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개정판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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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인간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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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개정판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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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 편지에서 자넨 요즘 뭣하고 있나? 이 냉동고래. 훈제되고 건조되어 깡통에 담긴 영혼아?”라고 적었다. 어쩌면 나 또한 냉동고래로 살아왔는지 모른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 영혼을 위해 삶의 이정표가 될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는 제목 그대로 철학카페에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다. 생각해봐야 할 내용이 많았고 그만큼 밑줄을 긋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문학 작품에 나타난 사건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문제를 철학적인 풀어쓰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문학과 철학의 공통분모는 지금 우리에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이 책은 독서의 깊이가 풍부한데 그중에서도 나를 붙잡은 대목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였다. 카뮈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 시인 호메로스에 의하면 시지프는 인간 중에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의 현명함 때문에 오히려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시지프의 형벌이라고 불리는 그 내용은 이렇다. 시지프가 높은 산 위로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려놓으면 그 순간 바위가 굴러 내려가기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바위를 밀어야 하는 고통을 당해야만 한다.

 

이러한 시지프를 보면서 카뮈는 삶의 불합리한 모습을 놀랍도록 주제화한다. 그는 시지프의 무의미한 노동을 현대인의 권태로운 삶이라는 문제의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권태를 실존주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권태를 표면적 권태깊은 권태로 나누었다. 표면적 권태는 어떤 상황에서 생겨나는 지루함이다. 반면에 깊은 권태는 무조건적으로 그냥 지루함이다. 그래서 전자를 비본래적 권태, 후자를 본래적 권태라 부른다.

 

하지만 이 둘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시간 죽이기에 있다. 표면적 권태는 시간 죽이기가 가능하다.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튜브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죽인다. 반면에 깊은 권태는 시간 죽이기가 불가능하다. 결국 깊은 권테에서 벗어나는 일이 곧 본질에 앞서는 실존이 된다.

 

카뮈의 관점에서 시지프의 형벌은 시간 죽이기가 불가능한 깊은 권태이다. 따라서 권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문제이다. 권태는 존재의 무의미성이기 때문에 삶이 부조리할 수밖에 없다. 권태와 부조리는 논리적으로 동일한 셈이다. 그러면 이러한 부조리 앞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먼저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없다고 하면 자살이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존은 무의미한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다. 그러니 극단적인 방식의 자살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위안이 될 것 같지만 끝내는 삶을 불행과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와 달리 희망은 어떨까? 희망은 적어도 자살과는 달리 삶을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희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카뮈의 생각은 희망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희망이 삶의 헛된 욕망이라고 비판한다. 희망이 현실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희망은 구토가 나올 정도로 야릇한 상태.

 

그러면 시지프의 노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살도 아니고 희망도 아니라면 뭐라고 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자살에 반대하는 태도를 가진 나로서는 시지프가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곧희망이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희망은 인간이 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 같았다. 언젠가는 바위가 정상에서 굴러가지 않겠지, 라는 느낌을 끝내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와 달리 카뮈는 시지프를 반항하는 인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항은 무의미한 노동을 하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아니다. 또한 절망하거나 체념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당당히 맞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반항하는 인간은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운명을 우월하게 버티는 자이다. 그래서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이 바위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유와 존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뮈의 실존주의 카페에서 그의 페스트를 읽어보면 페스트의 숨은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단순히 죽음의 병균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데, 바로 부조리라는 치명적인 이름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를 절망에 빠드리는 부조리한 운명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카뮈의 부조리함을 사막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유인즉 카뮈가 반항을 사막에서 벗어나기 않은 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으로 풀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항하는 인간은 사막에서 버티는 인간이다. 지금에 와서 사막이라는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사막을 건너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야콥의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유레크 베커의 거짓말쟁이 야콥에서 야콥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1그램의 거짓말로 1톤의 희망을 만들어낸다. 비록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 치 그런 것처럼말이다.

 

조지 고든 바이런은 작가를 별을 찾아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는 카뮈의 이방인이외에도 괴테, 셰익스피어, 한강 등과 함께 12개의 별이 저마다 반짝이고 있다. 어쩌면 삶이란 자신만의 별을 찾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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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주의자의 감각 -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소한 기적들에 대하여
김이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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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역대급으로 무더위다. 숨이 막힐 정도다. 이럴 땐 계곡의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있으면 최고의 휴식이다. 더위에 지친 일상의 무거움이 한순간에 가벼워져 어느 순간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문제는 날씨가 덥다고 해서 그럴 때마다 계곡에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럴 땐 여름을 제대로 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짧은 책을 읽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더군다나 무수한 책 중에서 내 취향의 작품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김이나의 일상주의자의 감각을 읽으면 두근거림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그녀는 히트곡만 300곡이 넘는 작사가이다. 보통 이 정도의 작사가라면 뭔가 특별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바에 따르면 그녀의 감각은 제목에 나와 있듯 일상적이며 사소해서 오히려 매력적이라는 데 놀라게 된다.

 

생각은 절대 생각을 구원할 수 없다.

생각을 지우는 건 행동이다.

 

세상에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료하게 보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적어도 다람쥐와 비교해 후자에 속한다. 그렇다고 언제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상대방과 비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남들과 다르다는 자부심도 있는 반면에 행복의 고도 너머에서 불가피하게 혼자라는 느낌은 견디기 힘들다. 그럴 때마다 잡생각이 많아지고 결국에는 번뇌에 휩싸인다.

 

오랫동안 생각이 생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잔잔하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생각만으로는 생각을 구원할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쩌면 생각을 진정으로 구원하는 것은 작가 말대로 행동이 아닐까? 우리 몸은 늘 행동하니까. 때로는 목적이 없는 행동, 이를테면 가벼운 운동을 통해서 또 다른 일상을 맞이하는 시작이 된다. 결국 마음만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그녀는 왜 일상주의자가 되었을까? 일상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매일매일의 보통의 날이다. 이와 달리 완벽은 말 그대로 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완전하다. 작가의 생각을 빌려보면, 일상은 꿈이며 완벽은 계획이라는 점에서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우리는 되도록 계획적으로 살려고 한다. 계획을 통해 하루하루를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 완벽해지는 순간을 굳게 믿는다. 계획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완벽은 삶의 미덕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완벽에 대한 스트레스를 몸에 지니고 있다. 그러니 사소한 일은 그저 사소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열망도 없다. 완벽의 반대말이 불완벽이라는 마음이 앞서기 마련인데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면 만족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일상을 만족하는 사람이 완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작가의 에세이를 거듭 읽을수록 묘한 위안을 얻는다. 작가의 목소리는 마치 별이 빛나는 밤에 듣는 라디오 같다. 하잖은 시절을 보내는 날들도, 첫사랑통에 시달린 날들도, 벅차게 행복했던 날들도 자칫 일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반대로 어디까지 기적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우리 인생은 한 번 머물고 떠나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별이 되어 반짝인다는 발견은 우리의 일상을 더욱 삶답게 한다. 누군가도 이러한  아름다움을 느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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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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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못해 멈추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돌이켜보면, AI 기술의 종착역이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종착역이 없는 관계로 미래는 계속 변할 수밖에 없으며 예측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대개 5, 1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관심이 많다.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생각은 평범하지 않았다. 요즘같이 AI가 일상화된 시대에 오히려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며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통찰력에 놀라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과학을 어렵고 난해한 학문으로 여긴다. 하지만 김상욱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읽어보면 과학에 대한 훨씬 많은 점을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과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교양이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복잡한 세상을 선명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동시에 삶의 경이로움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탐구의 주제는 바로 변화.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학과 변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사물의 변화에 대한 탐구가 바로 과학이며 과학은 사물의 변화를 논리적으로 검증한다. 그래서 과학은 사물의 원리를 밝혀내면서 미래를 더욱 변화시킨다. 과학의 소명은 변화를 발견하는 데 있으니까.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앞서 말했듯 AI가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는 AI보다 능력이 떨어진다. 가공할 만한 데이터를 통해 AI의 지능은 인간보다 빠르게 문제를 해결한다. 가령,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보듯 우리는 AI보다 바둑을 잘 두는 인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알파고가 바둑 기사에게 저승사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 저자는 반대한다. 바둑 기사에게는 자신만의 기풍(碁風)이 있다. 반면에 알파고는 오직 점수(點數) 게임이다. 이렇듯 AI 능력에도 불구하고 바둑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 삶은 미지수다. 그러니 최적의 해를 찾아야 한다. 이쯤에서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사용을 당연한 현실이라고 여기는 점은 생각해 볼 문제다. 아이의 성장은 문화적 역량에 따라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문화적 역량은 인간의 본성에 관련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말한다. 아이들에게 놀이가 중요한 까닭은 동기화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게 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최적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변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숫자. 우리가 침묵하는 자연 현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 숫자 덕분에 비로소 우리는 자연을 수학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이 뉴턴의 만유인력이라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따지고 보면 만유인력 또한 자연 현상을 체계적으로 수학으로 기술했다. 그리고 오늘날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01로 나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계산하는 비약적인 미래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방식을 숫자화하면서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믿음을 정당한 것으로 확인시키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숫자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숫자의 지배력이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의 가치를 파괴한다는 시사하는 바가 높다.

 

우리는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더 기대한다. 삶을 바꾸는 과학기술은 변화처럼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변화의 흐름에 맞서 변하지 않는 28가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화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는 28가지 진실과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변하지 않는 28가지 진실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그대를 속이고 있다면, 목적과 수단이 서로 역전되었다고 하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북극성을 바라보듯 잔잔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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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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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끈이 풀린 삶은 느슨함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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