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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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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못해 멈추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돌이켜보면, AI 기술의 종착역이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종착역이 없는 관계로 미래는 계속 변할 수밖에 없으며 예측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대개 5, 1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관심이 많다.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생각은 평범하지 않았다. 요즘같이 AI가 일상화된 시대에 오히려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며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통찰력에 놀라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과학을 어렵고 난해한 학문으로 여긴다. 하지만 김상욱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읽어보면 과학에 대한 훨씬 많은 점을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과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교양이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복잡한 세상을 선명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동시에 삶의 경이로움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탐구의 주제는 바로 변화.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학과 변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사물의 변화에 대한 탐구가 바로 과학이며 과학은 사물의 변화를 논리적으로 검증한다. 그래서 과학은 사물의 원리를 밝혀내면서 미래를 더욱 변화시킨다. 과학의 소명은 변화를 발견하는 데 있으니까.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앞서 말했듯 AI가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는 AI보다 능력이 떨어진다. 가공할 만한 데이터를 통해 AI의 지능은 인간보다 빠르게 문제를 해결한다. 가령,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보듯 우리는 AI보다 바둑을 잘 두는 인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알파고가 바둑 기사에게 저승사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 저자는 반대한다. 바둑 기사에게는 자신만의 기풍(碁風)이 있다. 반면에 알파고는 오직 점수(點數) 게임이다. 이렇듯 AI 능력에도 불구하고 바둑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 삶은 미지수다. 그러니 최적의 해를 찾아야 한다. 이쯤에서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사용을 당연한 현실이라고 여기는 점은 생각해 볼 문제다. 아이의 성장은 문화적 역량에 따라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문화적 역량은 인간의 본성에 관련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말한다. 아이들에게 놀이가 중요한 까닭은 동기화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게 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최적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변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숫자. 우리가 침묵하는 자연 현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 숫자 덕분에 비로소 우리는 자연을 수학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이 뉴턴의 만유인력이라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따지고 보면 만유인력 또한 자연 현상을 체계적으로 수학으로 기술했다. 그리고 오늘날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01로 나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계산하는 비약적인 미래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방식을 숫자화하면서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믿음을 정당한 것으로 확인시키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숫자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숫자의 지배력이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의 가치를 파괴한다는 시사하는 바가 높다.

 

우리는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더 기대한다. 삶을 바꾸는 과학기술은 변화처럼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변화의 흐름에 맞서 변하지 않는 28가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화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는 28가지 진실과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변하지 않는 28가지 진실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그대를 속이고 있다면, 목적과 수단이 서로 역전되었다고 하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북극성을 바라보듯 잔잔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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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바꾸는 과학
울림 지음 / 동아시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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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선정 20세기 최고의 인물은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 이름 그 자체가 천재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가 천재적인 과학자여서 영광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20세기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공로에 있어 어느 누구보다도 그는 눈부신 성과를 남겼다. 이렇듯 과학의 힘은 상상하는 만큼이나 놀라울 정도다. 우리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는지 예측하기 위해서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제대로 살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어렵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학교에서 겉핥기로 배운 영향이 적지 않다. 과학의 특성상 만유인력 같은 법칙이나 공식이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과학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생각하느냐에 있다.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떨어지는 사과는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자연 현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과 달리 과학적인 진리 혹은 발견에 대해 흥미로움이 생기는 요즘, 울림의 오늘을 바꾸는 과학을 읽었다. 읽으면서 과학 이야기를 하는데도 왜 이토록 페이지가 쉽게 넘어갈까? 그 까닭은 울림이라는 저자의 가치관에 있음을 알았다. 저자는 삶의 모든 순간이 과학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삶과 과학이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가깝다는 사실이다. 또한 대화의 내용이나 깊이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단단한 믿음을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삶이 과학이고, 과학이 삶이 되는 순간들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된다.


가령, 아침형 인간인가, 저녁형 인간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오랫동안 나는 아침으로도 부족해서 새벽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제는 삶의 루틴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삶의 모든 순간을 습관의 작용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습관은 주관적인 태도다. 습관에 대한 반사적인 생각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습관을 바꿀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당장에 내일이라도 저녁형 인간이 되는 게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여전히 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이러한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나 과학은 내몸의 생체주기를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파악한다. 생체 주기를 계산하는 방법은 평균 수면 시간을 휴일 수면 시간에서 마이너스하고 나서 2로 나누면 휴일 중간수면 값이 나온다. 계산값이 3~5이면 중간, 이보다 값이 작으면 아침형 인간, 값이 크면 저녁형 인간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나의 수면 패턴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해보니 휴면 중간수면 값이 중간보다 작은 숫자였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새벽형 인간의 체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벽형 인간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우리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을 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러 가지 장면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술자리에서 살아남기’ ‘사람의 자유의지가 정말로 있을까’ ‘AI 시대, 이대로 괜찮을까에 대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삶을 보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수면에 대한 이해는 곧 삶의 문해력으로 이어진다. 과학은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중에서 어느 것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우열을 가리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또한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해서 100% 정답이라고 확신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과학의 문해력을 통해 우리가 지구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어 오늘을 바꾸려는 목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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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 자체 - 현대 과학에 숨어 있는, 실재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울프 다니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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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공을 다루는 기술을 물론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과 경기에 감각이 대한 있어야 합니다. 이밖에도 다양한 변수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축구 선수에게 수학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이러한 도발적인 질문에 이론물리학자 울프 다니엘손은『세계 그 자체』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나, 수학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축구를 하는 동안 수학방정식을 풀어가며 매순간 공을 차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둘, 수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착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 선수의 노하우는 많은 경험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수학적 계산을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셋, 그럼에도 수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역설적인 발상입니다.

 

되돌아보면 과학자들의 창의성은 수학적인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뉴턴의 사과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수학이 없다고 한다면 사과가 떨어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당연히 수학이 더 필요합니다. 수학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입니다.

 

저자는 수학의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학이 정말로 필수불가결해야 하는가? 라는 까다로운 딜레마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필수불가결의 논리에 따르면 만유인력법칙 때문에 사과는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평범하면서 타당해보입니다. 문제는 사과와 만유인력은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사과는 실재하지만 만유인력이라는 자연법칙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이 발견하는 자연법칙이란 실재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우리가 만든 기술입니다.

 

저자는 기술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반격합니다. 그리고는 거듭 “부디 세계를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술과 혼동하지 말라.”고 합니다. 수학이 발달하면서 복잡하다고 의심되는 문제들의 근본원리를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자연법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연법칙이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연법칙이 모든 것에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연법칙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집착합니다. 이것이 저자는 말하는 “플라톤의 유령”입니다.

 

저자는 계속에서 ‘데카르트의 유령’을 이야기 합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곧 정신입니다. 정신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를 생각해보면 뇌 속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물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정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움직이는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파악합니다. 가령,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세계란 무엇일까요? 세계는 실재이고 실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자연법칙이 있을 것입니다. 자연법칙은 세계의 방정식을 해결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합니다. 자연법칙의 복잡한 계산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은 수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모든 것은 수학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라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결과적으로 8가지 실재에 관한 연구를 통해 거듭 세계 그 자체가 분명해진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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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빅퀘스천 -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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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과학은 얼마나 의미 있을까? 사이언스 이즈 컬처(Science is Culture)라는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오늘날의 키워드는 과학은 문화이다. 지난 10년간 과학은 정치, 경제, 예술, 지성의 지표를 바꾸어 놓았다. 과학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인식을 바꿈과 동시에 인류의 가치 체계, 그러니까 지구 그리고 인간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현대화하고 있다. 신념, 민주주의, 자유 시장 같은 개념들도 물론 세상을 바꿔 놓은 힘이다. 그러나 과학은 가장 보편적이고 압도적인 변화의 매개체다. 오늘날 과학은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아주 기초적인 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정식을 풀다보면 ‘1+1=2’라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을 알게 된다. 과학의 역사란 체계적으로 과학 지식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의 역사에서 고민해야할 문제는 과학 지식의 우열도 아니며 과학 지식이라는 그 자체 개념에 몰입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학 지식이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 것인지 탐구하는 사고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실존의 의미를 합리적으로 구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KAIST 뇌과학자 김대식이 이야기하는김대식의 빅퀘스천은 우리에게 31가지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에서 오는가등등. 그런데 통찰력 있는 질문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그의 1.4 킬로그램의 뇌는 과학뿐만 아니라 신화, 철학, 문학, 영화 등을 넘나든다. 생각해보면 앞서 말한 질문에서 즉, 삶의 의미이며 정의 등에 관한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 지식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

 

가령,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먼저 흄과 칸트가 지적한대로 논리적으로 필요것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질문이 18세기부터 왜 무가 아니고 유인가?’라고 바뀌는데 그 답은 아주 단순할 정도다. , ‘물체와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무는 양자역학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무는 오래 갈 수 없기 때문에 유이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는 랜덤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생물학적 사랑, 그러니까 정자와 난자라는 생식세포가 결합하는 유성생식이다. 반면에 사회학적 사랑은 지속적인 번식에 대한 욕망이며 철학적인 사랑을 또 하나의 나를 만나는 것으로 확장한다.

 

김대식의 빅퀘스천은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을 질문들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에 대한 답이 고리타분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저자 말대로 의미라는 것이 용도라고 했을 때 주어진 용도에 맞게 인문학적 사유를 충실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영원한가에서 보듯 다음과 같이 감각적 있는 자기성찰을 펼치게 된다.

 

민주주의는 자동차도, 기차도, 배도 아니다. 민주주의 자전거이며 비행기이다. 멈추는 순간 넘어지고 추락하는, 직접민주제.대의원제.대통령제 모두 언제든 과두정치와 독재, 무질서와 카오스로 변질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확률적으로 너무나도 불완전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엄청난 새로운 정보를 어떻게 폭 넓고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사고 능력이다. 단순히 과학적인 지식만으로는 복잡한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를 보면서 우리는 우주에서 펼쳐지는 블랙홀, 웜홀을 생각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시간은 왜 흐르는가에 관한 맥락적 지식, 융합적 지식을 얻게 된다. 그만큼 과학은 문화라는 것이며김대식의 빅퀘스천을 읽으며 또 다른 우주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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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4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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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창세기6장에는 노아의 홍수가 나온다. 150일 동안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다. , 사람들이 악()해지자 하느님이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여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사람을 심판하는 데 있어 더 이상 물이라는 비유(比喩)는 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메슈 화이트가 말한대로 헤모클리즘(Hemocly)’, 즉 피의 홍수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 간의 종교, 이데올로기 적인 갈등이 잔인하게 피의 보복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현실이 폭력으로 인해 참혹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티븐 핑거는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우리의 비관론을 뒤집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폭력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방대한 통계적인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폭력의 논리는 문제될 게 없다.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선택에 따라 우리 또한 반격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에서는 생물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폭력성은 전략적으로 진화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두 가지 서사를 만들어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폭력의 방향의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이 다 옳다는 식으로 자기들을 합리화하는 방향에서는 같다. 이것이 도덕화 간극(Moralization Gap)이라는 것이다. 도덕화 간극은 자기 위주 편향이 좀 더 확대된 현상이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 본성이 순수한 악의 신화(myth of pure evil)’이라고 하는 이유는 도덕화 간극에서 빚어지는 폭력의 행위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입장은 도덕주의자의 관점이다. 즉 착한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라고 하더라도 가해자에게는 정당하고 합리적 반응이다. 이러한 순수한 악의 신화 탓에 악은 종교에서는 악마, 일상에서는 살인범, 납치범, 강간범, 마약범으로 구체화 된다. 따지고 보면 순수한 악의 신화에서 비롯된 폭력은 동물적 충동과 다를 바 없는 비인간적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표현을 빌리며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폭력을 역사적, 문화적으로 통계로 분석하면서 그래프로 나타내고 있다. 지난 세기의 폭력이 현재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우리는 폭력의 그래프를 보면서 놀랍게도 폭력의 비율이 하향 곡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근거로 6가지 경향성을 주목하게 된다. , 비국가 사회에서 국가 사회로 넘어온 평화화 과정, 사회 규범의 발달에 따른 문명화 과정, 계몽주의가 이끈 인도주의 혁명, 국가 간 교역과 민주화를 통해 전쟁이 감소한 긴 평화, 집단 살해나 테러와 같은 소규모 충돌도 꾸준히 감소한 새로운 평화, 시민권, 여성권, 아동권, 동성애자 권리, 동물권 같은 권리 혁명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흥미로운 주제는 폭력 대 비폭력을 다루는 심리가 아닐까? 앞서 말했듯 우리 본성은 악마이거나 선한 천사이다. 폭력의 구조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포식한다. 그러면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보복한다. 이러한 폭력에는 5가지 경향이 있는데 포식적 폭력, 우세 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감정 이입, 자기 통제, 도덕 감각, 이성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선한 천사가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에 있어 비례(proportionality) 감각으로 도덕적 균형이 요구된다. 선한 천사라고 해도 비례 감각이 불균형을 이루다면 오히려 폭력의 도구로 전락한다. 자기 통제를 벗어나면 자기기만(self-deception)’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빌 게이츠가 내 평생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다라고 말한 것은 결코 자기 통제를 벗어난 말은 아니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우아한 미개인과는 달리 20세기는 대량살육의 시대로 알고 있는 지금, 어느 누구도 폭력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폭력이 감소했다는 것을 감정 이입하고 있다. 감정 이입은 전염성이 강한 만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더 나아가 우리 본성에 깃든 선한 천사의 날개를 활짝 펼치게 하며 인간적인 사회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이제 노아의 홍수라는 낭만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만큼 우리의 이성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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