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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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에서 울려 퍼졌던 귀곡성(鬼哭聲)은 여전히 온 몸을 전율하게 한다. 한국인에게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은 오랜 트라우마다. 그래서 공포물이라는 장르에서『장화홍련전』 같은 버전이 어김없이 귀신으로 들락날락하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지나치게 잔인할 정도로 육체적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기숙의 『처녀귀신』은 ‘정서적 공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에 따르면 그것은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귀신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귀신은 ‘경이원지(敬而遠之)’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좀 더 말하자면 ‘형상으로서의 귀신은 부정되었지만, 원리와 존재로서의 귀신은 인정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주희는『중용』에서 귀(鬼)와 신(神)을 구별했다. 즉, 귀의 속성은 음(陰)으로서 돌아가고 물러나며 소멸하고 죽는 것이다. 또한 가을과 겨울처럼 머물러 있고 조용하며 안으로 수렴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신의 속성은 양(陽)으로서 흩어지고 펼쳐지고 쉬고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봄과 여름처럼 생동적이고 표현적이며 움직이고 밖으로 발산하는 성질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리학적 개념에서 귀신은 음양의 두 기(氣)를 바탕으로 천지만물을 변화시키는 이(理)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귀신을 인간의 사후적 존재로 여겼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귀신은 이승에 미련을 가진 자를 말하며 한이 깊어서 도저히 현실을 떠날 수 없는 자만이 귀신이 되는 것이었다. 즉, ‘귀신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다. 그(녀)는 자연사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현실에서 추방된 존재인 동시에, 죽음의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는 방랑자다. 이승에서의 생명이 멈춘 뒤에도 귀신으로서의 생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연장되는 삶이란, 차라리 저주받은 삶’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에서 귀신이 등장한다는 것은 반사회적이다. 삶과 죽음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며 서로 넘나들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귀신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전복한다. 누구라도 귀신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귀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냉정하고 잔혹한 현실이 만들어낸 가학적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귀신, 특히 처녀귀신이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귀신의 대부분이 순탄한 죽음을 맞지 못한 원귀(寃鬼)다. 그리고 원귀의 대부분이 처녀귀신인 것은 ‘남신여귀(男神女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남자 귀신인 남신은 ‘죽어서도 존경을 받으며 현실을 통제하는 파수꾼’이었다. 반면에 여자 귀신인 여귀는 ‘구천을 떠도는 한(恨) 많은 난민’이었다.

일찍이 『여성, 문화,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남성은 문화, 여성은 자연’이라고 했다. 남성이 사회적으로 정교화된 제도 내에서 거둔 성취에 의해 정의되는 한 남성은 남성이 만든 인간 경험체계의 아주 뛰어난 참여자다. 그래서 남성의 세계는 문화라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공식적인 사회질서 체계와는 무관한 듯 보이는 삶을 영위한다. 그녀의 지위는 생애 주기에서의 위치, 생물학적 기능 그리고 특히 남성에 대한 성적인 또는 생물학적인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처녀귀신’이 될 수밖에 없는 조선시대 여성의 불행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귀신이 ‘당대 사회의 건강성을 반영하는 지표’라고 했다. 귀신은 단순히 사신(死神)이 아니었다. 그 보다는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어 현실로 찾아온 상담 신청자’라고 했다. 그래서 귀신이야기가 타인에게는 공포물이지만 당사자의 관점에서는 비극이 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었다. 귀신이라는 공포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의 이면에는 사회적 모순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귀신은 이것을 온 몸으로 고백하면서 동시에 비판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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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하여 - 자크 아탈리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정중호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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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네안테르탈인의 위기 탈출의 방법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위기들이 있었으며 그럴 때마다 슬기롭게 위기에서 벗어나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면 모든 시대, 모든 위험및 모든 위기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이 물음에 자크 아탈리는 [살아남기 위하여]에서 '7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자긍심의 원칙, 전력투구의 원칙, 감정이입의 원칙, 탄력성의 원칙, 창의성의 원칙, 유비쿼터스의 원칙, 혁명적 사고의 원칙 등이다.  

첫 번째, 자긍심의 원칙은 스스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와 존재의 이유를 단순히 '살아남기'가 아니라 '더 낫게 살기'라는 의지여야 한다. 두 번째, 전력투구의 원칙이다. 이는 시간을 강도 높게 살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가령, 20년 장기 계획을 명확하게 수립해야 한다. 세 번째, 감정이입의 원칙이다. 이는 자연이나 타인들로 부터 가해질 수 있는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는 능력을 말한다. 

네 번째, 탄력성의 원칙이다. 이는 위협 요소들로 부터 충격을 견뎌내는 것이다. 비록 완벽하게 준비된 행동 계획은 아니더라도 예기치 못햇던 적대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신속한 대응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창의성의 원칙이다. 이는 위험이 실제로 구체화되었을 대 위험을 기회로 바꾸는 법과 결핍을 혁신의 기회로 만드는 법이다. 여섯 번째, 유비쿼터스의 법칙이다. 생사가 걸린 예측과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없을 대 지금까지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명적 사고의 원칙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죽음을 무릅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7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 기업, 국가, 인류 등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각각 보여주고 있다. 가령, 개인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긴다. 두 번째 시간의 밀도를 높여야 하는데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최대한 충만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 성인인 그의 얼굴에서 어릴적 얼굴을 찾아내야 한다. 네 번째, 충격을 겪으면서도 다시 튀어올라야 한다. 다섯 번째,  위험을 기회로 바꾼다. 여섯 번째, 하나느이 정체성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일곱 번째, 혁명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인류의 경우를 살펴보면 첫 번째 인류의 권리를 정의하고 준수해야 한다. 두 번째, 100년 후의 인구,경제,생태계 동향을 모두 감안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세 번째, 동맹을 통해 위기를 분석해야 한다. 네 번째, 위협 요소들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세계 차원의 공공 재화'라는 개념을 선정해야 한다. 다섯 번째, 새로운 생활방식을 고안한다. 여섯 번째, 전혀 다른 삶의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키메라'처럼 스스로 유전자를 변형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불복종자가 되어야 한다. 앙드레 지드에 따르면 "세계는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불복종들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 불복종자들이야말로 지상의 소금이며 신이 보낸 책임자들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7가지 원칙은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의 혁명을 이룩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없다'는데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이 세계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변화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7가지 원칙은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자포자기, 속세이탈, 회개, 타인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소극전략이다. 소극적인 전략이 'no liver'라고 한다면 적극적인 전략인 7가지 원칙은 'yes liver'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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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사이언스 클래식 15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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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은 좋은 습관일까? 나쁜 습관일까? 진화의 관점에서 적자생존은 허버트 스펜서가 말한 대로 “최고의, 그리고 가장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자의 생존”을 의미했다. 이를 다윈은 당시의 환경에 가장 잘 적응된 개체들이 살아남아 번식하며, 자신이 소유한 속성들을 미래세대에게 전수한다고 했다. 겉만 보면 자연선택은 좋은 습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자연주의적 오류에 불과하다. 즉, 자연의 세계에서 미래세대에게 전수한다는 것은 ‘수컷 간의 경쟁’을 의미했다. 이와는 달리 암컷은 다산(多産)의 연옥, 모성과 동일시되었다.

그래서 세라 블래퍼 허디는『어머니의 탄생(Mother Nature)』에서 자연선택을 ‘나쁜 습관을 노부인’이라고 했다. 이것이 결국 이 책의 제목인 Mother Nature(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어머니 대자연) 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남성은 생산하며 여성은 재생산 할 뿐’이라는 스펜서식의 정당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여성이 어머니가 된다는 모성이라는 본질주의는 시몬드 드 보부아르가『제2의 성』에서 지적했듯 ‘그녀는 자궁이고 난소다. 그녀는 암컷’이었다.

생물학적으로 모성은 임신과 출산을 말한다. 그러나 부모투자와 성선택에서 보면 모성은 양육으로 확대된다. 자식의 생존 가능성을 위해 부모투자는 불평등하다. 수컷에 비해 암컷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그리고 적게 투자하는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에서 수컷은 암컷 및 새끼를 희생한다. 반면에 암컷은 자기희생을 한다. 그래서 모성하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모성에 대해 매우 놀랍고도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들에게 순수하고 희생적인 이미지인 모성이 정작 자연세계에서 매우 드문 현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랑구르원숭이를 관찰한 것을 토대로 하여 이를 보여주고 있다. 랑구르의 수컷은 영아 살해를 하며 암컷은 자신의 새끼를 죽인 바로 그 수컷과 함께 번식한다. 이러한 랑구르의 성선택은 한 종의 집단선택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개체선택을 한다는 것인데 암컷의 짝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이제까지 암컷의 짝 선택은 모성의 이미지였다. 모성은 생명우선론(pro-life)이다. 하지만 암컷의 야망이라고 한다면 선택우선론(pro-choice)이다. 암컷의 번식 성공은 태어나는 새끼의 수가 아니다. 그 보다는 얼마나 많이 살아남아 스스로 번식할 수 있는 데 있다. 그리고 암컷의 모성이든 야망이든 성(性)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암컷의 진짜 운명은 다름 아닌 수유(授乳)라는 것이다. 오직 수유만이 암컷의 성 특징적이다.

암컷은 수유를 통해 두 가지 호르몬으로 영향을 받는다. 하나는 프로락틴이다. 프로락틴은 스트레스 호르몬 혹은 부모 역할 호르몬으로 불린다. 다른 하나는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어미와 자식 간의 만족감을 형성한다. 그런데 암컷의 수유는 단순히 생리적인 것은 아니다. 암컷의 수유 효과는 사회적 관계를 촉진시킨다. 결국 수유는 ‘사회적이고 지능적인 동물들의 진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동정심의 능력을 진화시킨 모든 개체들의 운명을 형성’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그러면 모성은 본능일까? 아닐까? 본능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떤 생물학 기초도 갖지 않는 ‘증여된 선물’일까? 일찍이 스티븐 핑커는『빈 서판』에서 인간은 본성은 백지(白紙)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본성이라는 종이는 단 한 번도 백지였던 적이 없다’고 했던 해밀턴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다시 말하면 ‘각인된 백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볼비의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에인즈워스의 ‘낯선 상황 실험’을 통해 확고해졌다. 낯선 상황에서 아기들은 ‘불안/양가적, 불안/회피’ 그리고 불안 애착으로 불리는 ‘무질서/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모성은 지뢰밭이라고 했다. 첫째 모성은 자기희생적적이라는 통념적인 기대와 항상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모성의 행동은 논쟁거리다. 만약 모성이 에로틱한 성적 감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면 비난받기 일쑤다. 하지만 저자는 모성과 성성(sexuality)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즉‘성애 행위 동안 발생하는 다양한 오르가슴 수축을 모성적인 것으로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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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태보고서 - 먹고, 싸우고, 사랑하는 일에 관한 동물학적 관찰기
한나 홈스 지음, 박종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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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이다. 하지만 그냥 걸어 다니지 않는다. 만약에 그랬다면 우리는 맹수 같은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체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태계의 최고의 포식자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달리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기나긴 진화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른 동물들처럼 먹고 사는 본능에만 몰두했다면 결코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동물 분류학상 영장류(靈長類, Primates)에 속한다. 영장류 중에서도 고릴라, 침팬지 같은 유인원(類人猿, anthropoid)들이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신체적인 특징 때문에 흔히 ‘털 없는 원숭이, 걸어 다니는 원숭이 혹은 요리하는 원숭이’로 불러졌다. 한마디로 원숭이의 본능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동물일까? 21세기 레이첼 카슨으로 불리는 한스 홈스는『인간생태보고서』에서 매우 흥미롭게 이 문제를 관찰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에 나와 있듯 ‘먹고, 싸우고, 사랑하는 일에 관한 동물학적 관찰기’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동물생태학을 찬찬히 읽어보면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고 말한다고 하지만 다른 동물들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본능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능력을 살펴보면 먼저 ‘있으나마 한 털가죽’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통 “왜 털가죽이 없을까?”라고 고민한다. 그러나 저자는 “왜 인간의 털가죽은 쥐 한 마리의 체면도 가려주지 못할 만큼 그 크기가 줄어들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립보행에 따른 뇌를 보호하기 위해 머리카락은 방열의 역할을 한다. 반면에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몇몇 신체 부위에 있어 남자의 성모가 많은 이유는 ‘성(性)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다. 다윈의 적자생존에 의하면 수공작의 꼬리는 화려하기만 할 뿐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 선택에 따르면 수공작의 아름다운 꼬리는 번식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뇌다. 인간의 뇌는 20%의 열량을 소비한다. 그래서 동물의 뇌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렇다고 뇌의 크기가 지능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뇌의 크기가 크다고 해서 지능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뇌 또한 진화의 산물이며 뇌의 크기가 컸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마키아벨리적인 이론, 먹이 찾기 이론, 인지적 지도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뇌가 독특한 것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남성이냐 여성이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령 지성을 담당하는 ‘회질과 백질’에 있어 남성이 뇌의 전 영역에 고루 분포된 반면에 여성은 전두엽이 많이 관장한다.

 



세 번째로 오감이다. 시각을 보면 파리의 눈이 초당 200개의 서로 다른 영상을 처리할 때 인간의 눈은 초당 20개 정도다. 또한 쌍안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인간은 120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입체적으로 지각한다. 그러나 동물은 눈이 얼굴이 전면에 딸려 있어 306도에 가까운 경계용 지각이다. 청각에 있어 동물들이 소리를 듣고 눈을 통한 정밀 탐색이 이루어지는 반면에 인간은 소리를 눈의 길잡이로 삼는다. 화학적 지각이라고 불리는 미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이 있다. 또 하나 제6감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예지몽, 독심술, 예언 같은 것이다.

 



네 번째는 식성이다. 인간은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잡식성 동물과 다르다. 첫째 인간은 대부분의 먹이가 뜨거운 상태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을 ‘요리하는 원숭이’로 부르는 이유다. 인류의 제 1호 시간 절약용 주방기기였던 불을 사용하면서 인간은 먹을수 있는 것을 가공했다. 뿐만 아니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수를 늘렸다는 것이 대단한 전환이었다. 둘째 인간은 적정한 양보다 많이 먹는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비만이 없는데 인간에게는 고칼로리에 대한 생물학적인 비용과 노력이 미미했다. 그런가하면 ‘반(反)굶주림 상태’에서도 나타난다.

 



다섯 번째 의사도통이다. 동물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첫째, 단어들이 자의적인 기호들이어야 한다. 둘째, 단어들을 통사론적 순서대로 배열해야 한다. 셋째, 신조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작은 단위들이 합해져서 큰 단위군(群)들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나 일어난 적 없는 사건들에 관하여 추상적으로 뇌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태계 충격’이라는 불편한 사실이다. 동물들이 본능에 따라 자원을 통제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하면서 영역을 확대해왔고 개체 수를 증가시켰다. 이로 인해 생태계의 가하는 충격은 나쁘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개면서도, 나무를 쪼개는 기술을 개량하거나 다양화하지 않았다. 또한 비버들은 나무를 베면서도 다른 동물들이 사는 곳으로 던지지 않았다. 오직 인간만이 생태계를 파괴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거꾸로 자연의 재앙이 인간을 압박하면서 저자의 지적대로 ‘고독감’이 생겨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을 재발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동물적 자아를 규정함으로써 자연 세계 안에서의 내 정체성’이 분명해지기를 희망하는 저자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매우 희귀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뉘우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동물들에게 없는 ‘도덕적 책임’이 우리의 미래를 동물들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데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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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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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와 대화를 나누는 여자로 알려진 제인 구달은 자서전『희망의 이유』에서 가족이나 가까운 몇 사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안면 실인증인 그녀가 침팬지의 얼굴을 구분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은 제목만큼이나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희망이 있습니다. 만약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절실할 것입니다. 장애라는 운명으로 태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평생을 장애로 산다면 삶은 쉽게 부서질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면『나는 가능성이다』에 나오는 패트릭 헨리처럼 ‘기적의 트럼펫 소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무안구증으로 평생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팔다리마저 비정상이라 혼자 걷지도 서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펫은 그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의 트럼펫 기적은 “나는 가능성이다!(I Am Potential)"로 연주되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차동엽 신부가 말했듯 ‘감동뿐 아니라 지혜를, 지혜뿐 아니라 위로를, 위로뿐 아니라 치유를, 치유뿐 아니라 소망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장애’가 아니라 ‘능력’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잘하는 것을 갖고 있다”라고 삶을 격려했습니다.


그는 ‘피아노가 내 첫사랑’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음악을 가장 하고 싶어 했습니다. 위대한 발명은 우연에서 비롯된다는 경우가 흔한데 그가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인 것은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울음이 멈추지 않았던 자신을 달래주기 위해 아버지는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피아노 소리에 울음을 그쳤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다른 어떤 소리보다도 매우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는 음악을 삶의 궁극적인 도전 과제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칭밴드에서 연주하면서 ‘디즈니세계 스포츠 정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의 단단한 삶을 보고 있으면 ‘용기 있는 사람’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장애는 별일입니다. 장애아의 사소한 하나하나가 별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모든 별일을 “별일 아니야”라는 놀라운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진짜 한계를 알기 위해 불가능에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목표를 알고 집중하면서 현재(오늘)에 충실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삶의 장애라는 현실은 누구에게라도 부닥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이건 불공평해!”라고 흐느껴 울 수도 있습니다. 오렌지 같이 달콤해야 하는데 레몬처럼 시린 인생을 좋아한다는 게 어렸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탓에 버트란트 러셀이『행복의 정복』에서 말한 ‘적절한 이유’를 무의미하게 했습니다. 즉 “어떤 불행이 닥쳐오면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직시하고 나서는, 그 불행이 그렇게까지 끔찍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적절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제시해보라. 그럴 만한 이유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나는 가능성이다』의 주인공인 패트릭 헨리에게 ‘적절한 이유’는 음악이라는 축복의 선물에 있었습니다. 음악은 그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강한 에너지는 없다는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연주하는 트럼펫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다른 사람들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시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나 평범해서 그저 사랑을 반복적으로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 우리가 사랑하고 있지만 정작 그 사랑이 가벼워서 작은 불행 앞에서 멜랑콜리해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봤습니다. 패트릭 헨리뿐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을 안고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삶을 긍정적으로 회복시켜 줍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사랑을 할 때 우리의 영혼은 한결 평화롭고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인지 트럼펫의 기적은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감사한 마음이 아로새겨졌습니다. 우리에게 5분 정도의 거리가 그에게는 30분도 부족하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건강함의 사치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내 몸이 멀쩡하다는 것이 멋져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몸 아픈 사람이 마음까지 다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끝으로 어느 순간 삶의 불행이 찾아올 때 너무 슬퍼하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적절한 이유’는 있습니다. 삶의 불행이 약(藥)이 될 수도 있고 독(毒)이 될 수도 있음을 오랫동안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패트릭 헨리를 만나면서 삶의 불행을 좋다 혹은 나쁘다, 라고 더 이상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삶의 활력소는 ‘가능성’이며 가장 ‘적절한 이유’였습니다. 정말이지 가능성이라는 놀라운 기적에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그래서『나는 가능성이다』에서 울려 퍼지는 ‘가능성’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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