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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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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 풀이하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고사성어이다. 보통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어떻게든 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문화적 충격을 보면서 사람은 어떻게 될까? 라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변화의 속도를 거창하게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우리의 인식이나 사고를 뜻한다. 패러다임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변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목숨을 바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내일을 상상하며 메시아적 희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김이정의 유령의 시간60세 김이섭이 자서전을 쓰는 내용이다. 자서전에는 해방 30주년 전후의 혼란스러운 현대사가 격동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하여 한국전쟁, 박정희 독재 정권 등의 사건들이 배경으로 잡혀 있다.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사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라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의 자서전 역사적 사건을 고발하는 울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신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격동의 물결에서 김일성은 싫지만 사회주의자가 지금도 옳다고 믿는 지식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수배자가 되었고 평생을 빨갱이라는 주홍글자를 달며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살 수 없었다. 권력자들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이념과 사상으로 민족을 와해시키고 분단의 상처를 치료하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반공(反共), 사회안전법이라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강요했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은 원고지 스물 두 장에서 미완성으로 멈추고 말았다. 이때가 그의 딸 지형의 나이 15세이었다. 그로부터 40년 지나도록 그녀의 묵직한 슬픔은 흉터로 남았다. 이러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는 그를 애도하였고, 퍼즐 조각마냥 흩어진 그의 삶을 하나하나 완성하였다. 그의 자서전의 제목대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유령의 시간이었다. 이중삼중으로 고립된 삶, 이 땅 어디에서도 그는 존재하지 못했으니까.


작가는 무엇 때문에 지금에 와서 김이섭의 비극적인 삶을 복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국가와 사회의 역사가 어떻게 개인의 역사를 망가뜨렸는지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서둘러 달려온 한국 현대사가 흘린 남겨진 진실에 눈을 뜨면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진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한 대가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가혹했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의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그 자신에게 있는 듯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얼마나 다행이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가족은 물론 친족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그들은 신원조회라는 바늘구멍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원망 때문에 가혹한 운명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이중적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국가는 그가 그토록 믿었던 사회주의를 개인의 문제로 외면해버렸다. 그러면 국가는 책임져야 할 부분에서 은근쓸쩍 물러나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장인이 말한 것처럼 어떤 사상도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 절대적 믿음은 적대적 관계로 파생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게 더 인간적인 제도냐의 문제인지 모른다.


정말로 인간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나는 인간적이라는 것을 조금 오래 생각해 보았다. 그가 공평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믿었던 이념도 인간적이었고, 이념 때문에 월북했지만 이쪽에서 내 가족을 희생시킬 만큼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때문에 다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인간적이었다.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비극과 찬가가 혼재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이 철저히 통제된 세계와 욕망이 지나치게 과잉된 세계의 경계선에서 희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유령의 시간은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은 사람들의 상처를 주목하고 있다. 그들의 상처는 한 번 지나고 나면 사그라지는 별거 아니라는 냉소적인 말과 달랐다. 오히려 아주 오래도록 가슴속에 새겨져 있어 완전히 상처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망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최선은 아니었다. 유령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존재와 같았다. 이러한 유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기꺼이 과거를 소환하고 대화하였다. 작가에게 과거는 고통인 동시에 부적(符籍) 같았다.


소설 속에서 그는 유령 같았던 삶을 회고하면서 딸에게 뭐든지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 공부를 해도 마음을 다 바쳐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의무감만 남고 사는 게 재미없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를 몽상가’,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며 실패한 삶을 증명하였다. 마치 물 밖에 나온 새우의 모습처럼 투항의 자세처럼 보였다. 만약 그가 의무감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다면 영원히 비극 속에서 외롭게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후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그는 세상을 절망했으나 삶을 살았다, 실패한 인간이 아니라 뜨거운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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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31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 사계절 1318 문고 27
이재민 지음 / 사계절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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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슴벌레 소년이 있을까요? 얼마나 가슴 설레는 첫사랑이 있을까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꿈꾸고 애틋하게 여기면서도 때로는 질투도 하는 이름 모를 짝사랑을 우리는 첫사랑이라 부르며 가슴에 아로새기며 잊지 못합니다.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퍼서 더 아름다운 첫사랑은 인생을 살면서 단 한번 볼 수 있는 사랑의 맨얼굴이었습니다.


‘제1회 사계절 문학상 수상작’인 이재민의『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에는 첫사랑이 달맞이꽃으로 피어납니다. 시골에서 자란 중1 은수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거나 소에게 먹이를 줘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온갖 꽃과 곤충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라 시골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은수는 마송리 약수터에서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약수터에 갔는데 그곳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폐병에 걸린 순희 누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여자 친구와는 사뭇 다른 사춘기(思春期)라는 독특한 에너지가 콩닥거렸습니다. 이 에너지는 짝사랑으로 물결치며 은수의 몸을 더욱 근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은수는 이성에 눈을 뜨고는 누나에게서 달맞이꽃 향기를 맡으며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지 소설을 읽다보면 이 책의 제목이 달맞이꽃 소년의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은수는 누나를 사랑한 나머지 달맞이꽃이 되었으니까요. 누나는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별이 아니라 단 하나 밖에 달이었습니다. 하지만 누나는 은수에게서 달맞이꽃 향기를 맡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은수를 자신보다 9살 어린 정(情)이 많은 소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누나에게는 결정적으로 남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수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타오르는 질투심 때문에 누나의 남자 친구를 ‘쪼다’라는 말로 뭉갰습니다. 또한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거나 속 썩이는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더 이상 달맞이꽃으로 맞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수는 “나는 누나를 지켜주는 사슴벌레가 될 거야.”(120p)라고 다짐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강하고 멋진 보기보다 순한 곤충은 없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구나 은수처럼 되고 싶지 않을까요? 여기에 사랑에 대한 해롭지 않은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은수에게 사랑은 사슴벌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슴벌레는 은수 자신인 동시에 짝사랑하는 누나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사슴벌레에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운 은수의 성장통이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누나가 말했듯이 “진정으로 사슴벌레가 좋다면, 사슴벌레가 자유롭게 살게 해 주어야 하는 거야.”(140p)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를 구속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주는 아름다움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사이 20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거리는 가까워졌으나 깊이를 재는 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책을 하거나 숲길을 거닐다가 상수리나무에 있는 사슴벌레를 발견한다면 놀라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한 나머지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변해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비록 이보다 더 아픈 고통이 없더라도 사랑은 영원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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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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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는 죽음 앞에서도 그 마음이 강철과 같고,

의사는 위기에 처해도 그 기세가 구름과 같다.

-안중근

 

김훈의『하얼빈』은 절박한 소설이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겠다는 소망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는 작가의 고백이 마음을 관통했다. 안중근은 대한제국을 치욕적인 식민지로 만들었던 일본의 정치적 거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민족의 영웅이다. 안중근의 절박함은 개인적인 뼈를 갉는 아픔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절박함이었다. 그래서 일까?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소용돌이치는 안중근의 영혼은 대담한 정신으로 충만한 구름이 되어 휘몰아쳤다.


안중근의 삶과 죽음은 짧았다. 그러나 불의(不義)에 맞서는 운명은 강렬했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쏜 세 발의 총알은 명중했다. 비록 사격 솜씨가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마음가짐이 흐트러지면 결코 대업은 실패했을 것이다. 국가의 안위를 노심초사했던 그는 가족, 종교 그리고 목숨의 연민을 버리면서까지 묵묵히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지켰다. 불의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총알은 불의의 과녁을 빗나갔을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일본의 동양평화는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강자의 논리였다. 나라 잃은 고단한 국민들이 무참히 희생이 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분노를 금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격동의 시대에서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대한독립이라는 일편단심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러 나섰고 그래서 복수에 성공했으니 복수의 정의로움은 구국의 영웅다웠다. 


그러나 작가가 소설에서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안중근의 역사적인 사건을 낱낱이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느린 속도로 안중근의 행적을따라가면서 그의 마지막을 끝까지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의 마지막은 일본이 정치적인 논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말쑥한 논리에 따르면 결코 ‘파락호(破落戶)’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일본 법정에서 당당히 말한 대로 무지몽매한 “자객”이 아니라 “의병 참모중장”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우리의 심장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235p)


그래서 소설을 읽다보면 안중근의 생생한 비장함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작가의 표현대로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307p)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31세 안중근이 가슴에 품었던 절박함의 베일이 벗겨지고,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오래된 질문에 골몰하면서 어떤 새로운 다짐이 필요한가? 라는 절박함을 깨달았다. 


약육강식(弱肉强食) 풍진시대(風塵時代). 시대의 장벽을 넘어 김훈의『하얼빈』을 통해 다시 살아난 안중근의 영혼은 ‘청춘의 언어’이며, 우리 모두의 정신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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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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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말랄라, 유엔 연설 중에서


한강의『작별하지 않는다』는 한 권의 책입니다. 동시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한 자루의 펜입니다. 성근 눈발이 내리거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고요해지는 소설을 읽으면서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별은 삶의 연습이라는 것. 어느 누구도 작별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작별이 찾아오고, 그렇게 누군가는 떠나고, 떠나지 못한 사람에게 작별만큼 두렵고 쓸쓸함이 어디 있을까요? 그럼에도 작별의 고통을 끝내 작별하지 못합니다, 삶이니까요.


작별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마치 목공방에서 작업하다가 두 손가락이 절단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설에서 그 주인공은 인선입니다. 제주 산속에서 홀로 지낸 그녀가 뜻밖의 사고로 병원에서 환자의 몸이 되자 그녀가 호출한 사람은 그녀의 친구이자 작가의 분신인 소설을 쓰는 경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경하는 광주 5.18을 다룬 소설을 쓰면서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악몽은 폭력을 직접적으로 당하는 것처럼 끔찍하여 살아나갈 이유를 상실한 나머지 매번 유서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만약에 인선의 전화가 없었다면 경하는 세상과 허무하게 작별했을 것입니다. 폭력의 괴물성을 두려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발가벗겨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단된 손가락을 어떻게 봉합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절단된 손가락을 봉합하는 것으로 수술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수술보다 더 큼직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봉합된 부위를 3분마다 바늘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지 않으면 절단된 신경이 죽어 섞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삶은 고통 때문에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선에게 고통은 한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나가야 삶이 재생(再生)되었습니다. 반면에 경하는 삶을 한 순간 끝내는 것으로 고통을 재생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늘 생각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경하의 모습은 비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경하의 자폐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선과의 접촉을 통해 3분마다 고통을 각인시킵니다. 그래야만 인생과 화해하며 다시 살 수 있으니까요.


인선의 마음 한 구석에는 커다란 과거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제주가 고향인 인선에게 커다란 과거는 바로 제주 4.3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제주 도민을 무참히 학살했던 폭력입니다. 개인이 아닌 국가의 폭력은 참혹할 수밖에 없으며 눈앞에서 펼쳐지는 최악의 상황들은 우리의 상상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는 부조리하게도 과거 속으로 쉽게 사라집니다. 


하지만 작가는 과거 속으로 침몰해가는 폭력을 끝까지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선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경하는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을 찾으러 갔다가 폭설로 인해 교통이 마비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가까스로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서늘한 충격을 받게 되는데 등신대 크기의 검은 통나무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검은 통나무는 경하가 악몽속에서 보았던 ‘검은 나무’와 같은 이미지여서 망자들이 환생하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작가는 그중에 하나, 비극적인 제주 4.3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에서 살았던 인선의 엄마인 정심의 마음 속 응어리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주 4.3은 좁은 의미로 보면 죽음의 공간이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삶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학살의 현장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정심은 실종된 가족을 찾는 노력을 반세기가 넘도록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책의 제목처럼 ‘작별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제주 4.3을 겪은 정심의 간절한 고백은 생각보다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백을 듣고 있으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1쪽)를 깨달았습니다. 눈송이 같았던 슬픔, 기어이 지극한 사랑의 불꽃으로 타올랐습니다. 폭력적인 현실의 절망을 절망시키는 방법으로  비로소 유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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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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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작품의 강점은 쨍하게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배명훈(소설가)

 

쨍하게 아름다운 순간이 그냥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덜컥 내려앉은 기분이 들어야 한다. 삶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면서 마지막 조각을 채우는 무수한 감정의 분위기. 어느 새 마음의 끝자락에 사랑이 매달렸다. 때로는 튀어 올랐다가 어느 순간 내려갔다. 그래서 사랑은 쨍하게 아름다운지 모른다. 포물선을 그리니까.

 

오랜만에 김초엽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면서 기이한 경험을 했다. 시공간적으로 떨어진 이야기에 쉽게 가닿을 수 없다는 막연함이 쨍하게 부서졌다. SF적 상상력이 신선하고 경이로웠다. SF가 그리는 세계는 먼 곳이며 따라서 우리 또한 먼 곳을 향하게 된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확대해보면 어떤 세상일까? 배명훈 소설가의 표현을 빌려보면 과학소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며 사람들 코앞으로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 그래야만 쨍하게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비록 흔한 포물선을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먼저 관내분실을 읽은 것은 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SF가 그리는 미래사회를 둘러싼 문제 중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말하면 지금도 현실적인 문제이며 다가올 우리의 미래에도 여전히 불안함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미래의 도서관에서는 더 이상 책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책 대신 죽은 사람들의 정보가 데이터화 되었다. 그러니까 죽음을 저장하고 검색하는 마인드 도서관이다. 문제는 마인드로 검색이 가능한데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지금의 삶의 방식과 비슷하게 의미를 가지는 미래의 삶에서도 혼란스러움을 피할 수 없다. 만약에 혼란스러움을 야기하는 미래사회의 불투명함을 찾고자 하는 결론에 이른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분실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실험은 어떤 문제를 수사의 흐름 속에서 관계를 이끌어간다. 소설은 임신이라는 아주 민감한 시기에 지민이 죽은 엄마(은하)의 마인드를 잃어버린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와 관계를 깊이 파고들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엄마에게 딸은 원죄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상처로 남는다. 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엄마의 비밀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하게 되고, “엄마는 마치 없는 사람 같았다.”(251p)는 답을 하게 된다. 엄마의 세계를 통해 우리 시대의 여성의 존재와 상처를 천천히 짚어보면서 ‘82년생 김지영이 선명하게 시선에 들어올 정도로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실존의 문제와 현대문명에 스며든 절망감 때문에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라는 단편에는 지구를 떠나 마을이라는 행성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을은 지구와 다른 세상이었다. 서로를 미워하지도 않고 간섭하지도 않으며 여성이라고,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한 행복을 누리고 산다. , 성인식을 통과해야만 한다. 바로 시초지(지구)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지구에는 아름다운 신인류와 그렇지 못한 비개조인으로 서로가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구별 때문에 지구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순례자들이 지구로 떠나는 이유는 뭘까? 떠나는 것 못지않게 커다란 의문은 순례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지옥을 좋아할 리 없다는 점에서 불행한 지구. 그런 만큼 순례자들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어쩌면 순례라는 과정은 자기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보는 것인지 모른다. 마을에는 트라우마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행복하다. 겉만 보면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행복하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역설적인 의미에서 보면 살아 있음에도 사실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유령과도 같은 희미한 존재로 사는 게 과연 우리가 바라는 행복일까?

 

지구가 그토록 모순 덩어리라고 해도 외롭고 쓸쓸한 풍경이라고 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성보다는 감성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아름다움은 절대적이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고통이 없어야하며 어떠한 아슬아슬한 낭만적 감성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구에서 아름다움은 상대적이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살며 서로의 보이지 않는 눈물까지 헤아릴 줄 안다. 미래라고 해서 사랑이 유토피아와 같다면 거부감이 생길 것이다. 사랑은 어디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괴롭다고 하더러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보다 많이 행복할 것이다. 쨍하게 아름다운 순간, 사랑이 그냥 좋아진다.

 

미래에는 분명 우주를 여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텅 빈 우주를 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문득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면서 어느 과학자가 말했던 인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우주론적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과학자에 따르면 태양은 오렌지 크기이며 지구는 모래 알갱이만 하다는 것. 모래 알갱이에 그 많은 생명체 살고 있으며 인간을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주에서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기적에 가깝다. 이러한 기적이 가능한 것은 우주가 벌레들이 파먹어놓은 구멍 뚫린 거대한 사과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구멍은 곧 우주의 공간과 공간 사이이며 이것을 연결하는 웜홀 통로의 발견으로 우주 개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웜홀 통로 이전에도 딥프리징, 워프 버블이라는 기술이 있었으나 어느 것 하나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이유인즉,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존재의 나약함이 훨씬 투명해졌다.

 

지구에 있는 안나가 불가능함을 모를 리 없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남편과 아들이 있는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에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눈물이 맴돌았다. 과학적으로 보면 그녀의 도전은 비현실적이게도 망상에 가깝다. 그러나 계속에서 망상을 듣고 있으면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아닐까, 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가 없는가 라는 숙명적인 고통을 차라리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같은 우주가 아니라 같은 하늘이라는 것, 사랑은 정확해야 한다. 그녀가 가야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이밖에도 스펙트럼, 공생가설, 감정의 물성,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단편들도 우리가 계속해서 지구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아 나선다. 특히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 나오는 판트로피(Pantropy)’가 아른 거렸다. 터널 프로젝트로 불리는데 우주 환경에 인간의 신체를 맞추는 것이다. 인간이 적응과 선택을 통해 진화해왔으니 우주 환경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얼마든지 우주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우주 환경에는 지구에 없는 것이 너무 많을 정도로 있다. 바로 무중력이다.

 

어쩌면 무중력의 삶은 인간이 바라는 환상일 것이다. 그러나 중력이 없다보니 작가의 말대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가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는 게 무의미할 정도이다. 작가의 단편집을 읽고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쨍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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