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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툰 1 - 정치 ㅣ 고전툰 1
강일우 외 지음 / 펜타클 / 2025년 11월
평점 :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교육은 뭘까? 고교학점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학생 중심 제도’다. 하지만 교육의 이상(理想)은 학생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학생들은 시험을 볼 때 객관식보다 주관식을 더 어렵게 생각한다. 학생들이 그만큼 주입식 교육을 해왔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것도 힘든데 입시라는 부담감 때문에 어깨가 무겁다. 자신의 진로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고교학점제 문제 때문에 학생 중심 제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교육은 학생 중심 제도여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쯤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선택을 할 준비가 얼마큼 되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다양한 선택이 학생 중심 제도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양한 선택에 있어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학생들의 기본적인 소양이다. 즉, 사고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단순히 ‘예’나 ‘아니오’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으로 대답해야 한다.
강일우 외 2명이 함께 쓴 『고전툰 1: 정치』는 학생 중심 제도에 응답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제목에 나와 있듯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전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지혜의 보고다. 문제는 고전 자체만으로는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는 고전이 우리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고전을 통해 학생들이 정해진 답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있다. 학생들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지식에서 벗어나 참된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지게 된다.
이 책에는 다섯 권의 고전이 등장하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한비자의『한비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다. 제목만으로도 쟁쟁하다. 고전은 우리가 한 번쯤 읽어야 하는 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는 한 번도 읽기 힘들다. 학생들이 사상가들의 생각을 집대성한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고전은 반쪽에 불과하다.
그래서 학생들의 눈높이 맞춰 위대한 사상가들의 핵심 내용을 ‘다이제스트(Digest)’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전을 예능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예능의 시선으로 보면 정치는 여전히 지식에 불과하다. 마치 인간은 무슨 동물인가에 대한 오답 놀이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만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력(智力)이다. 단순히 지식만으로 정치를 배운다면 인간에게 정치와 동물은 반비례한다. 정치를 잘하면 인간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반대로 정치를 못하면 인간은 서로 싸운다. 결국 정치 능력 상실로 인해 ‘정치는 인간적 동물’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자 하는 정치는 동물이 아니다. 그가 말한 정치의 목적은 부유한 나라가 아니라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어느 누구는 학생들에게 정치는 불필요가 하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실생활과 밀접 된 ‘고전툰’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학생들에게도 정치가 뭔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교복을 입는다고 해서 청소년을 학생으로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지금의 청소년은 교복을 입은 시민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청소년은 학생에게 요구되는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학교생활에 성실해야 하고 친구들을 때리거나 왕따를 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참된 정치의 실현이다. 시민과 정치는 한 몸이다. 청소년은 민주시민이 되는 출발점이며 우리 사회의 미래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면 ‘북토크(book-talk)’에 참여할 수 있다. 북토크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여러 사상가들이 함께 대화를 나눈다. 지혜의 광장 ‘아고라’가 진행자가 되어 질문하고 사상가들이 각자 자신의 주장을 발언한다. 청소년은 북토크를 통해 사상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비교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청소년은 북토크의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어느 순간 사상가들의 지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공동선을 실현하는 시민’이 되고 싶었다. 공동선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
일찍이 고대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원자가 정해진 방향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뜻으로 ‘클리나멘(Clinamen)’을 말했다. 다시 말하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의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충대충 살고자 한다면 정해진 법칙에 살아도 괜찮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