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달걀 4 - 완결
마키무라 사토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오늘 사무실로 도착한 택배.
언제나처럼 기분 좋게 분홍색 칼을 들고 소포를 뜯었다.

<회사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문장 강화> 두권의 책을 들어 내자, 노란 만화책 4권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기분 좋게 <사랑의 달걀> 4권을 꺼내서 만화책을 싸고 있는 비닐을 벗겨 내는데, 하필 오늘 첫출근한 신입사원이 흘끔흘끔 쳐다 봤다.

뭘 그렇게 보나 했는데,
"과장"이라 불리는 한참 선배가
한낮의 사무실에서 만화책을 뜯으며 킥킥 거리는 모습은
놀라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사랑의 달걀> 4권을 들고 씩씩하게 퇴근했다.
월요일에는 차가 많이 막히는데,
기다렸던 만화책과 함께라면 "happy"한 퇴근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어찌나 "몰입"을 했는지,
버스에서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았는지 얼굴 한번 쳐다 보지 못했다.

<사랑의 달걀>을 읽으며,
난 어렸을 때 꿈이 뭐였더라...생각했다.

꿈을 잊고 그저 "무사안일"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30살이란 나이에 부담을 느끼며 결혼을 고민하던 마코는
뜬금 없는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하루 아침에 잘 나가던 대기업 사원에서 백조가 된다.

우연히 찾은, 어렸을 때 그린 그림 한장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마코에게 힘이 되어준다.

" 나의 꿈은 가게 주인 "
글씨 위로는 귀엽게 생긴 여자애가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한손에는 앙징 맞은 케익을 들고 있다.

난 어렸을 때 꿈이 뭐였더라?

요즘 애들은 학교에서 꿈을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땐 하나 같이 비슷비슷한 대답들을 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꿈 또는 장래희망을 조사하면,
많은 여자애들이 이런 대답을 했다.

피아니스트, 선생님, 간호원, 현모양처....
아직도 기억 나는 가장 웃기는 대답은 "영부인"이었다.

학교가 <내 마음의 풍금> 배경 같은 시골이었냐구?
내가 다닌 학교는 지금은 타워펠리스가 있는 도곡동에 있었다.
교육열, 치맛바람이 젤로 세다는 강남 노른자 학교에서도
애들의 장래희망은 어찌 그리 촌스럽게 다 비슷비슷했는지...
또 여자애들은 왜 그리 여성스러운(?) 직업을 대답했는지...

난 한번도 현모양처라고 대답한 적도 없고,
선생님, 피아니스트,간호원이 되고 싶은 적도 없었다.
물론 "회사원"이 되고 싶은 적도 없었지만...

어렸을 땐 <미녀 스파이> 이런 외화 시리즈들을 TV에서 많이 했는데,
한 동안은 "미녀 스파이"가 되고 싶었다.
말광량이 삐삐를 보고는 삐삐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기자나 작가가 되고 싶었다.
뭐 취미로라도, 잡문이나마 끄적끄적 거리고 사니깐,
그래도 그 때의 꿈에서 너무 많이 벗어난 건 아닌 것 같다.

2년 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고3때 독서실 총무 아저씨한테 메일이 왔다.
정말 깜~짝 놀랐다.

감동스럽게도,
마음 짜~안하게도,
아저씨는 나는 잊고 있던 그때의 내 모습을 또렷히 기억하고 계셨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몇십번 읽으면서 니가 느낀건 뭐였니?"

아...전율이 흘렀다.
나는...내가 문고판 <싯다르타>를 몇십번 읽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지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또 이렇게 쓰셨다.

" 니가 꼭 문학을 할꺼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은 것 같구나.
니 홈피를 보니 아저씨 생각이 틀리지만은 않은 것 같네."

<사랑의 달걀>을 읽고,
어렸을 때 꿈을 생각하고,
나도 잊고 있던 내 모습을 기억해준 독서실 총무 아저씨를 기억했다.
또, 문고판 <싯다르타>를 심각하게 읽던 내 어린 모습을 기억했다.

만화책 사서 보면 돈 아깝지 않냐구?
난 오늘 저녁....정말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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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4-1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만화책 일단 찜!!!
어렸을 때 꿈은 저도 늘 평범했던 것 같은데.... ^^

2006-04-11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04-11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사랑의 달걀> 재미있어요. 함 읽어 보세용^^

숨어계신님,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데요^^

마태우스 2006-04-1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그 시절에 싯타르타를 수십번 읽으셨다니...존경스럽습니다. 글구 님의 귀염성이라면 미녀 스파이도 충분히 해내실 수 있을 듯합니다

kleinsusun 2006-04-1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하하, 이제 체력이 떨어져서 스파이를 할 수 있을까요? ^^

BRINY 2006-04-1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비교적 어릴 때 꿈을 이룬 케이스지만, 현실이 되고 보이 또 100% 만족은 안되더라구요. 그래도 만족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마키무라 사토루의 근작들은 거의 다 패턴이 비슷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kleinsusun 2006-04-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어요?
어렸을 때 꿈꾸었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란건 참 멋진 일이네요.^^
마키무라 사토루는 처음 읽어봤어요. 다른 책들도 "여자의 독립" 이런 내용인가보죠? 저 <이매진> 주문했는데.....실망할까요? ㅎㅎ

로드무비 2006-04-1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들어와 첫 마이리스트에 올렸던 만화.
'사랑보다 일이라고라?'라는 제목으로.ㅎㅎ
언제 제가 수선님께 절판된 좋은 만화 뭉텅이로 빌려드릴게요.
제 안목 믿으시죠?ㅎㅎ

kleinsusun 2006-04-1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로드무비님 리스트 보고 읽었어요.ㅎㅎㅎ
<이매진>도 샀답니다. 로드무비님 안목은 정말 짱이예요!!!
근데...오늘 제가 회사에서 된통 깨지고 기분이 완전 바닥인데요,
오늘 같은 날은 "일이라고라? 다 때려치자!" 이런 생각이 드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