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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5 - 사과와 링고
이희주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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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의 섬뜩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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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5 - 사과와 링고
이희주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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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시대 가장 주목해야 작가와 작품의 보고(寶庫)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5은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상작품집에는 대상으로 선정된 이희주의 사과와링고를 비롯하여 각양각색 다섯 편의 우수작품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사과와 링고는 착한 여성의 반전을 볼 수 있다. 파국적 결말을 깊이 있게 그려낸 섬뜩한 이야기다.

 


사과와 링고는 두 자매의 팔자(八字)에 질투 섞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겉으로 보면 언니와 동생의 불편한 관계이다. 그러니까 언니(사라)는 동생(사야)를 보살펴야 하는 팔자를 타고났다는 편견 속에 놓여 있다. 소설은 사야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사라에게 돈을 빌린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문제는 마지막이라는 말이 화가 날 정도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끝내는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사라의 미운 감정이 속절없이 사그라진다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동생의 거짓말이 점점 커질수록 언니로서의 깊은 걱정과 사랑이 점점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자매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말하며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자매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라가 아름답지 않는 평범한 여성이라면 사야는 타고난 아름다움을 지닌 고양이상 미녀이다. 또한 사라가 억척스럽게 살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반면에 사야는 아름다움에 몰입한 나머지 아름다움에 최선을 다한다. 어쩌면 궁핍한 생활속에서도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는 사야의 심리는 일종의 판타지에 가깝다.

 

작가는 사야의 정신적 위기 상황을 관찰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애완동물이 되고 싶다는 것은 묘사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먹여주길 바라고, 재워주길 바라고, 이유 없이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동생의 행동은 애완동물의 팔자 같았다.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받으려는 행동이라고 할까? 마치 돈 많은 여자를 만나 살면서 셔터맨이 되고 싶은 남자의 고백이나 다를 바 없다. 언니와 동생의 차이점은 단지 애완동물이 되는 팔자인지 아닌지에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순간은 사라가 고양이들을 보고 돈 먹는 하마라고 말할 때이었다. 그녀가 돌보는 고양이들의 이름은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과와 링고는 치료하기 힘든 병을 앓고 있어 돈 먹는 하마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애완동물이 되는 팔자인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양이들이 돈 먹는 하마가 되어도 좋을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라의 절망적인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고양이가 아니라 돈 먹는 하마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돈 먹는 하마를 감당하느라 경제적 활동이 불안한 그녀의 동생이 오히려 돈 먹는 하마가 되는 악순환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에는 이렇게 살아봐야 더 좋은 삶을 살 수가 없다는 불안감이 그녀의 착한 심성을 파괴하게 된다.

 

이렇듯 사과와 링고는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될 애완동물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혼란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사야의 고양이들을 죽이는 사라의 행동은 사랑일까? 아니면 파괴일까? 가장 강렬한 단절은 죽음밖에 없다. 고양이들의 흔적을 지워야 하는 운명은 얼마나 아름다운 복수(復讎)인가? 복수는 복수가 아닌 듯 계속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효석문학상 사과와링고 너는별을보자며 삽 빈티지엽서 옮겨붙은욕망 우리들의적이산을오를때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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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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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 풀이하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고사성어이다. 보통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어떻게든 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문화적 충격을 보면서 사람은 어떻게 될까? 라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변화의 속도를 거창하게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우리의 인식이나 사고를 뜻한다. 패러다임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변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목숨을 바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내일을 상상하며 메시아적 희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김이정의 유령의 시간60세 김이섭이 자서전을 쓰는 내용이다. 자서전에는 해방 30주년 전후의 혼란스러운 현대사가 격동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하여 한국전쟁, 박정희 독재 정권 등의 사건들이 배경으로 잡혀 있다.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사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라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의 자서전 역사적 사건을 고발하는 울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신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격동의 물결에서 김일성은 싫지만 사회주의자가 지금도 옳다고 믿는 지식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수배자가 되었고 평생을 빨갱이라는 주홍글자를 달며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살 수 없었다. 권력자들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이념과 사상으로 민족을 와해시키고 분단의 상처를 치료하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반공(反共), 사회안전법이라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강요했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은 원고지 스물 두 장에서 미완성으로 멈추고 말았다. 이때가 그의 딸 지형의 나이 15세이었다. 그로부터 40년 지나도록 그녀의 묵직한 슬픔은 흉터로 남았다. 이러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는 그를 애도하였고, 퍼즐 조각마냥 흩어진 그의 삶을 하나하나 완성하였다. 그의 자서전의 제목대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유령의 시간이었다. 이중삼중으로 고립된 삶, 이 땅 어디에서도 그는 존재하지 못했으니까.


작가는 무엇 때문에 지금에 와서 김이섭의 비극적인 삶을 복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국가와 사회의 역사가 어떻게 개인의 역사를 망가뜨렸는지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서둘러 달려온 한국 현대사가 흘린 남겨진 진실에 눈을 뜨면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진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한 대가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가혹했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의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그 자신에게 있는 듯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얼마나 다행이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가족은 물론 친족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그들은 신원조회라는 바늘구멍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원망 때문에 가혹한 운명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이중적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국가는 그가 그토록 믿었던 사회주의를 개인의 문제로 외면해버렸다. 그러면 국가는 책임져야 할 부분에서 은근쓸쩍 물러나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장인이 말한 것처럼 어떤 사상도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 절대적 믿음은 적대적 관계로 파생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게 더 인간적인 제도냐의 문제인지 모른다.


정말로 인간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나는 인간적이라는 것을 조금 오래 생각해 보았다. 그가 공평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믿었던 이념도 인간적이었고, 이념 때문에 월북했지만 이쪽에서 내 가족을 희생시킬 만큼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때문에 다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인간적이었다.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비극과 찬가가 혼재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이 철저히 통제된 세계와 욕망이 지나치게 과잉된 세계의 경계선에서 희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유령의 시간은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은 사람들의 상처를 주목하고 있다. 그들의 상처는 한 번 지나고 나면 사그라지는 별거 아니라는 냉소적인 말과 달랐다. 오히려 아주 오래도록 가슴속에 새겨져 있어 완전히 상처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망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최선은 아니었다. 유령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존재와 같았다. 이러한 유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기꺼이 과거를 소환하고 대화하였다. 작가에게 과거는 고통인 동시에 부적(符籍) 같았다.


소설 속에서 그는 유령 같았던 삶을 회고하면서 딸에게 뭐든지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 공부를 해도 마음을 다 바쳐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의무감만 남고 사는 게 재미없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를 몽상가’,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며 실패한 삶을 증명하였다. 마치 물 밖에 나온 새우의 모습처럼 투항의 자세처럼 보였다. 만약 그가 의무감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다면 영원히 비극 속에서 외롭게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후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그는 세상을 절망했으나 삶을 살았다, 실패한 인간이 아니라 뜨거운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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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31 1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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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 소년의 사랑 사계절 1318 문고 27
이재민 지음 / 사계절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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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슴벌레 소년이 있을까요? 얼마나 가슴 설레는 첫사랑이 있을까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꿈꾸고 애틋하게 여기면서도 때로는 질투도 하는 이름 모를 짝사랑을 우리는 첫사랑이라 부르며 가슴에 아로새기며 잊지 못합니다.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퍼서 더 아름다운 첫사랑은 인생을 살면서 단 한번 볼 수 있는 사랑의 맨얼굴이었습니다.


‘제1회 사계절 문학상 수상작’인 이재민의『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에는 첫사랑이 달맞이꽃으로 피어납니다. 시골에서 자란 중1 은수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거나 소에게 먹이를 줘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온갖 꽃과 곤충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라 시골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은수는 마송리 약수터에서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약수터에 갔는데 그곳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폐병에 걸린 순희 누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여자 친구와는 사뭇 다른 사춘기(思春期)라는 독특한 에너지가 콩닥거렸습니다. 이 에너지는 짝사랑으로 물결치며 은수의 몸을 더욱 근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은수는 이성에 눈을 뜨고는 누나에게서 달맞이꽃 향기를 맡으며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지 소설을 읽다보면 이 책의 제목이 달맞이꽃 소년의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은수는 누나를 사랑한 나머지 달맞이꽃이 되었으니까요. 누나는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별이 아니라 단 하나 밖에 달이었습니다. 하지만 누나는 은수에게서 달맞이꽃 향기를 맡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은수를 자신보다 9살 어린 정(情)이 많은 소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누나에게는 결정적으로 남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수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타오르는 질투심 때문에 누나의 남자 친구를 ‘쪼다’라는 말로 뭉갰습니다. 또한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거나 속 썩이는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더 이상 달맞이꽃으로 맞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수는 “나는 누나를 지켜주는 사슴벌레가 될 거야.”(120p)라고 다짐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강하고 멋진 보기보다 순한 곤충은 없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구나 은수처럼 되고 싶지 않을까요? 여기에 사랑에 대한 해롭지 않은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은수에게 사랑은 사슴벌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슴벌레는 은수 자신인 동시에 짝사랑하는 누나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사슴벌레에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운 은수의 성장통이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누나가 말했듯이 “진정으로 사슴벌레가 좋다면, 사슴벌레가 자유롭게 살게 해 주어야 하는 거야.”(140p)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를 구속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주는 아름다움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사이 20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거리는 가까워졌으나 깊이를 재는 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책을 하거나 숲길을 거닐다가 상수리나무에 있는 사슴벌레를 발견한다면 놀라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한 나머지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변해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비록 이보다 더 아픈 고통이 없더라도 사랑은 영원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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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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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는 죽음 앞에서도 그 마음이 강철과 같고,

의사는 위기에 처해도 그 기세가 구름과 같다.

-안중근

 

김훈의『하얼빈』은 절박한 소설이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겠다는 소망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는 작가의 고백이 마음을 관통했다. 안중근은 대한제국을 치욕적인 식민지로 만들었던 일본의 정치적 거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민족의 영웅이다. 안중근의 절박함은 개인적인 뼈를 갉는 아픔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절박함이었다. 그래서 일까?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소용돌이치는 안중근의 영혼은 대담한 정신으로 충만한 구름이 되어 휘몰아쳤다.


안중근의 삶과 죽음은 짧았다. 그러나 불의(不義)에 맞서는 운명은 강렬했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쏜 세 발의 총알은 명중했다. 비록 사격 솜씨가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마음가짐이 흐트러지면 결코 대업은 실패했을 것이다. 국가의 안위를 노심초사했던 그는 가족, 종교 그리고 목숨의 연민을 버리면서까지 묵묵히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지켰다. 불의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총알은 불의의 과녁을 빗나갔을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일본의 동양평화는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강자의 논리였다. 나라 잃은 고단한 국민들이 무참히 희생이 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분노를 금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격동의 시대에서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대한독립이라는 일편단심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러 나섰고 그래서 복수에 성공했으니 복수의 정의로움은 구국의 영웅다웠다. 


그러나 작가가 소설에서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안중근의 역사적인 사건을 낱낱이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느린 속도로 안중근의 행적을따라가면서 그의 마지막을 끝까지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의 마지막은 일본이 정치적인 논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말쑥한 논리에 따르면 결코 ‘파락호(破落戶)’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일본 법정에서 당당히 말한 대로 무지몽매한 “자객”이 아니라 “의병 참모중장”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우리의 심장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235p)


그래서 소설을 읽다보면 안중근의 생생한 비장함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작가의 표현대로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307p)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31세 안중근이 가슴에 품었던 절박함의 베일이 벗겨지고,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오래된 질문에 골몰하면서 어떤 새로운 다짐이 필요한가? 라는 절박함을 깨달았다. 


약육강식(弱肉强食) 풍진시대(風塵時代). 시대의 장벽을 넘어 김훈의『하얼빈』을 통해 다시 살아난 안중근의 영혼은 ‘청춘의 언어’이며, 우리 모두의 정신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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