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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열정
조은 지음, 정경자 사진 / 마음산책 / 2004년 12월
평점 :
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를 읽고
그 치열한 자기고백과 솔직하고 절제된 문장에 반했었다.
멋부리지 않은 절제된 문장과 어울어진 김홍희의 여운이 남는 사진도 좋았다.
그래서 조은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을 망설임 없이 샀다.읽었다.
그리고....실망했다.
<벼랑에서 살다>는 일상을 보듬는 시인의 글들과 그 일상을 겸손하게 담아낸 사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동양화 속의 겸손한 산과 여백처럼...
<조용한 열정>에 가득한 사진들은
시골 아줌마가 요란한 짝퉁 헤르메스 스카프를 둘러매고 있는 것처럼 어색하다. 뭔가 "억지"스럽다.사진의 제목도 하나 같이 요란하고 작위적이다.
"굳어버린 것의 아픔","비껴가는 마음"."구분되는 내면","어둠을 뚫는 시선","기다림에는 체온이 남는다" 등 사진의 제목들은 하나 같이 거창하다. 차라리 제목이 없으면 좋을 것 같다. 어둠 속에 희미한 실루엣만 드러나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라 도대체 이 거창한 제목의 사진들이 뭘 말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사진전도 아니고, 사진집도 아니고, 산문집 속의 사진이 산문과 어울어지지 않고 너무 튄다.
<벼랑에서 살다>가 시인의 일상에서 건져올린,생활에서 길어올린 건강한 글이라면,
<조용한 열정>은 기억을 붙잡아 쓴, 기억에 의지해서 쓴 글이다.
어렸을 때 지독하게 편식을 했던 이야기, 언니들의 사회과부도를 엿장사에게 팔아 친구들에게 엿을 사준 이야기,학생 때 극장에 갔다가 선생님께 들킨 이야기,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준 이야기...
술자리에서 누군가의 어렸을 때 얘기나 군대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지루하다. 하는 사람은 신나기 때문에 말릴 수도 없다. 온통 기억을 불러온 글들은 힘이 딸린다.
기대가 커서였을까....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사족) 조은 시인의 계속되는 "그녀들"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
무슨 영어소설을 번역한 글도 아니고 왜 그렇게 끊임 없이 "그녀들"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언니들은..." 하면 될 것을 "그녀들은...",
"친구들은..." 하면 될 것을 "그녀들은...".
꼭 "그녀들"이라고 호칭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