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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평점 :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이다.
- 아도르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화제의 명강의를 선보인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으면서 새삼 ‘불행’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보니 불행의 일상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불행은 전염병 같았습니다. 전염병의 특성상 감염되기 쉽고 치명적입니다. 문제는 전염병에 대한 사전 관리가 소홀하다보니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헬조선’, ‘탈조선’을 외치며 이상한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할까요?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인이 놀랄만한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을 심정으로 한강에 투신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악몽으로 인해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굴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서 불행하게 살고 있을까요? 이상한 나라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날수록 이상한 나라가 정말로 지옥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첫 번째, 이상한 나라는 사람들은 가장 모순적으로 ‘자기 착취’를 당연시 합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유인’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에 빠져 ‘소외’ 또한 당연시 합니다. 소외는 흔히 ‘왕따’라는 정도로 일상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소외의 좀 더 명확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즉, ‘삶이 뒤집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필요로 해서 돈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돈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돈 없는 사람에 대한 차별 때문에 ‘이백충’(한달에 200만원 이하의 소득으로 사는 벌레 같은 사람) 이란 말을 끔찍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상한 나라는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 공화국입니다. 이상한 나라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보세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은 촛불처럼 타오르며 민주주의를 외치며 불의에 저항했습니다. 그리고는 정권 교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럴 정도로 이상한 나라는 ‘광장 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광장이 아니라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서 하는 모습들을 보면 지옥을 보는 듯합니다. 권위주의, 가부장주의, 꼰대 문화, 갑질 문화, 비정규직, 성차별, 성폭력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이것을 마치 민주주의의 천국처럼 여긴 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상한 나라에서 ‘일상 민주주의’가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할뿐 성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상한 나라는 ‘약한 자아’의 사회입니다. 아도르노가 지적한대로 약한 자아는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입니다. 약한 자아는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약한 자아를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 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약한 자아는 사회의 고질적인 병(病)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약한 자아의 바이러스는 놀랍게도 승자독식을 위한 교육이 슈퍼전파자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년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교육이 약이 아니라 독(毒)이 되어 불행을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왜 이상한 나라가 되었는지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지구적인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안팎을 두루 살펴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한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날수록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편 한다고 해서 외면만해서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좀 더 현명하게 한계를 의식하고 반성해야 대한민국이 이상한 나라라이며 ‘볼품없는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독일을 모델로 하며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나라가 되는 것을 통찰하고 있습니다. 독일하면 아우슈비츠의 악몽을 떠올리는 과거 파쇼적인 전쟁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180도 달라져 복지국가로 대한민국과 전혀 다른 정상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실업 상태여도 취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이러한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독일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독일을 대안으로 본 것은 당연합니다. 독일처럼 통일만 되면 경제발전과 함께 국민이 잘 사는 나라가 된다는 장미 빛 희망. 대한민국처럼 분단국가에서 최선의 선택은 통일을 통해 사회 변화를 도모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통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현상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을 하게 됩니다. 한 나라가 통일이 되었다고 해서 그 나라 사람들의 자유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통일을 하는 것은 좋을 리 없습니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통일이 되어야만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독일을 관심 있게 연구하면서 ‘68혁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68혁명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회변혁운동으로 기성세대의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습니다.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68세대들이 새로운 독일을 만들었습니다. 과거청산을 성공적으로 했으며 대학생에게 생활비를 주는 ‘바퓍’ 제도를 시행하면서 교양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노사 갈등이 아닌 노사공동결정체로 경제 민주화를 완성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일 헌법1조는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높은 시민정신으로 사회적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확고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에서는 어떤 일어나고 있나요? 68혁명의 이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30-50 클럽’에 가입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촛불혁명 등 위대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모두들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머지 이상하게도 불행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사회적 갈등을 폭발시키는 무서운 의식에서 벗어나 제대로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행복을 당연시해야 합니다.
일찍이 68세대의 정신적 지도자인 허버트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자유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노예 상태에 있으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예 상태는 지배자의 논리를 미화하는 것입니다. 지배자는 자본의 야수성을 가진 결코 좋은 괴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본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리 삶이 좀 더 편안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게 하니까요. 자본에 적응하며 사는 우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의 노예를 마치 삶의 이치인양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비현실적인 꿈이 되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통의 생각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한경쟁의 민낯을 보세요? 너무나 살인적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상한 나라에서 여전히 일차원적 인간으로 사는 게 올바른 것인지 같은 인간으로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명쾌한 주장을 듣고 있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일차원적 인간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에 공감하게 됩니다. 오직 일차원적인 경쟁만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