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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이야기 ㅣ 카르페디엠 19
안케 드브리스 지음, 박정화 옮김 / 양철북 / 2005년 11월
평점 :
나는 유디트가 유디트여서 좋아.
유디트는 유디트인거야.
이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유디트가 유디트이기에 좋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고, 이모가 있고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 책을 덮으며 유디트에게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내 마음을 덜 아프게 했다. 그치만 친구가 있어 새 삶을 찾을 수 있는 유디트는 많지 않을꺼야. 이 세상의 수많은 또 다른 유디트와 같은, 가정에서의 폭력에 무방비로 구타당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도대체...
내 또래의 아이들은 누구나 다 어느정도는 부모에게 매맞으며 자랐을 것이다. 맞고 때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폭력'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부모님에게 엄청나게 매를 맞으면서도 내가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것을 보면 부모님의 매가 '폭력'은 아니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가정폭력이라는 것은 내가 경험했던 부모님의 매타작과는 차원이 틀린 것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내가 맞았던 '매'와는 다른 부모의 무자비한 폭력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은 지금도 어느 누구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폭력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다.
몇년 전, 사회복지를 공부한답시고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을 때, 아동학대예방센터를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사실 그때 아동학대예방센터 직원들에게 엄청난 실망을 했고 그들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탄을 했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지레 뒤돌아서버렸었다. 그래선 안되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곳의 일을 알기 위해 찾아간 방문자에게도 취조조사를 하듯이 종이쪽지를 들고 펜을 찾아가며 대화가 아닌 상대방 말의 기록만을 하는 직원, 기록물에 대한 결과 때문에 담당자를 찾아 일부러 두번씩이나 찾아갔는데도 그 담당자는 자기 개인적으로 화나는 일때문에 나와보지도 않고 안에서 소리만 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 이런 자들이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담당자의 기분상태로 봐서 일처리를 못해준다고 해, 결국 두번씩이나 찾아갔던 발길을 그대로 돌려야했던 나는 아이들을 두번 죽이겠다는 건 아닌지 한숨만 나왔던 기억이 있다. 가정에서 부모의 폭력에 마음이 닫히고 상처입은 아이들이 무엇을 믿고 이들에게 자신을 열 것인가, 라는 생각에 한숨만 쉬다 결국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기억조차 맘 아픈데. 나 역시 도움을 청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외면해버린 거였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아이들의 맑은 눈빛에 맞춰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마음아프지만 진실이고, 또 한편으로는 친구가 있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읽으며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갖는 마음은 그런거다. '나도 네 친구가 되고싶어'.
사랑스럽지도 맑지도 못한 나지만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어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함께 해 줄 수 있는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음을 알기에 나는 나자신을 일깨우고 있다.
이봐,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줘. 이해하고 믿음과 사랑을 주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구. 겉모습만의 평화를 원하는게 아니쟎아. 진정한 평화는 그런것이 아니란 걸 알지않냐구.
그래,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너의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