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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와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이야."(295-296)
1969년 체이스의 시체가 발견된 현재의 시점에서 1952년 어린 시절 카야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카야와 체이스가 만나는 시점까지 과거와 현재가 가까워지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체이스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와 습지에서 생태관찰전문 작가로 성장하는 카야의 이야기는 서로 상반된 인간사회와 자연의 모습 같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난 후,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의 그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에 대한 설명이 더 깊이 와닿는 것도 그래서일것이다.
습지는 늪이 아니다. 이 당연한 명제로 시작하는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바로 습지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습지가 생명을 의미한다면 늪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 이 책의 이야기는 한 소녀의 성장을 통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담고 있다. 아니, 이렇게 말하기에는 소녀의 삶이 너무 평범해진다. 그 소녀, 카야는 습지에 홀로 버려졌고, 상처를 딛고 관계에 손을 내밀지만 또 버려진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을 잃지 않았다. 이것이 이 책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와 모든 형제가 떠나버리고 습지에 홀로 남겨진 카야는 홍합과 물고기를 잡아 팔며 생계를 유지해나간다. 학교에는 딱 하루만 나가보고 그 후로는 숨어버렸으며 글자를 몰라도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모두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런 카야에게도 친구처럼 손을 내밀어준 점핑과 메이블이 있다. 겨우 반세기 전인데도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장 크게 보여준 이들이 바로 차별을 받던 흑인이었음은 괜히 마음을 더 뭉클하게 한다. 그뿐인가. 엄마가 떠나가버리기 전 카야에게 해 준 엄마의 말은 또 또 어떤가. "이건 진짜 인생에 있어 중요한 교훈이야. 우리 배는 좌초돼서 꼼짝도 못 했어. 하지만 우리 여자들이 어떻게 했지? 재밋거리로 만들었잖아. 깔깔 웃으며 좋아했잖아. 자매랑 여자 친구들은 그래서 좋은 거야. 아무리 진흙탕이라도 함께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거야. 특히나 진창에서 같이 구르는 거야"(121)
진흙탕이라도 함께 하고, 진창에서 같이 구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것임을 잊지 말자.
하지만 그렇게 함께 하던 사람이 떠나가면 어떻게 될까.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247)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소녀의 성장이야기와 한 남자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가 섞이면서 이야기 자체로서의 흥미진진함이 넘쳐나지만 또 그에 더하여 습지의 생태환경에 대한 지식과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생태와 삶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습지의 아름다움과 인간 삶의 아름다움 - 물론 그 이면에 자연의 공포와 인간의 추악함도 담겨있기는 하지만 - 은 자꾸만 다시 한번 더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싶게 만든다. 이 책은 내게 올해의 책들 중 한 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