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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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 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중에서

 

우리 생각에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뭘까요? 밀란 쿤데라는『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아틀라스가 그의 어깨에 하늘의 천정을 메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베토벤의 영웅은 형이상학적인 무게를 들어 올리는 역도 선수라고 했습니다. 파르메니데스가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했다면 베토벤은 무거운 것은 긍정적이라고 간주했습니다. 베토벤은 4중주의 마지막 악장을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것으로 작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마지막 악장 첫 부분에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라고 써넣었습니다. 그것은 묵직한 것만이 가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베토벤의 음악을 신념으로 했던 외과의사 토마시는 어떤 결정을 신중하게 내릴 때마다 운명의 목소리와 결부된 것처럼 ‘그래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테레사가 그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첫 번째 만남은 여섯 우연이 만들어냈습니다. 그녀가 술집 여종업원이라는 것, 그 술집에 그가 있었다는 것, 그가 테이블에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던 책을 펼친 것, 저쪽 세계의 이미지였던 베토벤 음악이 흘러나온 것 등등 그녀는 그가 미래의 운명임을 알아챘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과 이 년 남짓 살고 이혼한 그는 사랑의 부적격자라는 생각에 여자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과 갈망 사이에서 ‘에로틱한 우정’이라는 타협점을 찾았는데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는, 감상이 배제된 관계만이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에로틱한 우정의 불문율을 깨트리면서 그녀를 돌봐주었습니다. 그에게 동정은 ‘고통’(passio)이 아니라 ‘감정’(sentiment) 때문에 무거웠습니다. 즉 타인의 고통을 차가운 감정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동정(sentiment)에 굴복한 그는 화가였던 그의 애인 사비나에게 부탁해 그녀를 출판사의 사진부에서 일하게 해줬고 결국에는 그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삶에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그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진기사가 되어 소련군의 침공 이후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을 수백 통 찍었습니다. 그러나 소련군에 끌려갔던 툽체크가 돌아와 정복자의 타협안을 낭독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그녀는 소련군에 대한 증오의 축제가 이제 끝났다는 모욕감으로 그와 함께 스위스로 망명했습니다.

 

스위스에서 그녀는 자신의 사진에는 관심도 없는 것에 놀랐습니다. 더구나 선인장이나 장미 같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허영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사진을 포기하고 집에 있는 것에 만족하려고 하자 누군가 그녀에게 그것은 시대착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극복할 수 없는 추락 욕구라는 현기증을 느꼈으며 자신의 허약에 도취되어 그것에 저항하기 보다는 투항하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예고도 없이 프라하로 떠나자 그녀와 칠년 동안의 사랑이 분명 아름다웠지만 피곤했던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마술적 공간 속에 들어가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동정에 굴복하여 이번에는 반대로 그가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병원 일을 하면서도 영혼의 순수함을 변호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문제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공산주의는 범죄자들의 창조물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그는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어째든 나라의 불행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도 몰랐다고? 그래서 결백하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그들이 알고 그랬는가? 아니면 모르고 그랬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는 ‘오이디푸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쳤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수 없어 자기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나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그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것처럼 ‘공산주의자들의 눈을 뽑아야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토마시는 오래전부터 공격적이고 엄격한 ‘그래야만 한다!’에 회의를 느껴 파르메니데스의 정신에 따라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무거운 의무였던 그래야만 한다!라는 것이 너무 강렬하여 그래서 더욱 강하게 반항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래야만 한다!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이라고 할까요?

 

한편 그의 애인 사비나는 공산주의를 미학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사비나에게 여자로 사는 것은 부조리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삶을 유혹한 것은 정조가 아니라 배신이었습니다. 정조가 청교도적 이었다면 배신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미술대학 당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리얼리즘을 의무적으로 그려야했지만 피카소처럼 그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는 모든 낭만적 향기가 빠져버린 추한 단어에 불과했습니다. 그녀에게 공산주의 세계의 추함은 공산주의가 뒤집어쓰고 있는 아름다움의 가면, 달리 말하자면 공산주의라는 키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격분해서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라고 했습니다.

 

사비나가 토마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토마시는 모든 점에서 키치와 정반대였습니다. 키치의 왕국에서는 토마시는 괴물이며 미국 영화나 소련 영화에서 그와 같은 사람은 파렴치한 역할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비나는 자신을 좋아하는 프란츠 교수에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프란츠는 소련의 탄압을 받았던 모든 나라에 대해 이상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리에서 공부한 프란츠는 재능이 뛰어나 스무 살 때부터 과학자의 출셋길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는 대학 연구실, 공공 도서관 같은 벽 안에서 일생을 보내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책에 파묻힌 그의 삶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현실적인 삶, 다른 남자들, 혹은 다른 여자들과 나란히 걸으며 느끼는 접촉, 그들의 환호 소리를 희구했습니다.

 

프란츠는 사비나의 조국을 좋아했습니다. 더구나 삶이 위험, 용기, 죽음의 위협 같은 웅장한 규모로 판가름 나는 그런 나라에서 온 사비나는 그에게 인간 운명의 위대성에 대한 신뢰를 주었습니다. 그녀 모습에서 그녀 나라의 고통스러운 드라마가 투명하게 드러났기에 그녀는 한결 아름다웠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의 육체보다도 그녀가 그의 삶에 각인해 놓았던 황금빛 흔적, 마술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시위 행렬에 참여했습니다. 뭔가를 기념하고, 뭔가를 욕구하고, 뭔가에 대한 항의하고, 혼자 있지 않고 밖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군중은 유럽과 그 역사의 이미지로 보였습니다. 그것은 혁명에서 혁명으로, 전투에서 전투로 이어지며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대장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며 그것을 포기하는 자도 괴물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했던 이런 까닭에 그녀는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그녀 앞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 다른 배반의 모험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그녀의 가슴에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배반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공허를 느꼈습니다. 이렇듯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습니다.

 

토마시는 히틀러나 아인슈타인 사이나, 브레즈네프와 솔제니친 사이에서는 차이성 보다는 유사성이 훨씬 많았다고 하면서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했는데 그들 간에는 100만분의 1의 차이성과 99만 9999의 유사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100만분의 1의 차이성은 뭘까요? 니체는『권력에의 의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어느 사람보다 더 차갑고, 더 거칠고, 주저하는 일이 더 적고, 남들의 생각에 겁내지 않는다. 그는 존경과 체통을 따지는 미덕, 곧 떼거리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결여하고 있다. 그는 앞장설 수 없으며 혼자 간다. (…)그는 남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길든다는 것의 비속함을 안다. (…)자신에게 말할 때가 아니면 가면을 쓴다. 그의 내면에는 칭찬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고독이 자리 잡고 있다.

 

토마시는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번은 중요하지 않으며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고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비록 인간의 존재가 깃털처럼 가볍다고 하더라도 가벼움을 참을 수 없을 때 우리가 위대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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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1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잘쓰시는군요..오래전에 읽어서 가물한데..환기가..고맙게 읽고 가요 ^^

오우아 2012-01-09 09:48   좋아요 0 | URL
손님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