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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 삶의 장면마다 발견하는 순우리말 목록
신효원 지음 / 생각지도 / 2025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소셀 네트워크 공간에서는 본명 보다는 필명, 즉 닉네임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쉽게 말하면 별명(別名)이다. 나는 몇 번의 닉네임을 바꿔가면서 비로소 내 성격에 맞는 단어를 찾았다. 바로 ‘오우아’다. 겉으로 보면 오우아는 모음의 연속이며 무엇보다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우아는 사연이 있는 단어다. 오우아는 이덕무 선생이 쓰던 ‘오우아거사(五友我居士)’를 줄여 쓴 말이다. 풀이하면 내가 나의 벗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한글이라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말이 한국어라고 생각하는 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론 정반대로 외국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어인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같이 신조어가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어에 대한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굳이 번거롭게 정체성을 따지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언어적 소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상대방과 말하는 차원이 아니라 소통하기 위해 그렇다.

그런 면에서 신효원의『우리가 사랑한 단어들』은 매우 반가운 책이다. 한국어를 전공한 저자는 자연스럽게 삶의 장면에서 ‘순우리말’을 발견했다. 순우리말은 100% 우리말이다. 다시 말하면 순우리말은 한자, 일본어, 영어 등 다른 언어가 섞이지 않았다. 내가 즐겨쓰는 오우아라는 닉네임은 비록 우리말이라고 하더라도 순우리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이금희 방송인의 말을 빌리자면 순우리말은 ‘AI가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밑줄을 그어 가며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문장, 나를 움직인 문장에 밑줄 그어 가며 자신만의 역사를 ‘영글(영글다: 과실이나 곡식 따위가 알이 들어 딴딴하게 잘 익다)’었다. 그리고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열망하며 ‘드레’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하필 드레일까? 드레의 순우리말은 ‘인격적으로 점잖은 무게’를 뜻한다. 드레와 점잖은 무게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듯 저자는 잊지 못할 삶의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일상적인 단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특히 우리 입에 익지 못한 순우리말을 사랑하였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랄까?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내가 모르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 ‘흐무뭇함(매우 흡족하여 만족스럽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놀랍게도 내가 모르는 단어들은 대부분이 순우리말이었다.
책 구석구석에는 저자의 순우리말에 대한 ‘마음새(마음을 쓰는 성질)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치 숨겨진 보석을 찾듯 숨겨진 단어를 찾는 것처럼 새삼스럽게 흥미로웠다. 또한 눈물, 웃음, 이야기 하나하나 새겨진 순우리말에 열중하는 한결같이(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다)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이토록 ‘곰살스러운(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령, 걸음을 부르는 순우리말은 이렇다. 기운이 없어 비틀거리며 걸을 때는 ‘허영허영하다’, 나쁜 소식을 듣거나 울적한 일이 생겼을 때 걸음에 힘이 빠져 쓰러질 듯한 걸음은 ‘허전거리다’, ‘저춤거리다’라고 한다. 반면에 힘없는 것과 관계없이 느릿느릿 걸음은 ‘느실느실하다’, 아름다운 산책로를 걸을 때 한 걸음 한 걸음 꼭꼭 눌러 담아 천천히 걸음은 ‘발밤발밤하다’이다.
순우리말을 듣고 있으면 일상적인 말보다 더욱 실감 난다. 그만큼 삶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순우리말을 ‘그러모아둔(흩어져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거두어 한 곳에 모으다)’ 단어집이 아니라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말과 글의 향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