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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세상은 어머니의 세계관과 아버님의 세계관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이들은 내면의 여행을 하고 다른 이들은 세상을 개혁하는 데 힘쓰는 게 가장 좋은 일 아닐까요? 문명을 일구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던가요?"(71)
"두 분은 서로를 같은 이유로 비난했어요. 어머니는 아버님보다 더 강경하지 않아요. 둘 다 약해빠졌다고요! 두 분은 서로 자신의 죄책감을 상대방에게 덮어씌운 겁니다"(129)
책을 읽기 전부터, 아니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검은 개'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미 검은 개가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 나왔는데 내가 미처 모르고 지나친 걸까? 라는 의구심에 책을 읽다말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훑어보면서 또 읽었다. 도대체 이 검은 개,는 뭘까.. 싶을 때 준과 버나드의 딸 제인이 그에 대한 언급을 하려다 마는 부분을 읽게 된다. 아하, 앞으로 그 검은 개에 대한 설명이 나오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계속 해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이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한편의 소설을 읽는 데 집중이 안되고, 쉽게 읽을수가 없었다. 준과 버나드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뭘까,에만 집중을 하다보니 자꾸 의미만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해 더욱 버벅대며 시간의 흐름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끊임없는 의문은 저자가 내게 답을 주지 않고 자꾸만 뭔가를 물어보고 싶게 만들기만 하고 있어서 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는 것은 나 스스로여야 한다, 인 것인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 준고 버나드는 - 서로의 기억이 다른 교차점에서 누가 누구를 먼저 좋아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태어난 딸 제인과 결혼한 제러미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준의 개인사 기록을 위해 과거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 역사의 순간에 동독을 찾아가는 버나드와 동행하게 되며 준의 기억 속 이야기와 상반되는 버나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로의 기억이 다를 수 있다, 라는 것에서 끝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오래전부터 영화, 드라마, 소설로 이어져오던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리라. 그렇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기억의 차이 이전에 시선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정적인 등장이 검은 개...
사실 딱히 검은개의 상징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나치가 레지스탕스를 잡기 위해 이용하다 버린 게슈타포의 경비견이라는 사실은 다분히 충격적이었다. - 사뭇 우리의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개가 되어버린 이용당한 개만을 사냥하는 것으로 끝내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먼저 원초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검은개의 등장은 이런 이야기에 묻어가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검은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현재의 시점이 하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 현장이라는 것과 들떠있는 군중에게, 이상은 높지만 전혀 활동가로서의 모습은 찾기 힘든 버나드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꼰대와 비슷하게 그려졌다는 것이 또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해버렸다. 모든 것을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암시처럼 여겨버리는 듯 한 준에게 퍼붓고 싶었던 질문은 들어가버리고 버나드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또 한가득 나오고 있지만 실상 이 모든 물음은 준과 버나드가 아닌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깨닫는 것도 그리 놀라운 건 아니고.
이야기가 자꾸 겉도는 느낌이지만 세계의 충돌이 있었고 사상과 이념의 차이에 따라 전쟁까지 경험하고 나서야 서로의 화해를 위해 손에 손을 잡는 세상을 만들어가지만 여전히 세계는 나뉘어 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우리가 제대로 인식해야 하는 검은개의 그 정체는 무엇이라 해야 할까.
"시적인 진실이나 영적인 진실 아니면 저만의 개인적인 진실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 여자는 진짜 진실에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어. 두 인간이 각각 독립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실에는 무관심했다고. 그 여잔 패턴을 만들고 신화를 지어냈어. 그러곤 사실을 끼워맞췄지. ... 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사실에 자신의 사상을 맞추지 않고 어떻게 자기 사상에 맞춰 사실을 왜곡하는가. 왜 대체 그런 짓을 하나, 왜 대체 그런 짓을 하나. 왜 계속 그러는 것인가"(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