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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싸움이 있겠지만 말싸움만큼 시비(是非)를 나누기가 어려운 것은 없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보면 시비가 또 다른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시비의 결과가 우리들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 를 되새기곤 한다. 정의는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는 쉽고 가벼운 방패다.
하지만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고자 한다면 단순한 방패만으로는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의『정의란 무엇인가』를 주목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강의를 고스란히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정의에 대한 논쟁거리를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면서 정의에 관한 주요 지식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정의는 ‘행복, 자유, 미덕’의 트라이앵글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행복에 있어 우리는 배고픈 돼지가 낫을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을까? 라는 오래된 질문을 만나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만족하는 돼지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만족하지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다. 행복에 있어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말했다. 하지만 최대 다수의 이면에는 개인은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 그래서 밀은 이러한 순응적인 삶을 반박했다. 그는 “욕구와 충동이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 아닌 사람은 인격이 없는 사람이며, 그것은 증기기관차에 인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했다.
다음으로 자유에 있어 과연 우리 소유물은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그렇다고 한다. 가령,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면 부자는 강요받는다. 이것은 부자가 자신의 소유물을 쓸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 경제적 불평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칸트는 이를 반박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이성적 존재이며 자율적 존재’다.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다. 칸트가 말한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주어진 목적에 걸맞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의의 측면은 미덕(도덕)이다. 우리는 미덕을 통해 좀 더 깊이 왜 정의로운 사람이어야 하는가? 에 대한 방향과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앞서 말한 행복, 자유와 달리 미덕은 심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심판은 도덕적 추론을 어떻게 판단하는 문제다. 이 때 도덕적 딜레마는 도덕 원칙이 충돌하면서 생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정의로운 삶의 조건을 파악할 수 있다.
아리스토델레스에 따르면 정의는 ‘텔로스(telos:목적)’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가령, 플루트를 분배할 때 최고의 플루트는 최고의 플루트 연주자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에게 도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었다. 또한 칸트는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를 ‘의무’에서 찾고 있다. 칸트가 말한 ‘의무 동기’란 올바른 이유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하며 도덕의 최고의 원칙이지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존 롤스는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를 펼쳤다. 그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면 그 경기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기회 균등이 긍정적으로 보장되는데도 불구하고 소득과 부가 불평등한 이유는 도덕적 임의의 현실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즉 능력에 상관없이 계층과 환경에 따라 기회가 전혀 균등하지 않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의 도덕적 임의성은 ‘도덕적 자격’에 대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즉 롤즈에 따르면 도덕적 자격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따라서 게임의 규칙이 정해졌을 때 생기는 ‘합법적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덜은 존 롤즈의 한계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도덕적 개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도덕적 개인주의자들에게 자유란 내가 자발적으로 존재한 의무만을 떠맡는 것이다. 즉 기존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목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 조상의 잘못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죄이지 내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은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란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와 달리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 공동체와 전통의 도덕적 요구를 받아들인다.『덕의 상실』이라는 책에서 매킨타이어가 인간을 자발적 존재가 아닌 ‘서사적 존재(이야기하는 존재)’로 보는 궁극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나는 개인이라는 자격만으로는 결코 선을 추구하거나 미덕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내 삶의 서사를 이해해야 하는 것인데 전체의 일부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공동체주의자라고 불리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행복, 자유 그리고 미덕이다. 이중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미덕이다. 정의의 실현이 곧 미덕이며 미덕은 곧 좋은 삶이라는 것이다. 좋은 삶은 아리스토텔로스에 따르면 ‘최고의 삶’이며 저자에 따르면 ‘공동선(公同善)’이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가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며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