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 가까이 다니던 플라스틱 사출 공장을 후회 없이 그만두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몸이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지더군요. 더 이상 퇴화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버텨보라고 입을 모아 말해주었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10년이 되는데 아깝지 않냐고 말입니다. 10년을 빈틈없이 일하면 회사에서 주는 감사패와 상당한 공로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생산직을 할 정도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제조 기계’로 취급되는 불치병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이제 유배되었던 공장에서 벗어나고 보니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월든』을 읽다가 의도적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소로우는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 숲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을 때 헛된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소로우을 보면서 살아있는 동안 한 번쯤은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게 결코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헛된 삶인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헛된 삶을 느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헛된 삶의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남들처럼 성공하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성공이라는 무게감에 눌려 정신이 이상하게 변형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은 성공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게 합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게 사소해 보여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10년 후에도 똑같은 사람이라면 절망감과 무력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10년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슬퍼집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책방을 차렸습니다. 젊어서 의무감으로 누리지 못한 자유를 이제라도 되찾고 싶었습니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밥벌이를 생각한다면 어디 가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게 분명합니다. 바보 같은 짓을 부러워할지언정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지? 두려움과 떨림이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마침내 소란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서야 기어코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소로우의 말을 빌려보면 나의 봄을 여름과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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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후반생 -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인생 화두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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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매년 6월 16일 블룸스데이(Blooms day)라는 축제가 열립니다. 블롬은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에 나오는 주인공입니다. 사람들이 제임스 조이스를 기념하고자 소설 속 주인공처럼 더블린 시내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행적을 따라 하거나『율리시스』를 낭독합니다.


그런데『율리시스』가 어떤 책인가요? 영문학사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난해한 소설입니다. 오죽했으면 ‘싫은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는 악명 높은 소리까지 들었을까요?『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아일랜드 더블린을 무대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단 하루, 좀 더 시간을 확인해보면 6월 16일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 반까지 되는 19시간여 동안 일어난 소설입니다. 한편, 6월 16일은 제임스 조이스가 평생의 반려자인 노라를 만난 첫날을 기억하는 영원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제임스 조이스를 보면서 미스터리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단 하루,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이 곧『율리시스』입니다. 단 하루 만에 방대한 분량의 『율리시스』를 쓰는 일도 놀라운데 위대한 작품이라는 영광은 더욱 놀라운 사실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떠오릅니다.


이와는 다르게 정진홍의『남자의 후반생』은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율리시스』는 하루 만에 쓴 이야기이지만 하루 만에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반면에『남자의 후반생』은 작가가 40대 시절에 걸쳐 쓴 이야기이지만 하루 만에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인생 화두’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 화두라는 주제는 감당하기가 어렵고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시공을 초월한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은 쉽고 흥미롭습니다. 그럼에도 죽비소리가 가득 넘쳐납니다. 놀랍게도 죽비소리를 들을 때마다 ‘후반생(後半生)’을 생생하게 깨달았습니다.


무릇 삶을 전반생(前半生)과 후반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생은 정해진 운명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후반생은 “더는 이따위로 살지 않겠다.”라고 각성하며 흔들립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인생의 후반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인생이 축구 경기라고 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반전과 후반전이 명확합니다.


이런 까닭에 인생의 딜레마는 후반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 삶을 선택하는 결연한 의지라고 하더라도 선택에 따른 수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 후반생을 후회하지 않으며 끝까지 갈 수 있을까요? 어느 것 하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 할 후반생을 패배하지 않고 갈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마음의 굳은살’을 떼어내야 합니다. 보통 굳은살이라고 하면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굳은살이 생기는 과정을 보면 반복적인 고통을 참아 내거나 노력을 한 결과물이라 그렇습니다. 이로 인해 굳은살은 마음의 창이 아니라 든든한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굳은살의 선한 영향력은 안타깝게도 체념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굳은살이 박일수록 우리의 마음은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무감각해집니다. 무료한 일상을 반복하고 쉽게 지치고 맙니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어왔던 삶의 가치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저자는 마음의 굳은살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경계하며 인생의 후반생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련(鍛鍊)하라고 합니다. 단련이라는 한자를 풀이해보면 그 의미가 뚜렷해집니다. 단(鍛)은 일천 번의 일을, 연(鍊)은 일만 번의 일을 말합니다. 마음을 단련해야 비로소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것처럼 녹슨 ‘쇠붙이’가 아니라 날선 ‘면도날’로 살아가게 됩니다.


바야흐로 삶을 찬찬히 살펴보면 너무나 절실한 세상입니다. 정진홍의『인생의 후반생』을 읽어보면 송곳 같은 질문이 많습니다. 하나같이 절문(切問)이기 때문입니다. 절문 즉, 절실한 질문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후반생의 절문은 정신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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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책방에 찾아오는 반가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가운 사이라고 하면 별도의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부담이 없음에도 커피믹스로 만든 커피를 내놓는 것은 예의가 없어 보입니다. 커피숍이 멀리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바로 건너편에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은 적당히 자그마한 커피숍입니다. 그럴 땐 건너편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마십니다. 적어도 찾아오는 사람에 대한 사람값을 할 수 있어 다행한 일입니다. 커피숍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커피 향이 정말이지 달콤합니다. 커피 향과 커피숍의 분위기가 함께 녹아들어 나도 모르게 그 맛을 음미하게 됩니다. 커피 냄새가 정신까지 스며들 정도여서 혼란한 마음이 훨씬 감미로워집니다.


그러고 보니 정보의 맛있음이란 말을 음미하게 됩니다. 우리가 맛을 느끼는 것은 일차적으로 미각에서 비롯됩니다. 보통 미각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입 안에서 생겨나 온몸으로 퍼집니다. 그런데 어떤 음식에 맛깔스러운 이야기가 첨가되었다고 하면 이러한 음식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같은 음식이라고 해서 사람마다 맛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더더욱 추억이 깃든 맛을 잃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어머니 덕분에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아픈 곳을 치료해주고 막힌 곳을 뚫어주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간 동안 뜨끈한 된장찌개 먹을 때의 깊은 맛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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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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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전체를 바라볼 때 누구에게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언제 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때로는 몰랐다는 것을 핑계 삼아 너무 당연하게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진정으로 내 삶을 살고 있을까, 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으로 인해 삶이 바뀌는 기구한 운명 같은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결혼식 날에 형의 장례식이 거행되어야 하는 비현실적인 슬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애도가 끝나고 나서는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가장 경이로운 세계에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가치들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진실은 ‘골드버그 장치’와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일들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세계 3대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곳입니다. 하루 만에 미술관을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작가는 그곳에서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경비원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뉴욕커>에서 일한 화려한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경비원은 비효율적인 직업으로 보입니다. 형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경비원이라는 모순을 선택했으리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바쁜 일상에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번아웃에 빠져 살아갈 길을 잃어버린 채 그저 삶을 견디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삶의 고단함과 무게감에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존재감이 없을 때마다 공허한 실망감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를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면서 다시 돌파구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보면서 예전과는 다른 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경비원은 그가 일하고 싶었던 정말이지 단순한 일입니다. 문제는 단순한 일을 한다고 해서 삶을 단순한 자세, 즉 수동적인 자세로 하는 것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비록 경비원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바운더리 이상은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시간을 흘려보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메트로미술관에서 예술작품과 씨름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경비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예술작품을 눈으로 마주하면서 흡수합니다. 남들에게 없는 예술작품을 향한 특별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합니다. 그는 평범한 경비원이었지만 예술에 대한 통찰력으로 메트로미술관의 예술작품을 두루 살핍니다. 예술이 던지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며 예술을 가까이에서 이해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고차원적입니다. 문제는 예술의 문외한들에게는 예술적인 분석보다는 예술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때로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맞는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의 예술에 대한 메시지를 곱씹으며,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지니는 가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의 걸작<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유명합니다. 만약에 이러한 걸작을 단편적인 정보와 지식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예술이 말하고자 의미를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이 조르나타 (giornata)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탈리어로 조르나타는 ‘하루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하루하루가 마치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단순합니다. 하지만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어쩌면 위대한 인생이란 팍팍한 현실을 버티는 용감한 방법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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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2-20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하루 자신의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위대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찜해 둔 도서인데, 도서 내용을 이미 상당 읽은 듯한 느낌이 들게 해주네요. 감사합니다.

오우아 2024-02-25 22:58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 감사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조르나타 기법을 여러번 생각했습니다^^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 사계절 1318 문고 27
이재민 지음 / 사계절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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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슴벌레 소년이 있을까요? 얼마나 가슴 설레는 첫사랑이 있을까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꿈꾸고 애틋하게 여기면서도 때로는 질투도 하는 이름 모를 짝사랑을 우리는 첫사랑이라 부르며 가슴에 아로새기며 잊지 못합니다.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퍼서 더 아름다운 첫사랑은 인생을 살면서 단 한번 볼 수 있는 사랑의 맨얼굴이었습니다.


‘제1회 사계절 문학상 수상작’인 이재민의『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에는 첫사랑이 달맞이꽃으로 피어납니다. 시골에서 자란 중1 은수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거나 소에게 먹이를 줘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온갖 꽃과 곤충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라 시골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은수는 마송리 약수터에서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약수터에 갔는데 그곳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폐병에 걸린 순희 누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여자 친구와는 사뭇 다른 사춘기(思春期)라는 독특한 에너지가 콩닥거렸습니다. 이 에너지는 짝사랑으로 물결치며 은수의 몸을 더욱 근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은수는 이성에 눈을 뜨고는 누나에게서 달맞이꽃 향기를 맡으며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지 소설을 읽다보면 이 책의 제목이 달맞이꽃 소년의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은수는 누나를 사랑한 나머지 달맞이꽃이 되었으니까요. 누나는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별이 아니라 단 하나 밖에 달이었습니다. 하지만 누나는 은수에게서 달맞이꽃 향기를 맡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은수를 자신보다 9살 어린 정(情)이 많은 소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누나에게는 결정적으로 남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수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타오르는 질투심 때문에 누나의 남자 친구를 ‘쪼다’라는 말로 뭉갰습니다. 또한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거나 속 썩이는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더 이상 달맞이꽃으로 맞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수는 “나는 누나를 지켜주는 사슴벌레가 될 거야.”(120p)라고 다짐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강하고 멋진 보기보다 순한 곤충은 없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구나 은수처럼 되고 싶지 않을까요? 여기에 사랑에 대한 해롭지 않은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은수에게 사랑은 사슴벌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슴벌레는 은수 자신인 동시에 짝사랑하는 누나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사슴벌레에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운 은수의 성장통이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누나가 말했듯이 “진정으로 사슴벌레가 좋다면, 사슴벌레가 자유롭게 살게 해 주어야 하는 거야.”(140p)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를 구속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주는 아름다움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사이 20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거리는 가까워졌으나 깊이를 재는 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책을 하거나 숲길을 거닐다가 상수리나무에 있는 사슴벌레를 발견한다면 놀라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한 나머지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변해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비록 이보다 더 아픈 고통이 없더라도 사랑은 영원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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