 곧 사망할 것 같은데 시체 안 찾아가면 해부용으로 쓰겠다는 전보가 도착했단다. 얼마나 기가 막히든지...ㅠ.ㅠ
까마득한 옛날에, 윤동주가 공부했던 바로 그 건물에서 내가 논술 시험을 봤었더랬지. 그 학교가 내 학교가 되지 못한 건 애석한 일이지만, 그 공간에 있었다는 건 좋은 추억이다.
서울 예술단은 제법 괜찮은 작품을 많이 올리고 있으나 공연 기간이 짧은 게 유일한 단점이다. 그래도 올해는 윤동주 달을 쏘다와 신과 함께가 제법 길게 공연했다. 둘 다 너무 훌륭해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두 작품 모두에서 주연을 활약한 박영수 배우를 토요일에 만난다. 이번엔 연극 '지구를 지켜라'다. 낮에 주연배우가 바꼈다는 문자가 와서 화들짝 놀랐는데 다행히 여주인공이었다. 괜찮음. 아웃 오브 안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