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소설들을 보면,
주인공들은 "~ 짱"이라고 불린다.
물론 주인공들도 자기 친구들을 "~짱"이라고 부르고....

친한 친구들끼리는 "~상" 대신에 "~짱" 이라고 부른다.
그것도 이름 전체를 다 부르는 게 아니라 이름의 일부만 떼어서....
예를 들어 나를 부른다면, "수짱!" 이렇게.

일본 거래선 중 Kennichi Nakaura가 있다.
사람들이 "나까무라" 라고 자꾸 헛갈려 하는데,
흔하지 않은 성이다. "나까우라".
우리 팀 사람들은 "Mr.Nakaura" 또는 "나까우라 상"이라고 그를 부른다.

나는 그를 "켄짱"이라고 부른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단다.
나 보고도 그렇게 부르란다.

켄짱은 나를 Susan이라고 부른다.
Susan은 내 nick name이다.
해외 거래선들은 모두 나를 Miss Sung 대신에 Susan이라고 부른다.
울 상무님도 나를 "성대리" 대신에 Susan이라 부르신다.

켄짱은 나 보다 세살 많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노총각, 노처녀다.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다. 왜냐?
내가 Tokyo에 갔을 때,
켄짱이 서울에 왔을 때,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 주기 때문이다.

무슨 구원?

출장을 가거나 또 오면,
보통 거래선과 저녁 식사를 한다.
해외영업팀에서 거래선과의 저녁식사는 업무의 연장이다.
보통 밥 먹으면서도 일 얘기를 많이 한다.
인도,파키스탄 같은 데서 채식주의자들이 오거나
발음을 아주 알아듣기 힘든 프랑스나 인도 거래선이 오거나 하면
사실 좀....피곤하다.

켄짱과 나는 밥 먹으면서 절대 일 얘기를 하지 않는다.
서로의 취향을 잘 알기 때문에
나도 켄짱이 오면 외국 사람 왔다고
갈비집이나 한정식집에 데려가서 배 터지게 먹이는 우를 범하지 않고,
켄짱도 내가 Tokyo에 가면
일본 전통 스시집에 가서 배 터지게 먹이고
예의상 엄지 손가락을 올리며 "오이시!"하는 접대성 멘트를 듣고 좋아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켄짱이 담당자가 아니라면 나는 지루한 일본 아저씨와 한국 경제 전망이나 축구 얘기를 해야 하고,
내가 담당자가 아니라면 켄짱은 우리팀 사람 중 한 명이랑 참이슬을 완샷하며 "맛있어요!" 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하며,
즐겁게 저녁을 먹는다.
서로 가고 싶은 장소를 물어 보고
요즘 뜨는 곳에 가보기도 하고,
"물 좋은 곳" 에 구경을 가기도 한다.
Tokyo 가서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서울에서 일본사람이 주인인 이자까야에 가서 사께를 마시기도 한다.

켄짱 덕분에, 또 켄짱은 내 덕분에
여행책자에 나오지 않은 많은 곳들에 가 볼 수 있다.

이틀 전에 켄짱이 왔었다.
대만에 들렸다 오는 길이라 중국음식을 배 터지게 먹고 온 것 같기에,
사람 좋은 일본 아저씨가 주인인(물론 주방장도 일본 사람이다) 이자까야에 데려갔다.
켄짱이 좋아했다.
또 서울에 주인도 일본 사람이고, 손님도 대부분 일본 사람인 이자까야가 있다는 걸 신기해했다.

우리는 커다란 사께 한 병을 시켜 놓고 많은 얘기들을 했다.
물론 일 얘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켄짱이 뭔가를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
봄에 싱가폴로 발령날 것 같다고...
켄짱이 50%의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갈게 확실하다.
( 켄짱의 숫자는 아주 보수적이다. )

난 잔을 부딪히며 축하해 주었다.
우와.....부럽다.부럽다.정말 부럽다.....
나도 태국이나 홍콩, 말레이지아, 싱가폴 이런 곳으로 보내 줬으면 좋겠다.
태국 가서 바나나만 먹고 1년 살라 그래도 행복할 것 같다.

켄짱은 머쓱해 하며 말했다.
이 사실은 엄마랑 Susan한테만 말했다고...
귀여운 넘.
만나는 여자들 모두에게 그렇게 말하겠지. 우하하.

이제 Tokyo에 가면 켄짱을 볼 수 없는 게 아쉽지만,
참 잘된 일이다. 대리만족을 느낀다고나 할까....
켄짱이 동남아에서 "happy"한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동남아.
나도 언젠가는 꼭 방콕에 가서 살아야지.

신입사원 때부터 계속 해외영업을 하면서
켄짱처럼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싱가폴의 Reece, Mailing,
뉴질랜드의 Rob,
태국의 Suda, Joy, Suthee,
말레이지아의 SaiTong, Roven,
영국의 Rodney 아저씨, Ian,
독일의 Niels, Swen,
이태리의 Paola, Maureen.....
중국의 Shen Li, Wang Ren Ji,
홍콩의 Walter......
우와..... 정말 많다.

물론 스트레스로 터져 나갈 것 같은 날들도 많지만,
켄짱 같은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내 일의 큰 매력이다.

켄짱의 행복한 미래를 축복하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야클 2004-12-16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san님 참 멋지게 사십니다. 부럽습니다. 진짜루~~~

글샘 2004-12-1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S.S.님. 이니셜이 참 독특하군요. ㅎㅎㅎ 처음 뵙습니다.

글이 신선한데요. 잘 사시는 것 같고... 인생이 아름답군요.

아름다운 인생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음, '나'라는 주어를 안 쓰고 적다보니, 말이 역시... 안 되는군요. ^^

kleinsusun 2004-12-17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처음 인사드리네요.

글샘님 서재에 지금 막 들어가 봤는데....

우와....감탄이 절로.....국어 교사이신가요?

근무시간이라 오래 머물 수 없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리뷰만 보고 나왔어요. '본질을 놓쳐버린 치히로는 목욕탕 때밀이일 뿐이다' 이 부분 정말 이 아침을 강타하며, 마음을 정면으로 받아 버리네요. 정말 글을 잘 쓰시는군요. 앞으로 자주 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