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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ㅣ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C. P. 스노우는 『두 문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즉, 2라는 수는 매우 위험한 숫자이다. 변증법이 위험한 방법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둘로 나누려는 생각에는 의문점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개선해보려고 오랫동안 생각한 바 있지만 결국 중지하기로 하였다. 내가 찾고자 한 것은 문화의 구별까지는 안 간다고 해도 위풍당당한 은유(metaphor) 이상의 그 무엇이었으며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는 두 문화로서 충분할 듯하고 그 이상으로 세분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이점보다는 결점이 더 많은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두 문화를 대표하는 지식인은 바로 인문학자 진중권과 과학자 정재승이다. 다시 말하면 진중권은 철학적 지식인(C. P. 스노우의 문학적 지식인과 같다고 했을 때)이며 정재승은 과학적 지식인이다. 그들이『크로스』 에서 문화 키워드 21개를 통해 앞서 말한 위풍당당한 은유를 펼치고 있다. 어떤 현상에 대해 개념적으로 접근하다보면 정작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느 틈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의미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스티브 잡스가 말한 “다르게 생각하라.”는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우리의 전전두엽을 지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이 책의 흥미롭고 진지한 통찰력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영화「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정재승은 21세기 예방과학에 대한 우화로 설명했다. 21세기 테크놀로지가 가속화되면서 예측과 예방으로 시스템으로 범죄를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 모두 잠재적 범죄자다. 또한 미리 운명을 알게 된 자의 고통과 몸부림에 있다. 이를 통해 정재승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과관계의 뫼비우수의 띠에 정면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진중권은 ‘창의적이지 못한 기술은 기능’으로 전락한다고 했다. 이 영화가 구현하려한 미래 현실 즉 허황되지 않은 매우 현실적인 상상은 이미 기술적 일상이 되었거나 기술적 상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술이 예술로 흘러들어가는 흐름이 있다면, 반대로 예술이 기술로 흘러 들어가는 흐름’도 있다고 하면서 미디어 아티스트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둘째, ‘헬로 키티’라는 고양이의 매력에 대해 진중권은 일본 사회의 가와이(귀여운) 문화를 말했다. 키티의 분홍색이 상징하는 소녀 취향이 ‘무국적성’이라는 일본 대중문화의 특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의 바비 인형은 철저하게 백인 여성의 미를 절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키티의 매력에 대해 정재승은 입이 없어 감정이입이 쉽고 자유롭다는 것, 이야기 없이 순수한 캐릭터로 탄생됐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특히 캐릭터 마케팅의 핵심을 정재승은 의인화와 동일시로 보고 있다.
셋째, 레고(LEGO)에 대해 정재승은 20세기 모더니즘의 유물이라고 했다. 생명체가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가지 DNA 블록이라면 레고 왕국은 빨간색(R), 초록색(G), 파란색(B), 노란색(Y)의 플라스틱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레고블록을 통해 어린이들은 ‘창조자의 절대권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진중권은 레고조립은 건축과는 다르고 했다. 즉 건축에서는 개념화와 실현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레고 건축가는 그런 분리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고는 컴퓨터 게임을 닮은 실시간 ‘인터랙션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무한 상상력 즉 위풍당당한 은유를 새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더라도 스티브 잡스를 보는 방법은 차이가 있다. 정재승은 ‘개성적인 통찰력’으로 진중권은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었다. 이러한 차이를 학문 간의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라 통섭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생활 세계의 현상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 즉 “크로스”임을 탄탄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