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문학사이](1)김연수
입력: 2007년 01월 05일 15:08:02
한 편의 소설, 김연수의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수록)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소설에서 평범한 회사원인 ‘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전처와 만나 안국역 근처 일대를 걷다가 어정쩡하게 헤어진다.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안국동과 화동과 가회동과 재동이 나오는 북촌 근처의 지도를 산다. 그리고 그날의 행로를 지도 위에 그어나가기 시작한다. 안국동 175번지 앞에서 걷기 시작해서, 우리의 대화는 가회동 12번지 지날 즈음 끊기고, 그러다가 재동 83번지 헌법재판소를 지날 즈음 그녀는 꿈 얘기를 하고….

그러나 사실 그날의 행로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녀와 내가 걸어다닌 그 길의 행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그녀와 내가 왜 헤어졌는지, 그날의 만남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되풀이해서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자신들이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걸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나무는 박지원, 지구의, 홍영식, 갑신정변, 제중원 등과 같은 역사적 사실과 느슨하게 연결된, 이제는 천연기념물이 된 육백년 된 백송이다. 소설에서 ‘나’는 질문한다. 과연 나무를 중심으로 그려진 그날의 동심원은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백송처럼 육백년을 견디면 우리의 행로도 필연이 될까.

모든 의미는 사후적으로 결정된다. 무의미한 행로 중심에 놓인 육백년 된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우연과 농담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일상은 어떤 의미의 빛을 띠게 된다. 이즈음 김연수의 장편소설(‘밤은 노래한다’ ‘모두이면서 하나인’)은 이 우연의 세계에 떨어진 개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흔히 역사라고 하는 필연과 진담의 세계가 어떻게 우연과 농담의 세계와 겹쳐지면서 이어지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는 허무한 농담의 세계를 견디려는 인간의 의지가 있다. 김연수 소설의 평범한 개인들이 결코 평범하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놓인 우연한 삶의 자리에 대해 끝까지 질문한다. 명쾌한 답은 없지만, 결국 대답 없는 그 질문은 그들을 벽 앞의 절망으로 밀어가겠지만 그래도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김연수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이자 불가지적 세계의 암호를 풀려는 자이다. 그는 자기가 던지는 질문에 정답은 없으며 세계라는 수수께끼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질문과 해석을 중단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사실들을 동원한다.

그는 성균관대 동아시아 협동과정 석사과정에 있는 ‘학삐리’ 작가이자 ‘젠틀 매드니스’라는 번역서를 출간한 역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단편 하나를 쓰기 위해 수십 권의 책을 탐독한다는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밖에. 그러나 사실을 그러모아 허구의 탑을 쌓는다면 그것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그는 소설을 쓸 때 아무리 많은 자료를 읽어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나오면 그제서야 이 소설은 제대로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한단다. 그에게 사실에 대한 집요함은 결국 모든 사실을 동원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알 수 없음’의 세계를 향한 그의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소설가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농담 같은, 거짓말 같은, 우연 같은 우리의 삶을 진담으로, 참말로, 필연으로 만들어주는 자가 아니겠는가. 이를 위해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문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굳빠이, 이상’에서 삶 전체를 판돈으로 걸고 스스로를 천재작가라는 허구적 텍스트로 변형시키고자 한 ‘이상’에게서 우리는 작가 김연수의 표정을 본다. 그것은 이 시대의 마지막 문학적 낭만주의자의 표정이다. 이토록 젊은 그가.

〈심진경|문학평론가·서울예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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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1-14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젠틀 매드니스 역자였군요. 가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