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결국 익숙한 집으로 돌아오듯, 관계를 지속하고 그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내가 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느낌, 바로 예측 가능성이다. 또한여행지에서 집으로 오기 위해서는 일곱 시간의 비행이 필요하듯, 여행지와 같은 사람이 나에게 집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보낸 몇달이나 몇 계절의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결과 이 사람이 보고 싶은 영화뿐 아니라 ‘영화의 어느 지점에서 눈물을 흘리겠구나, 박장대소를 하겠구나‘까지 섬세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고, 그 타이밍에 맞추어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거나 함께 더 크게 웃을 수 있게 된다. 어떤 말에 아기 같은 미소를 짓고, 어떤 말에 얼굴이 붉어질지, 돌아오는 화요일 저녁에는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할지, 세 번째 기념일에 어떤 선물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할지, 선물보다 포옹이 필요할 때는 언제인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된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어떻게든 기문을 달래기 위해 노력하리라는 것도, 안기고 싶을 때 언제든 나를 안아주리라는 것 또한 말이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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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경험의 제자 Leonardo da Vinci,disscepolo della sperientia‘ 라는 서명을 남겼다.  이와 같은 자유사상 정신은 그가전통적 사고에 속박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레오나르도의 노트에는 그를 폄하하는 거만한 멍청이들에게 퍼붓는 독설이 적혀 있다.

˝교육을 덜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무식하다고 믿고 나를 비난해대는 주제넘은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멍청한 양반들!.….… 그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지식으로 무장한 채 자만심과 거만함에 취해 우쭐거린다………. 그들은 내가책을 통해 배우지 않았으므로 원하는 바를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내가 연구하는 주제들은 타인의 말보다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그들은 모른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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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수업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
문광훈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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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1년에 출판된 '영혼의 조율'을 새로이 수정, 편집한 책이라고 한다. 단지 '미학'수업이라는 제목에 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에서 예전의 제목을 읽을때까지만 해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한꼭지씩 읽다보니 새삼 왜 그 제목을 썼는지 알것같다. '미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미학이 아니라 삶과 관통하는 미학을 배우게 되었다.

 

아름답다, 라고 느끼는 것은 개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실 나는 스스로 미적 감각이 없다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생각때문인지 책을 통해서라도 많은 그림을 보고 디자인뿐만 아니라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접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이 알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러다보니 '아름다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나는 나의 주관적 관점으로 아름다움을 정의할 수 있을까?

 

"감각의 미는 반쪽의 미다. 감각이 사유와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 미는 거짓이다. 참된 아름다움은 나와 타자, 현실과 이념을 잇는다. 이 이어짐 속에서 두 세계의 대립을 넘어선다. 미는 이어짐이고 넘어섬이며, 이 넘어섬 속의 균형이다. 그리고 이 균형 속에 행해지는 반성이다. 반성의 능력이야말로 참된 아름다움이다. 왜냐하면 반성으로 하여 대상의 미는 나의 미가 되기 때문이다."(139)

 

이 책에서 저자는 '참된 아름다움은 나와 타자, 현실과 이념을 잇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유와 연결되지 못하는 미는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연은 그것을 ‘읽을 만한 것‘으로 우리가 읽어낼 때, 그렇게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것이 된다."(239)라는 말에 잠시 멈칫하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해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짓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책을 읽어가다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미학이라고 하면 흔히 그림을 떠올리곤 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림, 문학, 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물론 사유속에서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타인과 이어지는 삶의 모습, 자연과 어우러지는 우리의 삶에 대해 떠올리며 관계성을 인식하게 하고 있다.

자꾸만 이 책의 느낌을 추상적으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있다. 뭔가 막연하게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나와 타자, 현실과 이념을 잇는 것이 참된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고 언저리만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보다. 뭔가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가가 색채로 사물의 드러남과 숨음을 보여주듯, 시인은 언어에 기대어 사물과 하나가 되고, 그 사물처럼 느끼며, 이 느낌속에 사물의 숨은 배후를 드러낸다.
세계의 풍경은 그 세계를 느끼는 내 마음의 풍경이다. 풍경과 마음을 하나로 잇는 것이 시이고 그림이고 예술이다."(224)

지금 내게 세계의 풍경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생각해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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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보태니컬 아트 세트 (본책 + 컬러링북) - 전2권 기초 보태니컬 아트
송은영 지음 / EJONG(이종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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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림에 대한 열망은 있으면서 연습은 하지 않는 게으름때문에 드로잉 연습도 조금씩 하다가 말곤 해서 그럼 실력은 전혀 늘지 않는다. 실사 그림은 포기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라도 연습해보자며 일러스트 그리기책을 보지만 게으른 천성은 어디가질 않아서 그림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이다. 그러면서 또 여전히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어서 '기초'라는 말이 붙으면 다시 시도를 해 보고 싶어진다. 기초보태니컬 아트 책은 그렇게 해서 또 펼쳐보게 된다.

 

보태니컬 아트는 간단히 말하자면 그 대상인 식물을 세밀히 관찰하고 그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드로잉의 기초는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그 대상을 정확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알고 있는데 나같은 생초짜는 무작정 대상을 보면서 그리는 것보다 이런 가이드가 되는 책을 보면서 형태를 잡아가며 드로잉을 하고 순차적인 채색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 책도 다른 많은 보태니컬 책과 그리 다르지는 않지만 가장 크게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것은 채색과정의 세세함이 묘사되어 있는 부분이다. 대부분 드로잉을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컷은 많지만 채색의 과정을 이렇게 많은 그림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색연필로 채색을 하면서 대충 흉내내기만 했었는데 책을 펼쳐드니 조금 더 정성이 들어간다. 사진 컷으로 보면 별 것 아닌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나름 3,4일에 걸쳐 색을 덧칠하면서 명암을 표현하고 꼼꼼하게 색을 넣은 것이다. - 여기서 한가지 조금 아쉬운 것은 사실적인 색감을 위해 저자는 색연필의 번호까지 다 적어주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48색 색연필도 찾지 못하고 겨우 찾아낸 24색 색연필로는 똑같이는커녕 흉내내기도 쉽지는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색연필로는 똑같은 색감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보이지만 그래도 책에 나와있는 채색 과정을 보면서 최대한 명암과 꽃의 사실적인 결을 살려내는 것을 배울수는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책을 보면서도 제대로 그리는 것이 힘들지만 책을 통해 연습을 하다보면 직접 식물을 보면서 세밀화를 그려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기대를 조금 해본다.

그때가 되면 이 책과 같이 나온 컬러링북을 꺼내어 색을 칠해볼까, 싶다. 한장씩 떼어내어 선물할수도 있고 맘에 드는 꽃은 액자나 장식용 소품으로 이용할수도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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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믿고 따르기도 어렵지만 드물게 믿는 것조차 헛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또 얼마나 자주 그들에게 실망하는가. 잘못이 쌓이고 쌓이면 용서란 말도 꺼내는데 주저하게 된다. 그럴즈음 용서받을 것은 지나간 일만큼이나 다가올 일임을 깨닫게 된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지금까지의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과오는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제가 알고 믿고 행하는 것에 희생될 뿐이다. 더 슬픈 것은 이런 회한마저 곧 휘발될 것이라는 점이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가장 깊은 슬픔은 이 생존의 현실이 훼손되는 데 있다.

한탄과 부정이 옳다고 해도 그것이 살아 있는 기쁨을 북돋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투정이 될 수도 있다. 삶의 진실 하나는 노래하든 울든, 이렇게 '뭐라고 하는 순간에도 내가 소진해간다'라는 사실이다. 일할 때도 우리는 늙어가고, 쉴 때도 생명은 녹아든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소중한 것은 여기 있음-지금 살아 있음일 것이다. 삶의 경이를 새롭게 발견하는, 발견하려는 일일 것이다. 힘겨워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삶 속에서가 아닌가. 우리가 죽음을 향유할 수는 없다. 생존의 놀라움에 비하면 슬픔은, 그것이 아무리 크다해도, 사소한 것일 수 있다. 적어도 근원적인 사항은 아니다.

이 세상의 일과 하루의 저녁과 다시 아침으로 이어지는 나날들. 곳곳에 침묵이 어려있고, 그 침묵에서 나는 길고 짧은 죽음을 본다. 그림자들은 고개 숙인 채 울고, 생활의 먼지는 진군하는 적들처럼 우리를 덮친다. 나무와 의자와 하얗게 펼쳐진 종이 그리고 지우개. 지워야 하고 또 기억해야 할 무수한 것들. 우울도 해묵으면 에너지가 된다던가.

곪고 찢어진 마음들이 만나 서로 위로받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부질없는 기대는 실망을 낳고, 실망은 쌓여 환멸이 된다. 환멸 속에서 모욕은 자산처럼 쌓여가지만 그래도 명심하자. 무엇보다 먼저 존중돼야 할 것은 자기자신이라고. 나의 안위로부터 세계의 평화는 발원한다고. 개체의 안녕은 물과 공기처럼, 또 뿌리처럼 근본적이다. 삶의 많은 의미는 아마도 이 뿌리를 타고 올 것이다. 그 거대한 뿌리는 땅 밑으로 내 속으로 나 있다. 89-91

 

 

 

 

 

 

호들러의 [삶에 지친 자들]

이 그림 속의 인물들처럼,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역시 모두 지쳐있다. 두 어깨는 축 처지고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우리는 발치를 내다본다. 이 땅의 도시와 거리, 사람과 그 관계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만물들로부터의 만인의 격리, 여기에 도시인들의 깊은 슬픔이 있다.

 

이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 중 이 중앙의 인물이 가장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두 팔을 맥없이 늘어뜨리고 있다. 겨우 남아 있던 신앙의 한 가닥마저 그는 포기한 것일까?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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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9-04-0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각의 미는 반쪽의 미다. 감각이 사유와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 미는 거짓이다. 참된 아름다움은 나와 타자, 현실과 이념을 잇는다. 이 이어짐 속에서 두 세계의 대립을 넘어선다. 미는 이어짐이고 넘어섬이며, 이 넘어섬 속의 균형이다. 그리고 이 균형 속에 행해지는 반성이다. 반성의 능력이야말로 참된 아름다움이다. 왜냐하면 반성으로 하여 대상의 미는 나의 미가 되기 때문이다.ㅣ (139)

화가가 색채로 사물의 드러남과 숨음을 보여주듯, 시인은 언어에 기대어 사물과 하나가 되고, 그 사물처럼 느끼며, 이 느낌속에 사물의 숨은 배후를 드러낸다.
세계의 풍경은 그 세계를 느끼는 내 마음의 풍경이다. 풍경과 마음을 하나로 잇는 것이 시이고 그림이고 예술이다.(224)

자연은 그것을 ‘읽을 만한 것‘으로 우리가 읽어낼 때, 그렇게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지각하는 합목적성은 주관적으로, 그 원천은 비록 주관적이지 않지만, 매개된다. 그것은 성찰하는 주체에게만 제 모습을 드러낸다....(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