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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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 풀이하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고사성어이다. 보통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어떻게든 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문화적 충격을 보면서 사람은 어떻게 될까? 라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변화의 속도를 거창하게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우리의 인식이나 사고를 뜻한다. 패러다임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변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목숨을 바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내일을 상상하며 메시아적 희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김이정의 유령의 시간60세 김이섭이 자서전을 쓰는 내용이다. 자서전에는 해방 30주년 전후의 혼란스러운 현대사가 격동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하여 한국전쟁, 박정희 독재 정권 등의 사건들이 배경으로 잡혀 있다.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사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라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의 자서전 역사적 사건을 고발하는 울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신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격동의 물결에서 김일성은 싫지만 사회주의자가 지금도 옳다고 믿는 지식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수배자가 되었고 평생을 빨갱이라는 주홍글자를 달며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살 수 없었다. 권력자들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이념과 사상으로 민족을 와해시키고 분단의 상처를 치료하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반공(反共), 사회안전법이라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강요했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은 원고지 스물 두 장에서 미완성으로 멈추고 말았다. 이때가 그의 딸 지형의 나이 15세이었다. 그로부터 40년 지나도록 그녀의 묵직한 슬픔은 흉터로 남았다. 이러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는 그를 애도하였고, 퍼즐 조각마냥 흩어진 그의 삶을 하나하나 완성하였다. 그의 자서전의 제목대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유령의 시간이었다. 이중삼중으로 고립된 삶, 이 땅 어디에서도 그는 존재하지 못했으니까.


작가는 무엇 때문에 지금에 와서 김이섭의 비극적인 삶을 복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국가와 사회의 역사가 어떻게 개인의 역사를 망가뜨렸는지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서둘러 달려온 한국 현대사가 흘린 남겨진 진실에 눈을 뜨면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진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한 대가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가혹했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의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그 자신에게 있는 듯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얼마나 다행이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가족은 물론 친족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그들은 신원조회라는 바늘구멍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원망 때문에 가혹한 운명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이중적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국가는 그가 그토록 믿었던 사회주의를 개인의 문제로 외면해버렸다. 그러면 국가는 책임져야 할 부분에서 은근쓸쩍 물러나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장인이 말한 것처럼 어떤 사상도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 절대적 믿음은 적대적 관계로 파생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게 더 인간적인 제도냐의 문제인지 모른다.


정말로 인간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나는 인간적이라는 것을 조금 오래 생각해 보았다. 그가 공평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믿었던 이념도 인간적이었고, 이념 때문에 월북했지만 이쪽에서 내 가족을 희생시킬 만큼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때문에 다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인간적이었다.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비극과 찬가가 혼재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이 철저히 통제된 세계와 욕망이 지나치게 과잉된 세계의 경계선에서 희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유령의 시간은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은 사람들의 상처를 주목하고 있다. 그들의 상처는 한 번 지나고 나면 사그라지는 별거 아니라는 냉소적인 말과 달랐다. 오히려 아주 오래도록 가슴속에 새겨져 있어 완전히 상처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망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최선은 아니었다. 유령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존재와 같았다. 이러한 유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기꺼이 과거를 소환하고 대화하였다. 작가에게 과거는 고통인 동시에 부적(符籍) 같았다.


소설 속에서 그는 유령 같았던 삶을 회고하면서 딸에게 뭐든지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 공부를 해도 마음을 다 바쳐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의무감만 남고 사는 게 재미없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를 몽상가’,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며 실패한 삶을 증명하였다. 마치 물 밖에 나온 새우의 모습처럼 투항의 자세처럼 보였다. 만약 그가 의무감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다면 영원히 비극 속에서 외롭게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후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그는 세상을 절망했으나 삶을 살았다, 실패한 인간이 아니라 뜨거운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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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31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방아지트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책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한 눈에 봐도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뜻한 눈빛에 믿음이 가고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반가워 헤어지기가 아쉽습니다. 반면에 그런 사람은 걱정과 안타까움을 마구 쏟아내면서 후회하는 듯한 말투와 표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눈빛이 굳어지고 숨이 막혀 답답할 지경입니다.


사람을 아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람,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런 사람은 ‘일루미네이터 Illuminator’입니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말을 건성 건성으로 하고 남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스스럼없이 늘어놓는 그런 사람은 ‘디미니셔Diminisher’입니다. 상대방에게 겉도는 말을 해서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합니다. 자꾸만 아픈 데를 콕 짚어낼 뿐이어서 오히려 상처로 얼룩집니다.


우리 삶이 좀 더 행복해지고 싶으면 서로가 일루미네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불빛이 되어 당신에게 가고, 당신의 마음을 열고 움직이게 합니다. 움직이면서 당신이 미처 몰랐던 자존감을 밝게 비춥니다. 비로소 자존감이 폭발하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를 괜찮은 존재라고 느끼게 됩니다. 일루미네터는 당신을 빛나는 존재, 최고의 존재로 만듭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당신을 먼저 생각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디미니셔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척 합니다.


일루미네이터는 당신을 변화시켜 주는 좋은 인연입니다. 좋은 인연에는 분명 삶의 거대한 힘이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이며 왜 사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당신의 암호를 풀어주는 조용하지만 카리스마(Charisma)가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라고 하면 비상한 힘과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매료시키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카리스마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우리는 늘 카리스마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보통 카리스마에 대한 기준으로 부와 명예를 가진 성공한 사람이라 믿고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생각해보면 아무나 성공할 수 없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성공이라는 가치는 카리마스가 있어야만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비드 브룩스의『사람을 안다는 것』을 읽다가 ‘뒤집힌 카리스마’ 라는 유명한 단어를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소설가 E.M.포스터의 전기를 쓴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포스터와 대화를 나누면서 뒤집힌 카리스마에 사로잡히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내 말에 얼마나 집중하는 지 나 자신이 가장 정직하고 예리하며 최상의 인물이 되는 기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포스터가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로 인해 작가는 무척이나 행복해서 인생의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특별한 즐거움이 바로 뒤집힌 카리스마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책방아지트에 와서 격려와 응원을 해주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이웃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카리스마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카리스마는 부와 명예가 아니라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처럼 부드럽습니다. 모난 데 없이 둥글게 사는 아름다운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리스마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밝은 표정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요즘에도 책방아지트에 있으면 마음에도 없는 쓴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책방으로 밥 먹고 살 수 있냐?’고 묻는 말을 듣게 되면 그걸 헤아리느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애써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될 리 없습니다. 무기력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습관적으로 마음이 캄캄해져 어두운 얼굴을 하게 됩니다.


뒤집힌 카리스마를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요? 카리스마가 됩니다. 내가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뒤집힌 카리스마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선물해주고 싶은 카리스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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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24절기 중에 입춘(立春)이 첫 번째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시작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입춘이 오면 집 앞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한자를 붙여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봄의 기운이 뭔지 몰랐으나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봄이 왔으니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소원을 바랐습니다. 봄의 힘으로 비로소 인생이라는 꽃이 필 것 같으니까요.


책방아지트의 문을 열고 난 후 두 번의 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입춘대길이라는 글자를 가게 건물 벽면에 붙이지 않았습니다. 일이 바쁘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입춘대길이라는 오래된 믿음을 좋아하지만 생각해보니 오래된 믿음이라는 게 발목을 잡았습니다. 오래되었으니 그냥 지나쳐도 괜찮겠지, 라며 무감각해진 것이지요.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아무 탈이 없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입버릇처럼 손쉽게 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아무 때나 할 수 있으니 신통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수리수리 마수리라고 주문을 넣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놀라운 마법이 생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 비록 내가 무엇을 원한다고 해서 100% 되지는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갈망이 있어 답답한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어디선가 크게 부서지는 느낌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뒤늦게 알고 보니,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주문은 틀렸습니다. 원래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입니다. 영화에서나 마술 공연을 보면 마술사들이 수리수리 마수리하며 주문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덩달아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즐거운 리듬에 너무나 당연하게도 속아 넘어가고야 맙니다. 만약 마술사의 주문대로 우리가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면 마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마술사가 만든 주문이 아니라 불교경전천수경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천수경은 불자들이 독송(讀誦)으로 쓰는데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으로 시작합니다. 풀이하자면,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참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정구업진언에 나오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마법사가 주문하는 대로 수리수리 마수리가 아니라 스님의 염불하는 소리였습니다. 이것을 세 번 외워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데 아마도 마법사는 한 번 하는 것마저 많다고 생각했는지 수리수리 마수리로 줄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입춘대길, 수리수리 마수리 같은 말들을 쓰고 있을까요? 물론 세상에는 좋은 말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핏 마술사들이 사용하는 망토 같기도 합니다. 망토를 걷어내면 그 속에는 우리가 바라는 단단한 희망이 자리를 잡고 놓여 있습니다. 희망은 간절한 너머까지 가보는 일,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하는 일, 미래는 우리를 자유롭게 때로는 행복하게 하는 기적 같은 일. 그러고 보니 기적 같은 말입니다. 기적이 생겨날 때까지 기적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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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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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봄을 여름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봄에는 어떤 감동이 피어날까요? 봄이 오고 있음을 나무는 먼저 알고 있습니다. 나뭇가지마다 꽃망울이 부풀어 올라 머지않아 꽃망울이 터질 것이고 꽃이 활짝 필 것입니다. 우리가 봄에 느끼는 감동은 꽃의 향연입니다. 더구나 삶이 엉망진창일 때 꽃을 바라보는 것은 축복에 가깝습니다. 나무가 식물이라는 수동적인 자세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 것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무 또한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배리 로페즈의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놀라운 에세이였습니다. 그의 탐구적인 시도는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우리 시대 최고의 자연 작가라는 거대한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55년간 80여 개 나라에 이릅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간, 비인간들을 만났습니다. 비인간의 경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이 비인간이라는 발견, 이 모든 것이 삶이었습니다. 인간이나 비인간 모두 도구가 아니라 생명으로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간과 닮지도 않고 비슷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비인간으로부터 지혜를 얻었습니다. 마치 하늘 위 구름 한 조각, 티끌 한 점 없이 청결한 공기, 덤불숲 회색곰 등등.


그중에서도 독특하게 장소에 대한 예찬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장소는 단순히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장소는 우리의 실존적 고독감을 해방시켜주는 곳입니다. 그가 오스트레일리아 노던 준주의 타나미 사막, 아프리카 남서부 해안의 나미브 사막, 캐나다 북극권의 엘즈미어섬 등등 세계 끝까지 갔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인간과 장소에 대한 관계의 속성을 알려짐으로 교감하면서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했느냐? 를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작가라는 사회적 책임에 헌신하며 자연을 위해 선도적인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줄곧 자연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문명을 개발하고자 하는 탐욕 때문에 자연을 스스럼없이 파괴해왔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당연한 권리고 자연의 당연한 희생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절박해졌습니다. 도저히 견디기만 해서는 절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악몽 같은 현실을 맞닥뜨린 지 오래입니다.


우리 시대의 미래는 좋은 삶의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환경으로 부터의 위협이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경각심이 되었습니다. 이제 자연의 신비로움을 되찾기 위해서는 실존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불신하는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저자의 생각은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화해왔습니다. 우리에게도 긍정적인 지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연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유인즉 너 자신이 아닌 세계에 인내심 있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184p)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연민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연민은 자신에게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오늘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의 지난 시절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상처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의 고통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복수하고픈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는 가족이 감당해야 할 또 다른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나머지 적당한 침묵으로 아픔을 버텨냈습니다. 침묵은 복수의 칼날이 자신을 겨누는 반복되는 슬픔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슬픔의 피해자라는 것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슬픔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화목하고자 했습니다. 좋든 싫든 슬픔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슬픔을 이해하면서 가해자의 악몽에 공감하는 큰 포용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조차 긍정하게 만드는 자기 존중이라는 빛을 어디에서 찾았는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무한히 용서하고 무안히 위로하는 빛이라는 중심축이 있었다. 유칼립투스 나뭇잎과 어도비 벽돌집의 옅은 벽면과 출렁이는 수면까지, 주위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적시는 빛이 내 존재를 지탱했다. 그 빛, 그리고 나를 하늘로, 나 자신의 바깥으로 끄집어내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던 새들이 내 삶에 희망이라 부를 만한 것을 가져다주었다.(32p)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천천히 읽으면서 생명에 대한 생각이 사뭇 바뀌었습니다. 그는 자연 앞에 경건했으며 죽음의 매커니즘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메타포를 깨달았습니다. 그의 기도(祈禱)하는 삶을 통해 너무 아름다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가 다 생명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사막이며 숲이며 강이며 북극이 다 생명이었습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봄, 여름이 다 생명이었습니다.


우리는 꿀벌이 사라지는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꿀벌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꿀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요? 라는 나침반 같은 질문을 하다 보면 봄과 여름이라는 생명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심정으로 봄을 여름과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삶을 구원하는 배리 로페즈의 섬세하고 묵묵한 시선을 회고하면서 적어도 세상의 불공정한 경쟁에 끌려다니는 것을 반대하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꿀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합니다. 꿀벌의 날개에는 아주 오래된 지혜가 살아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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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가까이 다니던 플라스틱 사출 공장을 후회 없이 그만두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몸이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지더군요. 더 이상 퇴화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버텨보라고 입을 모아 말해주었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10년이 되는데 아깝지 않냐고 말입니다. 10년을 빈틈없이 일하면 회사에서 주는 감사패와 상당한 공로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생산직을 할 정도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제조 기계’로 취급되는 불치병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이제 유배되었던 공장에서 벗어나고 보니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월든』을 읽다가 의도적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소로우는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 숲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을 때 헛된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소로우을 보면서 살아있는 동안 한 번쯤은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는 게 결코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헛된 삶인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헛된 삶을 느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헛된 삶의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남들처럼 성공하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성공이라는 무게감에 눌려 정신이 이상하게 변형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은 성공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게 합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게 사소해 보여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10년 후에도 똑같은 사람이라면 절망감과 무력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10년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슬퍼집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책방을 차렸습니다. 젊어서 의무감으로 누리지 못한 자유를 이제라도 되찾고 싶었습니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밥벌이를 생각한다면 어디 가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게 분명합니다. 바보 같은 짓을 부러워할지언정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지? 두려움과 떨림이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마침내 소란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서야 기어코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소로우의 말을 빌려보면 나의 봄을 여름과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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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3-31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방을 차리셨군요. 축하드려요. 좋은 책들이 가득한,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공간이길 바라요.

오우아 2024-03-31 16:59   좋아요 0 | URL
앞으로 10년, 내 인생을 한 번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자목련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책방을 하면서 나름대로 책 한권을 준비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