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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오래전에 드라마를 먼저 보고 밝고 명랑한 느낌이 좋아 원작소설을 찾아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드라마와 소설이 많은 차이가 있었다는 것만 기억을 하고 세세한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예상외로 한번 읽었던 책이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첫장을 읽기 시작하자 정말 신기하게도 그 복선과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밝은 느낌의 드라마와는 달리 우울한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는 원작소설의 결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없다는 것은 더 신기하다. 그리고 제일 신기했던 것은 이 모든 예상밖의 이야기들과 달리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아주 오래된 장르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함 없이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줄거리를 따라가느라 부분적으로 못느꼈던 부분들이 이번에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에서 재미있는 내용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 식당이 잘 되려면 우선 사람들의 발길이 이쪽 상가로 쏠리도록 해야 돼요. ... 꼭 우리 식당이 아니더라도 일단 사람들을 이쪽 길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우리끼리의 승부는 그다음 문제예요"(1권 243)
이런 글을 읽으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니라 골목식당을 진두지휘하는 백종원의 말, 같지 않은가? 엔지니어 출신의 장르소설 작가로 알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또 하나, 여러 사회문제들 - 도박이나 사기 같은 문제들을 다루면서 또 소소하게 세상의 편견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경찰이란 원래 그런 거야.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에서 하루 치 매상금이 없어졌을 때 다들 나를 의심했어. ... 내가 그 돈을 훔치려면 아주 여러 명의 시선을 완전히 따돌렸어야 해. 그런데도 경찰은 그런 부자연스러운 모순에는 눈을 감아버렸어. 네가 훔쳐 갔다, 빨리 실토해라, 윽박지르기만 했지"(2권 70) 같은 문장을 읽다보면 과연 지금의 경찰은 다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못느꼈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재미를 이런 부분에서도 느끼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략히 말하자면 살인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삼남매가 성인이 되어서 부모님의 살인범을 끝내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진실과 진심이 무엇인지, 죄와 벌, 용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이미 첫장에서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복선이 무엇인지, 등장인물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 짐작하고 기억할 수 있었는데도 글을 읽는 재미가 있었던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그저 이야기의 흐름만 따라가며 범인을 찾는 재미로써만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증명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 더해 그의 많은 작품들에서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악에 대한 개념도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 달리 유성의 인연에서는 생존을 위한 사기행각도 어쨌든 죄라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 미소짓게 되는 결말이 더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어 즐거운 다시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