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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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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 전체를 바라볼 때 누구에게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언제 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때로는 몰랐다는 것을 핑계 삼아 너무 당연하게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진정으로 내 삶을 살고 있을까, 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으로 인해 삶이 바뀌는 기구한 운명 같은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결혼식 날에 형의 장례식이 거행되어야 하는 비현실적인 슬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애도가 끝나고 나서는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가장 경이로운 세계에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가치들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진실은 ‘골드버그 장치’와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일들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세계 3대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곳입니다. 하루 만에 미술관을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작가는 그곳에서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경비원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뉴욕커>에서 일한 화려한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경비원은 비효율적인 직업으로 보입니다. 형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경비원이라는 모순을 선택했으리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바쁜 일상에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번아웃에 빠져 살아갈 길을 잃어버린 채 그저 삶을 견디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삶의 고단함과 무게감에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존재감이 없을 때마다 공허한 실망감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를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면서 다시 돌파구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보면서 예전과는 다른 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경비원은 그가 일하고 싶었던 정말이지 단순한 일입니다. 문제는 단순한 일을 한다고 해서 삶을 단순한 자세, 즉 수동적인 자세로 하는 것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비록 경비원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바운더리 이상은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시간을 흘려보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메트로미술관에서 예술작품과 씨름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경비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예술작품을 눈으로 마주하면서 흡수합니다. 남들에게 없는 예술작품을 향한 특별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합니다. 그는 평범한 경비원이었지만 예술에 대한 통찰력으로 메트로미술관의 예술작품을 두루 살핍니다. 예술이 던지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며 예술을 가까이에서 이해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고차원적입니다. 문제는 예술의 문외한들에게는 예술적인 분석보다는 예술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때로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맞는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의 예술에 대한 메시지를 곱씹으며,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지니는 가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의 걸작<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유명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걸작을 단편적인 정보와 지식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예술이 말하고자 의미를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이 조르나타 (giornata)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탈리어로 조르나타는 ‘하루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하루하루가 마치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단순합니다. 하지만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어쩌면 위대한 인생이란 팍팍한 현실을 버티는 용감한 방법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