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아지트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책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한 눈에 봐도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눈빛에 믿음이 가고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반가워 헤어지기가 아쉽습니다. 반면에 그런 사람은 걱정과 안타까움을 마구 쏟아내면서 후회하는 듯한 말투와 표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눈빛이 굳어지고 숨이 막혀 답답할 지경입니다.


사람을 아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람,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런 사람은 ‘일루미네이터 Illuminator’입니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말을 건성 건성으로 하고 남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스스럼없이 늘어놓는 그런 사람은 ‘디미니셔Diminisher’입니다. 상대방에게 겉도는 말을 해서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합니다. 자꾸만 아픈 데를 콕 짚어낼 뿐이어서 오히려 상처로 얼룩집니다.


우리 삶이 좀 더 행복해지고 싶으면 서로가 일루미네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불빛이 되어 당신에게 가고, 당신의 마음을 열고 움직이게 합니다. 움직이면서 당신이 미처 몰랐던 자존감을 밝게 비춥니다. 비로소 자존감이 폭발하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를 괜찮은 존재라고 느끼게 됩니다. 일루미네터는 당신을 빛나는 존재, 최고의 존재로 만듭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당신을 먼저 생각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디미니셔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척 합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당신을 변화시켜 주는 좋은 인연입니다. 좋은 인연에는 분명 삶의 거대한 힘이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이며 왜 사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당신의 암호를 풀어주는 조용하지만 카리스마(Charisma)가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라고 하면 비상한 힘과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매료시키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카리스마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우리는 늘 카리스마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보통 카리스마에 대한 기준으로 부와 명예를 가진 성공한 사람이라 믿고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생각해보면 아무나 성공할 수 없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성공이라는 가치는 카리마스가 있어야만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비드 브룩스의『사람을 안다는 것』을 읽다가 ‘뒤집힌 카리스마’ 라는 유명한 단어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소설가 E.M.포스터의 전기를 쓴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포스터와 대화를 나누면서 뒤집힌 카리스마에 사로잡히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내 말에 얼마나 집중하는 지 나 자신이 가장 정직하고 예리하며 최상의 인물이 되는 기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포스터가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로 인해 작가는 무척이나 행복해서 인생의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특별한 즐거움이 바로 뒤집힌 카리스마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책방아지트에 와서 격려와 응원을 해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이웃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카리스마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카리스마는 부와 명예가 아니라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처럼 부드럽습니다. 모난 데 없이 둥글게 사는 아름다운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리스마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밝은 표정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요즘에도 책방아지트에 있으면 마음에도 없는 쓴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책방으로 밥 먹고 살 수 있냐?’고 묻는 말을 듣게 되면 그걸 헤아리느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애써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될 리 없습니다. 무기력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습관적으로 마음이 캄캄해져 어두운 얼굴을 하게 됩니다.


뒤집힌 카리스마를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요? 카리스마가 됩니다. 내가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뒤집힌 카리스마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선물해주고 싶은 카리스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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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24절기 중에 입춘(立春)이 첫 번째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시작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입춘이 오면 집 앞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한자를 붙여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봄의 기운이 뭔지 몰랐으나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봄이 왔으니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소원을 바랐습니다. 봄의 힘으로 비로소 인생이라는 꽃이 필 것 같으니까요.


책방아지트의 문을 열고 난 후 두 번의 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입춘대길이라는 글자를 가게 건물 벽면에 붙이지 않았습니다. 일이 바쁘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입춘대길이라는 오래된 믿음을 좋아하지만 생각해보니 오래된 믿음이라는 게 발목을 잡았습니다. 오래되었으니 그냥 지나쳐도 괜찮겠지, 라며 무감각해진 것이지요.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아무 탈이 없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입버릇처럼 손쉽게 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아무 때나 할 수 있으니 신통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수리수리 마수리라고 주문을 넣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놀라운 마법이 생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 비록 내가 무엇을 원한다고 해서 100% 되지는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갈망이 있어 답답한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어디선가 크게 부서지는 느낌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뒤늦게 알고 보니,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주문은 틀렸습니다. 원래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입니다. 영화에서나 마술 공연을 보면 마술사들이 수리수리 마수리하며 주문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덩달아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즐거운 리듬에 너무나 당연하게도 속아 넘어가고야 맙니다. 만약 마술사의 주문대로 우리가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면 마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마술사가 만든 주문이 아니라 불교경전천수경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천수경은 불자들이 독송(讀誦)으로 쓰는데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으로 시작합니다. 풀이하자면,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참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정구업진언에 나오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마법사가 주문하는 대로 수리수리 마수리가 아니라 스님의 염불하는 소리였습니다. 이것을 세 번 외워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데 아마도 마법사는 한 번 하는 것마저 많다고 생각했는지 수리수리 마수리로 줄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입춘대길, 수리수리 마수리 같은 말들을 쓰고 있을까요? 물론 세상에는 좋은 말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핏 마술사들이 사용하는 망토 같기도 합니다. 망토를 걷어내면 그 속에는 우리가 바라는 단단한 희망이 자리를 잡고 놓여 있습니다. 희망은 간절한 너머까지 가보는 일,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하는 일, 미래는 우리를 자유롭게 때로는 행복하게 하는 기적 같은 일. 그러고 보니 기적 같은 말입니다. 기적이 생겨날 때까지 기적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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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가까이 다니던 플라스틱 사출 공장을 후회 없이 그만두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몸이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지더군요. 더 이상 퇴화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버텨보라고 입을 모아 말해주었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10년이 되는데 아깝지 않냐고 말입니다. 10년을 빈틈없이 일하면 회사에서 주는 감사패와 상당한 공로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생산직을 할 정도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제조 기계’로 취급되는 불치병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이제 유배되었던 공장에서 벗어나고 보니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월든』을 읽다가 의도적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소로우는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 숲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을 때 헛된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소로우을 보면서 살아있는 동안 한 번쯤은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게 결코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헛된 삶인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헛된 삶을 느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헛된 삶의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남들처럼 성공하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성공이라는 무게감에 눌려 정신이 이상하게 변형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은 성공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게 합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게 사소해 보여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10년 후에도 똑같은 사람이라면 절망감과 무력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10년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슬퍼집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책방을 차렸습니다. 젊어서 의무감으로 누리지 못한 자유를 이제라도 되찾고 싶었습니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밥벌이를 생각한다면 어디 가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게 분명합니다. 바보 같은 짓을 부러워할지언정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지? 두려움과 떨림이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마침내 소란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서야 기어코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소로우의 말을 빌려보면 나의 봄을 여름과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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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3-31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방을 차리셨군요. 축하드려요. 좋은 책들이 가득한,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공간이길 바라요.

오우아 2024-03-31 16:59   좋아요 0 | URL
앞으로 10년, 내 인생을 한 번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자목련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책방을 하면서 나름대로 책 한권을 준비중입니다^^
 

가끔씩 책방에 찾아오는 반가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가운 사이라고 하면 별도의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부담이 없음에도 커피믹스로 만든 커피를 내놓는 것은 예의가 없어 보입니다. 커피숍이 멀리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바로 건너편에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은 적당히 자그마한 커피숍입니다. 그럴 땐 건너편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마십니다. 적어도 찾아오는 사람에 대한 사람값을 할 수 있어 다행한 일입니다. 커피숍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커피 향이 정말이지 달콤합니다. 커피 향과 커피숍의 분위기가 함께 녹아들어 나도 모르게 그 맛을 음미하게 됩니다. 커피 냄새가 정신까지 스며들 정도여서 혼란한 마음이 훨씬 감미로워집니다.


그러고 보니 정보의 맛있음이란 말을 음미하게 됩니다. 우리가 맛을 느끼는 것은 일차적으로 미각에서 비롯됩니다. 보통 미각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입 안에서 생겨나 온몸으로 퍼집니다. 그런데 어떤 음식에 맛깔스러운 이야기가 첨가되었다고 하면 이러한 음식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같은 음식이라고 해서 사람마다 맛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더더욱 추억이 깃든 맛을 잃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어머니 덕분에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아픈 곳을 치료해주고 막힌 곳을 뚫어주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간 동안 뜨끈한 된장찌개 먹을 때의 깊은 맛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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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버돗의 선물 - 한정판 스페셜 기프트 세트 (스태들러 색연필 세트 + 그림엽서 + 케이스)
테드 겁 지음, 공경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12월
절판


아침마다 영혼이 새로 태어나므로 나는 매일 밤 오늘의 기록을 묻는다. 오늘이나 어제의 실망이 내일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게 하지 않는다.-34쪽

버돗의 선물은 '많을수록 좋다'를 신념으로 삼던 자들에 대한 비난을 의미했다. 엄청난 액수의 구제금에 비해 버돗의 5달러는 보잘 것 없었고, 가장 소박한 구제 노력에도 명함을 내놓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작음과 순수함에 사람들은 감동하고 열광했다. 너무 작은 선물이라 감동하고 열광했다. 너무 작은 선물이라 대공황에 눈금 하나 새기지 못했지만, 그 액수보다는 그 선물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중요했으리라.-44쪽

버돗의 선물은 재산이나 우정을 되돌리지는 못했지만 일부에게 절망에 굴하지 말라는 설득이 되었을 것이다. 몇몇 사람에게는 그의 제안이 자신감을 회복해 일상에 맞서게 했는지도 모른다.-74~75쪽

유대어로 고통을 뜻하는 말은 초리스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인생이 안겨 주는 평범한 고통이 아니라 마음과 의지에 가하는 진짜 큰 타격인 영혼의 무거운 짐을 뜻한다.-95쪽

마침내 남을 도울 위치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삶에서 큰 변화를 의미했다. 그가 갈구한 것은 바깥의 인정이 아니라, 그런 베풂이 주는 내적인 확인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선언이었다. 또 다른 세상에 살지만 많은 것을 공유한 이들의 가치에 대한 선언이기도 했다.-147쪽

'충분함'은 대공황기의 대표적인 표현이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의 척도였다. 그것은 소비가 아닌 보존에 대한 말이었다. '충분함'은 전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말이고, 신뢰의 몸짓이었다. 또 반항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것은 축복을 크게 헤아리고, 영혼을 굳건하게 하고, 절망이 틈타지 않게 하는 말이었다.-217~218쪽

조금 더 가진 이가 조금 덜 가진 이게 내미는 손길, 거기에 상대에 대한 배려까지 더해진다면 그 나눔과 베풂 속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날 것이다. 그런 관계를 이상적인 해결책일 뿐이라고 말하기 쉽지만, 이 책은 우리가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그것일 듯 싶다. 착한 손을 내밀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가르쳐 준다.-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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