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품격 -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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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처럼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블로그에다 쓰다 보니 이런 바람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서투르고 빈약한 내 문장에 비해 작가의 문장은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다. 막힘이 없는 탄탄한 문장을 읽으면 답답했던 가슴 한 구석이 시원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들며 잠들어 있던 오감을 깨어나게 한다. 그러니 작가처럼 글을 쓰려고 한 시절을 보낼 때 좋은 문장을 만나는 것은 오랜 벗을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문장을 좋게 하는 규칙 혹은 기술과 방법은 많다. 하지만 좋은 문장은 설득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다듬고 저렇게 다듬었다면 비록 규칙에는 어긋나지 않겠지만 죽은 문장일 뿐이다. 규칙에 대한 집착이 좋은 문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문장을 좋게 하는 규칙이라고 하더라도 ‘글맛’이 없다고 하면 좋은 문장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맛이란 글을 읽게 만드는 것이다. 글맛이 나야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읽고 나서도 충분히 배부를 수 있게 된다.

 

안대회의『문장의 품격』을 읽으면서 ‘글맛’이라는 의미를 깨달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 책에는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등 조선의 문장가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소개되고 있다. 이른바 ‘조선의 파워블로그’로 불리는 그들이 말하는 문장의 품격이란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이다. 좋은 문장이라고 해서 꼭 논리적으로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문장을 비논리적으로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르를 떠나서 자유롭게 생각한 것을 진실하고 담백하게 쓰는 것이다.

 

조선 명문가의 문장은 파격적이다. 기존의 낡은 사상과 정서를 답습하는 고문(古文)이 아니었다. 대신에 아주 다양한 일상적인 모습을 개성이 넘치며 실험적으로 그려낸 소품(小品)이다. 가령, 문호(文豪)인 동시에 문제적 작가인 박지원의 산문은 그만의 개성이 넘치는 문체를 보여 ‘연암체(燕巖體)’라고 불릴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박지원에게 글의 격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글의 소재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다. 오직 먹물에 듬뿍 묻힌 법고창신(法古昌新)이라는 창작력으로 독특한 색채를 창조해냈다.

 

한편으로,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부른 이덕무는 ‘문단을 뒤흔든 낯선 문장’이라는 자기 고유의 색깔을 창작해냈다. 그의 치열한 문학정신을 잘 표현한 ‘나비의 비유’를 잠시 감상해보면 다음과 같다.

 

진짜에 바짝 다가서고 몹시 닮은 것이라 해도 하나같이 제이(第二)의 자리에 머무는 법. 핍진(逼眞)하고 닮았다는 것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다시 한 번 똑똑히 살펴보라! 본연의 바탕을 먼저 볼 수 있어야 가짜에 막힘을 당하지 않는다. 온갖 가지 수많은 물상(物象)은 이 나비의 비유를 법으로 삼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7인의 조선 문장가의 문장은 모호한 구석이 없다. 인생의 치열함에서 건져올 린 생각이 투명하고 분명하다. 허균은 비판적이며 이옥은 희작적이다. 이렇듯 조선의 파워블로그 7인은 다른 글쓰기를 보이면서 다른 삶을 살았다. 문장은 글쓴이의 생각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장은 글쓴이의 인격이며 인격은 곧 문장의 품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문장은 좋은 인격이며 동시에 좋은 예술이라는 것이다. 고전 산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좋은 예술이란 박제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입맛’이 나야 한다. 맛이 없으면 우리는 먹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글이 아니면 우리는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글맛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입맛’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입맛이 글맛에 대한 최고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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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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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라는 말이 연금술사처럼 쓰일 데가 있다. 공부벌레, 일벌레 등등 어떤 일에 미쳐야만 벌레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벌레’라는 말은 반가우면서도 눈물겹다. 책과 동고동락한 세월은 곧 삶의 나침반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청나라 소설가 포송령(蒲松齡)은 ‘어떤 눈먼 승려가 종이 위의 글자 냄새만 맡으면 바로 그 글에 담긴 내용의 좋고 나쁨과 수준의 높고 낮음을 알 수 있었다.’ 고 했다. 책벌레가 말 그대로 동물일 경우는 책에 기생하면서 글자를 마구 헤치며 눅눅한 냄새를 풍기는 곰팡이를 먹는다. 하지만 책벌레가 사람일 경우는 다르다. 글자 냄새, 곧 서향(書香)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서향이 궁금하다면 정민의『책벌레와 메모광』은 좋은 길라잡이다. 지금까지 책벌레를 다룬 책들은 넘쳐났다. 삶에서 책을 빼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러나 단순히 책벌레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무색무취할 뿐이다. 좁게는 글자 향기, 넓게는 책 향기를 제대로 음미해야만 우리는 책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저자가 지금 사람이 아닌 옛사람을 만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사람들이 남긴 고서(古書)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과 더불어 책벌레들의 사연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행간을 더듬다가『유양잡조 酉陽雜俎』에 나오는 진짜 책벌레 두어(蠹魚)에 대한 내용은 사뭇 의미심장했다. 즉, “두어, 즉 책벌레가 책 속에 있는 신선(神仙)이란 글자를 세 차례 이상 갉아먹으면 변화해서 맥망(脉望)이란 벌레가 된다네. 밤중에 하늘 별에다 이것을 꿰어 비추면 별이 그 즉시 내려와 환단약(還丹藥)을 구할 수 있게 되지. 이것을 물에 타서 먹으면 그 자리에서 환골탈태하여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네.”는 것이다. 무릇 책을 열심히 읽으면 생각이 밝아진다는 것을 셀 수 없이 들었는데 이것이 아닌 몸을 바꿀 수 있는 명약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음에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책을 눈으로만 읽는다고 해서 책벌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책만 보는 바보로 불리는 이덕무는 자신의 서재를 ‘구서재’(九書齋)라고 말했다. 구서재는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활동이 이루어지는 집이라는 뜻이다. 바로 독서(讀書), 간서(看書), 초서(鈔書), 교서(校書), 평서(評書), 저서(著書), 장서(藏書), 차서(借書), 포서(曝書)다. 온갖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된 세상에서 책을 읽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럼에도 뭔가 살아갈 의미를 되새겨 볼 때 저서(著書)의 가치를 대면하게 된다. 저서는 글쓰기다.


이런저런 글쓰기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공통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중에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듯 ‘메모광’도 좋은 방법으로 추천할 만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책속의 문장이나 인터넷의 검색으로 생각을 붙잡을 수 있다. 그러나 불현듯 떠오르다가 금방 사라지는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메모를 해야만 한다. 만약 그때 메모로 남기지 않으면 그때의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저서에 비해 메모는 단순한 열정인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열정이 없다면 생각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러면 메모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기억의 한계에 대한 방어기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깝다. 메모에 담겨 있는 온갖 경이로운 현상들은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는다. 생각해보면 메모의 놀라운 진실들 하나하나 다시금 메모하게 한다. 스티븐 기즈는『습관의 재발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그 뭔가를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우선하게 만든다. 자신이 뭔가를 실행에 옮기는 걸 보는 것만큼 고무적이고 의욕을 유발하는 일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책벌레와 메모광을 따라가다 보니 평소 같으면 메모가 생각보다 앞선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독서가 아무리 좋다고 권장하더라도 독서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듣기 싫으면서도 가장 당연하게도 독서가 습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서할 시간이 따로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자는 “세끼 밥 먹듯 독서하는 습관"을 권한다. 세끼 밥 먹는 데 굳이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뭐든지 세끼 밥 먹듯 해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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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영향력 -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어떻게 나에게 스며드는가
마이클 본드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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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사람들 때문에 보톡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보톡스는 얼굴에 잔주름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 얼굴에 표정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점은 잔주름이 뚜렷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잔주름을 의학적으로 동적 주름(dynamic wrinkles)이라고 한다. 보톡스의 효과는 동적 주름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그 근육을 펴지게 하면서 주름살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보톡스가 피부 미용에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는 만큼이나 독소를 품고 있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이클 본드의『타인의 영향력』을 읽고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인간관계에 있어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으로 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게 된다. 더 나아가 상대방의 감정에 동조하면서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눈다. 그래서 얼굴에 전혀 감정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상대방과 어떤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사람의 감정은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모방하게 한다. 또한 감정은 전염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확산되는데 가장 솔직한 감정일수록 감정 전염도 높다. 사회적인 관계의 필연적인 결과다. 그러나 보톡스 때문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못지않게 호감을 덜 살 것이다.

 

우리가 감정 전염에 주목한 이유는 간단한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다. 그만큼 타인의 영향력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좀 더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친구가 많으면 행복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여부에 딸려있다. 결론적으로 행복한 친구들과 관계할수록 행복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감정 전염이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때 군중심리가 된다. 군중은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다. 몰개성화이론에 따라 개인은 군중 속에서 익명의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난 같은 비상상태에서 군중은 이타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럴 때 군중은 ‘제4의 구조요원’이 된다. 충분히 ‘군중 속의 온기’를 느낄 만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회심리학의 성과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담아낸 다양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카멜레온 효과, 감정 전염, 군중심리, 넛지 전략, 방관자 효과, 루시퍼 이펙트, 그리고 고독의 사회학까지 인간 행동에 관한 비밀을 담고 있다. 이러한 비밀은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주장도 함께 펼치고 있다. 말콤 글래드웰에 비견되는 저자의 통찰은 타인의 영향력이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모색하며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심리학이 없다면 우리가 진실로 서로를 이해하기기를 바랄 수 없다는 관계의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방관자 효과에 맞서는 방법은 이렇다. 방관자 효과란 출근길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방관자 효과에 대응하는 방법은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제안한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즉, “낯선 사람을 고통받는 동료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그 순간 우리는 영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영웅이라고 하면 헤라클레스를 떠올린다. 헤라클레스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하지만 이런 영웅은 2%에 불과하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영웅이 비교적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잠재적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듯 인간은 의식주만으로는 살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오늘날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다양한 이웃이나 친구 맺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관계가 친밀하지 않다면 이웃 혹은 친구수가 많아도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대로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말하니까. 그래서 고독의 사회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독은 사회적인 고립에 따른 소외감이 아니다. 오히려 고독은 혼자 있는 기쁨을 뜻한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혼자 지내야 할 때 고독은 우리 몸 속에 친구를 만들 방법을 생각하게 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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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 대니얼 데닛의 77가지 생각도구
대니얼 데닛 지음, 노승영 옮김, 장대익 해설 / 동아시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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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와 대장장이의 차이점은 뭘까? 둘 다 도구를 사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목수가 자기가 쓸 톱과 망치를 만들지 않지만 대장장이는 여러 가지 재료를 가지고 자기가 쓸 톱과 망치를 만든다. 우리가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생각 도구를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최고의 지식인은 최고의 생각도구를 만든다.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를 주목한 이유는 어렵지 않았다. 마빈 민스키 교수에 따르면 데닛은 지구를 대표해 외계인과 지적 대결을 펼칠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장대익 교수는 ‘지구 최고의 지식 요리사’라고 말하면서 이 책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책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생각은 제목에 나와 있듯 ‘직관펌프’다. 저자에 따르면 직관펌프(intuition pump)란 직관을 불러일으키는 명제를 논파하며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진심으로 무릎을 치게 하는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이솝 우화의 철학자 버전이라고 거듭 말한다. 하지만 직관펌프는 이솝 우화의 철학자 버전이라는 명제는 매우 ‘심오로워’라고 할 수 있다. 뻔한 거짓임에도 만일 사실이라면 놀랄 만하다. 한편으로는 참이라고 하면 별것 아닌 말이 되고 마는 것. 이렇게 직관펌프가 심오로워 되는 까닭은 바로 철학자들이 즐겨 쓰는 메타 수법 때문이다. 메타 수법이란 ‘생각에 대한 생각, 말에 대한 말, 추론에 대한 추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생각에 대한 생각만 한다고 해서 직관을 펌프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복잡해야 한다. 이유인즉 철학에서 말하는 지향성(intentionality) 때문이다. 우리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 물리적 태도다. 손에서 돌멩이를 놓으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둘, 설계적 태도다. 자명종이 설계된 대로 울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은 지향성 태도다. 어떤 대상의 행동을 해석할 때 그 대상이 스스로의 믿음과 욕구를 고려하여 선택과 행위를 제어하는 ‘합리적 행위자’인 것처럼 대하는 전략이다. 가령, 체스를 두는 컴퓨터를 생각하면 된다. 체스를 두는 컴퓨터는 합리적으로 최선의 수를 찾는다. 그래서 컴퓨터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합리적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

 

이 책에는 77가지 생각도구가 있다. 12개의 일반적 생각도구에서부터 컴퓨터, 의미, 진화, 자유의지 그리고 철학자가 된다는 생각도구까지 다루고 있다. 77가지 생각도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거나, 관심이 있었는데 접근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어떤 참신한 생각도구를 발견하고자 했다면 우리는 실수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는 데 따라 달라진다. 만일 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기존의 시스템이 해석해준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데닛처럼 생각해보기는 우리를 ‘ㅅㅂㄸ(jootsing)’, 즉 시스템 밖으로 뛰쳐나오게 한다. 이것이 저자가 바라는 모든 이의 길을 밝혀줄 ‘좋은 실수’라는 것이다.

 

그러면 좋은 실수를 다윈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저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은 모든 전통적 관념을 무너뜨리고 전혀 새로운 관념이되었다. 다윈의 개념이 얼마나 강했으면 ‘만능산(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진화를 이끄는 자연선택에 대한 독창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다.

 

자연선택은 자동으로 이유를 찾는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이유를 ‘발견’하고 ‘승인’하고 ‘집중’시킨다. 따옴표에서 보듯 자연선택에는 마음이 없으며 그 자체로는 이유도 없지만, 설계를 다듬는 이 ‘작업’을 수행할 능력은 있다. 이것 자체가 이해 없는 능력의 예다(p290).

 

이 책을 통해 직관펌프가 자연선택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해 없는 능력이다. 77가지 생각도구들 하나하나에는 분명한 설계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설계된 목적을 알 필요는 없다. 이해 없는 능력에 따라 우리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해 없는 능력만큼 77가지 생각도구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효율적이며 뛰어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실수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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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옆 철학카페 - 세네카부터 알랭 드 보통까지, 삶을 바꾸는 철학의 지혜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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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면 먼저 떠오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인생관, 세계관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는 한 둘이 아니다. 취업, 결혼, 사랑, 죽음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다룰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이토록 고민하는 순간순간이 곧 철학적인 순간이지 싶다. 그럼에도 철학하면 어려운 탓에 꼭 읽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고스란히 남는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칸트 등 이름 있는 철학자들을 ‘과시적 소비’할 뿐 정작 그들 앞에서 우리는 대개 무기력하다. 이러한 문제는 굳이 철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철학만큼 삶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없지 않을까?

 

안광복의『도서관 옆 철학카페』는 철학이라는 단단한 독서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길잡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상철학자라고 불리는 저자는 철학을 두루 섭렵하고 해독하며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다. “모든 이해는 오해다.”라는 니체의 말을 무기 삼아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말한 오해는 책의 내용을 100% 공감해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생각이 다르다거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이러한 긍정적인 오해가 없다고 한다면 오늘날 철학자들의 문제의식은 쉽게 공유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인생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공이나 행복의 뒷면에는 무수한 실패와 좌절, 그리고 절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인생의 쓴맛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듯 실패를 기회로 바꾸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이진경이『삶을 위한 철학수업』에서 말한 ‘사건’과 ‘사고’를 주목하면서 실패도 삶의 일부이며 위대한 자산이라는 것을 들려주고 있다. 즉,

 

사고가 많은 인생은 그 사고와 크기만큼 안타깝고 불행하지만, 사건이 많은 삶은 그 사건의 수와 크기만큼 풍요롭고 행복하다.

 

그럼, 이진경이 말한 사건과 사고의 차이가 뭘까? 둘 다 뜻밖의 시련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사건은 실패의 한계를 넘어 인생의 목표를 깨달으며 성장하게 한다. 반면에 사고는 실패에 타협할 뿐 어떠한 도전도 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진경은 “두 번 긍정한 사람은 불행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만든다.

 

인생은 목표의 연속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지도 커다란 질문이다. 러셀에 따르면 생업 혹은 소명의 문제를 ‘소유의 욕구’와 ‘성장의 욕구’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소유의 욕구가 일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면 성장의 욕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경쟁자와 우정을 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제시한다. 즉, 경쟁자를 노예로 만든다면 자신의 가치는 보잘 것이 없다. 반대로 경쟁자를 주인으로 존경한다면 자신의 가치는 높은 인정을 받게 된다. 이밖에도 나이 먹기가 두렵지 않으려면 마르크 폴리가 말한 “매 시간이 마지막 시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최초의 시간만큼 아름다울 것이다.”는 삶의 밀도를 높게 한다.

 

『도서관 옆 철학카페』를 읽으면서 ‘도서관 옆’을 생각해봤다.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는 도서관은 고독하다. 어느 누구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 한가롭게 도서관에 있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불평하겠지만 도서관은 짜증내지 않고 고독을 이겨내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서관은 ‘고독을 이기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도서관의 가치를 너무도 모른다. 우리가 도서관을 짓고 있음에도 정작 도서관은 우리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도서관이 공부방보다는 철학카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주말마다 독서와 사색을 위해 도서관에 간다는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실천적 지혜’를 몸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0.1% 가능성이더라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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